83화
풍덩!
백령은 바다에 빠졌다.
침대 위에서 바다로…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였다.
“흐아-아아아압!”
놀라는 바람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입이고 코고 물이 들어가 따가웠다.
신속히 발을 구르고 손을 휘저어 헤엄쳤다.
앞이 안 보였다.
어디가 위인지는 몰랐다.
… 무작정 움직였다.
지금 가는 방향이 맞는지.
얼마나 더 올라가야 수면 위로 오를 수 있을지…
아무것도 몰랐다. 너무 갑갑했다.
하나 더 생각할 틈은 없었다. 일단 살고 봐야 했다.
헤엄치면서 올라가는데…….
푸-아학!
수면 위로 올라왔다.
황급히 부족했던 숨을 몰아쉬었다.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아서 위치파악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었다.
그때였다.
“재수가 있는 편이네.”
대략 수면 10미터 위이자 너머에서 들린 목소리.
좀 전에 들어 생생한, 맹인 검객의 목소리였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지?”
백령이 성질을 내며 외쳤다.
맹인 검객이 자신을 죽이려 했으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다. 한데 살려두는 걸 넘어서 바닷속에 빠뜨렸다? 골탕 먹이려는 걸까? 그렇다면 왜? 원수를 진 적은 없지 않나.
여러 생각이 오가는 사이,
“백령.”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친숙하진 않지만, 예감이 일러주었다.
누구의 목소리인지.
“강기찬? 강기찬인가?”
“어.”
백령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암살을 시킨 자.
암살을 하는 자.
암살을 당하는 자.
이 세 부류가 한 곳에 모였다?!
영화나 소설에서도 볼 수 없을 법한 장면이었다.
더 기괴한 것, ‘암살을 하는 자’와‘암살을 당하는 자’가 같은 편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암살을 시킨 자’가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는 점도.
‘미친…….’
인과관계를 모르기에 속에 천불이 났다.
우선 하나부터 물어봐야겠다.
“맹인 검객, 왜 강기찬을 살려둔 거지? 강기찬이 내가 낸 돈의 몇 배라도 불렀나? 아니지, 강기찬에게 그럴 돈이 있을 리가 없잖아…….”
강기찬이 가볍게 중얼거렸다.
“나 돈 좀 있는데.”
“참나… 그걸 믿으라고…….”
“확신에 찬 듯이 말한다?”
“당연하지, 내가 네 재산 현황을…….”
백령은 자신 있게 말하다가 말았다.
이걸 강기찬에게 말해봤자 좋은 게 없다는 걸 한발 늦게 깨달았다. 남의 재산 현황을 들춰봤다는 거니.
하나, 늦었다. 강기찬이 바보가 아닌 이상 눈치채지 못할 리 없으니.
다만, 예상과는 달리 강기찬은 불쾌해하지는 않았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는 안 되었나 보네. 나 1천억 좀 넘게 있는데. 하긴, 모를 만도 하지.”
“뭐? 1천억?”
당연히 백령이 진지하게 받아들일 리 만무했다. 하나, 이걸 물고 늘어져봤자 소득은 없을 터. 넘어가기로 했다.
“어쨌든… 몇 배의 돈으로 회유라도 했다. 이건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을 주었지.”
강기찬이 맹인 검객을 바라보며 그리 말했다.
맹인 검객도 순순히 시인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백령이 물었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을 주었다고? 그게 뭐지?”
당장 떠오르는 게 없었다.
여하튼 맹인 검객은‘그것’을 받고 암살을 중단했다. 아니, 그걸 넘어서 역으로 자신을 죽이려고 이런 짓까지 꾸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뭘까? 그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란?
“뭐냐고……!”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맹인 검객이 돈이 부족해서 암살을 해왔던 게 아니라는 것 정도야 익히 알았다. 그런데도 암살을 해왔던 이유 역시 돈 때문이었다 즉 돈 그 자체에 환장한 여자라는 거다. 그런 자의 마음을 돌려세웠다? 그것도 돈이 아닌 다른 거로?
“눈.”
“눈?”
“눈을 뜨게 해주었다.”
“그… 눈을 뜨게 해주었다는 게?”
“앞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고.”
“아, 앞을?”
“그래, 앞을.”
“지랄하지마!”
“지랄? 일리 있는 욕설이라서 봐준다.”
“네가 뭔데 나를 봐준다 마라.”
백령의 말이 끊겼다.
제 의지로 말을 끊은 게 아니었다.
타의로.
말을 끊고 싶지 않았는데 끊겼다.
지금도 말하려고 애쓰지만, 안 되었다.
‘아니, 말을 못 하게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그게 레전드스토리에서 가능한 건가? 그런 스킬이나 칭호는 없었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불가항력의 힘이 작용하고 있음은 틀림없었다.
강기찬이 말했다.
“이제 말해 봐. 될 거다.”
“…는 거야!”
백령이 말했다.
“어?”
이제는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말을 못 했던 것도, 이제 말을 다시 할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강기찬이 한 것임을.
그리고 강기찬이 왜 이런 짓을 했는지도 알았다.
자신은 그만한 힘을 지녔다고 과시하는 것이다.
또한, 맹인 검객의 앞을 볼 수 있게 해준 게, 마냥 불가능하겠냐고, 묻는 것이다.
“… 앞을 볼 수 있게 해줘. 그럼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널 믿게 해줄 필요는 없지. 하지만…….”
강기찬이 뜸을 들였다.
맹인 검객의 귓속말을 듣고 있어서.
[맹인 검객] 10초 뒤에 시각 차단이 해제돼.
[강기찬] 감사.
강기찬이 이어 말했다.
“… 못 믿게 할 이유도 없지. 보여줄게.”
정확히 10초 뒤,
“자, 시각 차단을 해제했다.”
“정말?”
강기찬의 말은 사실이었다.
백령은 시각이 돌아왔음을 체감했다.
앞을 못 본다는 게 얼마나 지옥 같은지, 겪어보니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시야가 트이니 급하게 눈알을 굴렸다. 현재 위치부터 파악하는 게 급선무니까. 어딘지 모를 바다 위였다.
“하…….”
처음 본 사람은, 허공에 떠있는 강기찬이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 있는 맹인 검객.
맹인 검객은 자신을 똑바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백령과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했다.
“저, 정말이냐? 정말 앞이 보여?”
“그래.”
‘눈빛 교환’이 우연의 일치인지 확인이 필요했다.
“이, 이게 몇이지?”
백령이 두 손가락을 펼쳤다.
곧장 맹인 검객이 답했다.
담담하게.
“2, 검지와 중지를 펼쳤다.”
“!”
더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맹인 검객이 앞을 볼 수 있다는 게 맞는다는 것을 백령은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이걸 보면 더 놀라겠네.”
강기찬이 자신의 다리 한쪽을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 허공으로 한 차례 발길질도 했다. 그 외에 어떤 설명도 필요 없었다. 하나, 백령은 철석같이 알아들었다. 강기찬이 어떤 의도로 행동한 것인지.
“강기찬, 너는 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된 거냐?”
“그래.”
기적이 펼쳐졌다.
하나도 아닌 둘에게서…….
말로만 들었지, 본 적은 없었던 기적.
이거야말로 진짜 기적이 아닐까?
‘이제야 이해가 가네…….’
맹인 검객이 강기찬의 편으로 돌아선 이유.
그녀의 평생의 콤플렉스일 눈을 뜨게 해주지 않았나. 자신 같아도 강기찬에게 충성을 다할 터였다.
“…….”
이로써 맹인 검객을 회유한다는 계획은 접었다. 대신 궁금한 걸 물었다.
“그, 그것도 네가 한 거냐?”
“뭐?”
“나를, 내 집에서 이곳으로 데려온 거…….”
“그렇지.”
“그게 어떻게 되지? 내가 허락도 안 했는데 나를 강제로 어딘가로 이동시킬 수 있다고?”
“이미 일어난 일인데, 부정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하…….”
표정이 일그러지는 백령을 보고선 강기찬이 말했다.
“물속에서 숨이 막혔나?”
“뭐?”
“묻고 있잖아.”
“아, 그래.”
강기찬의 강압적인 어조.
평소 같았으면 있을 수 없는 일.
하나 그것까지 따질 여력이 없었다.
대신, 백령은 어리둥절했다.
“근데 왜 그런 걸 묻는 거지?”
희한했다.
물속에서 숨이 막히는지 안 막히는지, 그걸 왜 묻는단 말인가?
“실험 중이라서,”
“무슨 실험?”
“여기 던전이거든.”
“?”
백령은 퍼뜩 이해하지 못했다.
“던전? 던전인데 나는 왜 물속에서 숨이 막혔지?”
던전이라면 게임 시스템의 비호 아래에 있기에 물속에서 숨이 안 막혀야 정상이다.
‘여기 어디야?’
백령은 즉시 맵을 켰다.
정말 이곳이 던전인지 확인하려고.
그렇게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재 위치 : 테스트서버 - 버려진 세계 - 절망의 협곡]
“어? 여기가 테스트서버라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테스트서버를 비롯해 버려진 세계, 절망의 협곡, 전부 다 처음 듣는 공간명칭이었다.
매우 불쾌했다.
가뜩이나 기존에 품었던 의문도 하나도 해소되지 않았는데 의문이 더 늘어나 버렸으니까.
한편, 강기찬은 골똘히 생각했다.
‘역시… 던전이라 해도 현실에서 가져온 물이라면 현실의 법칙에 따르는 거네.’
일전에 허수아비 논밭에서 NPC제페토가 화상을 입지 않았나. 현실에서 가져온 화염방사기 때문에. 그 연장 선상인 것이다.
‘이러면 NPC나크로서에게 써먹기 좋겠네.’
지금 강기찬은 백령에게 미지의 공포를 선사해 압박함과 동시에 실험하는 중이었다. 훗날 있을 NPC나크로서 처치를 대비하고자.
물론, 물속에서 숨이 막히냐, 안 막히냐, 정도야 직접 확인할 수 있긴 하지만, 백령이라는 좋은 실험대상이 있는데 굳이 물을 마셔서 고통스러울 건 없었으니까.
“어때 던전 맞지?”
백령이 맵을 보는 걸 직감한 강기찬이 물었다.
“… 이거 참…….”
“궁금한 게 많을 텐데, 그래도 묻는 거 대답 안 해줄 거니까, 묻지 마.”
“…….”
강기찬이 단단히 못을 박았기에 백령도 그러한 질문에 관해선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강기찬이 말했다.
“넌 내 실험대상이 될 거다.”
“뭐-어?”
“넌 거절할 권리가 없다. 거절하는 즉시 죽는다.”
백령은 느꼈다.
강기찬의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신기할 따름이었다.
유저가 살기를 띠지 않았는데 간담이 서늘하다는 게.
그것도 저런 저레벨이…….
“알았나?”
“어, 어어… 그럼 그 실험이 끝나면 어떡할 거냐?”
“살고 싶나?”
“당연한 거 아니냐?”
“나를 죽이려 했으면서, 넌 살길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 아닌가?”
“…….”
백령은 결정해야 했다.
이대로 순순히 따를 것인지, 저항할 것인지.
사실 이미 마음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어차피 실험체로 쓰이다가 죽을 각이었다.
그럴 바엔 강기찬이라도 제거하는 게 낫지 않을까?
설령 그다음에 맹인 검객에 의해 죽는다고 하더라도.
‘아니, 아니야. 내 목숨이 더 귀하지.’
어떤 행동을 하든 딱 한 번만 시도할 수 있다고 봐야 했다. 그렇다면 그 기회를 강기찬을 처치하는 데 쓸까? 아니, 자신의 목숨을 구하는 데에 쓰는 게 낫다.
‘강기찬을 제거하지 않고 지금 도망가면 살 수도 있지 않을까?’
강기찬을 죽이고 싶었다.
이전에는 거슬리게 될 걸 미리 치운다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진심으로 찢어발겨 버리고 싶달까. 그만큼 굴욕을 안겨다 주었으니까.
하나, 행동을 신중히 해야 했다.
강기찬의 곁에는 맹인 검객이 있다.
강기찬에게 닿기 전에 맹인 검객에 의해 저지당할 수 있다. 눈 감고도 악명을 떨쳤던 인간이다. 눈 뜬 지금은?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거다.
그렇다면 이도 저도 못 하는 개죽음만 당할 터.
그러니,
‘지금은 도망가는 게 낫다. 강기찬을 제거하는 건 다음에 해도 될 일이고. 하지만, 내가 죽으면 다음은 없어.’
결심했다.
도망가기로.
다행히 탈출 방법은 있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