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이후로도 앤드류는 앞장서서 몬스터 무리를 쓸어버리면서 길을 여는 역할을 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편하게 직진만 하면 되었다. 이렇게 편해도 되나, 하는 쓸데없는 우려까지 하면서.
다행히도 앤드류는 기뻐했다.
강기찬과 경석 등이 너무도 편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내가 저분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처음엔 어느 정도 점수만 따도 괜찮다고 여겼다.
한데, 강기찬 일행이 만족할 만큼 활약하는 듯하니 기분이 좋았다. 본래 자신보다 높은 경지의 존재를 만족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니. 만족스럽다는 말을 들은 건 아니었지만, 눈치로 알았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진작에 경석이 나한테 비키라고 하고 자기가 나섰을 텐데 그냥 놔두는 걸 보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 보네… 후훗!’
이들과 지내면서 느낀 게 하나 있었다.
‘앞으로도 이들과 함께하고 싶다.’
처음엔 순전히 강기찬에게 잘 보여서 필요할 때마다 테스트서버로 와서 NPC하인스와 접선하기만 하면 된다고 여겼었다.
그런데 짧게나마 지내다 보니 이 그룹에 끼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현실에서도 최정상 그룹에 끼길 꺼리고 항상 단독 행동을 했던 그였다. 그랬기에 의아했다.
‘나 스스로도 내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 그것도 이렇게 짧은 시간에…….’
미지의 것에 대한, 탐구 욕심 때문일 거로 추정했다.
현재로선 궁금하다고 물어볼 수도 없는 처지지만, 질문만으로 A4용지 10장은 빼곡히 채울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계속해서 내 실력을 보여주다 보면 차차 내 가치를 인정해주겠지. 그러다 보면 궁금한 것들도 하나둘씩 해소될 테고. 그때까진 최선을 다하자!’
한편, 후방에서 강기찬은 길을 가면서 생각한 걸 GM미르에게 말했다.
“전설의 네크로맨서 전직 시련 말입니다…….”
“어, 왜?”
“어째 하나같이 네크로맨서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간의 행적을 되짚어 봤을 때 그랬다.
1. 암벽을 타고 올라가기.
2. 성 속성의 마법 공격만 통하는 웨어울프 고스트.
네크로맨서가 클리어할 수 없는 것들이다.
GM미르가 말했다.
“전에 말했듯,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몬스터를 권속으로 삼아서 오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거야. 진정한 네크로맨서란 자신에게 부족한 것들을 남들로부터 얻어내는 거니까.”
강기찬이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결국, 이걸 깨려면 필요할 때마다 나가서 해결책이 될 몬스터를 죽여서 권속 삼아 데려와야 하는 거네요.”
“그래.”
강기찬이야 앤드류의 힘으로 수월하게 헤쳐나가고 있지만, 정석대로였다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하나 끝냈다 싶으면 또 다른 데서 막히고 해결하고자 절망의 협곡 밖으로 나갔다 오기를 반복해야 할 테니까.
“사실, 이렇게 짜증 날 정도로 번거로운 건. 다 이유가 있어.”
“뭐죠?”
“전설의 네크로맨서 전직 시련은 처음 만든 그대로야. 제작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본서버 출시가 보류되었지. 즉, 밸런스 패치가 된 적이 없어. 그래서 이 모양, 이 꼴인 거지.”
“아…….”
“근데…….”
GM미르가 호기심 어린 어조로 물었다.
“너 요즘에도 그 남자 만나?”
강기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갑자기 대화의 흐름이 확 꺾이나 싶었지만, 무슨 말 하는지 궁금해서 되물었다.
“그 남자라니요?”
“그… 저 때 너희 집에서 술 마셨던 날… 술병 들고 찾아왔던…….”
강기찬이 약간 놀란 얼굴을 했다.
“어? 그때 주무셨던 거 아니었어요?”
“잠깐 깼어.”
“아…….”
“어쨌든 그 남자는 자주 만나?”
“아, 요즘은 좀 뜸해요. 제가 좀 바빠져서.”
“뜸하다 이거지? 그 남자가 뭐가 그렇게 좋아?”
“어? 어떻게 아셨어요?”
“껴안고 난리 났던데.”
“아… 제 다리가 나아서 그런 거예요. 꽤 오래 알고 지냈거든요. 제가 10년간 마음고생 심하게 한 것도 알고.”
“… 깊은 사이구나…….”
“그런 셈이죠.”
“헤어질 생각은 없고?”
“뭐…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렇겠죠? 그런데 그건 왜요?”
“아니, 그냥 궁금해서.”
“근데 왜요?”
“응? 뭐… 아니야.”
GM미르가 김만수에 관심 있는 걸까?
강기찬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
잠시간 어색한 침묵이 돌았다.
경석이 그걸 깼고.
“나크로서는 어디 있는 거야? 절망의 협곡에 있다며?”
강기찬도 수시로 NPC나크로서의 위치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안 보이네…….”
NPC나크로서가 보이지 않았다.
“… 빠르게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강기찬이 암벽을 타고선 높은 데까지 올라간 뒤, 전력 질주를 했다.
‘느낌이 이상하다…….’
여전히 NPC나크로서는 안 보였다.
절망의 협곡을 다 돌았음에도.
‘숨어있어도 맵핵으로 볼 수 있는데… 없다니.’
문득, GM미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전설의 네크로맨서 전직 시련은 처음 만든 그대로야. 제작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본서버 출시가 보류되었지.
‘설마…….’
불현듯 꺼림칙한 발상이 떠올랐다.
급하게 돌아와 즉각 GM미르에게 물었다.
“혹시 이곳에 나크로서가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제 와 생각해보면, 이 퀘스트가‘완성’되었는지도 미지수였다. 본서버에 출시도 되지 않았다. 만약 퀘스트 제작 도중에 중단되었다면? 미완성이라면?
“잠시만, 내가 확인해볼게.”
GM미르는 혼자만 보이는 창을 띄워놓고선 열중했다.
강기찬은 그 옆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이내, 답을 들을 수 있었다.
“하… 없대.”
“예?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내가 말은 해볼게. 나크로서를 영입해달라고. 용사 중에 네크로맨서가 없으면 씨알도 안 먹힐 소리지만, 용사 중에 네크로맨서가 있으니까. 담당자 없다고 전직 못 하면 그것만큼 억울한 것도 없으니…….”
하긴, 유저 중에 네크로맨서가 있다면‘전설의 네크로맨서 전직 시련’을 위해 나크로서를 영입할 수 있으리라.
유저의 성장을 못마땅히 여기는 게 아니고서야.
잠시 후, GM미르가 말했다.
“나크로서를 영입하겠대.”
“영입되면 여기로 오는 거죠?”
“그렇지. 그게 본래 퀘스트 내용이잖아.”
“흠…….”
강기찬이 잠깐 고민하더니 웃었다.
“오히려 더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GM미르는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경석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소리야?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다니?”
누가 봐도 계획이 어긋난 일이다.
하나 강기찬의 생각은 달랐다.
“본래라면 이곳, 절망의 협곡은 NPC나크로서의 본진이죠?”
GM미르가 답했다.
“그렇지…….”
“이젠 아닙니다.”
“뭐?”
“여긴 제가 접수하겠습니다.”
강기찬이 알렸다.
절망의 협곡을 장악하기로.
“그리고… 나크로서를 맞이하겠습니다. 주인으로서.”
이른바, ‘나홀로 지배’ 작전의 서막이었다.
“어떻게 할 거냐면 나크로서를…….”
강기찬은 보다 상세히 작전을 설명해주었다.
이를 들은 경석이 깜짝 놀랐다.
“…그러니까 네 말은 나크로서를 기습 공격하겠다는 거야?”
“그런 셈이지.”
퀘스트가 제작 도중에 중단되지 않았더라면, NPC나크로서가 원래 역할대로 이곳에 있었다면, 강기찬이 기습 공격당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내가 기습 공격 못 할 것도 없지.”
퀘스트의 틀이 바뀌지 않는 한, NPC나크로서는 무조건 절망의 협곡으로 들어와야 했다.
“절망의 협곡 곳곳에 함정을 설치할 거야. 그걸 도와주었으면 해.”
강기찬은 정석대로 성장하지 않았다.
기형적인 급성장을 해왔다.
그랬기에 정석대로라면 NPC나크로서를 못 이긴다.
늘 해왔던 대로 기형적으로 싸워야 이길 수 있다.
이번에도 그럴 작정이었다.
그 시작이 함정 설치였다.
“어떻게 할 건데?”
GM미르가 재미있다는 듯 물었다.
“미르님은 나크로서가 언제쯤 이곳으로 오는지를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뭐, 그쯤이야 어렵지 않지.”
강기찬의 테스트서버 접속 가능 시간은 한정되어있다.
NPC나크로서의 절망의 협곡 진입 시간을 미리 아는 게 필수였다. 그래야 그 전에 함정을 완성할 수 있을 테니.
‘나크로서의 절망의 협곡 진입 시간은 미르님이 알아봐 주신다고 했고…….’
테스트서버 운영자로서 NPC나크로서 절망의 협곡 진입 시간은 쉬이 알 수 있지 싶었다.
‘그다음은…….’
강기찬이 앤드류를 보았다.
보자마자 한 단어가 떠올랐다.
열정.
그만큼 앤드류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사실이었다.
앤드류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라 있었다.
‘전설의 네크로맨서 전직 시련에 내가 가담할 수 있다니. 이건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사건이다. 나중에 내 자서전을 쓸 때, 도움이 될 거고……!’
강기찬은 그런 앤드류를 보며 멈칫했다.
무언가 아주 막중한 임무를 맡겨주어야 할 것 같달까.
‘부담되네…….’
보통 일을 적게 하려고 애쓰지 않나.
반면, 앤드류는 일을 적게 주었다간 실망할 것 같달까?
원래 시킬 일의 양을, 1에서 10으로 늘릴 수밖에 없었다.
“… 앤드류님은 이 협곡을 가득 채울 만큼의 물탱크를 준비해주시면 됩니다. 좀 어려울는지요?”
그러자…….
“고맙습니다! 더 시킬 일은 없습니까?”
남들 같았으면 싫어했을 텐데 오히려 고마워하는 앤드류였다.
경석이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너는 이제 네 레벨에 맞는 사냥터로 가서 사냥해.”
“그래!”
경석도 바라는 바였다.
사실 그는 여기 있는 게 시간 낭비라고 여기는 중이었다.
자신의 목적은 강기찬의 레벨을 올리는 거니까.
물론, ‘전설의 네크로맨서 전직 시련’이 장기적으로는 강기찬의 성장, 레벨업에 보탬이 될 테지만.
‘그렇지만, 여긴 내가 없어도 될 것 같으니까.’
자신의 가치는 여기서 한없이 낮아진달까? 차라리 사냥해서 강기찬에게 쩔 해주는 게 더 나은 것이다.
“난 가볼게!”
“그래. 빨리 가.”
경석은 날아갈 것 같은 발걸음으로 절망의 협곡 밖으로 나갔다.
이를 본 앤드류는 감탄의 연속이었다.
‘와… 전설의 대마법사를 저렇게 막 대하다니… 나도 막 대해주셨으면…….’
* * *
[남은 시간] 00시 00분 01초.
[남은 시간] 00시 00분 00초.
[이용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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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서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테스트서버에선 강기찬만 나왔다.
이용시간에 제약이 있는 건 그 혼자.
나머지 사람들은 테스트서버에서 부탁한 걸 해줄 것이다.
“오셨습니까?”
NPC화타가 공손히 인사했다.
큰절까지 올리려던 걸 강기찬이 겨우 제지했다.
“다 좋은데 제발, 큰절은…….”
“하하… 너무 반가운 바람에…….”
강기찬이 고개를 돌려 맹인 검객을 보았다.
“깼네? 어때? 앞을 본 소감이?”
“내가 눈을 뜨고 처음 본 게, 네가 아니라서 그게 아쉬울 따름이다. 당연히 은인부터 봐야하는 건데…….”
그러자 옆에 있던 NPC화타가 노발대발했다.
“이, 이년이? 나는 은인도 아니다. 이거냐?”
“강기찬 아니었으면 나 눈 안 뜨게 해줬을 거라면서? 그리고 고맙다고 했을 텐데? 그걸로 부족해?”
강기찬이 어색하게 웃었다. 둘이 싸우는 것 같은데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때였다.
분위기가 바뀔 징조가 나온 게.
GM미르가 테스트서버에서 나온 것.
“… 나 궁금한 게 있…어? 엉?”
말을 하다가 말고 맹인 검객을 발견했다.
이내, 맹인 검객도 GM미르를 보았다.
찰나, 둘 사이에 강렬한 기싸움이 오고 갔다.
GM미르가 물었다.
“… 누구?”
강기찬은 왠지 물 한 잔이 마시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