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GM미르와 맹인 검객.
둘에게서 공통으로 느껴지는 것.
그것은 적개심이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매섭다. 초면인데도.
강기찬은 위화감을 느끼며 소개해주었다.
서로에게‘적’이 아님을 이른 것.
그런데도,
“아아… 그러니까, 저 속옷 차림 여자가 너를 죽이려고 했었다 이거지?”
GM미르가 먼저 말했다.
분명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어째 어감이 웃음기가 돈다고 해야 하나?
이에, 맹인 검객이 되받아쳤다.
“이젠 아니지. 은인이 되었거든.”
강기찬은 GM미르를 아는 누나라고 했다. 운영자라고 할 수는 없으니. 그래서일까? 맹인 검객의 태도가 당돌했다.
“그쪽 레벨은 몇이야?”
유저로 오인한 모양.
유저끼리 레벨 묻기는 실례다.
다만, 최상위 랭커에겐 과시의 수단이기도 했다.
맹인 검객 정도 되면 충분히 레벨 물을 만했다.
GM미르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레벨? 없는데?”
운영자는 레벨이 없다.
레벨 자체가 의미도 없었고.
유저 레벨이 아무리 높아도 운영자의 발아래에 있으니까. 2차 전직 1레벨이, 1차 전직 만렙보다 강하듯, 말이다.
맹인 검객의 표정이 풀렸다.
“뭐야? 일반인이었어?”
또한, 너그러운 어투로 돌변했다. 유저면 모를까, 일반인은 애당초 상대가 안 되었다. 은연중에 자신보다 발아래에 있다고 여기니.
“진작 말하지.”
경쟁 상대도 안 되는 게…….
딱 그 생각이었다.
GM미르도 질 수 없었다.
“뭐야? 유저 주제에…….”
“그래, 유저 주제다? 왜? 부럽냐?”
“부럽기는 개뿔이…….”
맹인 검객은 불쾌하지 않았다. 서민이 재벌에게 재벌 주제에, 라고 하면 화가 나기보단 가소롭게 느껴지듯이.
‘일반인’인 GM미르가 유저인 자신을 시샘해서 하는 말이라 착각한 것이다.
실상은 GM미르도 맹인 검객이 정말로‘유저라서’가소로운 건데.
GM미르가 경고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강기찬에게 집적거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GM미르는 맹인 검객의 눈빛에서 강기찬에 대한 호감을 보았다. 단순히 생명을 구해준 이에 대한 객관적인 고마움이 아니었다.
이에, 맹인 검객이 반발하듯 물었다.
“왜?”
“… 기찬이 애인은 따로 있어.”
GM미르가 김만수를 떠올리면서 맹인 검객에게 말했다.
이에 강기찬과 맹인 검객이 동시에 놀랐다.
“예? 제가요?”
강기찬은 본인도 모르던 애인이 있다는 데에서도 놀랐지만, 그걸 GM미르가 안다는 듯이 구는 게 더 놀라웠다.
“누군데?”
“… 그걸 밝혀도 되겠어? 난 사생활을 존중해.”
“…….”
강기찬은 욕이 나오려던 걸 참았다. 상대가 김만수였다면 욕을 처박았겠지만, 가장 예의를 갖춰야 할 GM미르였기에.
맹인 검객이 강기찬에게 물었다.
“정말 애인이 있어?”
“아니.”
강기찬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GM미르를 보았다.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고. GM미르가 이해한다는 듯 선선히 고개를 주억거리는 게 아닌가.
이에, 강기찬은 답답했다.
‘뭐지? 대체 왜 저러는 거야?’
GM미르가 왜 저러나 싶지만, 안 그럴 거 같은 사람이 저러는 데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겠거니 싶었다. 그 때문에 너무 이상한 사람 보듯 보지는 않았다.
‘무언가 착각하거나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건 나중에 둘이서 풀어야지.’
맹인 검객이 GM미르에게 따지듯 물었다.
“거봐! 애인이 없다잖아. 본인이 없다는데… 혹시 어디 아파?”
이쯤 되자 GM미르도 자기 생각에 문제가 있다는 걸 깨우쳤다.
‘누군지는 못 밝혀도… 있고 없고는 밝힐 수 있잖아? 근데 왜 그것까지 숨기려 드는 거지?’
한창 생각하는 사이,
“나는 어때?”
맹인 검객이 강기찬에게 대뜸 물었다.
“예?”
“애인 없다면서?”
“…….”
강기찬은 무어라 답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여자친구를 사귀는 건 상상도 안 해보았다. 그럴 여력도 없어 왔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아서. 레벨업에만 치중하고자 하지 않았던가.
“미안.”
강기찬이 짤막하게 거절했다.
다른 걸 떠나 자신을 죽이려 했던 자와 사귀는 건 보통 정신력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물론, 암살이 전혀 위협이 안 되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거절했다고 발작하는 건 아니겠지?’
다행히,
“아니, 미안할 건 없어.”
맹인 검객은 썩 불쾌한 기색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초면에 다짜고짜 시도해서 성공할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으니까. 첫인상이 좋았던 것도 아니고.”
이때쯤 강기찬은 차라리 맹인 검객이 화를 내었으면 했다. 맹인 검객의 저 말뜻이 좀 불안하게 들렸기에.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나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런 거지. 같이 지내면서 알아가다 보면 내 매력도 알게 될 거야.”
맹인 검객은 쉽게 물러설 생각이 없지 싶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으니까. 계속 찍다 보면…”
그때였다.
“미친년아.”
GM미르가 혀를 찼다.
그러자 맹인 검객은 화를 내기는커녕 자책했다.
“어, 내가 미쳤지. 감히 누구를 죽이려 했었는지…….”
맹인 검객이 제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러면서 강기찬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못할 거 알고 있어. 정말 미안해.”
맹인 검객의 말이 맞았다.
강기찬의 감정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저 말이 진심이든 아니든 위로가 되지 않은 것.
암살자의 진심 어린 사과? 개나 주라지.
하지만,
“죗값을 갚을 길은 많지.”
이용하기로 했다.
자신을 죽이려던 인간이다.
그런 자의 눈도 뜨게 해주었다.
이용한다고 대놓고 말해도 할 말 없을 거다.
이 말이 희망이 된 걸까?
맹인 검객이 말해보라는 눈빛을 보냈다.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할게.”
“누가 날 죽이라고 했지?”
맹인 검객은 고용인에 불과했다.
강기찬 암살을 지시한 고용주가 따로 있을 터.
그자부터 찾아야 했다.
누군 암살 대상이 되었는데 누구는 발 뻗고 편하게 자게 둘 수는 없지 않겠는가.
맹인 검객이 실토했다.
“백령.”
“백령?”
“어, 국내 2위 길드, 백호길드의 마스터, 백령.”
“그자가 왜 나를 죽이려고 했지?”
서로 만난 적도 대화를 나눈 적도 없다. 더욱이 원한 관계일 수도 없고. 왜 암살자까지 고용해서 자신을 죽이려 했던 걸까?
“나도 몰라.”
누군가를 고용하면서 친절히 속마음을 드러내는 고용주는 없는 법이다. 하물며 암살 의뢰를 맡기면서는.
강기찬이 맹인 검객에게 말했다.
“증거, 백령이 고용주라는…….”
“사실, 추정한 거야.”
“추정이라… 확실하진 않다는 거네.”
“어, 그렇지만, 확신에 가까운 추정이야.”
하긴, 백령 정도의 거물이 암살을 의뢰하는데 얼굴 까고 했을 리가.
강기찬이 물었다.
“… 네 확신에 찬 추정의 근거는?”
“몇 다리 걸쳐서… 미행하고… 그러다가 마지막에 걸린 게 백령 비서였지. 백령이 아니고 누구겠어.”
“확실한 건 대면하면 알 일이지. 너…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한다고 했지?”
“어!”
“백령을 생포해 와.”
“살려서 데려오라고?”
“왜 어렵나?”
“음, 죽이는 것보다는 어려운데, 해볼게.”
“아니다, 그냥 부르자.”
“불러?”
강기찬은 백령을 불러내고자 했다.
물론, 대뜸 소환장을 보내면 올 확률은 미지수다.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고.
강기찬은 올 확률을 높이는 법을 알았다.
아니, 잘만하면 100%다.
“마침, 자정도 넘었고… 나크로서 처치하기 전에 예행연습도 하고 좋네.”
* * *
< 백령의 집 >
백령은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청용, 올해의 섹시한 남자 선정 1위! 기념 인터뷰……]
“이 개자식이! 또 1위를 했어? 망할!”
열심히 악플을 달았다.
[청용아웃 : ㅋㅋㅋ 청용이 섹시하다고/ 섹시한 사람들 다 얼어죽었나? 어이 털림.]
그녀의 하루 일과 마무리는 늘 한결 같았다.
1. 청용 검색.
2. 청용 악플 달기.
3. 청용 칭찬 기사에‘싫어요’ 누르기.
“하! 오늘도 보람찬 마무리!”
대략 만족할 만큼 작업을 끝냈을 무렵,
툭-!
누군가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는가 싶더니- 입이 가로막혔다. 백령은 눈을 크게 뜨며 상대를 인지하려 애썼다.
‘누구지?’
자신의 집은 보통 집이 아니다. 온갖 보안 시스템이 가동 중이었다. 그걸 뚫고 은밀하게 잠입에 성공했다. 그것도 자신의 방까지……. 무엇보다 이렇게 나타날 때까지 자신도 모를 정도로 기척을 숨겼다?
확실한 건 보통 인물은 아니라는 점.
‘누굴까? 혹시 청용?’
다행히(?) 알아볼 노력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상대가 알아서 신원을 밝혔으므로…….
[일대에 암흑의 장막을 깔았습니다.]
[암흑의 장막 안에서는 밖으로 이동이 불가합니다.]
[외부의 개입이 전면 차단됩니다.]
[백령님에게 저주를 겁니다.]
[백령님의 시각을 차단합니다.]
[백령님은 10분간 앞을 볼 수 없습니다.]
[맹인 검객님은 10분간 앞을 볼 수 없습니다.]
‘맹인 검객?’
확실히 맹인 검객이라면 완벽한 침입이 개연성 있다.
게다가 자신을 암살하러 들어오는 건 일도 아닐 테고.
문제는 이 상황이 퍼뜩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맹인 검객이 여긴 왜 온 거지?’
분명 맹인 검객은 한창 강기찬을 죽이려 하거나 죽였을 시점 아닌가?
맹인 검객은 자신이 의뢰인인 건 모를 터.
보고하러 왔을 리도 없다.
하나는 확실했다.
잠입 후, 암흑의 장막에 입까지 막았다.
좋은 의도는 아닐 터.
“나다, 맹인 검객.”
맹인 검객이 운을 뗐다.
“조금이라도 쓸데없는 짓 하면 바로 죽여버리겠다. 알았나?”
백령의 목에 칼을 댄 채 동의를 구했다.
아무 말 없었지만, 동의한 거다.
백령이 감히 덤비지 못할 테니.
[살기를 방출합니다.]
[살기 강도를 올립니다.]
[살기 강도 : 7단계]
…기선제압을 하고 있었기에.
천천히 입을 가리던 손을 뗐다.
그 즉시 물었다.
“백령, 왜 나한테 강기찬을 죽이라 했지?”
백령은 묻는 말에 대답지 않았다.
대신, 맹인 검객에게 되물었다.
“그러는 너는 왜 강기찬을 죽이지 않았지? 그러고도 전문 암살자가 맞아?”
“묻는 말에나 대답해라.”
“… 강기찬이 청룡길드에 갈까 봐, 그러면 청룡길드가 더 부흥할 테니, 그게 싫었다…….”
맹인 검객은 백령의 말을 녹음한 걸 확인한 뒤, 강기찬에게 전송하고선 귓속말했다.
[맹인 검객] 됐어.
[강기찬] 오케이.
강기찬은 맹인 검객의 신호를 받자마자 백령에게 소환을 썼다.
[강기찬님이 백령님을 테스트서버 – 버려진 세계 - 절망의 협곡으로 소환하려 합니다.]
[소환에 응하시겠습니까?]
암흑의 장막으로 시야가 차단된 상태.
백령은 소환장이 온 걸 몰랐다.
그 상태에서 맹인 검객이 대화를 유도했다.
“… 강기찬이 청룡길드를 부흥시킬까 봐, 사전에 강기찬을 죽이려 한 거냐?”
“그래.”
백령이 대답을 하자마자…
[백령님이 강기찬님의 소환에 응했습니다.]
[테스트서버 - 버려진 세계 - 절망의 협곡으로 소환됩니다.]
…백령은 저도 모르게 강기찬의 소환에 응한 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