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테스트서버-67화 (67/151)

67화

GM미르는 혼란에 빠졌다.

‘게이… 어쩐지… 내가 유혹해도 넘어오지를 않더니만… 그런 사연이 있을 줄이야.’

껴안고 난리를 치고 있는 둘을 보며,

“휴…….”

한숨을 내쉬었다.

‘취한 척, 쇼했던 거 민망하네…….’

실은, 그녀는 전혀 취하지 않았었다. 일부러 혀 꼬인 척 연기했던 순간들이 후회되었다.

‘괴롭다, 괴로워, 그냥 잠이나 자자…….’

모든 걸 잊고자 잠을 택했다.

* * *

강기찬과 김만수는 천천히 서로의 품에서 떨어졌다.

“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좀 얘기 해주라.”

“일단 들어와.”

“어… 근데…….”

김만수가 침실 쪽을 가리켰다.

“넌 어떻게 된 애가, 다리 멀쩡해지자마자 여자부터 사귀냐? 또 집에 들여? 대체 얼마나 진도를 빠르게 빼는 거야? 뭐가 그렇게 급해? 친구야, 내일 지구가 멸망하기라도 해? 그렇게 되면 난 네가 사과나무를 심을 줄 알았는데 번식욕이 강해질 줄이야… 학계의 정설을 잘 따르는구나. 형은 어떡하고 먼저 가려고 하니?”

“형… 아니라니까. 뇌절 좀 하지 마.”

강기찬이 극구 부인하자 김만수가 역정을 냈다.

“인마! 나한테는 솔직해도 돼. 나 입 무거워! 너희 집 비밀번호도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20년 가까이나!”

“형…, 그건 당연한 거야. 입이 무거운 게 아니고…….”

“하여튼… 너 요즘 수상해? 언제는 내가 술 한잔하자니까, 뭐, 허수아비의 논밭을 가-아? 초보자라서 입장이 된다고?”

“방송 안 봤어? 나 진짜 들어갔어. 그리고 진짜 초보자였다니깐?”

“그래, 너 초보자인 거 보여준다고 했었지? 보여줘 봐.”

“하… 늦었어. 전직하기 전에 오지.”

“그래, 전직하기 전에 가려면 20년 전으로 회귀를 해야겠네. 네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선 시간을 돌리는 법부터 알아야 하겠어!”

“나 시간 돌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근데 좀 걸려.”

“또, 또또! 개소리한다. 야! 저번에도 말했듯이, 싫으면 그냥 싫다고 해! 뭔 되지도 않은 소리를 그리하냐? 그것도 아무도 안 믿을…….”

김만수가 거실 소파에 앉았다.

“자, 말해 봐. 다리는 어떻게 된 거야?”

“뭔 말을 해도 안 믿을 거 같은데?”

“야! 우리가 알게 된 지가 몇 년인데, 날 너무 못 믿는 거 아니야?”

“후…….”

강기찬이 천천히 복식호흡을 한 뒤, 말을 꺼냈다.

“그게… 사실은 화타님이 치료해주셨어.”

“화타가 누군데?”

“…….”

“… 내가 아는 그 화타…는 아니지? 그 초창기에 없어진…….”

“NPC, 맞아.”

김만수가 인상을 구겼다.

“됐어, 망할 새끼. 나 간다. 내가 뭐 너 치료해준 사람 정보 팔아서 돈을 벌겠냐?! 나한테 숨길 필요는 없잖아? 진짜 실망이다.”

김만수가 씩씩대며 현관을 향해 돌아섰다.

“형, 어디가?! 화타님 뵙고 가! 어깨 아프다면서? 무료 치료해줄 수 있어! 습관성 탈골도 고칠 수 있어! 진짜라니까!”

“아…아아!”

“?”

“내가 하필 이 중요한 타이밍에 와서 나 엿 먹이려고 그러는 거지? 눈치 없이 와서 미안하다. 사죄의 의미로 이거 너희들 다 처마셔. 시팔, 결혼식 날 불러라.”

쾅!

현관문이 거세게 닫혔다.

‘보여줄 틈도 없이 나가네…….’

이젠 예전과는 달리 김만수를 뒤쫓을 수 있는 처지였지만, 놔두기로 했다.

‘화타님이 언제 돌아오실지도 모르는데 이 야심한 새벽에 만수형을 잠 못 자게 붙들어놓을 수는 없지.’

발 언저리에 놓인 검은 봉지와 그 안의 소주병, 과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저 형은 한 모금도 못 마시고 소주 주고만 가네, 저번에 놓고 간 것도 남았는데… 조만간 진짜 자리 만들어야겠네.’

김만수가 약간의 인내심만 있었다면 같이 술 마시며 오해를 풀었겠지만, 혼자 착각 후, 화내고 퇴장하는 게 일상이었다.

‘이제는 그러려니 해야지…….’

* * *

지구서버 운영진 회의.

지구서버 운영1팀 팀장 자쟈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난 솔직히 이번에는 별 탈 없이 넘어갈 줄 알았다.”

주변 팀원들도 공감했다.

“예, 그냥 무난하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신규 유저 전직 날이니까요…….”

“설마하니 하인스가 사망했다니…….”

“신규 유저 전직 날이, 하인스 제삿날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NPC하인스의 사망.

처음엔 다들 믿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NPC하인스가 사망했다고 하니.

그보다 더 기가 막힌 게 있었다.

“그게… 타살이랍니다.”

“타살?”

“놀라지 마십시오. 누가 죽였냐면…….”

이 대목에서 자쟈는 부하 직원이 더 말하는 걸 제지했다.

“잠깐 말하지 말아봐,”

“예?”

“누가 죽였는지 맞춰볼까? 강기찬이지? 맞지?”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지구서버에서 사건 터졌다, 하면 그 양반이지. 다른 용사가 있겠어? 봐봐, 지금 한국 랭킹 1위인 청용도 걔가‘시련의 공간 – 어둠’에 가뒀어. 사실상 강기찬이 한국을 장악한 거나 다름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아직 레벨이…….”

“테스트서버 유저는 레벨을 초월하는 거 몰라?”

“레벨을 안 올리지도 않을 테니 앞으로가 기대되는군요.”

“아니, 그나저나 전직하러 갔으면 곱게 전직하면 될 일이지… 차암…….”

“어떡하죠? 제재를 가해야 하지 않습니까?”

“미쳤어?”

자쟈가 부하직원의 말에 정색했다.

“하인스가 사망한 게 뭐라고 용사를 제재해? 하인스가 영원히 죽은 것도 아니고… 정 필요하면 테스트서버에 하나 더 있는데…….”

“그럼…….”

“놔둬야지, 우리 목표 잊었어?”

“아뇨.”

“강기찬의 성장을 도와줘도 모자랄 판국에 앞길을 막을 순 없지. 불법은 아니잖아? 그럼 됐어.”

얼추 자쟈가 할 말을 끝냈다고 여겼는지, 팀원들이 각자 업무로 돌아가려던 그때였다

“강기찬이 걱정이네…….”

다시 자쟈가 입을 열었다.

이에, 팀원들은 다시금 의자를 고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꾸해주어야 했다.

저번에 이거 무시하고 혼잣말하게 놔두고선 제 할 일들 하다가 호되게 야단맞은 적이 있었으니까.

“예? 강기찬이 왜 걱정입니까?”

“그 누구지? 용사 중 유일한 대마법사.”

“앤드류 말입니까?”

“그자가 움직일 거야.”

“왜 그렇죠?”

“하인스 사망 소식을 듣고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

“생각을 해봐, 하인스도 없는데 전용 퀘스트랑 스킬은 누구한테 배울 건데?”

“하인스는 어차피 부활하지 않습니까?”

“그럼 그때까지 앤드류는 성장 안 하고 기다릴까? 뭐든지 시기라는 게 있는 법이야. 지금 퀘스트를 받아야 하는데 하인스가 없다? 기본적으로 시간 손해는 깔고 들어가는 거야.”

“그렇겠군요.”

“그거 누구한테 화풀이하겠어?”

“강기찬이군요.”

“그래, 이 사태를 만든 주범.”

“그러면… 임시방편으로 테스트서버 하인스를 데려오면 되는 거 아닙니까?”

자쟈가 혀를 찼다.

“그 양반, 몇 년째 연구실에서 외출도 안 하는데 서버 이동을 하라고 하면 잘도 하겠네. 네가 말할래? 예전에 설득하려다가 우리 직원 메테오 맞은 거 기억 안 나?”

자쟈가 팔짱을 끼고선 한숨을 내쉬었다.

“가뜩이나 요새 기존 용사들(히든 & 스페셜 클래스)로 인해 신규 용사들 죽어 나간다던데… 앤드류도 움직일 거야.”

“하긴, 앤드류한테는 더할 나위 없는 명분이 생긴 셈이군요.”

“어, 그 양반도 대마법사가 둘로 늘어나는 건 원치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 대상이 하인스까지 없앤 걸 알면 묵인할 수가 없지. 복수는 필수야.”

“근데, 강기찬이 범인인지 알까요? 현장에는 강기찬과 하인스, 둘뿐이었잖습니까?”

“어떻게든 알아내겠지. 지금도 봐, 다들 어떻게 알아냈는지 신규 히든 & 스페셜 클래스 용사들이 살해당하고 있잖아.”

팀원이 골치 아프단 얼굴을 해 보였다.

“그렇다면… 이거 큰일입니다…….”

자쟈가 짜증 난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큰일이지, 가장 유력한 지구 대표가 위험에 처한 거니… 그걸 알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에휴, 등신들. 다 같이 화합해서 레벨업하면 좀 좋아? 근데, 왜 그렇게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자쟈가 이어 말했다.

“뭐, 강기찬이 알아서 잘하겠지. 도대체 어떻게 하인스를 쓰러뜨렸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인스를 쓰러뜨렸는데 앤드류라고 어렵겠어?”

하지만, 둘 다 안 다치고 안 죽었으면 했다.

훗날에 귀중한 인력이 될 테니까.

문제는 둘이 붙으면 한쪽은 죽을 거라는 점이었다.

객관적으로 앤드류의 압승이 점쳐질 테지만,

‘앤드류가 무사해야 할 텐데…….’

강기찬보다 앤드류가 더 걱정되었다.

강기찬은 이레귤러고 앤드류는 모르지 않나.

‘신규유저 경석’으로 알 테니.

‘제발, 필드에서 싸우지 말고 던전에서 싸워라… 절대 그럴 리는 없겠지만…….’

무조건 필드나 도심에서 싸울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죽음을 선사해줄 테니.

또한, 선제공격은 무조건 앤드류가 할 것이다.

강기찬도 주변 흐름을 읽었다면, 앤드류가 자신을 노릴 걸 알 테지만, 그렇다고 앤드류를 섣불리 선제공격하지는 못할 테니까.

‘앤드류가 먼저 선제공격할 거고, 그걸 강기찬이 대처하는 식으로 전투 양상이 흘러가겠지.’

강기찬이 그냥 당하지도 않을 테고, 앤드류가 압도적으로 밀리지도 않을 터.

‘누가 이길지 장담할 수는 없네…….’

* * *

오전 11시 30분.

- 써어어언!

강기찬은 썬의 등에 올라탄 상태였다.

썬이 날아올랐고 쏘아졌다.

목적지는‘시련의 공간 – 어둠’

과장 좀 보태서 눈 깜빡할 사이에 도착했다.

강기찬이 허공에 대고 말했다.

“자!”

“…어! 있었어?”

청용이 황급히 답하자 강기찬이 뻔뻔히 되물었다.

“당연하죠. 제가 어디 갔겠습니까?”

“불러도 대답이 없길래!”

“위치 발각될까 봐 그랬죠.”

“근데 지금은 왜?”

“항복할지 물으려고.”

“뭐?”

“느끼셨을 텐데요? 저한테 안 된다는 것.”

“안 되는 건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내 근처에 오지도 못하는 걸 보면…….”

“… 과연 그럴까요?”

“…….”

갑자기 침묵이 일었다.

슉- 슈슈슉-

지금 청용이 급속도로 그에게 오고 있었다.

단지 짧은 대화만으로 위치를 특정하고 거리를 좁혀오고 있는 것이었다.

‘하여간, 무섭다니까.’

강기찬이 괜히 하룻밤 자고 온 게 아니었다.

겨우 몇 시간 후에 청용에게 접근하기엔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진 빠질 줄 알고 다음 날 온 건데…….

‘그마저도 안 되는 거네. 좀 더 시간이 필요하려나……?’

아무래도 일주일은 잡아야 하지 싶었다.

‘나중에 와야겠네.’

떠나기 전, 맵핵을 보았다.

‘부지런히도 오네.’

청용은 사력을 다해 질주해오는 중이었다.

‘하긴, 이게 얼마만의 기회겠어.’

강기찬은 그간 인기척을 안 냈다.

아니, 못 낸 거다. 현장에 없었으니까.

그러다가 낸 인기척이 얼마나 반가웠겠나. 흥분해서 오는 것이리라.

‘가자.’

더 볼일도 없고 더 있다간 붙잡히게 생겼다.

떠나려던 그때였다.

슉!

맵핵에 점이 하나 더 찍혔다.

[앤드류(Lv.2,500 / 대마법사)]

‘오호. 여기 남아야겠다.’

재미있는 상상을 해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