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 * *
NPC하인스가 한창 신규 유저들에게‘대마법사 전직 시련 참가비’를 걷고 있던 그때, 바깥은 꽤 시끄러웠었다.
< 신규 유저 특혜 논란! >
< 히든 & 스페셜 클래스로 곧바로 전직……? >
< 기존 유저가 힘겹게 쌓아올린 업적, 한 번에 가로채기. >
바로 오늘 열린 이벤트 때문이었다.
전직 교관 초청이야 문제없었다.
하지만,‘히든 & 스페셜 클래스’담당 전직 교관들까지 초청한 게 문제였다.
형평성의 문제인 것이다.
그들을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찾고 싶다고 찾아지는 것도 아닌 것.
그런데, 이번 이벤트는 그들을 한곳에 모아두었으니 신규 유저들 입에다가 히든 & 스페셜 클래스를 떠먹여 주는 거나 진배없었다.
그런 까닭에 논란이 된 것이다.
< 유저협회, 기존 유저에게 행해지는 역차별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레전드스토리 본사에 적극적으로 항의……! >
기자들은 먹이를 문 물고기처럼 파장을 일으켰다. 관련된 사진이나 동영상에 SNS로 하나둘씩 올라오면서부터였다.
그리고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쪽은 단연 유저들이었다. 바로‘기존’ 유저들.
- 개같네 진짜.
- 왜 신규 유저들만 챙겨주는 것임?
- 졸라 억울하네?
- 세상살이가 다 그렇지, 뭐…….
- 근데 레전드스토리는 그러면 안 되지. 이건 인생이 걸린 문제인데. 우리가 그동안 레전드스토리를 위해 해온 게 있는데.
- 그게 어딜 우리 위한거임?
- 하여튼 이건 불공평한 거 아니냐. 왜냐하면, 우린 대격변이 터질지도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해서 혜택을 본 충성고객이고. 지금 신규 유저들은 그저 꿀빨러 들어온 거지.
- 맞다! 기존 유저들을 잡은 물고기고 신규 유저들은 못 잡은 물고기라 이거지! 신규 유저들한테는 미끼를 총동원해 더 챙겨주는 거고!
- 기존 유저들의 관점에선 차별이 맞지.
- 그렇다고 우리가 뭐 신규 유저 유치하는 거 반대한 적이라도 있나?
- ㄴㄴ 신규 유저 환영했지. 근데 뒤통수 맞음.
- 레벨 좀 빨리 오르게 해주고, 하는 그런 거야 우리도 반대 안 함.
- 이건 선을 넘었다.
- 밸런스도 걱정이지. 이러면 누가 마법사나 다른 노멀 클래스를 하겠나. 다 저렇게 스페셜 클래스로 전직하지…….
기존 유저들의 반발 요인은 간단했다. 그들은 혜택을 볼 수 없고 오로지 신규 유저들을 위한 정책이었기에.
이러면 신규 유저들이 알아서 자중해야 하는데 스페셜 클래스 전직 교관과 같이 셀카를 찍은 사진을 업로드해서 화를 돋웠다. 그야말로 불 난 집에 기름 붓는 격이었다.
- 누가 스페셜 클래스 되더라도 가만두지 않는다.
- 옳소!
- 레이드 갑시다!
- 근데 그게 됨? 스페셜 클래스는 어지간한 수준으론 상대가 안 될 텐데?
- 그래봤자, 10레벨임, 우리 고인물들이 단체로 밟아버리면 성장 못 할거임.
- 눈치껏 스페셜 클래스 되겠다고 설치지 말고 물러서야지.
- 이거 말로 해선 안 됨.
- 그러면 머리 커지기 전에 초장에 족쳐야 함.
- 어떻게?
- 지금 히든 & 스페셜 클래스 담당 전직 교관 위치한 곳 지도 뿌림. 각자 동네 근처인 곳 찾았고 집합하셈.
- 히든 & 스페셜 클래스 전직한 분, 누가 될지 모르지만, 벌써부터 불쌍해지네…….
비난의 화살은 애꿎은 신규 히든 & 스페셜 클래스에게로 쏟아질 예정이었다.
10분 후.
- 나, 지금 대마법사 전직 교관 있는 장소에 옴.
- 나도 가는 중, 너 렙 몇인데?
- 나? 2,100 정도… 넌?
- 나도 비슷함. 2,042
- ㅎㄷㄷ 뉴비 참교육해주러 렙 2천 형님들 진격하시네.
- 1천 후반 후배도 갑니다!
- 이렇게 많이 가도 됨?
- 기선제압이지 뭐.
- 뉴비 벌벌 떨겟네 크크크. 전 우투브 방송하러 갑니당!
* * *
[NPC하인스가 사망했습니다.]
강기찬의 몸이 NPC하인스의 몸에서 떨어져나왔다.
NPC하인스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머지않아 가루가 되어 흩날릴 터.
‘……아깝네.’
아주 아까웠다.
NPC하인스가 착용한 장비나 액세서리 말이다.
‘저걸 가질 수도 없고…….’
하나 같이 다 값비싸 보이는 것들이었다.
하나, 현재로선 가질 방법이 없다. NPC는 죽어도 아이템을 떨어뜨리지 않기에.
‘웃기는 거지.’
몬스터는 죽으면 아이템을 떨어뜨리지 않나.
가죽이나 뼈만 떨어뜨리면 말도 안 한다.
칼이나 방패, 신발, 같은 것들.
도대체 몬스터를 죽였는데 저것들이 왜 나오나?
아주 어색하고 말도 안 되는 설정.
물론 게임이니까 이해한다.
‘하지만, 그러려면 NPC가 죽어도 똑같이 아이템을 떨어뜨려야지. 왜 안 떨어뜨리냐고… 아니면 벗길 수라도 있게 해주던가.’
NPC하인스가 착용한 장비나 액세서리, 얼마 후 눈앞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것이 못마땅했다.
컴퓨터 게임 때야 당연했고 가상현실 게임으로 넘어와서 그게 될 법했지만, 오히려 가상현실 게임이었기에 더더욱 불가능하게 되었다.
절도 & 성추행 방지인 것이다.
그때였다.
띠링!
[최초로 전직 교관를 처치했습니다.]
[불가능한 업적을 달성합니다.]
[특전! 현재 사용자에게 필요한 보상을 줍니다.]
[현재 사용자에게 필요한 보상을 분석합니다.]
[현재 사용자에게 필요한 보상을 분석 완료하였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줄 보상, ‘벗기기’가 주어집니다.]
예사롭지 않은 보상을 챙겼다.
‘벗기기라.’
딱 봤을 때, 아주 상스러운 명칭이었다.
하지만 내용을 읽고 나선 생각이 바뀌었다.
《 벗기기 》
[분류] 스킬
[등급] 레전드
[설명] 벗길 수 없는 것을 벗길 수 있다.
[조건] 없음.
[제약] 없음.
‘벗길 수 없는 것을 벗길 수 있다… 이런 게 가능하다고?’
조금 전 자신이 꿈꿔왔던 것 아니던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준다더니…….’
현실의 장갑을 끼면 NPC를 만질 수는 있었다.
하지만, 옷을 잡아당기거나 벗길 수는 없었다.
이젠 그마저도 되지 싶었다.
‘아차, 빨리……!’
조금 있으면 NPC하인스가 가루가 되어 사라질 터.
‘그 전에 하나라도 더 벗겨야 한다!’
서둘러 무릎을 꿇고선 NPC하인스의 몸에 손을 댔다. 우선 모자부터 벗겨보았다.
‘진짜 되네?’
모자를 벗기는 데 성공했다.
《 하인스의 모자 》
[분류] 장비
[등급] 측정불가
[설명] 하인스의 하얀 모자
[효과]
- 마력 + 5,000
- 지력 + 500
[조건] 없음
[제약] 없음
‘장난 아니네.’
엄청난 스펙에도 불구하고 착용 제한이 없단다.
즉, 지금 바로 써도 된다는 의미.
그렇지만,
‘나중에.’
곧 NPC하인스가 소멸할 터.
그 전에 나머지를 다 벗기는 게 급선무였다.
‘이미 얻은 건 나중에 써도 되잖아.’
NPC하인스의 장갑, 열 손가락 가득 끼고 있는 반지, 목걸이, 팔찌, 허리띠와 신발을 벗겼다.
마지막으로 가장 벗기기 힘든 로브도 간신히 벗겼다.
그러자 안에 속옷도 있었다.
‘이것도.’
기어코 속옷도 벗기자 알몸이 된 NPC하인스와 마주했다.
강기찬은 더 벗길 게 없나 살피다가 NPC하인스의 입을 벌려 금니 여부를 확인했다.
‘… 없네. 이건 됐고, 모발이나 털은 필요 없으려나…….’
간이고 쓸개 빼고는 다 빼앗고 나서야…….
“됐다.”
강기찬은 흡족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살인자에 강도가 된 것 같지만… 어차피 부활하고, 무기, 장비도 새로 세팅이 되니…….’
NPC하인스는 시간이 지나면 부활한다. 그리고 지금 벗긴 장비도 새로 세팅될 것이다. NPC는 유저를 위해 존재하기에 그렇게 되어있다.
‘본인에게 죽여도 된다고 허락까지 받았고. 사내라면 죽음도 두렵지 않다고 해서 죽인 건데 나중에 섭섭한 소리 하진 않겠지?’
NPC하인스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그래도 생전에 노출증이 있으셨으니, 벌거벗고 죽는 게 부끄럽진 않으셨지요? 이렇게 보내드리는 게, 1분 제자로서 도리를 다한 겁니다. 굿바이. 씨유 레이러.’
NPC하인스가 이를 이해한다는 듯, 곧장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강기찬은 NPC하인스의 유품을 차례로 입어보았다.
그러자 괄목할 만한 스탯업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 스탯 포인트 변동 사항 》
[지력] 55 …▶ 9,755(+9,700)
[마력] 5 …▶ 13,505(+13,500)
NPC하인스의 무기와 장비를 전부 착용한 결과다.
순수 스탯만으로 보자면 11,050레벨과 같다.
‘경석 계정은 50레벨밖에 안 되는데, 11,050레벨의 스탯이라니… 만렙이 9,999인데… 참, 미쳤다, 미쳤어…….’
이것이 가능했던 건 전부 NPC하인스의 유품이 착용 제한이 없기 때문이었다. 엄청난 스펙에도 불구하고.
‘다른 NPC들도 그렇겠지.’
NPC알렉스(튜토리얼 허수아비 교관)을 죽였을 때도‘알렉스의 전투복’ 등의 유품을 얻었다.
그때도 착용 제한이 없었다.
그런 데도 관심 없었다. 저스펙이라서.
하지만, NPC하인스의 유품은 다르다.
‘이만한 스펙에 착용 제한이 없다는 건 주목할만하지.’
고스펙에 착용 제한이 없는 건 흔치 않다.
그리고 이건 어마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시사한다.
‘두 번 연속 NPC 유품에서 착용 제한이 없다는 건?’
다음 NPC를 죽였을 때도 유품에 착용 제한이 없다면?
‘거의 확실시 되겠지. 공통으로 NPC의 유품은 착용 제한이 없다고.’
이것은 강기찬에게만 주어지는 독점적 특혜다.
이미 NPC는 죽일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 되어버린 세상, 아무도 NPC를 죽이려 하지 않는다. 아니, 시도한다고 되지도 않고.
‘죽여야 할 NPC를 좀 찾아봐야겠네. 자, 다음으로는…….’
볼일을 끝내고 문득 뒤돌아보았다.
‘저건 계속 남아있는 건가?’
‘시련의 공간 – 어둠’의 탈출구가 열린 채 있었다.
‘하인스가 죽어서 안 닫힌 채 그대로 남아있는 건가…….’
딱히 대수로운 일은 아니기에 무시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시련의 공간 – 어둠’에서 나오고 또 전직 장소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뭐지?’
투시 중이어서 바깥 풍경이 훤히 내다보였다.
밖엔 무수히 많은 사람이 있었다.
기자도 있고 길드 직원도 있었다.
그런데 유독 몇몇이 눈에 띄었다.
‘저건 왜 다 풀무장을 하고 온 거지?’
꼭 전쟁이나 레이드에 참전하는 것처럼 무기와 방패 등등, 풀세팅을 하고 왔다. 그러고선 마치 이쪽을 기다리는듯한 모양새. 더욱 결정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지금 나가면 상태창 검사한대.”
“왜?”
“히든 & 스페셜 클래스 전직한 유저를 찾는다고 하더라고.”
“스카우트하려고?”
“에이, 그러면 저렇게 위협적이진 않지.”
이곳을 막 나가려던 신규 유저들이 하는 대화가 들렸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걸 보니, 바깥에 무슨 일이 생겼고 저 유저들과 연관이 있지 싶었다.
“저기.”
강기찬이 그들에게 물었다.
“방금 하신 말, 자세히 좀 들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