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 * *
전기 표식.
썬더버드는 공격 대상에게‘전기 표식’을 남긴다.
경석은 아직도 전기 표식이 남아 있었다.
‘물론 경석에겐 안 보이고 안 느껴질 테지만…….’
청용은 그 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하… 진짜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니까…….’
솔직히 이런 식으로 전기 표식을 활용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덕분에 쉽게 잡을 수 있게 되었어.’
여전히 주변은 하나도 안 보였지만,
‘어차피 경석만 잡으면 될 일 아닌가?’
경석의 위치만 특정할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경석] 앞이 안 보인다고요?
경석의 물음에 청용은 속으로 웃었다.
‘안 보이긴 뭐가 안 보여? 아주 잘 보여, 근데 잘 보인다고 하면 네가 마음을 바꿀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안 보인다고 한 거다.’
[청용] 예, 앞이 안 보여서.
[경석] 청용씨도 앞이 안 보인다니…….
‘그래, 앞이 안 보이겠지.’
이곳은 밝힐 수 없는 어둠으로 유명하니까.
‘앤드류, 그 할아버지가 어떻게 이 어둠을 꿰뚫을 수 있었는지는 둘째치고 말이지…….’
단지, 최초의 대마법사 유저 앤드류만이 이 어둠을 꿰뚫을 방법을 알 것이다.
반면, 경석이 그렇다고 보지는 않았다. 순전히 근거 없는 믿음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뭔가 방법이 있겠지…….’
내기란 본래 자신이 이길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질 걸 염두에 두고 하는 내기는 없다.
‘… 아니고서야 이런 내기를 제안하진 않을 테니까.’
즉 경석이 무언가 꿍꿍이속이 있다고 보았다.
‘기척을 읽는다든지…….’
어둠 속에서 상대 찾는 게 이것밖에 없지 않나.
청용은 경석이 그렇게 자신을 찾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도 자신감이 있는 까닭은,
‘아무리 기척을 잘 읽어도, 눈으로 보는 것보단 행동이 느리지.’
자신은 눈으로 보고 잡을 예정이라서다. 감으로 잡는 것보단 보고 잡는 게 빠를 터.
[청용] 아, 경석씨도 앞이 안 보입니까?
[경석] 아뇨? 보이는데요?
청용은 코웃음을 쳤다.
‘지랄하네, 뭐가 보여… 그럼 대마법사로 전직했게?’
대화가 꽤 재미있어서 좀 더 놀라줄까, 했다.
[청용] 아, 그러면 대마법사로 전직하셨겠습니다?
[경석] 네.
[청용] 아, 그러시구나.
장난은 이쯤 하기로 했다. 너무 뻔뻔해서 도리어 흥미가 팍 식은 것.
‘뭐, 만에 하나 경석이 앞이 보인다고 한들, 그래도 절대 질 자신도 없고.’
서로 동등하게 앞이 보여도 자신의 승리를 점쳤다.
‘나보다 빠른 인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속도 면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않는가. 청룡이 이를 가능케 해주었다.
[경석] 설령 안 보여도, 문제 될 건 없지 않습니까?
[청용] 지당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뭐 눈으로 보는 게 다인 수준이 아니잖습니까?
[경석] 시작해봅시다.
[청용] 좋습니다.
청용은 즉시 경석, 정확히는 경석으로 추정되는 스파크를 향해 뛰었다.
슉.
‘음?’
고속 이동을 하는 사이,
‘스파크가 사라졌다?!’
경석이 없어졌음을 깨달았다.
‘빠르다……!’
처음엔 반응속도가 빠른 줄 알았다.
하나, 아니었다.
‘어디… 있지?’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스파크가 안 보였다.
이 정도면‘이동’이 아니라 없어진 수준.
‘공간이동? 아니, 공간이동일 리는 없다.’
공간이동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그 공간이동은 레전드스토리에는 없었다.
‘하지만, 순간이동도 아닌데? 내가 눈으로 좇지 못한 걸 보면…….’
아무리 빨리 이동해도 스파크가 튀니 잔상이 남을 터. 그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 숨었구나…….’
예컨대 벽이나 방 같은 공간.
그런대로 숨었다면 전기 표식이 안 보일 수밖에.
이쪽에 투시 능력은 없으니까.
‘여기… 미로처럼 벽이 많으면 좀 곤란하겠네.’
“청룡.”
- 처-어어엉!
청용은 청룡 위에 올라탔다. 날아오른 채 위에서 내려다보면 전기 표식이 보일 수도 있기에.
그러나 올라왔음에도 안 보였고 그대로 이동하려니 벽에 가로막혔다.
‘벽 위로 올라갈 수는 없는 구조구나.’
이러면 일일이 미로 내에서 돌아다녀야 했다.
미로 벽을 박살 내려 했으나 실패했기에.
벌써 가슴이 답답했다.
‘하… 기척이 아니라 기를 느낄 수 있으면 찾기가 수월했을 텐데…….’
소년 만화처럼 기를 느끼는 건 불가능했다. 기척이란, 얕은 숨소리, 작은 발걸음 소리, 바람의 흔적 등을 추적하는 거니.
‘이런……’
이럴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막연히 뒤쫓는다고 생각했지 시작부터 종적을 감춰버릴 줄이야.
‘부정적으로 생각 말자,’
다소 막힌 기분이지만, 실상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먼저 신체 접촉하는 쪽이 이기는 내기잖아.’
결국엔 서로에게 모습을 드러내야 했다.
그때부터가 진검승부인 셈.
‘딴소리 못 하게 압도적으로 내가 먼저 신체접촉하고 빠진다.’
이견의 여지 없이, 결과를 승복하게끔 완벽하게 끝내기로 다짐했다. 그럴 자신이 있었다.
‘내 반사신경은 세계 최고거든.’
‘속도’에 관해서는 누구도 당해낼 수 없다고 확신했다. 언제 어디서 기습적으로 달려들어도 능히 반격하리라.
‘그리고 내 장점 중에 하나, 난 전장에선 적을 무시하지 않지. 방심도 하지 않고.’
그는 경석을 주의할 인물로 봐왔었다.
초보자임에도 썬더버드를 처치하지 않았나. 너무 말도 안 되어서 경석을 불법 이용자로 신고했었다. 하지만, 합법 이용자라는 운영진의 답변을 받았었다.
거기서 더 할 수 있는 게 없어 지켜만 보고 있지만, 언젠가는 비밀을 밝혀내리라 다짐했었다.
‘그나저나 역시 무언가 꿍꿍이속이 있었네. 저마다 지는 내기는 안 한다니까. 최후의 승자는 내가 될 테지만.’
“자, 가자! 청룡열차!”
쿵!
청룡이 그를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아, 알았다고! 그렇게 안 부르면 되잖아! 청룡열…”
쿵-! 쿵! 쿠우우웅!
* * *
한 시간 후.
‘잘도 숨었네.’
청용의 경석에 대한 평가였다.
혼자 찾은 게 아니다. 청룡도 함께였다. 그런데도 못 찾았다.
‘어떡한담…….’
이 생소한 환경은 도저히 익숙해지질 않았다. 앞이 안 보여서 벽에 부딪히고 넘어지고를 반복… 그러다가 문득 깨우쳤다.
‘왜 나만?’
벽에 부딪히고 넘어질 때 소리가 요란했다. 조금 떨어져 있다고 안 들리지 않을 만큼.
한데, 도저히 본인 외에는 인기척이 나지 않았다. 났다 싶으면 청룡이고… 청룡은 인간과는 부딪칠 때 나는 소리가 달랐다.
이는 딱 하나의 가능성만 있었다.
경석이 앞을 볼 수 있다고. 그래서 벽에 안 부딪히고 안 넘어져 소리가 안 나는 거라고
돌이켜보면 시작하자마자 전기 표식이 안 보였다.
즉, 경석이 시작부터 벽 뒤로 숨었다는 게 되었다.
물론 어쩌다 벽 뒤로 숨었을 수도 있지만, 작금의 상황이 말해주지 않나. 결코,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벽이 어디 있는지 알고 한 행동이라고.
“경석! 어디 있나! 숨지 말고 나와라! 피차 시간 끌지 말고, 단판 승부로 끝내자고!”
솔직히 아까부터 직감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곳에 혼자 있는 것 같다고. 애써 부정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실감하는 중이었다.
“야? 있긴 있는 거지? 차라리 기습공격이라도 해!”
* * *
그 시각, 강기찬은 노재민과 식사 중이었다.
“밥 먹는다, 먹는다, 하고선 이제야 밥을 먹네. 근데 정말 이걸로 괜찮겠어? 더 맛있는 것도 괜찮은데. 내가 돈 없을까 봐?”
“아뇨, 저보다 많으실 텐데… 제가 워낙 돈가스를 좋아해서…….”
노재민이 돈가스를 썰며 물었다.
“아저씨 요즘 바쁜 거 같은데 오늘은 시간이 났네요?”
“뭐, 지금도 일하고 있긴 한데… 끝내려면 시간이 좀 걸리는지라, 짬이 나서 나온 거야.”
강기찬은 정면승부로 청용을 못 이긴다고 판단했다. 그랬기에 ‘시련의 공간 – 어둠’에서 나왔다.
청용이 지칠 때쯤 돌아갈 예정이었다.
“오늘 전직했지?”
“예, 아저씨는요?”
노재민이 말을 끝맺자마자 탄성을 흘렸다.
“아…….”
“나는 이미 전직했지, 암살자로… 20년 전에.”
“…깜빡했어요. 같이 허수아비의 논밭에서 퀘스트도 하고 그래서 초보자인 줄 알았어요…….”
“착각할 만하지. 그래서 넌 무슨 직업 골랐는데?”
“방패전사요.”
“오, 탱커로 나서게?”
“예, 저번에 힘을 올리는 바람에, 순수 탱커라기 보다는 딜탱의 개념이지만요.”
“미안하다. 내가 그때 힘 찍으라고 해서.”
“덕분에 통쾌하다는 감정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본걸요?”
“그럼, 다행이고… 벌써 다 먹었네? 배가 아주 고팠나 봐? 안 부족해? 하나 더 시켜도 돼.”
“그 말!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저씨는요?”
“나도. 지옥 불맛 먹었으니까, 이번엔 치즈 왕돈가스 먹으련다.”
“아줌마! 치즈 왕돈가스 둘이요!”
강기찬이 물을 마시면서 TV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 속보입니다. 현 랭킹 1위, 청룡길드의 길드마스터, 청용이‘시련의 공간 – 어둠’에서 8시간째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관계자에 따르면…….
식당 손님들도, 노재민도 저걸 보는 중이었다.
노재민이 포크를 입에서 떼면서 말했다.
“아까 들어간 지 두 시간 지났다고 할 때 봤었는데, 아직도 안 나오고 있나 봐요…….”
강기찬이 덤덤하게 물었다.
“그 정도면 안 나오는 게 아니라 못 나오는 게 아닐까?”
“에이, 설마요. 랭킹 1위 무시해요?”
“아니, 무시했으면 내가 여기 안 있고 벌써 끝장을 봤지.”
“예?”
“아니다.”
“근데 SNS에 누가 찍은 거, 보니까, 경석도 시련에 들어갔다고 하더라고요? 둘이서 한창 싸우고 있대요.”
“경석은 그…….”
“예, 썬더버드 처치했던 복면 쓴 분이요. 어떻게 싸우고 있을지 궁금해요. 청용이 이겼으면 좋겠어요.”
강기찬이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 그새 탈덕했니?”
“예? 당연히 아저씨가 1호죠.”
“근데 왜 그래?”
“예?”
“어떻게 청용을 응원할 수가 있어?”
강기찬의 한껏 진지해진 얼굴에 노재민은 이 아저씨가 왜 이러나 싶었다.
‘아저씨는 경석 팬인가?’
* * *
< 레전드스토리 본사 휴지통 - 백색의 탑 옥상. >
그 위에서 한 노년의 신사가 뛰어내렸다.
훅!
[사망하셨습니다.]
[경험치를 잃었습니다.]
[레벨이 떨어졌습니다.]
[24일 뒤에 부활할 예정입니다.]
[부활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즉시 부활합니다.]
공간이동 해 다시 백색의 탑 옥상에 나타났다.
“후… 살 떨리는구먼.”
“힘내세요.”
NPC화타의 곁에는 피노키오가 있었다.
“넌 어째, 날 감시하는 거 같냐?”
“맞아요. 감시.”
“너 이 자식! 코가 안 길어졌네? 진심이었어?”
“전 거짓말을 한 적… 없…….”
쭈-우우욱.
“… 조금……”
쭈-우우우우우우우우욱.
“… 아니, 거짓말을 한 적이 많긴 하지만, 방금은 진심이었어요.”
“음? 이거…….”
“왜 그래요?”
NPC화타가 눈을 끔벅였다.
일순 잘못 본 건가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 레벨 2,000이다.”
강기찬과 약속했던 2,000레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