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 * *
전설의 네크로맨서가 되면 뭐가 좋은 거야?
경석의 물음이었다.
강기찬도 몰랐다.
하나는 확실했다.
아주 좋다는 것.
같은 전설 칭호가 붙은‘전설의 대마법사’만 해도 대단하지 않던가. 무영창에 쿨타임 제로 등등.
기존 게임의 상식을 파괴하는 스킬이 많았다.
하물며 그보다 더 윗급으로 취급받는 전설의 네크로맨서는?
- 아, 그거?
GM미르가 안다는 듯이 운을 띄웠다.
강기찬도 궁금하긴 했었다.
공식 홈페이지에 전설의 네크로맨서에 관한 정보는 없었다. 그 누구도 전설의 네크로맨서는커녕 네크로맨서조차 되지 못했기에, 유저간에도 정보는 없었고.
이때 GM미르가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 몬스터만 아니라 인간도 NPC도 권속으로 부릴 수 있어.
* * *
< 절망의 협곡 너머 >
강기찬과 경석은 절망의 협곡 너머에서 부활했다.
“오래 기다렸다.”
경석은 계정은 생성된 지, 며칠 안 되었기에 금방 부활했지만, 강기찬은 첫 10년간 숱하게 죽어왔기에 꽤 오래 기다려야 했다.
절망의 협곡은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고 하이에나가 돌아다녔다.
강기찬은 그래픽 설정부터 조절했다.
초저화질로 바꾼 것.
이로써 시야를 가리는 안개부터 치워버렸다.
GM미르와 경석에게도 알려 시야에 제약이 없게 했다.
저벅, 저벅…….
길을 가다 보니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일직선으로 난 길밖에 없어 그리로 왔더니 이렇게 된 것. 돌아봐도 좌우, 옆, 그 어느 곳으로 샛길은 없었다.
즉,
“위로 올라가야 해.”
GM미르가 종지부를 찍어주었다.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고개를 꺾어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은 암벽이었다.
“여길 올라가라고요?”
경석은 난감해했다.
갓 신규유저가 된 이에겐 어려운 일일 터. 같은 난관이라도 남들보다 더 크게 다가올 테니.
반면, 강기찬에게 이 정도 암벽을 타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경석을 도와줄 수도 있었다.
‘내가 경석이를 엎고 올라가면 되긴 하겠지만…….’
하지만, 매번 이럴 때마다 경석을 챙겨주는 것도 좋지 않다. 본인에게도 그렇고 경석에게도 안 좋은 습관을 심어줄 테니.
장차 경석이 1인분 몫은 해줘야 했다. 그러려면 본인이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했고 그 발판 정도만 깔아주고자 했다.
“기다려 봐.”
강기찬은 시청자NPC들 목록을 훑었다. 레벨이 오르면서 방송에 관여할 수 있는 게 많았다. 그중에선 이름을 입력해 방송에 초대하는 것도 있었다.
[NPC하인스님을 방송에 초대하였습니다.]
- 뭐지? 이거?
그렇지 않아도 강기찬은 이번 접속 내에 NPC하인스와 대화를 나누려 했었다. 겸사겸사 암벽 타는 일도 해결하면 좋지 싶었다.
[강기찬] 반갑습니다. 하인스님.
[하인스] 넌 누구야?
강기찬과 안면이 있는 사이는‘테스트서버’NPC하인스였다.
지금 소통하는 자는‘본서버’NPC하인스였고.
강기찬을 모르는 건 당연했다.
[강기찬] 대마법사 친구입니다.
[하인스] 대마법사 친구?
[강기찬] 예, 제 친구가 대마법사로 전직했습니다.
[하인스] 그러니까 용사 중에 대마법사로 전직한 자가 있다고? 난 기억에 없는데?
주변의 시청자NPC들이 강기찬을 대신해서 평행세계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하인스] 신기하구먼. 어쨌든 다른 세계에서 내가 낸 시련을 통과해 그 친구를 대마법사로 전직해주었다는 거구먼.
[강기찬] 예, 그런데 그분께서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셔서 이곳의 하인스님에게 부탁하는 겁니다. 그 친구의 스킬이나 퀘스트를 내주셨으면 하고…….
[하인스] 들으면 들을수록 놀랍고, 또 의문이구먼. 다른 세계는 그렇다 쳐도 또 다른 내가 죽었다는 게… 나를 죽일 수 있는 자는 그리 많지 않아…….
[강기찬]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하인스] 뭐, 정말 죽었으니 자네가 여기까지 와서 나를 찾는 거겠지. 그 용사의 이름을 말해주게나. 나머지는 내 알아서 할 테니.
강기찬은 이름을 댔다.
[강기찬] 경석, 앤드류 입니다.
[하인스] 두 명이구먼… 알았네.
경석에게 간략한 설명을 해주었다.
곧 연락이 갈 거라고.
[강기찬] 돈은 입금하겠습니다.
[하인스] 그러게.
스킬을 배우려면 전직 교관에게 코인을 지급해야 했다.
강기찬이 코인을 보내고 얼마 뒤,
[하인스] 됐나?
NPC하인스도 무언가를 한 거지 싶었다.
강기찬이 경석에게 물었다.
“왔어?”
“파이어 애로우, 파이어 붐, 버스터 스킬들이 오고 있어.”
[하인스] 지금 그 친구의 레벨에 맞는 스킬만 보냈다네. 몇 개는 미리 보냈고. 레벨이 되면 습득할 수 있을 걸세.
[강기찬] 감사합니다.
[하인스] 그런데 앤드류… 그 친구는 전송 불가가 뜨더군.
강기찬은 짐작했다.
‘서버가 달라서…….’
스킬이 전송이 안 된다면 그 이유뿐이었다.
[강기찬] 앤드류는 지금 이 세계에 없습니다.
[하인스] 그럼 어떡하지?
[강기찬]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앤드류님이 강기찬님의 소환에 응했습니다.]
[테스트서버 - 절망의 협곡으로 소환됩니다.]
강기찬은 앤드류를 테스트서버로 소환했다.
테스트서버가 노출되는 거지만 별수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손해도 아니었다.
앤드류에게 비밀 하나를 공개하고 그를 저당잡을 수 있으니까. 스킬이나 퀘스트를 받으려면 무조건 테스트서버에 와야 하고 그러려면 강기찬이 허락해주어야 했기에. 감히 어디 가서 함부로 나불거릴 수 없으리라.
그리고 앤드류가 테스트서버에 대해서 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누구에게 말해도 믿지 않을 테니. 믿어도 증거가 없으니.
“어?!”
앤드류가 테스트서버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내뱉은 소리는 탄성이었다. 그도 레전드스토리 유저였기에 이‘느낌’에 저도 모르게 반응한 것이리라.
그는 가벼운 속옷 차림이었다. 자고 있었던 모양. 그럼에도 귓가를 때리는 알림음과 눈 씻고 봐도 달라지지 않을 테스트서버로의 초대로 인해 대뜸 승낙부터 한 것일 터.
그런 그가 눈을 비비면서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강기찬과 눈이 마주쳤다.
“나를 부른 자가 당신이오?”
앤드류로선 나름대로 타당한 추론이었다.
경석이야 일전에 제거하기 위해 대면했었으니까. 남은 건, 강기찬뿐이지 않나.
하지만,
“… 뭐라는 거야.”
상대가 정색했다.
이때, 그 옆에서 들린 목소리.
“아, 그쪽이 아니고 여깁니다.”
“그, 그러고 보니…….”
그제야 앤드류는 똑같이 생긴 게 둘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쌍둥이?”
“그렇다고 치지요. 확실한 건 제가 당신을 소환했다는 겁니다.”
“아…….”
앤드류가 처음 본 자는 GM미르였다. GM미르가‘강기찬의 네크로맨서’계정으로 접속 중이었기에 강기찬의 얼굴인 것.
앤드류는 이제‘어떤’강기찬이 자신을 소환헀는지 알게 되었다.
“당신이 나를 소환한 거구먼.”
“네.”
강기찬은 대답하면서도 묘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여기서 앤드류와 말을 섞어본 이는 그가 유일했음에도 초면인 것처럼 대해야 하는 것에서.
‘테스트서버는 밝혀도 그건 밝힐 거 없지.’
이 역시 밝혀져도 검증할 길이 없을 테지만, 어쩔 수 없이 까는 것과는 다르다. 굳이 알릴 필요 없었다. 어색해도 초면인 척 연기를 하는 게 낫다.
“반갑습니다. 저는 강기찬입니다.”
“난 앤드류네. 자네를 기억하겠네.”
똑같은 얼굴과는 달리 착용한 장비는 달랐기에 이제부턴 구분하기 쉬울 것이다.
“궁금한 게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하시면 됩니다.”
“아, 그래.”
앤드류는 설렁설렁 말했다. 시선은 경석에게 가 있었다. 그걸 보고선 강기찬이 언성 높여 밝혔다.
“당신에게 한 경석의 행동, 전부 제가 시킨 겁니다.”
앤드류가 강기찬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자네가 시켰다고?”
경석의 단독 행동인 줄 알았을 터. 그것들이 사실 배후가 시킨 거라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제가 시켰습니다.”
“…….”
앤드류가 강기찬을 바라보던 눈빛이 사뭇 달라졌다. 동시에, 강기찬이 일전에‘궁금한 게 있으시면 자신한테 말하면 된다.’라는 게 새삼 다르게 받아들여졌고,
“그렇다면 자네가…….”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강기찬은 무엇을 물어볼지 알았기에 묻기도 전에 대답을 쏟아냈다.
“예, 맞습니다. 퀘스트, 스킬, 무기와 장비, 같은 것들…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
강기찬은 NPC하인스에게 요청했고,
이내 충격을 받은 앤드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혼잣말과 함께…….
“… 지, 진짜였어!”
놀라는 걸 보니 NPC하인스로부터 연락을 받은 모양이었다.
강기찬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농담인 줄 아셨나 보군요.”
“… 그랬었지… 누가 진지하게 믿겠나. 하지만 이제는…….”
이곳이 테스트서버인 것부터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지만, 설마하니 NPC하인스가 있으며, 그로부터 퀘스트, 스킬, 무기와 장비 등을 받을 수 있다니?
놀라는 것도 잠시, 현실을 직시했다.
이번 한 번만 NPC하인스가 필요한 게 아니지 않나.
레벨을 올리는 족족 NPC하인스가 필요할 터.
그럴 때마다 테스트서버에 와야 했고 그러려면 강기찬이 불러줘야 하는 구조였다.
즉.
‘이 자와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얼마 전 사망한 NPC하인스가 부활할 때까지 1년.
적어도 그때까지는 강기찬이 절실했다.
그것 외에도 친해져서 나쁠 게 없지 싶었다.
아니, 아주 좋을 것이다.
은근히 경석을 보았다.
‘저 전설의 대마법사보다 한 수 위잖아… 대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 걸까…….’
전설의 대마법사의 배후에 있는 존재.
그리고 테스트서버로 타인을 초대할 수 있는 존재.
이 두 가지 정보만으로도 감히 범접할 수 없다고 여겼다.
또한, 소환장이 날아왔을 때, 보지 않았나.
‘여긴, 절망의 협곡이다…….’
그도 절망의 협곡에 대해 들어보았었다.
유저가 진입할 수 없다고 알려진 장소.
지금 그 안에 들어와 있다.
어쩌면 역사의 한 가운데에 들어와 있을지도 몰랐다.
‘좀처럼 두근거리지 않던 가슴이…….’
콩닥, 콩닥!
“후…….”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던 그때였다.
강기찬이 앤드류에게 말을 걸었다.
“받을 건 다 받으셨지요?”
상념을 털어낸 앤드류가 즉각 답했다.
“예, 잘 받았습니다.”
꾸벅.
“고맙습니다. 덕분에…….”
가볍게 눈인사를 해 보였다.
“그럼…….”
“아, 잠깐만…….”
강기찬이 자신을 내치려는 것 같자, 앤드류가 빠르게 손사래를 쳤다.
“… 예?”
“미약한 재주나마, 보탤 수 있게 해주십시오. 물론 미천한 대마법사가 감히 낄 자리가 아님을 알지만…….”
살다 살다 세계랭킹 10위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굽신거리게 될 줄은 몰랐다. 세계랭킹 1위에게도 당당하지 않았나.
하나, 지금은 자존심 차릴 때가 아니었다. 지금 굽히지 않으면 다음엔 꺾이더라도 잘 보일 수 없을지도 몰랐다.
“흐음… 좋습니다. 도와주신다는데 마다할 것 없지요.”
강기찬이 허락했다.
이에, 앤드류가 다행이라는 듯한 외침을 터트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파티에 거물급 랭커가 합류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