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강기찬은 앤드류가 어째서 돕겠다는지 알았다.
‘서로에게 윈윈이지.’
앤드류와 NPC하인스를 접선해주고 이득을 취하면 그뿐이다.
앤드류가 물었다.
“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딱 하나만 질문하십시오. 제가 질문받는 걸 싫어해서.”
“아, 네.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건지.”
막상 돕겠다고 했지만, 목적을 몰랐다.
절망의 협곡은 본 서버엔 없었기에 일말의 추측도 불가능 했다.
강기찬이 알려주었다.
“전설의 네크로맨서로 전직하려고 합니다.”
“저, 전설의 네크로맨서요?”
앤드류의 눈은 튀어나올 듯 커져 있었다.
‘이 사람들은 기본이 전설인가? 경석도 전설의 대마법사고, 거기에 전설의 네크로맨서까지… 잠깐!’
“그렇다면 네크로맨서라는 겁니까?”
그의 상식상 네크로맨서를 거치지 않고 전설의 네크로맨서로 전직할 수는 없었다.
강기찬이 가볍게 답했다.
“예.”
“…….”
누가 네크로맨서인지는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경석은 빼고 강기찬은 복장이 암살자였으니까.
남은 건, 단 한 명.
‘이 자는 뭐지?’
마음속에서 등급을 매겼다.
강기찬과 경석은 했고… 또 다른 강기찬은 아니었다.
따지자면 가장 아래?
왜냐하면, 그가 자기소개하기를,
- 나는 그냥 강기찬2라고 불러.
보통, 사람이란 내세울 게 있으면 내세운다. 스스로 내세우기 곤란하면 옆에서 대신 내세워 주던가.
그런데 셋 다 안 그랬다.
그래서 평범하게 봤는데…….
‘네크로맨서라니… 그것도 전설의 네크로맨서로 전직하려는… 원래 성격이 저런 걸까? 아니지, 주변에 다 대단한 사람들뿐이라서 네크로맨서는 특별하지 않다고 여길지도 몰라.’
거기까지 생각하니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이 조직에 서열은 어떨까?’
처음엔 강기찬이 가장 높지 싶었다.
한데,
‘강기찬은 그냥 암살자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암살자 나부랭이가 네크로맨서와 전설의 대마법사보다 서열이 높을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하는 건 꼭…….’
더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진 않았다.
“올라갑시다.”
강기찬이 암벽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대담하게 올라가네? 한 치 앞도 보이지도 않는데?’
난감했다.
안개로 덮여 10센티미터 앞도 잘 안 보였다.
‘너무 위험한데? 뭐가 위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데 무작정 올라갔다간…….’
이에 대해서 무어라 말하려다가…….
슝- 슈슝!
경석이 공중으로 떠오르기는 걸 보고 단념했다.
‘나도 올라간다.’
고수들을 앞장세운 채 뒤처질 수는 없는 노릇.
그도 허공을 향해 떠올랐다.
그러면서 경석을 올려다보았는데,
‘왜 저렇게 느리지?’
경석이 고공 상승하는 속도가 느렸다.
명색이 전설의 대마법사 아니던가?
전설의 대마법사치고는 비행 속도가 느려빠졌다.
하나, 금세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있었다.
‘설마 나와 속도를 맞춰주시려고 일부러 느리게 가시는 건가? 이렇게 배려심이 깊으시다니……!’
한편, 경석은…….
‘하… 공중부양 되게 어렵네. 적응하려면 꽤 시간이 걸리겠다…….’
경석은 아래쪽에서 앤드류가 날아오르는 걸 보았다.
‘와! 대박이다. 앤드류도 개 느리네? 원래 비행이 쉬운 게 아닌가 보네? 다행이다.’
둘 다 저마다의 착각의 늪에 빠져있었다.
자연스레 서로를 배려해주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 * *
암살자는 벽 타는 게 기본이다.
이만한 높이의 벽을 타는 건 실로 간만이었지만.
‘쉽네.’
강기찬은 후딱 정상에 올라설 수 있었다.
사실, 썬과 위치 바꾸기 하면 제자리에서 암벽 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하나, 움직이는 것 자체가 즐거워서 굳이 몸을 쓴 것.
뒤로 돌아서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올라오는 경석과 앤드류가 보였다.
그때였다.
“왔어?”
뒤에서 GM미르가 말을 걸었다.
“저보다 빠르시네요?”
강기찬은 벽 타기에, 자신 있었다.
GM미르는 오르는 걸 보지도 못했는데 먼저 올라오다니.
“운영자 권한으로 그냥 올라왔어.”
쉽게 말해 GM미르는 공간 이동한 거다.
“아…….”
“너희들에게도 써주고 싶지만, 그건 월권이라서 할 수가 없어. 이해해 줘.”
“아, 네.”
운영자답게 유저에게 개입만 할 수 없지, 못 하는 게 없지 싶었다.
GM미르가 올라오는 경석과 앤드류를 보며 중얼거렸다.
“사실 이것도 시련인데…….”
“네?”
“암벽 타는 것도 전설의 네크로맨서 전직 시련 중 하나라고.”
“아, 그렇군요.”
“네크로맨서가 피지컬이 딸리니까, 그걸 극복하라는 의미에서 주어진 거지.”
강기찬은 수긍했다.
“물론 홀로 올라 오라는게 아니야. 그건 불가능하니까. 네크로맨서라면 네크로맨서답게 난관을 헤쳐나가라는 거지. 암벽 타는데 도가 튼 몬스터를 권속으로 삼아서 오라는 의미가 담겨있지. 근데 내가 네크로맨서라서 프리패스네.”
한편, 나머지 두 사람도 다 올라왔다.
막 올라온 앤드류는 새삼 또 충격을 받았다.
강기찬 곁에 있던 GM미르를 보고선.
강기찬이 올라가는 거야 봤지만, GM미르는 아니지 않은가.
‘강기찬2는 네크로맨서라면서? 근데 어떻게 전설의 대마법사와 대마법사보다 빨리 올라올 수가 있지?’
강기찬2는는 분명 자신이 날아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지상에 발을 붙이고 있었다. 근데 지금 광경은 뭐란 말인가.
GM미르가 자신을 흘겨보는 걸 알고선 물었다.
“왜? 넌 또 뭐가 불만이야?”
“아,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올라오신 건가 해서 말입니다.”
“공간 이동했어.”
“고, 공간이동?”
앤드류도 공간이동 스킬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제약이 많았다.
원하는 지점으로 공간이동 할 수는 없었다.
반면,
‘저건 원하는 지점으로 공간이동을 한 거다…….’
강기찬2는‘진정한’ 공간이동을 해냈다.
레전드스토리에서 불가능한…….
그쯤 해서 생각을 고쳤다.
‘하긴, 저자만 평범할 거라 단정한 내가 어리석은 거였군…….’
그간 경황이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공간이동쯤이야 놀라운 축에도 못 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둘이 대단한 자들인데 강기찬2만 평범할 거라 여긴 것도 오산이었고.
‘이런 자들을 왜 이때까지 몰랐던 거지.’
하나 같이 상식을 초월하는 괴물들이었다.
그런 자들을 여태 몰랐던 게 신기했다.
‘아냐, 내가 몰랐던 게 아니지. 저들이 의도적으로 세상에 나오지 않은 것일 터. 역시… 진정한 고수들은 은둔 생활을 한다는 게 맞았어.’
대중은 세상에 공개된 것들만 보게 된다.
하물며 이만한 거물급들이 작정하고 음지로 들어갔으니 여태껏 모를 수밖에 없었던 것.
‘비공식 랭커가 공식 랭커보다 강하다고 전문가들이 그랬었지. 헛소리가 아니었구먼. 오히려 내가 어리석었어…….’
여기까지 생각하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비공식 랭커는 맹인 검객이 유명했지… 맹인 검객과 이들 중 하나가 맞붙으면 누가 이기려나…….’
한국인이라 알려진 맹인 검객만 해도 사실상 한국의 공식 랭킹 1위인 청용을 웃도는 실력자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 맹인 검객과 강기찬이 맞붙으면 누가 이길까?
‘역시 망상이려나? 둘이 맞붙을 리는 없을 테니까? 하긴, 서로 음지에 숨어있으니 만난 적도 없겠군… 그래도 굳이 예측해보자면 강기찬이 질 것 같긴 해. 일단 드러난 바로는 맹인 검객은 암살 성공률 100%에 상대의 시각을 차단하기까지 한다니까…….’
만에 하나 강기찬이 맹인 검객의 암살 표적이 될 경우,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주책이야! 망상이 길어졌구먼…….’
… 상념을 이쯤 하기로 했다.
눈앞에 몬스터들이 들이닥쳤기에.
‘웨어울프 고스트라…….’
생소한 몬스터 이름이었다.
하나, 금세 특징을 파악했다.
외관이 유령처럼 허여멀건 했다.
대개 저런 경우, 물리 공격이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내가 나설 차례인가?’
앤드류는 직감했다.
지금이 자신이 활약할 순간이라고.
강기찬은 암살자라 물리 공격 위주일 터.
강기찬2도 네크로맨서다.
본인은 마법 계열일 테지만, 권속은 절대다수가 물리계열 몬스터일 터.
둘 다 웨어울프 고스트의 상대가 못 되었다.
‘경석과 내가 나서야 할 때군.’
고로, 마법 공격이 가능한 자신과 경석이 나설 차례라고 보았다.
한데,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왜 안 나서시지?’
경석이 나서면 바로 이어서 자신이 나서려 했다.
자신이 먼저 나서는 게 예의가 아니지 싶어서.
그런데 경석이 나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앤드류는 몰랐다.
실은, 경석도 같은 생각 중이었다는 것을.
‘앤드류는 왜 안 나서지? 이거 딱 봐도 나나 앤드류가 나서야 할 것 같은데, 기왕이면 선배격인 사람이 먼저 나서줘야지.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
경석은 마법사로서의 실전이 처음이었다.
지켜보는 이도 있고 대하기가 껄끄러운 상관(?)들뿐이었으니까.
그랬기에 선뜻 나서기가 꺼려졌다.
그나마 혼자서 싸우지 않아도 되었지만, 어째서인지 앤드류가 나서지 않고 있다.
‘이러면 곤란한데? 왜 안 나서지?’
앤드류가 나서면 바로 이어서 자신이 나서려 했다.
그런데 도저히 앤드류가 나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처럼, 서로는 인지하지 못하는‘보이지 않는 양보’가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하…….’
강기찬은 이 묘한 기류를 읽어냈다.
‘경석이가 나서면 곤란하지. 내가 전설의 대마법사라고 거짓말해놨는데, 전설은커녕 대마법사 그릇도 안 되는 걸 들키면…….’
강기찬이‘보이지 않는 양보’를 끊어버렸다.
“뭐 합니까? 앤드류님?”
‘아…….’
그제야 앤드류는 깨우쳤다.
이것이 단순한 전투가 아님을.
‘입단식이구나!’
강기찬이 자신을 콕 짚어서 나서라고 했다.
‘더 강한’ 경석을 두고선.
이게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강기찬이 나를 평가하는 거로구먼!’
어쩐지 경석이 안 나선다고 했다.
경석이 나섰다면 금방 끝날 텐데 왜 안 나서나 했는데 이유가 있었던 것.
‘보여드려야겠군.’
기왕 이렇게 된 거, 점수나 따기로 했다.
앤드류가 마법을 영창했다.
“홀리 레인!”
성스러운 빛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두둑,두두두두두----!
웨어울프 고스트가 성스러운 비를 맞고선 찰흙처럼 녹아내렸다.
“자, 가시죠.”
길이 열린 곳을 가리키며 앤드류가 안내했다.
“와, 대마법사는 역시 다릅니다.”
경석이 앤드류에게 쌍엄지를 치켜들었다.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얼굴이었다.
이에, 앤드류가 손사래를 쳤다.
“하하… 아닙니다, 경석님. 경석님이 처리하셨으면 저보다 더 깔끔하셨겠지요.”
“아닙니다. 앤드류님은 옛날부터 제 워너비였습…….”
[강기찬] 적당히 해.
강기찬은 귓속말로 경석에게 주의를 주었다.
지금 앤드류가 너를 전설의 대마법사로 알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그랬더니 경석이 갑자기 딸꾹질했다.
그게 걱정이 되었는지 앤드류가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아, 예… 좀 놀랄 일이 있어서.”
강기찬이 다가왔다.
“앤드류님, 앞으로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셔주셨으면 합니다.”
앤드류가 침을 튀겨가며 외쳤다.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강기찬은 순간, 아주 못된 생각을 하고야 말았다.
NPC하인스가 부활하면 한 번 더 죽일까 하는…….
‘아니지, 그건 아니야.’
그만큼 앤드류가 탐이 났다.
참으로 좋은 파티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