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NPC하인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어떻게 ‘시련의 공간 – 어둠’에서 앞을 볼 수 있었는지… 알려준다고?’
좀 뜬금없었다.
‘가르쳐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보여준다고 하다니? 저게 과연 순수한 선의이겠는가?’
무언가 저의가 있을 것 같았다.
일전에도 자주 보여오지 않았나.
남들과는 다른 사고방식과 행동을.
‘시련의 공간 – 어둠’에서도 열쇠랑 탈출구를 찾고도 안 나가고 온갖 염병을 다 떨지 않았나.
그 이후로 자신과 조우했을 때도 그렇다. 다른 용사 같았으면 진작 대마법사 전직하고 떠나고도 남았을 시간.
돌이켜 보았을 때, 제때 볼일 보고 떠나지 않았던 건, 전부 다‘다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지금까지도‘대마법사 전직’이나‘퀘스트 클리어 처리’해달라고 안 한다.
대신, 어떻게 ‘시련의 공간 – 어둠’에서 앞을 볼 수 있었는지… 보여준단다.
이쯤 되니 확신이 섰다.
‘명백하게 저의가 있구먼.’
저의가 뭘까, 떠올리다가 문득 강기찬이 진지하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 제가 하인스님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너무 노여워하지 않으시길…….
‘혹시 이건가?’
강기찬이 언급한 것 중, 유일하게 이루지 못한 것.
이것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자신을 죽이는 것.
‘그런데, 나를 죽이는 것과 ‘시련의 공간 – 어둠’에서 앞을 보는 방법이 무슨 연관이 있는 거야?’
얼핏 보기엔, 아니 깊이 생각해봐도 둘 간의 연관성은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당장 이것밖에 안 떠올랐다.
‘아니, 아니지… 설마 아직도 나를 죽이는 걸, 포기하지 않았겠어? 진작 포기했겠지.’
강기찬이 자신을 죽인다고 했던 건 대련을 하기 전이다.
하지만, 대련하고 난 후에도 똑같은 마음일까?
‘누구나 겪지 못한 일은 함부로 예단할 수 있는 법이지. 당장 연륜이 쌓였다고 여긴 나조차도 자만에 빠져 파이어볼만 사용하겠다 해서 큰코다치지 않았나…….’
강기찬도 자신의 저력을 보고선 죽이는 건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 빼고는 떠오르는 게 없는데?’
‘시련의 공간 – 어둠’에서 앞을 보는 방법을 자신에게 알려주는 까닭, 자신을 죽이는 것 외에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대체 저 녀석의 의중이 무엇일까?’
완전히 알지는 못해도 조금이나마 속내를 파헤칠 수는 있지 싶었다. 대놓고 물어보는 것이다.
“가르쳐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왜 가르쳐준다고 하는 거지?”
“왠지 하인스님은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맞아, 난 궁금하다네. 하지만, 그걸 맨입으로 가르쳐 준다고?”
‘시련의 공간 – 어둠’에서도 앞을 보는 방법. 상당히 고급정보다. 대마법사 전직 시련 프리패스 티켓을 파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걸 그냥 가르쳐줄까?
‘그냥 가르쳐준다고 하면 오히려 무언가 목적이 있다고밖에 볼 수 없지. 차라리 대가를 원하면 정상이야…….’
강기찬이 말했다.
“당연히 맨입으로 가르쳐드릴 수는 없지요.”
“뭘 원하지?”
“하인스님을 제 손에 죽어주시는 것입니다.”
“하하…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나?”
“성공했을 때 얻는 것들이 너무 궁금해서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NPC하인스가 낮게 혀를 찼다.
“…그것만큼은 동영상으로 협박한다고 해도 들어줄 수 없네.”
NPC하인스가 확고한 의지를 내비쳤다.
이에, 강기찬도 물러섬이 없었다.
“그렇다면 하인스님의 목숨과‘시련의 공간 – 어둠에서 앞을 볼 수 있는 것’과도 교환하지 않는다고 봐도 되겠죠?”
“그렇지.”
시련의 공간 – 어둠에서 앞을 보는 방법?
아주 궁금하다.
하지만, 그걸 위해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니었다.
강기찬이 나직이 말했다.
“뭐, 좋습니다. 그래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알려주겠다고?”
“예.”
“왜?”
NPC하인스가 아무런 대가도 지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기찬은 굳이 귀한 정보를 알려주겠단다.
‘이 정도면 보여주고 싶어서 환장한 거라 볼 수 있다. 역시, 저걸 알려주는 것과 나를 죽이는 건 연관이 있구먼.’
기왕 이렇게 된 거, 이번엔 NPC하인스도 다소 노골적으로 묻기로 했다.
“그 방법을 알려주는 게 나를 죽이는 것과 연관이 있나?”
“네. 이 방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면 하인스님은 못 죽이기 때문입니다.”
강기찬이 단호한 대답에 NPC하인스가 침음을 삼켰다.
‘설마 이것까지 솔직하게 대답할 줄이야.’
끝까지 잡아떼도 이쪽에선 별수 없는데 솔직히 대답했다.
‘하긴, 이제와서 거짓말한다고 내가 믿지도 않을 테니.’
강기찬이 이어 말했다.
“그러니 제 수에 한 번 걸려주시지요. 정보를 알려드리는 것만큼은 속일 생각이 없습니다. 진검승부는 그다음부터입니다.”
“흠…….”
NPC하인스는 여전히 강기찬이 자신을 무슨 수로 죽이겠다는 건지 몰랐다. 필살기를 써도 흠집 하나 낼 수 없지 않은가.
오히려 그랬기에,
‘여기서 더 내빼는 것도 체면에 서지 않는구먼…….’
내뺄 수 없었다. 아니, 더 나서야 했다. 무적이라 되뇌면서도 두려워하는 게 무슨 꼴이람. 당대 최고의 대마법사라 자부하면서 그런 꼴을 보이는 게 부끄러웠다.
강기찬이 말했다.
“마법사는 탐구하는 존재인 줄 알았는데, 그보다 상위의 존재인 대마법사는 아닌가 봅니다?”
강기찬의 말이 예의 없긴 하나, 틀린 말도 아니었다.
NPC하인스는 스스로 다그쳤다.
‘그래, 저 녀석 말이 맞는구나……. 내가 언제 모르는 것에 이렇게 겁먹었었지?’
마법사는 탐구하는 존재이다.
미지의 영역에 발을 딛는 걸 기꺼워해야 할 터.
그것도 안전이 보장되어있지 않나.
오히려 용사는 페널티가 크다. 사망 시, 부활 대기 시간이 증가, 경험치 감소, 아이템 드랍 등…….
그런데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피해야 할 쪽과 아닌 쪽이 뒤바뀐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
‘이 녀석, 내 심리도 정확히 꿰뚫고 있구나…….’
이쯤 되면 결코 내뺄 수 없다는 걸 잘 이해하고 있었다.
특히,
“이……!”
강기찬이‘제 눈’을 가리키는 걸 보면 확실했다.
NPC하인스는 저 행동이 의미하는 바를 단박에 깨우쳤다.
‘동영상 촬영을 하고 있다, 이거냐?!’
자신이 잠시 망설이는 모습마저도 여과 없이 찍히고 있을 터.
이건 명백히 도발, 그랬기에 반드시 받아주어야만 했다.
“좋다.”
강기찬의 저 얄팍한 수에 넘어가 주기로 했다.
“어디 한 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거라.”
“그러지요. 후회하지 않는 경험을 시켜드리겠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강기찬이 허공을 툭툭 건드렸다.
그러자,
띠링!
[강기찬 용사님이‘환경설정’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NPC하인스가 수락하자마자 시야가 확 바뀌었다.
레이저 프린트로 뽑은 그림에서 색연필로 그린 그림으로 바뀌었달까?
‘뿌옇구먼…….’
시야가 탁 트이며 밝아질 줄 알았는데 그 반대였다.
협소해지고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더 안 좋아진 건데?’
NPC하인스의 관점에선 강기찬의 시야는 최악이었다.
하지만,
‘이게 최선이었던 게로구먼…….’
자신은‘시련의 공간 – 어둠’의 설계자다. 당연히 최적의 시야로 이곳을 볼 수 있었다.
반면, 강기찬은 아니다. 그로서는 이렇게나마 어둠을 꿰뚫는 게 최선일 터.
‘그래도 지형지물을 분간할 수는 있으니, 열쇠랑 탈출구를 찾을 수 있었던 게로구먼…….’
NPC하인스가 강기찬을 쳐다보며 물었다.
“다른 용사들도 다 이렇지는 않겠지?”
기왕 이렇게 된 거 궁금한 걸 다 풀어버리기로 했다.
강기찬도 남김없이 다 밝혀주기로 했고.
“용사들은 시야의 질을 높일 수도 낮출 수도 있습니다.”
“보통…은 시야의 질을 높이지 않나? 혹여 시야의 질을 높이는 데엔 마력이 소모되는가?”
“마력 대신, 일정한 수준의 장비가 갖춰져야만 했습니다. 이제는 아무 조건 없이 시야의 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야의 질을 낮춰야만 어둠을 꿰뚫을 수 있다는 거고……?”
“예.”
“다른 용사들은 그걸 모르고?”
“거의 다 모를 겁니다. 알아도 티를 내지 않을 테고.”
“그렇구먼…….”
“이렇게 하면 어둠을 꿰뚫을 수 있지만, 불편한 것도 많습니다.”
“음? 구체적으로 어떤 거 말인가.”
“제 손을 보십시오.”
강기찬이 손을 들어 올렸다.
무언가를 말아쥔 손 모양이었다.
“제가 단검을 쥐고 있는지, 아닌지, 알아 맞혀보십시오.”
“뭐……?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단검을 쥐고 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강기찬이 손을 펼쳤다. 그러자 곧장 바닥에서 쇳소리가 났다. 떨어진 단검이 내는 소리였다. 그걸 발로 살짝 차버렸다. NPC하인스의 발언 저리로.
NPC하인스가 그걸 들어 올렸다.
단검은 실존했다.
보이지만 않을 뿐.
만지면서 그 모양새와 촉감을 생생히 느끼는 중이었다.
그때, 강기찬이 말을 건넸다.
“그 단검, 여전히 제 눈엔 안 보입니다. 하인스님도 안 보이죠?”
“하…… 마치 마술쇼를 보는 기분이로구먼…….”
“맞습니다. 이 상태로는 보이는 것도, 안 보이기도 합니다.”
그 말에 NPC하인스가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면서 혼자서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자네 말이 맞는구먼.”
직접 설계한 곳이라 인테리어를 기억했다. 한데 벽에 붙여두었던 종이가 안 보였다. 열쇠꽂이도… 그 외에도 안 보이는 게 너무 많았다.
“안 보이는 게 많아. 하나, 저게 다 존재한다는 거지?”
“네. 용사들이 장난이라도 이 상태를 안 하는 이유죠. 존재하는데도 안 보이는 건, 아주 큰 취약점이거든요.”
“그래, 맞아… 이러면 아주 불편하겠는데?”
“그래서 저도 이런 상황이 아니면 안 씁니다. 다만, 용도에 맞게만 쓴다면 이렇게 될 수도 있지요.”
“음?”
NPC하인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강기찬의 저 말, 꽤 의미심장하게 들렸기에.
‘단순히 기분 탓인가?’
강기찬이 이어 말했다.
“저는 이 환경에서 오래 있어봐서 대강 압니다. 뭐가 보이고 안 보이는지…….”
“…….”
“자…, 이제 원래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NPC하인스는 이때쯤 무언가 불길함을 느꼈다. 강기찬이 단순히 자신에게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환경설정 공유를 하지 않았다는 직감이 왔달까…….
곧 알 수 있지 싶었다.
[강기찬 용사님이‘환경설정’을 공유를 해제합니다.]
이내,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벽에 붙여두었던 종이가 보였고, 열쇠꽂이도… 그 외에도 다 보였다.
그때였다.
“자, 이로써 하인스님 죽이기 첫 번째 단계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엉?”
강기찬이 NPC하인스의 배를 가리켰다. 그 시선을 따라 NPC하인스가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배에서‘썬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으, 으아아아아악!”
NPC하인스가 까무러치게 놀랐다.
“이, 이게 뭐… 뭔…….”
“제 펫인 썬입니다. 썬 인사해.”
썬이 고개를 휙 틀더니 NPC하인스를 올려다보았다.
- 썬.
시크한 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