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그 방법이라면 되지 않을까?’
불현듯 아수라 도깨비에게 지속딜을 줄 묘책이 떠올랐다.
‘그 묘책이 통할지는 확신할 순 없지만… 그래도 해보자. 나는 지속딜을 줄 만한 스킬이 없지만…….’
강기찬이 썬을 보았다.
‘썬은 지속딜을 줄 수 있지.’
썬의 전기 충격은 지속딜을 줄 수 있다.
물론 업적은, 퀘스트와는 다르게 썬이 대신해서 막타를 쳐주면 업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반드시 당사자가 직접 막타를 쳐야 업적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이건 어떨까?’
인벤토리에서 물통을 꺼내 머리 위로 끼얹었다. 전신이 축축하게 젖었다.
“썬,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나한테 지속해서 전기충격을 줘…….”
썬이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고선 시키는 대로 강기찬에게 전기충격을 주었다.
콰지- 지지지 – 지지지 지지지지지직!
강기찬의 전신에 전류가 흘렀다.
하나 강기찬은 고통이 전혀 없었다.
[칭호, 썬더버드의 주인이 적용 중입니다.]
[효과, 뇌 속성 공격 면역이 발현됩니다.]
최초로 썬더버드를 부화시켰을 시, 얻는 칭호인 썬더버드의 주인. 그 덕분에 뇌 속성 공격 면역이지 않나. 뇌 속성인 썬이 암만 공격을 해봤자 끄떡없을 수밖에.
그렇게 강기찬은‘전기인간’이 되었다.
척-!
강기찬이 손을 뻗어 아수라 도깨비의 피부를 단검으로 찔렀다. 모기가 무는 것보다 감각이 없을 테지만, 공격은 공격일 터.
지지지직!
강기찬의 주먹과 단검을 타고 아수라 도깨비에게까지 전류가 흘렀다. 지속해서…….
‘이러면, 내가 지속딜을 주는 게 아닐까?’
침착히 결과를 기다렸다.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이‘꼼수’가 안 통해도 그다지 아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건 일종의 보너스 게임이잖아.’
이미 여기서 이득이란 이득은 다 보았다.
설령 아수라 도깨비를 해치지 못해도 손해는 아닌 셈.
막말로 아수라 도깨비를 해치우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한 것도 아니라서.
‘이렇게 경험을 쌓는 거지.’
이‘꼼수’가 통하면 다음 기회에 또 써먹을 수 있는 귀한 경험이 되는 것이고, ‘꼼수’가 안 통하면 다음엔 일찍이 배제할 수 있어, 시간 낭비하지 않게 될 터.
이러나저러나 나쁠 건 없었다.
단지, 호기심이 더 커질 뿐.
‘과연 시스템이 이를 어떻게 판정할까?’
곧 그 결과가 공개되지 싶었다. 아수라 도깨비의 생명력이 밑천을 드러내는 중이라…….
[아수라 도깨비의 생명력] 0.03 / 532,000,000,000
[아수라 도깨비의 생명력] 0.02 / 532,000,000,000
[아수라 도깨비의 생명력] 0.01 / 532,000,000,000
[아수라 도깨비의 생명력] 0.00 / 532,000,000,000
아수라 도깨비의 생명력이 0이 되었다.
아수라 도깨비가 고통에 몸부림을 치다가 급작스레 정지했다. 사망한 것이다.
‘누가 죽인 거로 처리될까?’
그런데,
‘…….’
5초가 지났고 또 10초가… 20, 30, 40초가 지났음에도…….
‘왜 안 뜨지?’
시스템 메시지가 뜰 줄 알았는데 안 뜨고 있었다.
‘자살이 아니고서야 뜰 텐데?’
아수라 도깨비의 죽음을 자살로 치진 않을 터.
무언가 문제가 있기라도 한 걸까?
‘평소엔 재깍 뜨더니…….’
못 보고 놓친 적은 있어도 이렇게 정산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또 처음이었다.
‘그만큼 판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겠지.’
다행히 기다리는 동안 마냥 지루하진 않게 되었다.
아니, 자신이 처치했는지 안 했는지를 다른 방식으로 알게 되었다.
[아수라 도깨비의 시체에 영혼을 불어넣으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이건…….’
네크로맨서의 영혼 주입 스킬을 쓸 건지 묻는다.
직접 처치한 것이어야만 뜨는 거다.
즉,
‘됐다!’
시스템은 강기찬이 아수라 도깨비를 처치한 거로 쳐주었다.
‘다행이다.’
띠링!
[아수라 도깨비를 처치했습니다.]
띠링!
이윽고 또 다른 시스템 메시지 알림이 들렸다. 보나 마나 보상과 관련된 것일 터.
하지만, 바로 들여다보진 못했다. 그보다 더 시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기지 않았나.
‘영혼 주입부터 해야지.’
보상은 놔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아수라 도깨비의 시체는 놔두면 사라질 터.
필드는 아니지만, 던전에선 그랬다.
강기찬이 아수라 도깨비 시체 앞에 섰다.
[‘영혼 주입(Lv.99(Max))’을 사용합니다.]
[마력 1,000을 소모했습니다.]
[몬스터에게 영혼을 주입 중입니다……]
[예상 영혼 주입 소요 시간 : 0초]
[영혼 주입 중……]
[영혼 주입에 성공했습니다.]
[사망한 몬스터, 아수라 도깨비를 일으켜 세웁니다.]
[아수라 도깨비, 1마리가 일어났습니다.]
----
[마력] 23,290 / 24,290(+400)
[영혼 주입 가능한 개체 수] 11 / 300
[다음 영혼 주입까지 쿨타임이 1분 남았습니다.]
아수라 도깨비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기찬이 우러러 올려다볼 만한, 아파트 5층짜리 거구.
레벨 6,000이기까지 하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본래 강기찬에겐 과분한 권속이었다. 권속은 네크로맨서와 비슷한 급일 수밖에 없기에.
네크로맨서가 직접 처치하거나, 권속이 처치하는 것만, 영혼 주입이 가능하다. 권속의 양으로 밀어붙여도 상대가 레벨 차가 너무 나면 한계가 존재하는 법. 지금 수준으론 백만 군대를 조직해도 6,000레벨 몬스터를 처치할 수 없다.
그런데 혼자서, 아니 썬하고 둘이서 6,000레벨 몬스터를 처치했으니, 네크로맨서의 고질적인 한계인, 물량으로 퍼부어야만 승리한다는 틀을 깨버린 것이다.
드물게, 질 좋은 권속이 생긴 것.
“자, 아수라 도깨비?”
- 우오오?
“쓸어버리자.”
강기찬이 다른 아수라 도깨비를 처치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썬, 또 수고를 해줘야겠다.”
- 써어어언!
아수라 도깨비가 앞이 안 보이니 썬이 안내를 해주었다. 어디에 적이 있는지 가서 빛을 터트려주었고, 아수라 도깨비는 거길 향해 도깨비방망이를 막 휘두르면 되었다.
썬이 전기충격으로 전투 보조를 해주었기에 승리는 떼놓은 당상이었다.
[아수라 도깨비를 처치했습니다.]
[아수라 도깨비를 처치했습니다.]
[아수라 도깨비를 처치했습니다.]
.
.
[영혼 주입에 성공했습니다.]
[사망한 몬스터, 아수라 도깨비를 일으켜 세웁니다.]
[아수라 도깨비, 250마리가 일어났습니다.]
----
[마력] 0 / 24,290(+400)
[영혼 주입 가능한 개체 수] 261 / 300
[다음 영혼 주입까지 쿨타임이 1분 남았습니다.]
아수라 도깨비 처치.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야 쉬웠다.
그리고 가면 갈수록 더 쉬워졌다.
죽일 때마다 같은 편이 되니 점점 아군의 수가 늘어나고 적군의 수는 줄어드는 구조이니까. 중간쯤 가서는 전세 역전되었다.
결국엔 아수라 도깨비를 전멸시켜버렸다.
‘이제 아수라 도깨비 처치 보상을 볼까.’
미뤄두었던 아수라 도깨비 최초 처치 보상을 보기로 했다.
‘이건……!’
어째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아수라 도깨비를 처치했습니다.]
[죽일 수 없는 아수라 도깨비를 최초로 죽였습니다.]
[최초 업적입니다!]
[불가능한 업적을 달성합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줄 보상 …]
‘이 문구…….’
문구가 낯익었다.
‘NPC알렉스 죽였을 때도 이런 게 떴었지…….’
튜토리얼 교관 NPC알렉스.
그를 죽였을 때도 최초에‘불가능한 업적을 달성’했다고 했다.
‘하긴, 이것도 불가능한 일이긴 했지.’
NPC알렉스의 레벨은 20이었고 유저 레벨은 1일 수밖에 없었다. NPC알렉스는 혼자서 유저 20명과 붙어서 이길 정도. 애초에 NPC알렉스가 질 수 없던 구조였다. 강기찬은 그런 NPC알렉스를 쓰러뜨렸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것.
시스템은 이번에도 같은 경우로 본듯싶었다.
‘맞는 말이지. 아수라 도깨비를 어떻게 처치하겠어?’
본래 이곳은 마법사만 들어올 수 있다.
반면 아수라 도깨비는 전사 계열.
그것도 수백 마리가 사방에 깔린 상황.
방어력이 낮은‘물몸’인‘마법사’가 무엇을 한단 말인가. 공격하려고 마법 전개하다가 뚝배기 깨지지.
고로, 쓰러뜨리지 말라고 배치된 몬스터인 것.
그걸 강기찬이 쓰러뜨렸으니…….
‘이번에도 좋은 걸 주려나?’
기대되었다.
막연한 기대감은 아니었다.
근거가 있었다.
‘NPC알렉스를 쓰러뜨렸을 때는 맵핵을 보상으로 받았었지…….’
저번에도 사기적인 보상을 받았으니 이번에도 그와 비슷한 사기적인 보상을 주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머지 부분을 마저 읽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줄 보상, ‘투시의 눈’이 주어집니다.]
‘투시라니…….’
이번에도 상식을 벗어나는 보상을 받았다.
따로 설명도 필요 없었다.
띠링!
[현재, 계정에는‘천공의 눈’을 착용 중입니다.]
[다른 계정에는 눈을 착용 가능합니다.]
[‘투시의 눈’을 착용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여기서 한 가지 감사한 게 있었다.
본래 눈도 한 세트만 착용할 수 있는데 두 계정이 동시 접속 중이라‘눈’도 두 세트를 동시 착용할 수 있게 되었다.
‘… 두 계정이어서 다행이네.’
하나의 계정이었다면‘투시의 눈’을 사용하기 위해선 기존에 착용 중이던‘천공의 눈’을 빼야 했을 거다.
‘하나만 쓰기엔 둘 다 좋은데.’
물론, 하나를 쓴다고 다른 걸 못 쓰는 건 아니다.
교체하면 되었다.
다만, 10초 이상 걸린다.
긴박한 상황에선 못 쓰는 거나 다름없다.
평상시에도 되게 귀찮고.
‘둘 다 착용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투시의 눈’을 착용했습니다.]
‘투시라… 맵핵 못지않은 핵이네…….’
가려진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점. 투시만이 가능한 핵심 기능이었다.
‘투시의 눈’을 착용하자마자 시야가 달라졌다.
‘시련의 공간 – 어둠’에도 미로처럼 벽이 많았는데 그 벽 너머가 훤히 뚫려 보였으니까.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득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바닥, 그 아래가 투명하게 비쳤는데 무언가 있다?
‘또 다른 공간?’
각종 두꺼운 서적이 꽂힌 책장과 해골 모형, 기다란 책상, 그 위의 다양한 색상의 물약들… 누군가가 실사용하고 있는 방이 틀림없었다.
‘누가…….’
그 누군가가 누군지는 깊이 생각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인스?’
아무래도 NPC하인스의 연구실이지 싶었다.
순전히 감이 아니었다.
“어!”
실제로 NPC하인스가 거기 있었다.
그리고 막 NPC하인스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강기찬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서로 눈이 마주쳤다.
강기찬이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아, 안녕하세요?”
“……!”
NPC하인스가 당황했다.
허공에 떠있다가 저도 모르게 떨어졌다.
콰-앙!
얼굴이 불그레한 채 황급히 상, 하의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