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무슨 큰일?”
경석 아버지의 물음에 비서가 침을 삼키고선 겨우 말했다.
“강기찬씨 말로는 A길드가 청룡길드와 동맹을 맺을 예정이랍니다. 기념으로 친선 사냥 겸 버스를 타는 중이고요.”
“청룡길드와 동맹을 맺어? 왜?”
A길드가 청룡길드와 동맹을 맺을 예정이란다.
기쁜 일이다.
근데 무슨 일로?
좋은 일도 이해가 가야 좋은 일이지, 아니면 찝찝한 법이다. 이건 찝찝했다. 너무 개연성이 없지 않나.
더군다나,
‘내 허락도 없이?’
최종결정권자인 자신도 모르게 일이 진행되었단 걸까?
장차 길드의 운명을 판가름할 수 있는 이 중대사를?
그거야 나중에 경석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더 우선하여 따질 문제는 따로 있었다.
“도대체 왜 우리랑 동맹해준대? 청용 그 자식, 어디 아프대?”
차라리 청용이 뇌를 다쳤으면 이해라도 할 터.
그게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었다.
청룡길드는 남과 동맹을 맺은 적 없지 않나.
그렇다고 A길드가 주선했을 리는 없으니.
‘누가 주선을 했… 강기찬?!’
A길드가 창설된 이래, 가장 큰 변화는 단연 강기찬 영입이었다. 그로 인해 A길드의 위상이 치솟지 않았나. 최상위권 길드마저 부러워하고 있고.
‘설마… 강기찬 때문에? 일리가 있어…….’
청룡길드가 A길드 따위와 동맹을 맺어주는 이유는 강기찬 때문일 것이다.
‘하긴, 강기찬이 자유의 몸인 걸 청룡길드에 밝혔다면… 청룡길드도 눈독을 들일 테지. 게네들도 이동한계선을 넘나드는 게 탐날 테니까.’
강기찬도 선택지는 없을 것이다.
A길드가 고소하거나 보복하려 해도 청룡길드가 방파제가 되어줄 터. 청룡길드에 넘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곳과 비교가 안 될 만큼 좋은 조건도 내밀었을 테고.
‘… 더더욱 이해가 안 되는군, 그건 그냥 강기찬이 청룡길드로 넘어가면 그만 아닌가?’
A길드와 청룡길드의 동맹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얼른 전후 사정을 알고 싶었다.
“… 오라고 했지?”
“아, 그게… 올 수 없답니다.”
“뭐? 경석이가 그렇게 말했나?”
“아뇨, 강기찬씨가…….”
“뭐? 그 새끼가 미쳤나? 누구 맘대로 내 명령을 튕겨?”
“저…….”
“왜?”
“… 아직 통화 중입니다.”
비서가 조심스레 말했다.
“강기찬씨가 듣고 계십니다.”
경석 아버지가 코웃음을 쳤다.
“강기찬이가 듣고 있는 게 뭐?”
“… 바꿔 달랍니다.”
“참나, 누가 무서워한 줄 아나.”
비서의 스마트폰을 뺏듯 낚아챘다.
“나다.”
- 접니다.
“그래.”
- 동맹… 제가 한 겁니다.
“그래서?”
- 별로 기쁘지 않으신가 보군요?
“떡 준다고 냉큼 받아먹으면 쓰나? 독을 탔는지 어떻게 아나?”
- 사업가다운 마인드십니다.
“무슨 수작이지?”
- 수작이라뇨? 당연히…….
“구구절절 질색이다. 다 알고 있다. 계약서…….”
- 아, 일찍도 아셨네.
“감히 내 뒤통수를 쳐?”
- 뒤통수면 양반 아닙니까?
“뭐?”
- 전 죽을 뻔했는데…….
경석 아버지는 잠시 멈칫했다.
이내, 냉정함을 되찾고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 솔직하지 못하군요.
“없는 소리 지어내는 너보다는…….”
- 됐고, 청룡길드 동맹 주선비로 1천억 되겠습니다.
“뭐? 1천억?”
- 너무 저렴해서 놀랐습니까? 한국 1위 길드인데 그 정도에 동맹이 될 수 있으니… 돈은 제 계좌로 쏴주시면 됩니다.
- 뭐-어?
경석 아버지는 웃었다.
이건 청룡길드에서 요구하는 게 아니다.
강기찬이 요구하는 거다.
즉,
‘강기찬이 이놈이 사기를 치는 거구먼…….’
사실, 동맹은 인터넷 기사가 떴을 뿐, 청룡길드 측에서 공식 발표도 하지 않았다. 단지 버스 태운다는 것에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특히 강기찬이 자신의 계좌로 동맹 주선비로 1천억을 쏘라는 데에서 덜미를 잡았다.
‘그래, 애초에 청룡길드가 겨우 1천억에 동맹을 해줄 리 없지.’
경석 아버지는 한껏 근엄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저 알량한 재주 하나 믿고 너무 설친다는 생각은 안 드냐?”
- 청룡길드와 동맹을 주선하는데 설치면 안 됩니까?
“미친 새끼… 청룡길드에 이용당하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 뭐, 청룡길드와 동맹을 맺지 않겠다는 말씀입니까?
“미친 소리 좀 작작 해라, 내가 널 가만둘 것 같으…….”
- 사장님? 접니다.
“…….”
경석 아버지는 말을 끊었다. 강기찬의 목소리가 아니라서. 수화기 너머에서 울린 소리는…….
‘이 목소리는……?’
친숙하진 않지만, 누구 목소리인 줄은 알았다.
- 저 청용입니다.
“예…….”
경석 아버지의 목소리 톤이 낮아졌다.
- 옆에서 듣자 듣자 하니 도가 지나치시더군요?
“… 제가 말입니까?”
- 주제를 좀 아셨으면 해서 감히 실례를 무릅쓰고 강기찬님에게 양해를 구해 전화 바꾼 겁니다.
경석 아버지는 기가 막혔다.
‘… 뭐? 강기찬님?’
강기찬이 아무리 대단한 재주를 지녔다고 한들, 천하의 청용이 누군가를 높여 부른 적이 있던가? 공석에서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그런 자가 강기찬을 높여 부르다니?
“주제?”
- 강기찬님에게 가만두지 않겠느니, 하는 것. 자제하라고 경고하는 겁니다. 이 이상 버르장머리 없이 굴면 저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
- 그리고 강기찬님이 하신 말씀이 맞습니다.
“네? 뭐가…….”
- A길드와 동맹 맺는 거 말입니다.
“도대체 왜?”
- 강기찬님이 계신 곳이었으니까 그랬죠. 이제는 아닌 걸 알았지만, 그래도 강기찬님께 조금이라도 이득이 되신다면 그깟 동맹 못 해 드릴 것도 없습니다.
“잠시만…….”
이쯤 해서 경석 아버지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어떡하지?’
이유야 어찌 되었든 청룡길드와 동맹을 맺는다면 A길드에겐 혁명이나 다를 바 없다. 단숨에 200위에서 100위 안쪽으로는 들 수 있을 터. 50위도 불가능한 건 아니리라.
“좋습니다.”
강기찬이 끼어있다는 게 영 못마땅했지만, 사적인 감정으로 일을 그르칠 수는 없었다.
‘내가 뭐 저놈 보다 더한 놈들도 상대해봤는데 말이야…….’
그런 까닭에 강기찬에게 돈을 주고선 청룡길드와 동맹을 맺기로 했다.
‘청용이 뇌에 총을 맞은 것 같긴 하지만, 설마 청룡길드를 가지고 장난질을 치진 않을 테니까…….’
전후 사정을 다 아는 비서에게 손짓하자, 순식간에 강기찬의 계좌로 돈이 입금되었다.
* * *
[내 계좌 입금액 : 100,000,000,000]
강기찬은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말 몇 마디에 1천억 원을 벌었다. 물론 이것도 VIP 캐시 상점으로 입장료에 보탤 테지만.
‘거기 들어가면 뭐가 있을지는 몰라도 1조의 가치는 넘을 테니까…….’
청용이 강기찬의 눈치를 살피다가 말했다.
“혹시 돈이 급하시면 제가 좀 드릴 수 있습니다.”
돈이야 썩어난다. 그깟 돈 몇 푼으로 강기찬에게 점수를 딸 수 있다면 남는 장사라고 보았다.
강기찬이 진중하게 물었다.
“9천억 주실 수 있나요?”
“예?”
“농담입니다. 제 목표 액수가 1조인데, 이제 1천억 좀 넘게 벌어서…….”
“그렇게 큰돈을…….”
“어디다 쓸 거냐고요?”
“…….”
청용의 무언의 긍정이었다.
“이거 비밀인데…….”
“…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정말인가요?”
“예. 이런 말 하면 싸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돈도 아닙니다.”
강기찬이 눈을 빛냈다.
“원하는 게 있습니까?”
“저희 길드로 들어오시는 겁니다.”
“길드 영입이라…….”
“예, 진지하게 말씀드리자면, 강기찬님이 협조만 해주신다면 세계무대도 진출해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청용도 한층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사양하겠습니다.”
“아…….”
강기찬의 거절에 청용이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역시 너무 후려치기를 한 걸까요?”
“뭐, 그것도 그거지만, 제가 어디 얽매여있는 걸 싫어해서.”
레전드스토리 처음할 때 암살자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단독사냥이 가능한 몇 안 되는 직업이었으니까.
“그리고 A길드와 동맹 맺은 거 끊으십시오.”
“예?”
강기찬의 예상치 못한 권유에 청용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 방금… 동맹 맺었는데…….”
“A길드와 동맹 맺는 건, 청룡길드에 좋은 게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거야 강기찬님이…….”
“저는 괜찮습니다. 또한, A길드도 괜찮을 겁니다. 멋대로 끊어도 말이지요.”
청용은 궁금한 게 많았지만, 다 질문할 수 없었다. 강기찬이 시키면 이유가 있을 테니.
“알겠습니다. 끊겠습니다.”
청용이 결단을 내리자마자 실행에 옮겼다.
그러자마자 강기찬에게 전화가 왔다.
발신자가 경석 아버지였다.
- 야!
전화를 받자마자 날아오는 일갈.
강기찬은 여유로웠다.
“왜 그러시죠?”
- 방금 동맹이 끊겼다. 이거 어찌 된 일이냐?
“그걸 왜 저한테?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 아니, 넌 알고 있어. 어디서 개수작질 이야? 동맹은 없던 거로 한다. 내 돈 내놔.
“그건 곤란합니다.”
- 뭐? 못 돌려주겠다는 거냐?
“예. 제가 분명히‘주선비’라고 했습니다. 제가 돈을 받은 건, 두 길드를 연결해드린 데에 대한 대가입니다. 어디 제가 아니었으면 이런 시도가 가능했겠습니까?”
- 너 아주 완벽히 미친 새끼구나?
“둘 사이가 틀어진 것까지 저한테 뭐라 하시면 곤란합니다. 어디 무서워서 주선하겠습니까?”
- 하! 그래, 막 가자는 거지? 이거 청용도 가담한 거 다 안다! 아무리 1위 길드라도 이러면 무사히 넘어갈 것 같아? 결국, 대한민국에 발붙이고 사는 건 똑같은데, 내가 이걸 사기죄에 갑질로 기사화하면 어떻게 되는지…….
“잘 들어.”
- 뭐?
“아주 재미있는 내용을 들려줄 테니까.”
강기찬이 녹음기를 틀었다.
지직! 지지지직--!
[참 웃기지 않냐? 네가 죽이려 했던 놈이 우리 길드를 위해 일을 하게 되다니…….]
- 이, 이건……!
“닥치고 더 들어.”
강기찬은 입을 닫게 했다.
[…암살 실패가 이런 결과를 불러일으킬 줄이야… 뭐, 잘됐지. 강기찬, 그 사회 부적응자를 쓰임새 있게 쓰고 버릴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그래도 다음번엔 꼭 성공해라. 암살자는 비싼 걸 쓰거라, 싼 걸 쓰니까 탈이 나는 게야. 비싼 게 괜히 비싼 게 아니다. 그러게, 지원해준다고 할 때, 받지! 내빼더니 이게 뭐냐, 이게…….]
뚝!
- … 이, 이걸 어떻게? 대체 누가?
경석 아버지와 경석, 단둘이 나눈 대화였다.
강기찬 암살 모의를 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잠시 후 나온 말은…….
- 조작이다. 그래, 조작이야!
“어째 예상을 벗어나질 않네. 이렇게 재미나게 나오실 줄 알았습니다.”
- 뭐?
“잠시만.”
[이벤트 스킬, 소환을 사용합니다.]
[박창준님을 소환합니다.]
[박창준님이 강기찬님의 소환에 응했습니다.]
[지구서버 – 필드, 절망을 부르는 사막(Lv. 2100)으로 소환됩니다.]
“증인 불러왔습니다. 당신 아들이 고용한 암살자. 내 방에서 나를 죽이려고 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