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 * *
앤드류.
최초의 대마법사가 된 이래로 가장 크게 당황했다.
‘뭐지?’
분명 경석에게 좌표 찍고 쳐들어왔다.
그런데 경석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곤 칠흑 같은 어둠뿐.
당황하지는 않았다.
이곳이 낯설진 않아서.
아니, 아주 익숙한 공간이었다.
‘여긴 시련의 공간 – 어둠?’
시련의 공간 – 어둠.
이곳을 통해서 대마법사로 전직하지 않았나.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곳이었다.
‘… 여기도 공간이동이 되는 거였구먼… 아니면 하인스가 죽어서 결계가 약해진 것일 수도…….’
주위를 둘러보고 결론지었다.
‘경석이 여기 없구먼? 간발의 차로 놓친 건가? 이런, 곧장 공간이동은 못 쓰는데…….’
원하는 상대에게 직방으로 향하는 스킬.
아주 고급 스킬이었다.
그런 만큼 쿨타임이 길었다.
‘일단 여기서 나가야겠다.’
계획이 초장부터 실패했다.
나가서 재정비한 뒤, 다시 경석의 위치를 파악하고자 했다.
앞이 안 보였지만, 나가는 데엔 무리가 없었다.
대기 중에 흩어진 마력의 흐름을 읽어 지형지물을 파악해 어둠을 헤쳐나가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쏴-아아악!
‘뭐지?’
정면에서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다.
직감했다.
‘무언가 이리로 뛰어오고 있다!’
누군가와 순식간에 가까워졌고,
앤드류가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누군가가 다가오자마자 손을 내밀었다?!
‘뭐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매섭게 질주 후 손만 내민다?
공격도 안 하고?
‘뭐 하는 짓이지?’
어쨌든, ‘누군가의 손’을 튕겨냈다.
패시브로 발동된 무형의 방어막으로.
“하하, 이거 참…….”
손이 튕겨버린 청용이 머쓱하다는 듯, 말했다.
“너무 한 거 아니냐? 질 것 같다고 스킬 쓰는 건 반칙이지!”
그는 상대방이 경석이 아닌 걸 몰랐다.
여전히 경석인 줄 알았다.
즉, 착각하고 있는 상태.
“넌 뭐냐?”
앤드류가 정체를 물었다.
그런데도,
“패배를 인정하기 싫어서 목소리까지 변조할 줄이야. 생각보다 저열한 방법이야, 그건…….”
청용은 정체를 밝히기보다는 딴소리(?)를 했다.
앤드류는 답답할 노릇이었다.
‘묻는 말에나 대답할 것이지…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은?’
도대체 어떻게‘시련의 공간 – 어둠’에 낯선 자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강하네……….’
생각 외로 강하다는 것.
‘보통 미친놈은 아닌듯한데…….’
상시 적용되는 방어막이 없었다면 손길이 닿을 뻔했다. 무기가 아닌 맨손에다가 공격도 아니었지만.
단지 그 손짓에 상대의 전력을 일부나마 느꼈다.
‘한국 수준이 이렇게 높았던가? 순전히 공격력만 평가하자면 수준급. 랭킹 1위라 해도 믿겠구먼……!’
그는 한국 랭킹 1위가 누군지 몰랐다. 아는 거라곤 히든 & 스페셜 클래스 유저가 아닌 것 정도.
그래서 몰랐다.
히든 & 스페셜 클래스 유저는‘천외천’, 하늘 위의 하늘이라 불리며 랭킹 표시가 안 되었다.
같은 히든 & 스페셜 클래스 유저끼리 경쟁하지, 그 밑의 노멀 클래스까지는 신경 쓰지 않는 건 당연한 것.
앤드류는 청용을 무시하고선 대각선 방향으로 걸었다. 여긴 더는 볼일이 없지 않나.
하나 그건 앤드류만 그랬다.
‘경석(강기찬)’에게는 아니었다.
경석(강기찬)은 앤드류에게 볼일이 있었다… 아니, 생겼다. 앤드류가 깜짝 등장한 이후부터.
“어딜 가-아……어엇?”
청용이 뒤돌아서는 앤드류에게 향하는데 발바닥이 짜릿해진 걸 느꼈다. 썬이 지하에서 지진 거지만, 그걸 알 리 없으니…
‘비겁하게……!’
앤드류가 공격한 것으로 오해했다.
“오냐, 싸우자 이거지?”
청용은‘스킬 쓰지 말고’ 먼저 신체접촉을 하는 쪽의 승리로 결판내려 했다. 애당초 스킬 쓰지 말자는 조건은 없었지만, 이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붙잡히지 않기 위해 스킬 방어막을 쓰고, 그거로도 모자라 뒤를 보인 척 방심 유도하면서 공격해?’
경석(?)이 도를 넘어섰다 판단했다.
결심했다.
도발에 응해주기로.
‘우선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박살 낸다.’
청용이 청룡의 창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앤드류를 향해 던졌다.
순식간에 쏘아지고선-
타-아아앙!
-앤드류의 방어막을 단박에 깨뜨렸다.
“이- 감히 동양인 주제에?”
앤드류 도발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 * *
< 지하 연구실 >
경석(강기찬)은 초밥을 먹는 중이었다.
본래 청용의 회유에 성공하면 줄 점심 식사였지만,
“꺼-억.”
이젠 그의 뱃속에 들어가 있다.
“잘도 싸우네.”
여기선 지상, ‘시련의 공간 – 어둠’의 상황이 잘 보이고 잘 들렸다. 청용과 앤드류가 나눈 대화부터 싸우는 광경까지… 특등석에서 영화 관람하는 기분이었다. 그만큼 그 둘 간의 전투는 볼만했다.
‘한국 랭킹 1위 VS 최초의 대마법사… 돈 주고도 못 볼 전투를 이렇게 성사시킵니다. 제가…….’
지금 둘의 전투를 녹화하는 중이었다.
‘우투브 각!’
화질도 각도도 안 좋지만, 조회수는 문제없을 것이다.
‘청용… 제법이네.’
한쪽이 압도적으로 발라버릴 줄 알았건만, 은근히 밸런스가 맞았다.
앤드류가 스페셜 클래스에다가 앞이 보이기까지 하지만, 청용도 기척만으로도 단박에 달라붙고, 간격을 벌릴 틈을 주지 않고 있다.
청용은 상대가 앤드류인 줄 몰랐음에도 대처가 적절했다. 경석으로 착각했고 경석이 대마법사인 건 같기에. 그에 맞게끔 근접전을 밀고 나갈 수 있었다.
‘운이 좋네.’
우연히 직업이 맞아떨어진 덕에 적절한 전투 방향으로 흘러갔고, 그 덕에 초장 기세를 잡아 스펙은 열세임에도 전개는 열세이지 않게 되었다.
사실 진짜 운이 좋은 건 경석(강기찬)이었다.
‘청용의 체력 & 정신력이 바닥이 칠 때까지 일주일은 기다릴 줄 알았는데 이러면 전투가 끝나고 나면 파김치가 되어있겠지?’
오늘 안에 청용과의 내기에서 이길 수 있게 되었다.
‘시간 절약 굿. 그나저나…….’
그의 시선은 청용에서 앤드류로 옮겨갔다. 신원 파악이야 맵핵으로 끝냈고,
‘앤드류, 저 양반은 날 죽이러 온 거 같은데…….’
앤드류가 이곳에 온 목적이야 뻔했다.
경석 살해.
‘잘 왔네.’
경석(강기찬)은 앤드류가 찾아와준 것이 달가웠다.
‘안 왔으면 내가 가려 했는데…….’
앤드류가 자신에게 살의가 있는 한, 맞닥뜨리는 건 시간문제. 언제 습격당할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지내는 것보다는 빨리 종식하는 게 나을 터. 결판을 짓고자 조만간 앤드류를 찾아가려 했었다.
‘그랬다면 꽤 번거로웠겠지.’
앤드류가 미국 & 영국을 오가면서 활동하는지라 외국으로 간다는 것 자체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찾는데 걸리는 시간이나 비용문제도 그렇고… 그가 직접 와줌으로써 많은 것들이 편해진 것이다.
‘슬슬 끝내볼까.’
경석(강기찬)은 둘 중 하나가 죽길 바라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은 던전이라서 진정한 죽음은 없지만, 부활할 때까지는 대화를 못 나누지 않나.
‘하고픈 말도 있고…….’
그가 바라는 건 전투로 인해 청용의 집중력이 바닥을 치는 거지, 죽는 게 아니었다.
고로, 이때쯤이면 전투를 끊어야 했다.
슈-웅.
지상, ‘시련의 공간 – 어둠’으로 올라갔다. 마침 청용이 벽에 처박힌 뒤였다. 벽을 뚫고 나와 청용의 어깨를 만졌다.
“흐-어어업!”
청용은 얼음물에 발을 담근 듯,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의 귓가에 대고 경석(강기찬)이 속삭였다.
“제가 먼저 만졌습니다. 내기는 제 승리입니다.”
“아……!”
전투에 열중하느라 내기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걸 떠나서 벽 뒤에서 뚫고 나타날 줄 짐작이나 했겠나.
휙-
앤드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군가 청용의 곁에 나타난 걸 눈치챈 것이다.
“누구냐!”
“경석이다.”
경석(강기찬)이 자진해서 정체를 밝혔다.
“오냐, 잘 만났다!”
앤드류가 화답했다.
왜 지금 경석이 돌아왔는지 모르지만, 중요치 않다. 같잖은 놈과 골칫거리인 놈을 한 방에 해치울 기회일 뿐.
‘잘 가라!’
앤드류가 스킬을 발동시키려 했다,
그런데,
‘뭐야! 뭐야, 이거 대체 무슨…….’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이런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뭔지는 몰라도 하필 이 타이밍에……!’
더럽게 재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건가…….’
겁도 없이 대들던 놈은 벽에 처박혀 꿈쩍도 못 하고 있다.
멀쩡한 놈은 레벨이 10으로 추정…….
‘지팡이로 두들겨 패도 될 정도지…….’
목소리가 안 돌아와 스킬 못 쓰면 직접 패 죽일 요량이었다. 순수 무력으로도 이길 자신 있었다.
살기를 발산하고선 경석에게 가려는데…….
경석이 더 빨랐다?
아니, 사라졌고… 다시 나타난 것은 앤드류의 등 뒤.
“!”
앤드류는 당혹스러웠다.
살기를 내뿜었는데 효과가 없었다.
또한, 대마법사가 맞나 싶은 민첩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대마법사의 공간이동이 아니야…….’
방금 것은 대마법사의 공간이동도 아니었다.
‘내가 대마법사인데, ‘대마법사의 공간이동’을 분간 못 할 리 없어…….‘
이렇게 되면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너… 뭐냐?”
“뭐가?”
“방금 그 움직임과 공간이동…….”
“아, 그거? 내가 전설의 대마법사라서 그렇지 뭐. 별거 아니야.”
“저… 전설? 그, 그럴 리가…….”
전설의 대마법사?
경석(강기찬)의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들통나지 않을 계획이 다 있었다.
그가 은근히 짚어주듯 말했다.
“앤드류, 지금은 말 나오네?”
“아앗! 저, 정말……!”
앤드류는 놀랐다.
말을 한다는 걸 미처 의식하지 못했다.
아니, 그보다 더 놀라운 점이 있었다.
‘자, 잠깐! 내가 말을 못 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지금은 말 나온다고 하지 않았나.
이건 말이 안 나왔었다는 걸 알아야 할 수 있는 말이다.
‘수상쩍다.’
본인이 말을 못 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좀 전에 나와 놈과의 거리는 아주 멀었다. 내 입이 뻥긋거리는 걸, 볼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어. 목소리가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들을 수 있는 거리는 더더욱 아니었고… 두세 문장, 아니 한 문장도 아니고 스킬명은 기껏해야 서너 글자이기까지 하니…….’
무엇보다 말 못 했던 건 잠시였다. 지금은 말을 하고 있으니, 그 잠깐의 순간을 잡아냈다는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닐 터.
여러모로 경석이 원래부터 알고 있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던 그때였다.
경석(강기찬)이 말했다.
“지금은?”
“!”
“지금은 말 안 나오지?”
“!”
앤드류는 움찔했다.
정말이었다.
‘또 목소리가 안 나오다니?’
이쯤 되면 모를 수가 없다.
‘저, 저놈 짓이구나!’
목소리가 나오고 안 나오고…….
경석의 짓이 틀림없었다.
경석(강기찬)이 말했다.
“다시 말 나오게 해놨어.”
“… 허.”
“개수작 부리거나 쓸데없는 소리 하면 평생 말 못 하게 해주지.”
괜히 스킬 쓰거나 해서 반항하지 말라는 얘기다.
“알아들었으면 고개를 끄덕여라.”
끄덕.
“좋아.”
“…….”
척.
앤드류는 저도 모르게 한쪽 손을 들었다.
‘발언권’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정하는 것이었다.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