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테스트서버-63화 (63/151)

63화

* * *

강기찬과 노재민은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이제 슬슬 헤어져야겠다. 볼일이 남았거든.”

“예… 저기 이거…….”

“음? 그게 뭔데?”

노재민은 가방 안에 고이 모셔두었던 신발을 꺼내려 했다.

신발은 허수아비의 논밭에서 강기찬이 주었던 선물이었다.

- 신발에는 꼭 사인을 받는다!

그 다짐이 무색하게 여태껏 사인을 받지 못했었다.

‘이번에는 기필코……!’

그때였다.

“아, 잠깐만… 나 전화 좀.”

강기찬이 전화를 받더니,

“네?! 화타님이……?”

무어라 말을 하고선,

“재, 재민아. 나 지금 아주 급한 일이 생겨서… 가봐야겠다. 다음에 또 보자…….”

쌩-하니 가버렸다.

“…….”

노재민은 조용히 신발과 막 꺼낸 매직펜을 번갈아 보았다.

“사인 하나 받기 되게 힘드넹…….”

사실, 강기찬과 만나기로 한 시점부터 머릿속에는 내내 사인 생각뿐이었다. 강기찬을 만나고 나서도 그랬다. 언제 받아야 폐를 끼치지 않고 자연스러워 보일까, 고민했다.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하는 건 좀 그랬고, 헤어질 때 하는 게 괜찮지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어버린 것…….

“후…….”

생전 처음으로 해보는 깊은 한숨이었다.

‘어른들은 이럴 때 담배 피우던가?’

* * *

강기찬은 부리나케 집에 도착했다.

막 GM미르로부터 연락이 온 것.

NPC화타가 2,000레벨이 되었단다.

현관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소환 스킬을 썼다.

[이벤트 스킬, 소환을 사용합니다.]

[NPC화타를 소환합니다.]

[NPC화타님이 강기찬님의 소환에 응했습니다.]

[지구서버 - …… 으로 소환됩니다.]

슝!

NPC화타가 나타났다.

“어……? 어어…….”

그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얼떨떨해하는 사이,

“환영합니다. 화타님.”

강기찬이 선수 쳤다.

NPC화타가 강기찬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선 하얀 모자를 벗더니 정중히 허리 숙여 인사했다.

“날 살려줘서 고맙네.”

레전드스토리 본사 회장실, 휴지통 안에서 영원히 소멸할 뻔했다. ‘권한이 있는 신’이 꺼내주지 않는 이상, 한 번 들어온 이상 나갈 수가 없는 곳이지 않나.

그런 곳에서 끄집어내 주었다.

그에게 있어 강기찬은 신이었다.

“이 은혜는 평생 살아가면서 갚도록 하겠네.”

어찌나 감격에 겨웠는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강기찬이 은은하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저도 제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 화타님을 꺼내드린 것일 뿐입니다.”

“아닐세, 아니, 아닙니다. 강기찬 용사님.”

NPC화타의 존칭에 강기찬이 손을 흔들었다.

“안 그러셔도 됩니다. 편할 대로 부르십시오.”

“전 이게 더 편합니다. 앞으로 극진하게 모실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제가 비록 나이가 많긴 하나 은혜도 모르고 살지는 않았습니다. 제 생명의 은인이신데, 어찌 하대를 하겠나이까!”

“아… 알겠습니다. 대신, 말끝마다 용사님은 빼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세계에선 흔하게 쓰는 말은 아니라서요.”

“분부 받잡겠습니다!”

NPC화타의 너무 완강한 태도에 강기찬은 한 수 접어두기로 했다.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지 않나.

마침, NPC화타가 눈치채고선 외쳤다.

“제가 반드시 다리를 고쳐드리겠습니다!”

강기찬이 쑥스럽게 웅얼거렸다.

“저, 다리도 다리지만, 거기도…….”

“아! 뭐든지! 다 고쳐드리겠습니다! 제가 고치지 못한 것은 없었습니다!”

NPC화타가 가슴을 탕탕- 두들기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강기찬은 그 믿음직한 모습에 다시 한번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때였다.

띵동!

현관에서 들리는 벨소리.

강기찬이 현관으로 방향을 틀자,

“여기 계십시오. 제가 가겠습니다.”

NPC화타가 강기찬의 앞으로 빠르게 나섰다. 그러다가 문 앞에 가더니 갑자기 뒤돌아섰다.

“저, 이거 문인 건 알겠는데… 어떻게 여는 겁니까?”

“아, 문으로 직접 가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제가 하죠.”

“아앗!”

NPC화타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가르침을 내려주시면 한 번 보고 완벽하게 익히도록 하겠습니다.”

“아…….”

강기찬은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노인이 굽신거리니 심히 부담스러웠다.

‘일일이 고치기엔 너무 스트레스받을 거 같고, 또 고쳐질지도 의문이고… 그냥 하고픈 대로 두자… 저분도 저 나이까지 익힌 습관을 어쩌겠어…….’

강기찬이 리모컨 버튼을 눌리자 현관문이 열렸다.

띠리릭!

“어……? 엉이?”

NPC화타가 괴상한 소리를 냈다. 현관문 잠금장치가 자동으로 열리는 걸 보고선 깜짝 놀란 것이다.

“호, 혹시 직접 개발한 문입니까?”

“아, 아뇨… 다른 사람이 만든…….”

“대단하십니다.”

“제가 대단할 건 없죠.”

“아무렴, 이런 최첨단 기술을 사용하신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인 거죠. 이곳에서 귀족이신 겁니까?”

“… 귀족은 없지만, 비유하자면 천민에 가깝습니다.”

“자신을 낮추시다니 겸손하시기까지.”

“…….”

한편, GM미르와 경석이 들어왔다.

‘다행이다.’

뭔가 NPC화타와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얼굴이 홍당무처럼 뻘게지는 듯해서. 흐름이 끊겨서 다행이었다.

“오셨습니까?”

강기찬이 GM미르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선 경석에게 초점이 머물렀다.

경석은 강기찬의 눈도 못 마주치고 있었다. 그간의 일도 있었고, 결정적으로 국밥집에서‘길 한복판에서 벌거벗고 똥 누는 걸 생중계하는 것’을 강기찬이 흔쾌히 할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선 태도가 싹 바뀐 거지 싶었다.

강기찬에게도 경석은 여러모로 필요한 인재였다. 일전에 진시황에게 스마트폰을 전해주는 역할을 하지 않았나. 그런 자가 알아서 예의바르게 대해준다는데 나쁠 거 없었다.

“오? 시, 신께서?”

NPC화타가 GM미르를 보더니 헐레벌떡 뛰어나가 바닥에 엎드렸다.

“신을 여기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마중 나가지 않았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괜찮다. 일어나. 그리고 이 세계에선 그런 오버 좀 하지마. 쪽팔리니까. 애는 이곳 문화 익히려면 고생 좀 하겠다. 쯧쯧. 야, 적당히 하고 비켜.”

NPC화타가 천천히 일어나려 하자,

“에휴.”

GM미르가 발을 뻗어 NPC화타를 옆으로 밀쳤다. NPC화타가 데굴, 굴러 벽에 닿고서야 멈췄다. GM미르가 경석에게 말했다.

“야! 시간 날 때마다 쟤, 교육 좀 해. 앞으로 이 세계에 머물러야 하니까.”

“… 알겠습니다…….”

경석이 힘 빠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GM미르의 수발드는 것도 예삿일이 아닌데 웬 정신 나간 노인네를 가르치라니.

GM미르가 강기찬에게 다가왔다.

“오늘만을 기다렸겠네?”

강기찬이 어색하게 웃었다.

“네. …많이.”

단답형이었지만, 가늘게 떨림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 * *

강기찬이 침대에 눕고, NPC화타, GM미르, 경석이 그 곁에 섰다. 경석은 뭘 하려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점검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NPC화타는 한결 진지해진 표정이었다. 강기찬의 허벅지에 손을 얹고선 무릎까지 천천히 쓸어내려 갔다.

일종의 스캔 작업인 것.

무릎에서 잠시 멈추더니 감은 눈이 부르르 떨렸다.

이후, 허벅지까지 천천히 쓸어올려 갔다.

짝!

손뼉을 치자, 허공에 수백, 수천의 침이 생겨났다.

그것들이 모이더니 다시 원 형태로 흩어졌다. 계속해서 빙그르르 돌더니 멈추었다.

NPC화타가 그중 중앙의 파란 침을 집었다. 그리고 그걸 강기찬의 무릎에 꽂았고,

슉!

하나가 더 생겨 그것을 발목에 꽂았다. 무릎에는 깊게, 발목에는 얕게. 그런 뒤…

“흠.”

눈을 떴다.

강기찬과 눈이 마주쳤고.

주변에선 침 넘어가는 소리만이 작게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NPC화타의 입을 향해 몰렸을 즈음…….

“…니다.”

NPC화타가 나직이 읊조렸다.

“뭐라는 거야! 이 할배가… 크게 말해!”

GM미르가 꾸짖자 NPC화타가 크게, 또박또박 말했다.

“…끝났습니다.”

“끄, 끝났다고요?”

강기찬이 못 믿겠다는 듯 물었다.

“예, 일어나보시겠습니까?”

NPC화타가 손을 내밀었으나 강기찬은 잠깐 얼어붙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다. 프로게이머로 모은 돈을 털어 세계에 내로라하는 명의를 찾아다녔다.

그러고도 차도가 없었다.

그런 그의 다리를 낫게 했다?

‘뭐, 뭐지?’

놀란 건 강기찬뿐만이 아니었다.

‘… 일어나라고? 그게 강기찬에게 할 소리야? 이 할배 미친 건가?’

경석 또한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설명도 없이 GM미르를 따라 여기 온 거니까.

‘잠깐…….’

그러다가 NPC화타의 생김새와 하는 행동, 침, 다리, 등을 보고 유추해냈다.

‘돌팔이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갔다.

‘미친… 지금 강기찬의 다리를 고쳤다고 하는 건가? 다들 단체로 미친 거야? 하… 이래서 교육수준이 낮은 것들이랑은 상종하지 말았어야 했…….’

경석은 사고를 정지했다.

덥썩.

GM미르가 강기찬에게 다가오더니 손을 맞잡는 게 아닌가.

저런 자상함은 자신한테는 하지 않았던 것이라 충격이었다.

GM미르가 강기찬에게 나직이 말했다.

“두렵지?”

그랬다.

강기찬이 느끼고 있는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서보기도 전에 또 실망하지 않을까, 했던 것.

“화타잖아.”

새삼 신뢰의 두 글자를 읊어주었다.

강기찬이 GM미르의 손을 꽉 잡았다. 그러고선 조심스레 다리를 움직여보았다.

스으윽.

침대보가 쓸렸다.

강기찬의 시선은 거기에 꽂혔다.

다시 다리에 힘을 주었다.

툭-

힘 조절에 실패했는지 다리가 침대 밖으로 떨어져 내렸다. 발바닥이 방바닥 위에 붕 떠 있었다. 서서히 내려가는 발바닥. 마침내 방바닥을 디뎠다. 딛고 일어섰다.

그때쯤, 쾅!

경석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무, 무어야… 머, 뭐냐고! 쟤…, 어떻게 일어난 거야?”

못 볼 꼴을 보았다는 듯, 연신 눈을 감았다가 떴다.

불현듯, 방금 들은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 화타잖아.

“잠깐? 화, 화타라고? 저, 저 영감이? 돌팔이가 아니고?”

NPC화타가 경석에게 어깨를 걸치고선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보게, 방금 뭐라고 했나? 뭔 팔이? 내가 제일 듣기 싫은 말을 했구먼.”

NPC화타가 침 하나를 꺼냈다. 한눈에 봐도 섬뜩한 핏빛의 침이었다.

“이 침도 칼과 같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죽이기도 해. 어떻게 할지는 순전히 내가 결정한다네. 난 자네를 어찌할지 결정을 했고, 그 결과를 보러 가겠나? 자, 따라오게.”

NPC화타가 경석을 확 잡아챘다.

질, 질질…….

경석이 무기력하게 끌려갔다.

“자, 잠깐만… 왜 이렇게 힘이 쎄? 내가, 아니 제가 말이 헛나왔습니다. 이것 좀 놓아주… 아! 미, 미르님! 가, 강기찬! 사, 살려줘!”

쿵!

방문이 닫히거나 말거나 강기찬은 자리에서 선 채 있었다. 몇 초가 지나도…….

그렇게 1분이 지났을까?

호흡을 가다듬고선 한 발을 내디뎠다.

저벅.

저벅, 저벅…….

서서히 속도를 높였다.

걷는 게 익숙해지려는 찰나-

슉-

가뿐히 뛰어올라 몸을 뒤집어 천장에 달라붙었다.

그대로 열린 창밖으로 쏘아져 나갔다.

후-우우-우웅.

세찬 밤공기가 그의 뺨을 때린다.

“이거였구나… 현실에선… 이런 느낌이었구나…….”

레전드스토리에서 그를 가장 빛나게 해주었던 직업, 암살자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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