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강기찬은 청룡이 탐났다.
‘저게 탈것 중에선 제일 빠르다던데.’
그는‘이동’과‘속도’에 집착하는 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걷지 못해서 그렇다고 보았다.
그래서 레전드스토리를 처음 할 때도 단순히 뛰는 걸 넘어서 거의 날아다니다시피 할 수 있는 암살자를 고르지 않았나.
‘썬더버드도 보통 속도가 아닌데 그걸 막아설 수 있을 정도의 속도라니.’
하나, 강기찬은 헛된 욕망을 접어두었다.
‘뭐, 어쩌겠어. 이미 주인이 있는데…….’
청룡은 전 서버에 딱 한 마리밖에 존재하지 않는 성수였다. 체념하고선 문을 열어주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얘기나 들어보자고, 무슨 얘기하는지. 혹시 모르니 가까이 가진 않고…….
… 염력으로 열쇠를 열쇠 구멍에 넣어서 돌렸다.
끼-이익.
문이 열리며 청용이 들어왔다.
오면서 한다는 소리가.
“와… 진짜 깜깜하구나.”
강기찬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위치가 특정될 수 있기에.
대신,
[경석] 무슨 일이시죠?
청용에게 귓속말했다.
[청용] 귓속말을 닫으셨더니 드디어 여셨군요.
[경석] 무슨 일이시죠?
[청용] 상당히 까칠하군요. 예전에 만났을 때는 안 그랬던 거로 기억하는데… 마치 딴 사람 같습니다.
강기찬은 찔렸지만, 무시했다.
[청용] 다름이 아니고, 제 용건은 두 가지입니다.
[경석] 뭡니까?
[청용] 첫 번째, A길드와 동맹을 맺고 싶습니다.
[경석] 왜죠?
랭킹 1위 길드다.
랭킹 200위 길드랑 동맹을 맺자고?
그것도 랭킹 1위 길드가 먼저, 길드마스터가 직접 나서서?
누가 믿을까?
하나, 강기찬은 무덤덤했다.
저러는 이유를 알 것 같아서.
‘A길드에는 이레귤러 전력이 둘이나 있지.’
규격 외의 특별한 존재.
A길드에는 그 존재가 둘이나 있었다.
‘바로 나하고 경석…….’
강기찬은‘이동한계선’을 넘나들 줄 알았다.
경석은‘초보자’임에도 썬더버드를 처치하지 않았나.
각자가 대격변 이후의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향후, 전망도 밝았다. 큰 획을 몇 번을 더 그을 수 있을지도 모를 터.
단, 한 명으로도 가치가 있다.
하물며 둘 다 품을 수 있다면?
A길드와 동맹을 맺는다면 그것이 가능했다.
랭킹 1위 길드라도 탐내지 않을 수가… 목표는 국내 1위가 아닌 세계 1위다. 저 둘의 능력은 그걸 가능케 해줄 터.
‘어떠냐?’
청용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과연 거절할 수 있을까?’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꽤 많은 길드가 A길드에 동맹 제의를 했다 한다. 그러는 족족 대차게 까였고.
‘심지어 주작길드쪽에서도 접선했다고 했지. 그러고도 실패했고, 그걸 우리 쪽에서 성사시킨다면?’
단순히 저 둘의 가능성만 보고 접근한 게 아니다.
‘싸늘한 여론이 돌아설 수 있겠지.’
현재 여론이 청룡길드에 냉담했다. 얼마 전 썬더버드를 저지하지 못했기에.
하나, 썬더버드를 처치한 자가 경석임을 밝힌다면? 청룡길드의 지원을 받고 경석이 썬더버드를 처치한 거로 새로 스토리를 짤 수 있을 터. 마침 경석도 며칠 새에 딴사람이 되었고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동맹 맺을 명분은 충분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지. 넌 절대 이 제안을 거절할 수 없지.’
경석은 장남임에도 대우를 받지 못했다. 서른 살이 넘도록 두각을 드러내는 분야도 없었으니.
하나, 유저가 되면서 또 다른 활로가 트이지 않았나.
‘네 손으로 청룡길드와 동맹을 맺으면? 너에 대한 집안의 대우가 달라질걸?’
굴지의 대기업에서도 활발하게 집중투자하는 사업 분야가 길드였다.
A기업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 와중에 청룡길드와 동맹을 맺으면 날개를 단 격일 터.
그걸 경석이 주도했다?
‘후계자 자리는 확정되는 거나 다를 바 없지.’
그것이 바로 A기업 회장이 아닌 경석을 찾아온 이유였다.
어차피 누구에게 제의해도 A기업에선 승인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누구를 통하는 게 더 이득일지 따져볼 일.
‘회장보다는 네가 더 절박하겠지.’
경석이 절박한 만큼, 빚을 씌워 속박하는 효과도 있을 터. 향후, 차기 회장이 되었을 때까지 대비한 전략인 것이다.
청용이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그때였다.
[경석] 조건은?
[청용] 뭐? 아니, 네?
청용은 적잖이 당황했다.
[청용] 조건이라뇨?
랭킹 1위 길드가 동맹 맺자고 하면 그것만으로도 다른 조건은 필요 없는 거다. 길드… 더 나아가 기업의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일 테니까.
[경석] 설마, 공짜로 동맹 제의를 하는 겁니까?
[청용] 아… 하하, 아닙니다.
[경석] 청용씨, 그렇게 안 봤는데 무서운 분이시네요? 하위권 길드라고 너무 만만히 보신 것 같습니다. 불쾌하군요.
청용은 살짝 기분 나빴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고작 감정에 휘둘려 일을 그르칠 거였으면 저자세로 나서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래놓고선 아무 수완 없이 물러나는 게 더 두려웠다.
[청용] 용서하십시오. 제가 무례했습니다.
[경석] 이해합니다. 저도 경솔했습니다. 청룡길드 마스터께서 먼저 동맹 제의를 하셨는데 다짜고짜 조건부터 묻다니요. 어련히 알아서 해주실 텐데, 마음이 급했습니다.
[청용] 아닙니다. 원하시는 조건을 말씀해주십시오.
[경석] 말씀하라 시니, 말하겠습니다.
[청용] 예, 얼마든지요.
[경석] 뭐냐 하면… 저와 강기찬을 버스 태워주십시오.
[청용] 뭐, 그거야 어렵지 않습니다.
[경석] 최소 에픽 등급의 무기와 장비 제공.
[청용] 아, 네…….
[경석] 현금이랑 코인 지원.
[청용] 네…….
[경석] 또 뭐가 있더라…….
[청용] 저기,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말하십시오. 다 들어드릴 테니까. 저, 그럴 능력이 되는 남자입니다.
[경석] 예, 압니다. 그래서 이러는 거였습니다. 좋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겠습니다.
청용은 경석에게 휘둘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 * *
청용의 용건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A길드와 동맹.
성사되었다.
두 번째는…….
[청용] 붙어주십시오.
[경석] 예?
[청용] 공식적인 자리에서 저와 대련을 합시다.
[경석]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를 여쭐 수 있을까요?
[청용]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청용] 저와 제 길드는 썬더버드를 처치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경석씨가 썬더버드를 처치했죠. 그로 인해 저희 길드의 명성이 추락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이를 만회하고 싶습니다.
[경석] 썬더버드를 처치한 저를 이겨서 명성을 회복하겠다?
[청용] 제가 이길 수 있다면 말이죠.
[경석] 저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여기나요?
[청용] 글쎄요. 붙어봐야 알겠지만, 썬더버드를 이겼다고 제가 못 이길 것도 없지 않나 싶습니다. 상성의 문제도 있을 테고. 또 경석씨가 전투하는 걸 본 것도 아닌지라… 순수한 의미로도 한번 싸워보고 싶기도 합니다.
강기찬은 정색했다.
‘싸우면 한 발 내딛기도 전에 내가 죽을 건데, 뭘 싸워.’
강기찬은 괜한 객기 부리고 싶지 않았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정쩡한 길이일 때 해당하는 얘기. 확실한 건, 가까이가 아니라 멀리서도 알 수 있다.
그와 청용은 대나무와 연필 정도의 길이 차이였다.
그렇지만,
‘위기는 기회라고…….’
현재 상황은 이 어둠 속과 같다.
그리고 이 어둠은 강기찬에게만 보인다.
강기찬은 자신의 길이를 알지만, 청용은 모른다.
여기서 강기찬이 제 길이를 대나무라고 하면 어쩔 것인가.
‘쟤는 내 최고 레벨이 2,019인 걸 모르지.’
강기찬의 세 계정 중, 레벨이 가장 높은 테스트서버의 네크로맨서 레벨이 2,019이었다.
하지만, 청용은 강기찬의 레벨을 9,999, 만렙으로 보았다. 만렙인 썬더버드를 처치했기에.
그랬기에,
‘이걸 또 어찌 넘기면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거 같기도 한데…….’
때로는 전투력보다 정보력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강기찬은 지금이 그때라고 보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용할까…….’
궁리 끝에 답이 나왔다.
[경석] 제가 거절하면 그쪽도 답이 없겠죠?
[청용] 예, 다짜고짜 공격할 의향은 없습니다. 굳이 국가급 전력인 우리 둘이 싸워서 남의 나라 좋은 꼴 보는 건 안 되니까요.
‘나를 국가급 전력이라고 하다니…….’
강기찬은 송구스러울 따름이었다.
[경석] 솔직히 저는 청용씨와 싸울 하등 이유가 없습니다. 특히나 동맹까지 맺었는데 싸운다는 게 이해가 안 가고.
[청용] 예, 이해합니다.
[경석] 청용씨가 이기면 청용씨에겐 이득이겠지만, 저는 그저 손실일 뿐이죠. 기분만 더럽고. 반대로 제가 이기면? 애초에 싸우고 싶지 않았는데 이긴다고 뭐가 좋겠습니까?
[청용] …….
청용은 할 말을 잃었다. 하나 같이 맞는 말이어서.
[경석] 하지만, 동맹 기념의 친선전 의미의 대련이라면 나쁠 것도 없지요. 서로의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될 테고요.
청용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기찬의 말이 부정적으로 흐르기에 이대로 거절하면 어떡하나 염려했다.
그런데 다시 대화가 긍정적으로 흐르지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경석] 그럼, 이렇게 하죠. 제가 이 대련을 승낙해야 하는 이유를 주십시오.
[청용] 이유… 말입니까?
[경석] 예.
[청용] 혹시, 원하는 게 있으십니까?
[경석] 청룡의 알.
[청용] 그건 좀, 곤란합니다.
청용이 빠르게 난색을 보였다. 청룡의 알은 청룡을 내달라는 거나 다름없기에.
‘그럴 줄 알았지.’
강기찬은 예상했다.
청용에게 있어 청룡의 알은 목숨 다음 순위다. 그걸 내놓으라고 하는 건 과한 처사인 것. 그런데도 요청한 건 역치를 낮추기 위함이리라.
[경석] 그럼, 여의주는 어떻습니까…….
여의주는 청룡이 품는 구슬이다. 보유 시, 모든 스탯 100% 상승이라는 사기 스펙을 지닌.
[청용] 그 역시 곤란합니다.
여의주는 청룡의 알보다는 낮은 가치다. 하나, 비교 대상이 청룡의 알이라서 그렇지, 여의주 역시 함부로 타인에게 줄 수 없는 최상급 아이템이었다.
[경석] 그럼, 저와 내기를 하시죠. 제가 이기면 여의주를 주시고, 만약 제가 진다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대련을 해드리겠습니다.
청용의 눈이 희번들해졌다.
만약 내기에서 진다면 여의주를 내주어야겠지만,
‘이기면 그만 아닌가.’
애초에 질 생각을 안 했다.
물론, 내기 내용을 들어보고 나서 결정해도 되는 일.
‘무슨 내기인지 들어보자.’
[청용] 어떤 내기입니까?
[경석] 먼저 신체 접촉하는 쪽이 이기는 겁니다.
[청용] 여기서 말입니까?
[경석] 예. 너무 어렵습니까?
[청용] 예, 앞이 안 보여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크크크…….’
청용은 웃음소리가 나오려던 걸 간신히 참았다.
‘이건 무조건 내가 이긴다.’
경석이 어디 있는지 훤히 다 보였다.
‘나는 보이거든… 네 전기 표식이…….’
이때까지의 청용은 몰랐다.
경석, 아니 강기찬은 청용이 보이는 걸 넘어서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