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 * *
지상에 있는 강기찬과 눈이 마주치기 10분 전.
NPC하인스는 강기찬이 열쇠랑 탈출구를 찾고도 안 나가는 걸 보곤 깨달았다. 어둠 속이 보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 이후로 해왔던 짓거리는 가관이었다.
신규 유저 몰살, 아수라 도깨비 쫓아내기… 아기천사와 아기악마를 소환해 맞붙게 하고 아수라 도깨비들을 들여보내 잔당 처리. 기어이 아수라 도깨비도 잡았고.
여기까지만 봐도 평범한 초보자는 아닌 줄 알았다.
그다음이 화룡점정이었다.
아수라 도깨비를 부활시켜 제 수족처럼 부렸다…
솔직히 갈증은 해소되었다. 그간의 행보가 이해가 가서.
‘역시 네크로맨서였어…….’
그러나 다른 갈증이 새로이 샘솟았다.
‘잠깐 근데, 네크로맨서인데 내 시련에는 어떻게 입장한 거란 말인가?’
자신의 시련에는 초보자만 들어올 수 있다. 본래 마법사만 출입할 수 있었는데 이번 지구서버 출장으로 인해 특별히 입장 권한을 초보자까지 늘린 거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원인을 따지기보단 이 사태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관건이로구나…….’
웬 미친 용사가 남의 공간을 마치 제집 안방 마냥, 마음대로 활개 치고 다니고 있다. 마음 같아선 시련의 공간에 들어가 저 용사를 빼내 오고 싶었다. 그런 다음 온갖 죄를 묻고 싶었다.
하지만, 시련 도중엔 난입할 수 없으니 끝날 때까지 지켜보는 수밖에.
그러다가 화가 나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마침 강기찬도 사냥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니…….
‘막간의 시간을 이용해 명상의 시간을 가져야겠구나…….’
명상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강기찬으로 인해 흥분되었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냉정한 이성을 되찾으려는 것이다.
여기에 그만의 특색이 있는데 상, 하의, 속옷까지 벗는 것이다. 태초의 인간처럼 가벼운 몸가짐을 지니기 위함이었다.
알몸이 된 채로 가부좌를 틀고 허공에 떴다.
그렇게 명상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으윽-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강기찬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시간의 흐름이 지독하게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 * *
‘왜 저러시지?’
강기찬은 의문이었다.
투시를 통해 지하를 내려다보았는데 NPC하인스가 벌거벗고 있는 걸 보았다. 그러다가 자신과 눈이 마주치더니 헐레벌떡 옷을 입는 게 아닌가.
‘노출증이신가? 저러고 가부좌 튼 채, 공중부양? 명상하는 거? 참, 재미있는 취향을 지니셨네.’
강기찬은 노인네 알몸 보는 취미는 없었다. 그보다는 다른 데 생각이 뺏겼다.
‘설마 ‘시련의 공간 – 어둠’에 지하가 있고 거기에 NPC하인스의 연구실이 존재할 줄이야,’
강기찬은 의외라는 얼굴을 해 보였다.
‘맵핵으로도 알지 못했던 정보인데… 하긴, 맵핵이 현재 층만 보여주지, 아래층이나 위층을 보여주진 않으니까…….’
계단이나 포탈이라도 있었다면 지하나 2층이 있다고 유추라도 했을 텐데 그런 게 없어서 생각지도 못했다.
‘저긴 어떻게 내려가는 거지?’
맵핵에도 숨겨둔 계단이나 포탈이 없다. 오직 NPC하인스만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일까?
그러던 그때였다.
좌측 시야에 갑자기 무언가 튀어나왔다.
‘시스템 메시지?’
얼핏 보기엔 새로운 내용이 아니었다.
좀 전에 봤던 것.
[아수라 도깨비를 처치했습니다.]
[죽일 수 없는 아수라 도깨비를 최초로 죽였습니다.]
[최초 업적입니다!]
[불가능한 업적을 달성합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줄 보상 …]
‘이게 왜 지금 뜨는 거…….’
왜 지금 떴는지 유추할 수 있었다. 뜨기는 좀 전에 이전 것과 동시에 떴던 건데 최저화질이라 잠시 안 보였던 것.
‘투시의 눈을 한 개 더 주는 건가.’
저번에도‘허수아비의 논밭 이벤트 선착순 1등 보상’으로 ‘경험치 10배 쿠폰’이 두 장 지급되었다.
이번에도 그렇다는 전제하에‘투시의 눈’을 하나 더 받은 거지 싶었…….
‘아니, 아닌데?’
이 시스템 메시지가 늦게 뜬 거지 보상은 제때 지급되었을 터. 그런데 그때 보았던‘투시의 눈’은 명백히 하나였다. 이는 또 다른 가능성을 시사했다.
‘완전히 다른 보상?’
‘투시의 눈’이 아닌 전혀 다른 보상을 주지 않을까, 하고 찾아보니 사실이었다.
나머지 부분을 마저 읽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줄 보상, ‘위치 바꾸기’가 주어집니다.]
‘위치 바꾸기?’
《 위치 바꾸기 》
[분류] 스킬
[등급] 레전드
[설명] 원하는 대상과 위치를 바꿀 수 있다.
[조건] 상대가 동의했을 시.
* 한 번 동의 설정해놓으면 번복하지 않는 한, 자동 적용.
[제약] 없음
‘좋네.’
설명을 읽으니 이것 또한, 얼마나 사기적인 스킬인지 알 수 있었다.
“썬, 동의 좀 해줘…….”
- 써언?
강기찬이‘위치 바꾸기’를 사용했다. 그러자 잠시 후, 시야가 확 바뀌었다. 허공에 뜬 채였고 곧장 추락하려던 걸 멈춰 세웠다.
‘상대의 위치도 잘 알아보면서 써야겠네.’
만약, 공중부양할 수 없었다면 속절없이 추락했을 것이다.
‘… 나가야겠다.’
이제 이곳에서 볼일은 끝났다.
‘드디어 대마법사로 전직이구나…….’
나가서 우선할 일은 하나다.
바로 대마법사로 전직하는 것.
어째, 대마법사 전직을 억지로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야 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미룬 보람이 알찼기에 상관없었다.
“가자 썬.”
- 써-어어언!
썬이 강기찬보다 앞서 날았다.
그런데 희한한 현상을 목격했다.
썬이 벽 한가운데를 그냥 지나치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막힌 벽을 막히지 않은 벽 마냥, 뚫고 지나쳤다.
강기찬이 보이지 않는 벽을 통과했던 것 마냥.
‘설마?’
이곳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저런 스킬은 없었다.
이제 생겼다고 보는 게 좋을 터.
썬의 기록을 살폈다.
[아수라 도깨비를 처치했습니다.]
[죽일 수 없는 아수라 도깨비를 최초로 죽였습니다.]
[최초 업적입니다!]
[불가능한 업적을 달성합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줄 보상, ‘관통’이 주어집니다.]
‘썬도 아수라 도깨비를 처치한 거로 쳐주는 거였네.’
강기찬이 썬에게 받은 전기충격을 아수라 도깨비에게 옮겨 막타를 친 것이니만큼, 썬 또한 공동 처치한 거로 쳐주는 모양이었다.
‘일석삼조구먼.’
한 번의 업적으로 세 개의 보상을 챙긴 셈이다.
《 관통 》
[분류] 스킬
[등급] 레전드
[설명] 막힌 곳도 지나갈 수 있다.
[조건] 없음
[제약] 없음
‘이거 내가 가졌으면 최고인데…….’
썬이 관통을 가진 게 못내 아쉬웠다.
‘잠깐, 이거… 이렇게 쓰면 되려나?’
관통 스킬의 첫 개시를 어떻게 할지 정했다.
썬에게 대략 설명을 해주었다.
- 썬!
썬이 바닥을 통과해 지하로 내려갔다.
강기찬이‘위치 바꾸기’를 사용했다.
순식간에 강기찬과 썬의 위치가 바뀌었다.
강기찬은 지하 연구실로, 썬은 지상으로.
예고가 없었던지라…….
“어어억!”
NPC하인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하, 놀라셨죠?”
강기찬이 무안해하며 말을 전했다. 그러고 보니 상대에 대한 예의가 없었다. 동의도 없이 덜컥 내려온 거니.
“죄송합니다. 저 다시 올라갈…….”
늦게나마 반성의 의미로 허리 숙여 사과를 전하고 다시 올라가려 했다.
그런데,
“아니, 아닐세.”
“예?”
강기찬이 붕 뜨려다가 착지했다.
NPC하인스가 막는 게 아닌가.
“마침 할 얘기도 있고…….”
“할 얘기 말입니까?”
“그, 그래…….”
NPC하인스의 얼굴이 잘 익은 복숭아처럼 빨개졌다.
“저… 그거 말일세… 좀 전에 자네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내가 처했던 상황에 대해서 할 말이 있네…….”
“아, 저 못 봤습니다.”
“봤구먼…….”
“그게 그렇게 되는군요. 하여간 저만 간직, 아니 기억하고, 아니… 이제부터 까먹겠습니다.”
“그래 주면 고맙겠구먼…….”
NPC하인스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나도 캐묻지 않겠네.”
강기찬이 어떻게 지상에서 지하 연구실의 존재를 알고, 또 볼 수도, 올 수도 있었던 건지… 캐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소환, 네크로맨서인데 시련에 입장할 수 있었던 까닭, 등등 많은 것이 궁금했지만.
‘궁금한 게 어디 한두 가지여야 물어보지, 이건 뭐 엄두도 못 내겠구먼…….’
하나라도 물어본다고 대답해줄 것 같지도 않았다. 하나를 물으면 둘, 셋, 그 이상을 전부 다 알고 싶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럴 바엔 애초에 다 포기하는 게 맞았다.
“전 이제 대마법사가 되는 겁니까?”
강기찬의 물음에 NPC하인스가 선선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지, 시련을 통과했으니 말일세.”
강기찬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물었다.
“혹시 퀘스트 클리어 처리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
“…….”
NPC하인스는 금기어를 들었다는 듯,
“미쳤나?”
“아뇨.”
“어떻게 그런 요청을 할 수 있는 거지? 그게 나한테 할 소린가?”
“제가 두 번째 제자 아닙니까? 기념으로…….”
“그거랑 무슨 상관이지? 참 뻔뻔하구먼. 누가 보면 첫 번째 제자라도 되고 나서 그런 요청하는 줄 알겠어.”
“앤드류님은 그런 요청 안 하셨나 봅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한데, 보아하니 한두 번 찔러본 솜씨가 아니구먼.”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처음이라도 놀라운데, 두 번이라니? 첫 번째엔 어떻게 되었나?”
“실패했습니다.”
강기찬의 첫 번째 억지 요청, 일전에 NPC제페토가 거절했었다.
NPC하인스는 헛웃음을 짓고선 물었다.
“그런데 왜 그딴 요청을 하는 거지? 결국, 아무도 안 들어줬다는 거 아닌가? 누가 들어주기라도 했다면 일말의 이해라도 갈 텐데.”
“들어주었습니다.”
“첫 번째 요청은 실패했다면서? 그럼……?”
“요청하지 않았는데, 해준 분들이 계십니다.”
“미친놈들이군.”
“…….”
“좀 전의 얼토당토않은 요청은 거기서 나온 자신감으로구먼. 누가 들어줬는지는 모르겠다만, 대부분 사람은 그 요청, 절대 들어주지 않을걸세.”
“그럼, 대련 퀘스트라도 내주십시오.”
“뭐? 하…….”
NPC하인스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자네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의미 없네.”
“왜죠?”
“결과는 정해진 거나 다름없으니까.”
강기찬이 슬며시 웃었다.
“저와 같은 생각인가 봅니다.”
“그런가? 내 생각과는 다른듯한데?”
“누구 생각이 맞는지 붙어봅시다.”
“건방지구나.”
“아직 전직도 안 해서 제자도 아닌데요. 뭘…….”
“어쩐지, 그걸 노리고 전직해달라고 안 보챘구나. 오냐. 대련해주지. 대신 네놈도 거는 게 있어야지?”
“조금 전에 좀 재미난 걸 봐서…….”
강기찬이 허공에 홀로그램 창을 하나 띄었다. 거긴 동영상 하나가 재생되었는데…….
제목이 있었다.
- 지하 연구실의 은밀한 명상법.avi
NPC하인스의 이마에서 땀이 장대비처럼 흘러내렸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어, 그냥 퀘스트 클리어 처리해 주겠네.”
강기찬에게 무언가를 걸라고 하기엔, 동영상 용량이 너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