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아뇨. 퀘스트 클리어 처리 안 해주셔도 됩니다.”
강기찬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뭐?”
NPC하인스는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래서 재차 말했다.
“그냥 퀘스트 클리어 처리해 주겠다고…….”
“아뇨.”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진심이라고?’
아까까지만 해도 퀘스트 클리어 처리해달라고 하지 않았나. 무슨 바람이 불어서 마음이 바뀐 걸까?
‘보상을 거저 챙길 기회를 저버리다니? 무슨 꿍꿍이야?’
이내, 강기찬의 대답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은 됐습니다.”
“지금은?”
“나중에.”
“뭐?”
“우선은 대련을 해보고 싶습니다.”
NPC하인스는 별 미친놈 다 보겠다는 눈빛을 보냈다.
“진심인가?”
“예, 그러고 난 다음에 퀘스트 클리어 처리해 주십시오.”
“잘 이해가 안 되는데… 대련한 다음에 퀘스트 클리어 처리해달라니? 대련 결과가 어찌 될지 알고?”
“아뇨, 잘 이해하신 겁니다. 대련 결과와 무관하게 퀘스트 클리어 처리해 주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지더라도 이긴 거로 하고 싶다 이거지?”
“예.”
강기찬은 어느 하나도 손해 보지 않겠다, 이 말이다.
NPC하인스는 저 낯짝 두꺼운 뻔뻔함에 욕을 하려던 걸 간신히 참았다.
“조… 좋네. 그렇게 하지.”
마지못해 수락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강기찬은 NPC하인스에게 마음으로 사과했다.
‘저도 찍고 싶어서 찍은 건 아니랍니다…….’
협박용으로 알몸 명상을 찍지 않았다.
우연의 일치.
유저의 눈은 동영상으로 저장되었다. 사냥터에서 다툼이 잦아서 법적 분쟁 시, 증거자료용으로 제출하기 위해서.
그랬기에 지하를 내려다봄과 동시에 NPC하인스의 알몸이 ‘찍힌’ 거다.
기왕 찍힌 거, 이걸 빌미로 대련할 수 있다면 좋지 않겠나. 그것도 당대 최고의 대마법사와.
하나, NPC하인스가 그냥 대련해줄 리 만무했다. 강기찬과의 대련은 시간 낭비일 테니까.
그래서 동영상을 이용한 것.
“자, 여기 있네.”
NPC하인스가 퀘스트를 주었다.
《 하인스와의 대련 》
[등급] 유니크
[난이도] 헬
[목표] 하인스 쓰러뜨리기
[제한 시간] 없음.
[보상] 비공개
* 승낙할 시,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한편, NPC하인스가 하얀 수염을 쓸어넘기며 중얼거렸다.
“내 특별히 기는 뿜지 않겠네.”
“감사합니다.”
강기찬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기 따위 초보자의 무지(無知)로 무력화시킬 수 있지만, 굳이 알리지 않았다. 숨겨진 패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에.
“그리고 딱 한 가지 공격 마법만을 사용하겠네.”
“후회하실 겁니다.”
“그건 해봐야 알겠지. 시작하…….”
“아, 그리고…….”
“뭔가?”
“제가 NPC하인스님에게 좀 몹쓸 짓을 할 겁니다.”
“뭐?”
“제가 실험을 좋아해서.”
NPC하인스가 정색하며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뭐, 말로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실 테니, 직접 겪어보시지요.”
“뭐, 그래…….”
NPC하인스는 영 찝찝했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상관없었으니까.
‘몹쓸 짓을 할 거라고? 그거 내가 못 하게 해주지.’
무슨 짓을 하든 잘 막아낼 자신이 있었으니까.
“자, 그럼 시작하…….”
“그리고 또…….”
NPC하인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말을 끊어버리다니.
“뭔가…….”
시답잖은 소리를 하면 야단치려 했다.
곧이어 강기찬이 진지하게 말했다.
“제가 하인스님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너무 노여워하지 않으시길…….”
“… 나를 죽일 수도 있다고?”
“예.”
“…….”
너무 터무니가 없어서일까?
화도 나지 않았다.
아니, 실소가 나왔다.
NPC하인스가 인자하게 대답했다.
“그래, 그래… 사내가 되어서 죽는 게 대수인가… 하지만, 나도 한마디를 해야겠구먼.”
“예, 말씀하십시오.”
“나도 자네를 죽일 수도 있다네… 그래도 날 너무 미워하지 말게나… 다 교육에 속한 것이니.”
“괜찮습니다. 어차피 저는 아프지도 않고 실제로 죽는 것도 아니니까요.”
“하하…….”
NPC하인스는 강기찬이 가소로웠다.
‘이 녀석은 알까? 나를 죽이기는커녕 건드리지도 못한다는 걸…….’
자신은 용사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
손가락 하나 댈 수 없지 않은가.
신체접촉을 하려면 튕기고…….
보호 조치가 발동 중이다.
쉽게 말해 무적.
‘그런 나를 무슨 수로 죽여! 이놈아!’
강기찬을 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시작하지.”
“좋습니다.”
휙-
NPC하인스가 공간이동을 해 강기찬과 거리를 벌렸다.
1미터도 안 되던 간격이 어느새 100미터를 훌쩍 넘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지팡이 끝에서 화염이 생겨났다… 라는 걸, 인지하던 찰나,
화-라락!
- 시뻘건 화염구가 쏘아졌다.
이동과 공격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
그리고,
[파이어볼]
눈 깜짝할 사이였다. 파이어볼이 강기찬 얼굴 앞에 당도한 것은.
파이어볼을 쏘자마자‘파이어볼’을 강기찬의 얼굴 앞으로 공간 이동시킨 것. NPC하인스가 즐겨 사용하는, 남 놀라게 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강기찬은 놀랄 틈도 없었다.
후-우우욱!
지상(시련의 공간 – 어둠)에 있던 썬과 위치를 맞바꾸었기에.
퐈-아악.
표적 잃은 파이어볼이 벽에 부딪혀 사그라졌다.
‘없어졌다?’
NPC하인스는 침착했다. 저러는 걸 한 번 보아서.
곧장 마력을 감지해 위치 파악 후.
‘위.’
공간이동을 해 지상(시련의 공간 – 어둠)으로 올라왔다. 그러자,
슉!
강기찬이 뒤에서 나타났다.
휘-이익!
단검을 휘둘렀으나…….
NPC하인스의 신형이 흐려졌다.
… 환영이었던 것.
동시에 천장에서 파이어볼 1000구가 쏟아져 내렸다.
아니, 강기찬이 있는 곳으로 공간 이동하였다.
그러나 파이어볼 1000구가 1미터도 내려오기 전에,
슉!
강기찬은 자리에서 이탈했다. 또 다른 아수라 도깨비와 위치를 바꾼 것.
사방에 아수라 도깨비를 깔아두어 사실상, 이 공간 내에선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안전을 확보한 다음 맵핵으로 NPC하인스 위치를 파악했다.
한데, 그보다 NPC하인스의 대처가 빨랐다?
천장에서 나타나 파이어볼 100구를 떨어뜨렸다.
강기찬은 내심 당혹했다.
‘맵핵보다 빠르다고?’
‘애송아… 여긴, 내 영역이라고.’
둘은 속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강기찬은 또 아수라 도깨비 한 마리와 위치를 바꾸었고… NPC하인스가 거의 비슷한 속도로 따라왔다. 그리고 강기찬의 정수리 위, 등 뒤, 심지어 발밑에서 파이어볼이 동시다발적으로 덮쳤다. 강기찬은 위치를 바꾸면서 생각했다.
‘역시 대마법사는 다르다.’
사용자 쪽에서 공격이 오지 않고 엉뚱한 데서 온다. 공격 방향을 예측할 수 없다니.
강기찬은 피했으나 그 자리엔 아수라 도깨비가 남아있었다. 피할 수도 없으니 맞는 수밖에.
- 우오오옥!
- 우오어억!
아수라 도깨비가 우유(?)를 토하며 쓰러졌다. 저건 피라서 빨개야 하지만, 그래픽 때문에 하얀 것이다. 익숙해서 아무렇지 않지만.
‘파이어볼로 저만한 데미지를 줄 수 있다니.’
6,000레벨짜리 아수라 도깨비를 일격에 쓰러뜨렸다.
역시 보통 파이어볼이 아니었다. 동네 꼬마랑 캐치볼 하다가 야구선수가 전력투구한 공 받는 기분이랄까.
또 하나.
‘캐스팅 시간이 없는 수준인데?’
레전드스토리는 마법을 캐스팅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한데 NPC하인스는 즉시 발현했다.
또한, 쿨타임도 없어서 연속공격이 가능했다. 궁수의 화살 세례 마냥…….
마법사의 취약점이 전부 보완되어 흡사 완벽에 가까웠다. 대마법사는 마법사가 아니며, 전혀 다른 직업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그랬기에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실력으로는 생채기도 못 낸다.’
NPC하인스는 제 능력의 1할도 발휘하지 않고 있다. 파이어볼만 쓰고 있지 않나. 그런데도 기가 빨리는 듯했다.
이 상태로는 더 한다고 쓰러뜨릴 수 없지 싶었다.
‘대련은 이쯤 하기로 할까.’
좋은 경험을 했다. 오랜만에 강자와의 전투라 짜릿했고.
‘죽이자.’
퀘스트 클리어는 확정되어 있다.
반면, NPC하인스 처치는 아니다. 죽어달라고 죽어주진 않을 테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한 번 찔러나 보기로 했다.
“하인스님? 제 말 들리시죠?”
[그래.]
“제가 죽이는 것보단, 하인스님이 죽어주시는 게 서로에게 더 빠르고 쉬운 길일 거 같습니다.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아주 공손한 말투였다.
내용만 뺀다면.
[미친 새…….]
“아, 진정하세요. 그냥 물어본 겁니다.”
NPC하인스를 처치하려는 이유야 단순했다. NPC알렉스(허수아비 교관)를 처치해서 맵핵을 얻지 않았나.
‘NPC하인스를 처치하면 어떤 보상을 줄까.’
NPC하인스도 죽어본 적 없을 터. 죽이면 분명 괜찮은 보상을 주리라.
문제는 어떻게 죽이냐는 것이다. 쓰러뜨리는 것도 불가능한데, 하물며 처치할 수 있을 리가.
물론 정상적인 방법만 그렇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가는 수밖에.’
비정상적인 방법을 쓴다면, NPC하인스를 처치할 수 있을 것이다. 막상 해보기 전까진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하인스님, 심장마비가 염려되네…….’
강기찬의‘깜짝쇼’에 NPC하인스가 최소 기절할 수도 있다는 것.
* * *
NPC하인스는 강기찬을 쫓지 않았다.
강기찬도 움직임을 멈췄고.
일시 소강상태.
‘더는 무리다…….’
솔직히 지쳤다.
시작부터 광역기를 퍼부어 단기간에 결판을 보는 스타일이었다. 나이가 들다 보니 더더욱 그랬고.
그런데 예상치 못한 장기전이 되었다.
‘내가 자만했구나…….’
이건 본인이 자초한 결과다.
파이어볼만 사용하겠다 했으니.
돌이켜 보니 괜한 말 했다, 싶었다.
‘이렇게 해도 될 줄 알았건만…….’
파이어볼만으로도 강기찬을 압도적으로 찍어누를 수 있다고 여겼다.
‘아닐 줄이야.’
후회스러웠다.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니다. 내가 자만한 게 아니야. 그놈이 이레귤러인 게야…….’
자신의 잘못이라 보기엔 상대가 규격 외였다. 파이어볼은 여전히 비범하다. 강기찬이 맞기만 했다면, 아니 스치기만 했어도 녹였을 것이다.
‘하지만, 불씨가 닿을 여력도 없이 사라져버리니…….’
강기찬은 모를 테지만, 자신은 처음부터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도,
‘한 번도 못 맞추었다. 지금이라도 다른 마법을 쓴다면 1초, 그 안에 놈을 처치할 수 있지만… 이제와서 다른 마법을 쓸 수는 없지.’
자신이 했던 약속이 발목을 잡았다.
‘입이 방정이야…….’
그때였다.
“하인스님? 가르침 잘 받았습니다. 이쯤 하는 게 어떻습니까?”
“음?”
강기찬이 다가왔다.
“피차 공격이 안 통하는데 더하면 시간 낭비 같아서.”
“흠…….”
NPC하인스도 공감했다.
단지 그 말 꺼내기가 좀 그랬는데 강기찬이 먼저 꺼내주어서 다행이었다.
이윽고 강기찬이 또 말을 걸었다.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뭐가 말인가?”
“제가 어떻게‘시련의 공간 – 어둠’에서 앞을 볼 수 있었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강기찬이 맛있는 미끼를 뿌렸다.
독이 섞여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