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 * *
속보의 행진이었다.
< 청룡길드, 파격적인 행보! >
< 1군의 최초 버스 태우기? 자존심을 버리나? >
< 버스 승객, 전 랭킹 1위, 강기찬과 A길드 장남 경석으로 알려져……. >
< 청룡길드, A길드와의 은밀한 접촉? >
그들은 입맛이 썼다.
기사가 뜰 수는 있다고 여겼지만, 신상정보까지 까발려지고 있었기에.
그만큼 누군가를 버스를 태운다는 건 사상 최초였다. 그것도 자기들보다 낮은 등급의 백호, 주작, 현무 길드에서도 누구를 버스 태웠다는 소식이 없을 정도니.
그랬기에 인터넷도 시끄러운 것이다.
후회도 되었다.
‘마스터가 괜찮은 보상으로 유혹만 안 했어도…….’
결국, 본인들의 판단이긴 했지만, 상황이 이리되니 남 탓을 안 할 수 없었다. 청용도 청용이지만, 원인을 제공한 저 둘에게.
“잘도 받아 처먹고 있네.”
“개같은 새끼들.”
셋은 평상시보다 더 똘똘 뭉쳤다. 그들이 반쯤 패 죽인 몬스터를 강기찬과 경석이 막타치는 걸 지켜보면서.
“대체 저것들이 마스터를 어떻게 구워삶았을까?”
“돈이겠지.”
“돈으로 마스터를… ? 돈으로는 꿈쩍도 안 할 양반인데? 재미없는 농담이랑 명예밖에 모르잖아.”
“야,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지.”
“뭐가?”
“돈 욕심 없는 마스터를 움직일 만큼의 돈을 저것들이 들고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럼, 돈 말고 랭킹 1위이자 최고 대한민국 1등 길드의 수장을 유혹할만한 게 뭘까?”
문득 청용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자세한 건 말할 수 없지만, 마음만 먹으면 세계를 뒤흔들 수 있는 분이시다. 내가 너희들 부른 건, 그분에 대한 대접도 대접이지만, 너희들도 눈도장 찍어서 나쁠 게 없기 때문이야.
“너도 그 생각했냐?”
“마음만 먹으면 세계를 뒤흔들 수 있다니, 그게 가당키나 하냐?”
“어, 왜 허언 같이 들리지?”
“허언일 가능성은 작아.”
“마스터가 장난기는 많은 편이라도 일할 때는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임하잖아.”
“그래도 진실로 받아들이기에도…….”
저벅.
청용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너희들이 고생이 많다.”
“마스터.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냐?”
“저것…, 아니 저자들이 무슨 수로 세계를 뒤흔들 수 있다는 겁니…….”
그때였다.
두두, 두두두두두!
“어? 저건?”
강기찬 쪽에서 심상치 않은 기류를 포착했다.
방금 자기네들이 죽인 몬스터가 도로 일어서는 게 아닌가?
“저, 사람 암살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청용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 어… 어.”
“저런 짓을 할 수 있는 직업은…….”
“설마, 네크로맨서?”
“아니, 말도 안 돼. 암살자라니깐?”
그 사이, 일어난 몬스터가 다른 몬스터를 치기 시작했다?! 그들을 뒤로 두고선 강기찬이 다가와 한마디 했다.
“여긴 장악했습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시죠.”
이때, 세 사람은 무언가 느낌은 확실하게 받았다.
마음만 먹으면 세계를 뒤흔들 수 있다?
여전히 미심쩍다.
하나, 강기찬을 퇴물 취급해선 안 된다는 것은 확신했다.
누가 강기찬에게 물었다.
“혹시 네크로맨서입니까?”
“예.”
간결하고 속 시원한 대답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속이 더 답답해지는 것은.
“저… 암살자이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맞고요.”
고구마 먹다가 목이 막힌 기분이었다.
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직업이 두 개란 말입니까?”
“두 개뿐이겠습니까?”
이젠 숨이 막히지만, 또 물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직업이 두 개 이상이라도 된다는 듯이 굴…….”
“여기까지.”
“뭐? 아니… 네?”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마십시오.”
“아…….”
대격변 이래로, 누군가 말을 자른 건 처음이었다. 대통령도 감히 못 자르는 말을 단칼을 잘라버리다니?!
하지만, 왠지 불쾌하지 않았다.
아니, 불쾌해서는 안 될 것 같달까…….
“네…….”
* * *
청룡길드원들은 더는 놀랄 일이 없을 줄 알았다.
더 있었다.
강기찬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고 할 때, 당연히 다음 필드로‘이동’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몬스터‘소환’이라니?
“그때 그 뉴스가 사실이었던 거야?”
“가짜뉴스인 줄 알았는데.”
일전에, A길드와 관련해 시끄러웠던 적이 있지 않나. 그들이 사냥하는 곳에 화수분처럼 몬스터가 나타나고 다른 필드의 몬스터가 사라졌던.
그 현상이 재현되고 있었다.
“이런 버스 태우기는 상상도 못 했는데…….”
몬스터를 잡으려면 그 몬스터가 있는 사냥터로 이동하는 게 상식이다. 그 상식이 깨졌다. 역으로 몬스터를 데려오는 방식의 사냥이라니?
어색하긴 해도 익숙해지는 건 금방이었다.
그리고 막상 겪어보니 실소가 나왔다.
“미쳤다.”
“최고인데?”
‘소환 사냥’은 장점이 너무 많았다.
우선, 이동 시간 생략.
레이드에 있어 이동 시간이 반 이상이다.
오죽하면 사냥시간보다 더 길다고 하겠나.
그 시간이 통째로 사라졌다.
그뿐이랴, ‘원하는’ 몬스터를‘즉각’ 불러낼 수 있다.
이게 제일 부러웠다.
그들의 사냥감은 외국에 있다.
근데, 가도 만족하고 돌아온 적이 없다.
거액을 들이고 시간을 내고도 고작 몇 시간… 그마저도 몬스터 리젠 대기 시간까지 합치면 더 짧다.
반면, 소환은 몬스터 리젠 대기 시간이 전혀 없다.
이미 리젠된 걸 불러내니까.
“극단적으로 효율적이야.”
강기찬만 혜택을 누리고 있음에도…….
어째서일까? 대리만족하는 기분은?
희망을 엿볼 수 있기 때문 아닐까?
실은 요즘 들어 부쩍 레벨업에 한계를 느꼈다. 레벨업 필요 경험치는 대폭 느는데 사냥방식은 같으니.
“우리도 저렇게 사냥하면?”
“레벨업 속도가 비교가 안 될 만큼 올라갈 거야.”
사냥 외적으로 드는‘불필요한 요소’의 철저한 배제.
온전히 사냥에 쏟을 수 있을 터.
“어쩌면, 단순한 레벨업이 아닐지도 몰라…….”
레이드에 필수인 경쟁과 견제가 없어지는 것이다.
국내가 아닌 세계무대로 진출할 수도 있을 터.
하지만, 이 모든 건 강기찬이 도와줘야 가능한 일.
“부, 부탁해볼까? 우리 사냥도 좀 도와달라고?”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지만… 우리가 한 게 있는데 어떻게 그래…….”
강기찬에게 불만을 품고 인사도 무시하고 깔보는 듯한 언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불쾌한 시선 처리 등, 부정적인 요소가 많았다.
그랬던 것들이 떠오르자, 회의감이 들었다.
“마스터의 말이 맞았어.”
“잘 보일걸…….”
“아직 늦지 않았어.”
“이대로 보내선 안 돼.”
“어떡할 건데?”
“어떻게 하긴… 원래 저런 하층민들은 자신이 대접받는다는 걸 느끼게만 해줘도 돼.”
* * *
현재 강기찬은 경석과 파티를 맺고 있었다.
청룡길드원들이 피를 99.9% 깎아 놓으면 각각 막타를 쳤다. 나머지 몬스터는? 강기찬의 권속이 숨통을 끊었다.
‘열심히 하는데?’
강기찬은 청룡길드원들의 행동을 보다가 문득 알았다.
어느샌가, 최선을 다하고 있달까?
효율이 30%는 증가했을 것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
이미 A길드한테서 보았던 반응이었다.
‘내 소환이 탐나겠지.’
인간이란 정점을 찍어도 목이 마른 법이다. 저들이라고 다를 것 없다. 국내에서 잘 나가면 해외도 눈독을 들이기 마련이니까. 현실적으로 해외 진출이 어려우니 소환이 절실할 것이다.
‘그래도 어쩌나… 너희들에겐 국물도 없단다.’
저들을 위해 소환을 쓸 일은 없을 것이다.
한낱 감정에 치우쳐서가 아니다. 딱히 악감정이 생길 여력도 없고, 또 이해를 못 하는 것도 아니어서. 귀중한 시간을 뺏는 건 맞으니까.
그런데도 소환을 못 써주는 건, 기간제라서다.
‘며칠 안 남았는데 나를 위해 써도 모자란 걸, 저 사람들을 위해서 쓰라고? 어림없는 소리.’
휴식시간.
강기찬은 경석과 나란히 앉아있었다.
경석이 입을 쩍 벌리며 말했다.
“야, 레벨업 속도가 어마어마한데?”
강기찬이 풀썩 웃었다.
“당연하지, 그냥 소환해서 잡아도 시간 절약이 어마어마하게 되는데, 대한민국 최정예 유저들이 버스를 태워주는데, 그것도 파티를 안 맺어서 경험치를 우리가 온전히 먹고 있잖아.”
“맞아, 맞아… 근데 너 어떻게 저 사람들을 섭외했냐? 도와주는 그렇고 천하의 청용이 깎듯이 굴던데?”
경석은 싱글벙글했다.
“… 너보다 나한테 더…….”
“하, 그게 포인트지?”
경석이 유난히 기분 좋았던 것은, 강기찬과 비교해서 자신에게 더 잘 대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진하네. 아무 이유 없이 너한테 더 잘해줄 리가 없는데, 그걸 모르냐…….’
강기찬은 실소를 머금었다.
한편, 청용과 청룡길드원들이 다가왔다.
“괜찮으시면 합류해도 될까요?”
경석이 강기찬의 눈치를 보았다. 강기찬이 고개를 끄덕이자 비로소 입을 열었다.
“예, 앉으세요.”
세 사람은 곁에 앉았다.
한 사람은 끝까지 서 있었다.
왜 저러나 싶은데,
“혹시 모르니 저는 빠져있겠습니다.”
안전을 위해서란다.
“… 일대를 다 정리하지 않았습니까?”
강기찬이 괜히 지적했으나,
“100% 안전하다 볼 수 없지요. 우리끼리 있으면 모를까… 강기찬님이랑 경석님이 계시니 조심해서 나쁠 것 없고. 무엇보다 여긴 던전이 아니라 필드잖습니까.”
그런 까닭에 보초를 서기로 한 것.
하지만,
‘하… 가지가지 하네.’
강기찬은 헛웃음이 나오려던 걸 참았다.
‘뭐 하는 짓이지?’
이곳이 9,000레벨대 필드라면 이해할 수 있다. 아니, 고맙다. 몬스터한테‘한방감’일 테니까.
반면, 여긴 2,100레벨 필드다.
강기찬은 3,000레벨이다.
권속이 뒤를 지키고 있기까지.
바로 옆에는 청용이 앉아있고.
나머지도 랭커들…….
여기서 어떻게 해야 위험에 처할 수 있을까?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저런다.
조심성이 많다고 좋게 볼까?
아니,
‘쇼하고 자빠졌네. 인사 쌩깔 때는 언제고…….’
조심성 자체는 나무랄 것 없지만, 그 행위를 저자가 한다는 게 문제다.
역겨웠다.
‘차라리 일관성이 있게 재수 없게 나가지.’
태도를 180도 바뀌지만 않았어도 좋게 봤을 것이다.
‘저건 너무 속보이네.’
물론 그렇다고 지적할 건 없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지.’
본인이 하고 싶다는데 막을 권리도 없었다.
손해 볼 것도 없기에.
한편,
‘흐으음.’
청용은 의아스러웠다.
경석이 강기찬 눈치 보는 것 같지 않나?
‘… 경석의 말투나 성격? 분위기가 달라졌고.’
은연중에 느꼈지만, 모호했었는데 이젠 뚜렷해졌다.
‘경석이, 경석이 아닌 것 같달까?’
작금의 경석은 낮과 달라졌다. 몇 시간 사이에 성격이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더 희한한 점은 이제는 강기찬이 경석 같다는 거지.’
강기찬의 모습에서 경석이 보였다. 그간 봐온 경석의 이미지가 강기찬에게 옮겨갔다고 해야 하나? 콕 짚긴 어려우나 그런 느낌을 받았다.
‘하나 더… 강기찬이 주도하고 경석이 뒤를 따르고 있다.’
강기찬이 명령조로 말하면 경석이 소극적인 태도로 이에 따르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방금 비서한테 온 문자.
- 며칠 전, 허수아비 논밭에서 경석이 강기찬에게 무릎을 꿇었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
이로써 확실해졌다.
강기찬이 경석의 위에 있다는 것을.
‘전설의 대마법사보다 더 위라면…….’
강기찬의 현재 직업은 암살자, 네크로맨서.
‘강기찬이 전설의 네크로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