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청용이 물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목적지까지 태워다 드려도 될는지?”
경석이 운전기사가 있는 걸 알 텐데, 태워준다니?
청용의 속셈을 뻔히 보였다.
하지만, 모른 체했다.
경석(강기찬)이 정중히 사양했다.
“저를 태워준다고요? 아뇨, 그러실 것까지야.”
“… 청룡에 태워드리고 싶어서.”
“아, 그런 거였습니까? 진작 말씀해주시지.”
“어떻습니까? 괜찮습니까?”
“고맙죠. 저도 청룡 타보고 싶었는데…….”
“잘 됐군요.”
“근데 왜 이렇게까지 잘해주시는지…….”
경석(강기찬)의 순진무구한 척하는 물음에 청용이 대답했다.
“배려심에 감동하여서랄까요?”
“배려심?”
경석(강기찬)은 배려심을 보인 적 있나 떠올렸다.
없었다…….
“그간 기를 안 뿜으셨잖습니까?”
“…….”
경석(강기찬)은 어이가 없었다.
‘그게 배려심이야? 내뿜을 기가 없으니까, 그런 건데.’
청용은 찬양을 이어나갔다.
“경석 씨가 어떤 사람인지를 몰랐을 때만 해도, 전 당연히 레벨이 낮아서, 내뿜을 기가 없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알겠더군요. 우리에 대한 배려였다고……. 고맙습니다.”
“아, 하하…….”
“저… 혹시 랭킹 욕심은 없으신 겁니까?”
심심해서 한 물음이 아니었다.
‘경석이 랭킹에 욕심이 있으면, 난 바로 랭킹 2위로 강등이야…….’
다분히 의도가 깔린 것이다.
자신의 랭킹을 걱정한…….
“마음만 먹으신다면 세계 랭킹 1위도 가능하실 것 같은데.”
“… 이제는 랭킹은 관심 없습니다.”
강기찬은 랭킹 1위를 찍어보았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숫자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어차피 회귀할 거라 이곳에서의 랭킹은 의미가 없지. 오히려 레벨업이 더 의미 있고.’
“안심하십시오.”
강기찬의 말에 청용은 뜨끔했다.
본심을 들켰달까…….
그래도,
‘휴, 다행이다.’
기뻤다.
랭킹 1위 유지에 지장이 없어졌으니.
“그러시구나… 그래서 랭킹에 미포함 되었던 거였군요.”
“예?”
유저는 제 의지로 랭킹에서 이름을 뺄 수 있다. 하나, 강기찬은 레벨이 너무 낮아서 랭킹에 들지 못했을 뿐, 빼고 싶어서 뺀 게 아니다.
정정해줄 생각은 없었다.
‘… 오해하는 대로 넘어가야지.’
귀찮은 건 질색이었다.
한편, 청용은 홀가분해졌다.
‘랭킹 1위에 관심 없다라… 역시 내 의중이 맞았어.’
경석이 자신의 자리를 넘볼 리는 없게 되었다.
그 덕분에 경석이 정말 고마웠다.
‘이제 잘 보여서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만 남았네.’
“나와라, 청룡!”
청용이 청룡을 불러냈고 경석(강기찬)이 그 위에 올라탔다.
“가자- 청룡열- 아니, 청룡!”
청용은 또 청룡을 놀리려다가 말았다. 손님을 태운 채 추락하는 아찔한 상상을 해버린 터라.
청룡도 오랜만에 이름이 똑바로 불러서인지 기뻐하며 하늘로 솟구쳐오르겠다.
이러면 일반인들은 추락사의 위험이 있다고 여기나, 그러기는커녕 균형을 잡는 것조차 안 해도 되었다. 시스템상으로‘탑승’상태이기에 자동으로 보호 조치가 내려지는 것이었다.
청룡이 하늘을 가로질러 구름에 파고들 무렵,
청용이 어색함을 지우고자 한 마디 건넸다.
“그… 경석씨랑 강기찬씨, 저희 길드원들 버스 타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죠.”
청용은 의아스러웠다.
경석이 버스 탈 처지인가?
반대로 자신과 길드원들을 버스 태워줄 처지지.
그런데 왜 청룡길드에 버스를 태워달라고 한 것일까?
불현듯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무언가.
‘아… 설마?’
알 것 같았다.
‘강기찬을 위해서?’
경석에게나 아니지, 다른 유저들에게 있어서 청룡길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길드다.
그건 강기찬도 마찬가지일 터. 아무리 자신이 길드원들에게 귀빈이라고 소개해도 본능적으로 기가 눌릴 것이다.
경석은 위축될 강기찬을 혼자만 보내지 않으려‘같이’ 버스를 타려고 한 것이리라. 왜 있지 않나, 놀이기구 무서워하는 친구 옆에 같이 타주는 의리 있는 친구.
‘정말 인성까지 완벽하시구먼…….’
그런 속내로 모른 채 경석(강기찬)이 답했다.
“아, 저는 지금 버스타기 괜찮은데…….”
“승객이 괜찮으시다면야, 기사가 마다하겠습니까? 그럼 바로 가시지요?”
“오,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필요하실 때 얼마든지 불러주십시오.”
“실례가 아닐지.”
“우리 사이에 실례는 무슨!”
경석(강기찬)은 언제부터 너와 내가‘우리 사이’가 되었냐고 꼬집고 싶은 걸 참았다.
‘이러려고 전설의 대마법사인 걸 밝힌 건데, 다행히도 약발이 잘 먹히고 있네.’
자신이 전설의 대마법사임을 공개한 것.
위험할 수도 있다.
이미 한 차례 겪지 않았나. ‘신규’ 히든 & 스페셜 클래스 암살 사건을.
단지 ‘기존’ 히든 & 스페셜 클래스 유저들이, 자신들 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자행한 사건이었다.
물론‘전설의 대마법사’ 는 유일했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더 위험인물로 찍힐 수도 있다.
그래서 청용에게만 알렸다.
함부로 발설하지 않을 테니까.
앤드류와 붙게 함으로써‘넘을 수 없는 벽’을 느끼게 해주었고, 자신이 그런 앤드류에게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늘 위의 하늘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세 살짜리 애라면 범 무서운 줄 모를 수도 있지만, 청용이라면 경석 무서운 줄 알았을 것이다.
‘여기서 청용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은 두 가지, 나란 존재를 인정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해치려 들 것인가…….’
둘 다 가능성이 있었다.
다만,
‘설령 나를 해치려 들려 해도 당분간은 무리겠지.’
어느 쪽이든 시간은 경석(강기찬)의 편이었다.
‘속은 몰라도 겉으로는 저렇게 내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할 거야. 난 그걸 이용해주기만 하면 되고.’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도 청용이 호의적이면 그로 인한 혜택을 지속해서 누리면 그만이고, 만약 대든다면 그때쯤엔 정말 강해진 다음이 되었을 테니 목을 쳐버리면 될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전설의 대마법사임을 밝힌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얻는 이득도 상당할 테니까.
그중 하나가 바로 지금, 버스 타러 가는 것이었다.
‘내 레벨이 2,000레벨을 넘긴 시점에서는 잘 판단한 거지.’
그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 사냥한다고 해도, 그보다 레벨이 높은 길드의 버스를 타는 것보다는 레벨업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경석의 A길드 조력은 수명이 다 되어갔다. 조만간 강기찬은 그들을 뛰어넘을 테니까.
필연적으로 헤어질 수밖에 없는 관계인 셈.
가라앉는 배에서 뜨는 배로 갈아탈 필요성을 느끼던 차였다. A길드 만큼이나 자신에게 헌신적이면서도 급이 다른 새로운 조력 길드.
‘기왕이면 청룡길드의 조력을 받는 게 좋지 않겠어? 레벨업할 때마다 도중에 조력 길드를 갈아타는 번거로움을 겪을 바에는 말이야…….’
마침 랭킹 1위 길드인 청룡길드가 있었다.
물론, 일전에 자신과 경석을 버스 태워준다고 했지만, 그건 일회성에 그칠 예정이었고, 자기네들이 직접 하지 않고 하청 길드에 맡겼을 터였다.
하나,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버스 횟수는 원하는 대로.
버스 기사는 최정예로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설의 대마법사에게 점수 따려면…….’
* * *
강기찬은 경석에게 부탁했다.
청룡길드 버스 탈 건데‘경석’으로 참가해달라고.
그렇게 해야만 3개의 계정 전부, 오롯이 버스를 탈 수 있었다.
혼자선 1인 2계정이 한계였고 누군가 1계정을 맡아줘야 했는데, 아무래도 경석이 어울렸다. NPC화타에게 시키기엔 이곳에 보는 눈이 많을 테니 어색할 테니.
그리하여 오게 된 이곳은…….
< 필드, 절망을 부르는 사막(Lv. 2100) >
뜨거운 태양 아래, 익어가는 듯한 뜨거움.
“자자, 다들 힘냅시다!”
청용의 독려하에 길드원들도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더운 것도 더운 거지만, 짜증이 났다.
“대체 길드장이 왜 저러지?”
청룡 길드원들은 청용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왜 저러는지 알아?”
“난들 아냐…….”
“미친 거지.”
이들은 초 엘리트들이었다.
9,000레벨 이상의 유저?
한국에선 단 100명 밖에 없다.
청룡길드에선 단 30명.
사회에서 가장 대접받는 최상류층에 속했다.
그런 까닭에, 청용의 부름이 못마땅했다.
이곳, 절망을 부르는 사막은 고작 2,000레벨대 사냥터다. 평균 레벨이 9,000이 넘는 자신들이 올 이유가 전혀 없는.
그런 데를 끌려왔다.
문제는 온 이유였다.
청용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 마스터, 대체 우리가 그런 허접한 필드에 가는 이유가 뭡니까?
- 버스를 태워드려야 해.
- 버스라고 했습니까? 누굽니까 대체?
- 강기찬씨와 경석님.
- 예? 강기찬은 그 대격변 전의 레전드스토리에서 랭킹 1위 아닙니까? 얼마 전에 갑자기 활동을 재개했다던?
- 경석은 누굽니까? 그 사람은 이름도 못 들어봤는데?
- A길드 장남이시다.
- A길드? 그런 길드도 있습니까?
- 곧 우리 길드와 협력관계를 맺을 거야.
- 하, 무슨 그런…….
- 그 길드 200위 권인데?
대한민국 1등 길드, 그중에서도 최정예들만 모인 1군을 오라 가라 할 수 있는 자?
청용, 그리고 대통령이나 가능한 일. 그들조차 최대한 예우를 갖춘다. 그래도 버스는 안 태워준다. 그건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했으니까.
한데, 강기찬과 경석?
속된말로 한 명은 옛날에나 잘 나갔던 퇴물, 한 명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이다.
당최 자신들이 왜 저런 자들을 버스 태워줘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 어쨌든 그 둘을 버스 태운다는 겁니까?
- 그래, 극진히 모셔야 해.
- 아니, 대체 그자들이 뭐라고 우리가 나서야 한단 말입니까? 3군 애들 시켜도 될 일인데, 오늘은 휴일이기까지 합니다!
- 자세한 건 말할 수 없지만, 마음만 먹으면 세계를 뒤흔들 수 있는 분이시다. 내가 너희들 부른 건, 그분에 대한 대접도 대접이지만, 너희들도 눈도장 찍어서 나쁠 게 없기 때문이야.
- 레벨이 몇인데요?
- 듣기로는 강기찬씨는 1천 대, 경석님은 100정도라고 하신다.
- 아니, 씨팔! 최하층민들이잖아! 눈도장은 개뿔이…….
- 실망입니다. 길드장.
- 우리가 그런 것들 뒤나 닦아주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란 말입니다!
- 대체 돈을 얼마나 받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돈만 보고 움직이지 않는 건 아시잖습니까?
- 전 항상 대장의 말을 거역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닙니다.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 아오, 진짜!
몇몇이 성질을 내며 나갔다.
인원 중 90%가 이탈을 한 상황.
청용도 화를 낼 수는 없었다.
경석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라 말하지 못하는 처지에, 마냥 이해를 강요하는 것도 부조리하니까.
‘나였어도 욕을 했겠지.’
그렇게 해서 단 3명 만이 잔류했다.
물론 이들마저 그만한 보상을 약속하고서야 설득할 수 있었다.
이때 당시만 해도 아무도 몰랐다.
잔류한 3명이 행운아였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