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NPC하인스는 자신이 침을 흘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만큼 강기찬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의 행보는 실로 파격적이어서.
‘핵도 아니야…….’
가장 처음으로 확인한 건 핵의 여부다.
핵은 자신이 알 수 있는 게 아니었으므로 상부에 협조 요청을 했다. 이후에 통보받은 바에 따르면 핵이 아니었다.
‘내가 설정을 잘 못 건드린 것도 아니고…….’
설정은 지난 20여 년간 바뀐 적 없었다. 여태껏 잘 되다가 이제야 맛이 갔을 리도 없고. 그래도 혹시 몰라 확인했지만… 설정은 그대로.
핵과 설정.
두 가지 의심이 지워졌다.
‘내가 설정을 잘 못 건드린 것도, 핵도 아니거늘.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가…….’
그게 참 기막혔다.
이 어둠을 고안한 자신 외엔 보는 게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 그걸 일개 초보자 나부랭이가 볼 수 있다고?’
자신의 발끝에도 못 따라오지만, 그나마 뒤를 따라오는 게 용사이자 제자인 앤드류였다.
그마저도 어둠 속에서 앞이 보여서 시련을 통과한 게 아니었다. 대기 중에 흩어진 마력의 흐름을 읽어 지형지물을 파악해 어둠을 헤쳐나갔던 거다.
그랬기에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했고 진행속도가 되게 느렸다.
저 용사는 그와 비교를 불허했다.
마치 다 보인다는 듯 행동하지 않나.
빠르고 정확했다.
아니, 그게 핵심이 아니다.
마력을 읽는 건, 마법사만 할 수 있다.
그랬다.
애초에 이 시련은 초보자를 위한 게 아니다.
그렇다고 시련을 돌파하는 게 불가능하진 않다고 여겨 초보자임에도 시련을 내주긴 했지만…….
두근, 두근!
‘내가 이 나이에 심장이 벌렁거리다니, 그것도 남자를 보고 말이야…….’
죽을 때가 다 된 걸까?
* * *
대마법사 전직 교관 NPC 하인스.
그가 강기찬을 발견하기 10분 전.
[‘시련의 공간 – 어둠’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제한 시간] 3시간
강기찬은 참가비를 내고 시련의 공간으로 넘어왔다.
그러자마자 칠흑 같은 어둠이 그를 반겼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제 손도 안 보일 정도.
그런데도 당황하지 않았다.
이럴 걸 예상했기에.
‘그대로인가?’
시련 내용이 안 바뀐 것 같았다.
더 있어 봐야 정확해지겠지만.
만약 시련이 예전 그대로라면…….
‘다 탈락시킬 자신이 있다 이거지.’
대마법사 전직 교관 NPC 하인스.
그가 신규 유저의 수준을 어찌 평가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긴, 뭐 고인물도 못했던 시련이긴 하지만.’
강기찬은 눈앞에 새로 생긴 하얀 문구를 보았다.
《 경고! 》
[‘시련의 공간 – 어둠’의 환경설정은‘밤’으로 고정됩니다.]
[이 어둠 속에선 빛을 밝힐 수 없습니다.]
[괜히 어둠을 밝히려 하지 마십시오.]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어둠에 적응하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한 마디로 어두운 채로 있으라, 이거다.
하나, 어디 사람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동물인가?
현대인은 어둠을 그대로 두려 하지 않는다.
촤-아악!
라이터를 켜지는 소리.
동시에 먼 곳에서‘점’처럼 작은 불빛이 생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불빛이 꺼졌다.
라이터를 켜자마자 꺼진 것이다.
“어?!”
당황 섞인 신음.
그 소리엔‘본인이 끈 게 아니라는 결백’이 함축되어 있었다.
촤-악! 촤악! 촥!
“이거 왜 이래?”
재차 라이터를 켰지만, 꺼졌다.
재도전. 또 켜지자마자 꺼졌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 반복의 반복.
그리고 잠시간 소리가 나지 않았다.
“하…아.”
긴 한숨은 포기함을 의미했다.
그제야 경고문이 허언이 아닌 걸 깨달았을 것이다.
- 어둠 속에선 빛을 밝힐 수 없다.
- 어둠을 밝히지 마라.
가장 중요한 건,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였다.
퍽!
둔탁한 둔기로 치는 소리.
딱 한 번 났다.
그러고 나선 장내에 적막이 감돌았다.
경고를 무시한 자에게 가해지는 형벌이었다.
그러나 그의 희생이 마냥 헛된 건 아니었다.
저 한 사람이 본보기가 되어주어 많은 사람이 살게 되었으니까. 막 이곳으로 넘어온 뒤, 조용히 불을 켜려고 시도한 자들이 행동을 정지했다.
아주 미세하게나마 느껴지는 기척이었다.
역시 여긴 꽤 많은 이들이 있다.
다만, 다들 숨죽이고 있다.
이미 저자 이전에 누군가 본보기가 되어주었던 모양.
그래봤자 이 참상을 보지 못한, 나중에 들어올 이는 또다시 똑같은 우를 범할 터. 하지 말라는데, 꼭 저러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니까.
강기찬은 들어오자마자 외부에 신경을 껐었다.
빠르게 경고문 다음에 뜨는 창을 보는 중이었다.
[마법사는 어떠한 돌발상황에도 당황하지 않는 부동심을 덕목으로 갖춰져야 하는 법! 나, 대마법사 하인스는 그대들에게 돌발상황, 하나를 내던져줄 것이니라.]
[그것은 칠흑 같은 어둠이다.]
[마법사는 눈에 보이는 것만 탐구하는 존재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탐구할 수 있어야 하는 존재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읽을 줄 아는 자만이 지식의 열쇠를 찾을 수 있으리라…….]
[그대들이 있는 시련의 공간 어딘가… 열쇠가 있을지니, 탈출구를 찾아 나가라,]
[해낼 자신이 없다면 현상 유지도 나쁠 것 없다.]
[제한 시간] 10분.
다 읽고선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1. 열쇠 찾기.
2. 탈출구 찾기.
다들 이걸 봤을 터.
그런데도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는다.
하긴, 무엇을 찾을지 알면 뭐하나,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데. 막말로 발언 저리에 열쇠가 있다 해도 모를 텐데.
1억 내고 10분간 있다가 나가는 게 예정된 순서이리라.
반면, 강기찬의 상황은 나았다.
‘… 보이네.’
맵핵을 켰는데 정상 작동되었다. 강기찬에게만 보이는 시스템이라 어둠과는 무관하게 적용되는 모양.
맵핵엔 지형지물이 다 보였는데 열쇠의 위치도 나와 있었다. 그리로 이동을 위해 공중부양을 한 뒤 휠체어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인벤토리 너머의 앞이 캄캄했다. 맵핵만 보고 열쇠까지 갈 수 있을까?
아니, 절대 불가능하다.
맵핵을 보기 전엔 맵핵만 보고 열쇠까지 갈 수 있지 싶었다.
하지만, 맵핵을 보고 나니…….
‘이건 불가능하지.’
… 감히 함부로 이동할 엄두를 못 내겠다.
일전에 허수아비의 논밭 미로는 양반일 정도로 여긴 복잡하고 함정표식이 많이 찍혀 있었다.
‘뭐, 어차피 아무것도 안 보이는 이 상태로 갈 생각은 없었지만.’
맵핵이 되냐, 안 되냐를 떠나서 애초에 이 어둠을 밝히고 다 보이게 만든 뒤에 이동하려 했다.
강기찬은 그것이 가능했다.
이 어둠을 밝히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누가 들으면 어이없어할 정도로.
우선, 환경설정 창을 열었다.
항목 중, ‘그래픽’을 눌렀다.
띠링!
《 환경설정 – 그래픽 》
[화질]
초저화질( ) / 저화질( ) / 보통( ) / 고화질( ) / 초고화질(V)
[세부묘사]
아주 낮은( ) / 낮은( ) / 보통( ) / 높음( ) / 아주 높음(V)
현재 화질은‘초고화질’, 세부묘사는‘아주 높음’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런 게임에서나 볼법한 설정은 이곳이‘던전’이라서 가능했다. 던전은 게임 시스템이 고스란히 적용되지 않나.
그리고 그 덕분에 이 어둠을 밝히게 되었다.
어둠을 밝히는 방법은…
따닥!
《 환경설정 – 그래픽 》
[화질]
초저화질(V) / 저화질( ) / 보통( ) / 고화질( ) / 초고화질( )
[세부묘사]
아주 낮은(V) / 낮은( ) / 보통( ) / 높음( ) / 아주 높음( )
…그래픽을 제일 낮게 떨어뜨리는 것이다.
화질은 초저화질, 세부묘사는‘아주 낮은’으로 바꾸었다.
그러자마자…….
‘됐다.’
어둠이 걷히고 앞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벌건 대낮처럼…….
이게 가능한 건, ‘초저화질’에서는‘어둠’이 구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초저화질에선 한낱 그림자도 표시가 안 되는데 이런 특수한 어둠을 초저화질에서 구현할 수 있다? 어불성설이지.’
이보다 못한 그래픽 효과조차 초저화질에선 감당할 수 없다. 하물며 그보다 높은 그래픽 효과를 감당할 수 있겠나?
‘아직 아무도 모르네.’
맵핵을 보니‘강기찬’외에 이동하는 이는 없었다.
그럴 줄 알았다.
‘이게 알고 보면 아주 쉽고 간단한데, 모르면 평생 모를 수밖에 없는 거니까.’
이 정보는 자신만 알고 있다고 보았다.
좋던 화질을 안 좋게 바꿀 리 없기에.
가상현실 게임에서 제일 좋은 화질은‘현실 그 자체’다.
현실이 게임이 되어 자연스레‘초고화질’로 설정되어있던 거다. 그걸 굳이 최악으로 바꿔야지만, 찾아낼 수 있는 일종의 버그인 것이다.
앞으로도 이걸 찾아낼 유저는 없을 것이다.
미친 짓이라서.
초저화질은 손에 쥔 검이 안 보일 정도다. 사냥에 지장이 막심하다. 그 정도의 위험요소를 안겠나. 막대한 돈도 걸린 일인데.
‘나도 평생 모를뻔했지.’
그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취미에 쓸 돈이 없었다.
취미 중 최고가인 가상현실게임은, 먼 나라 얘기.
하지만 현실처럼 걸을 수 있다 하니 꼭 하고 싶었다.
당시 9살이라 돈 벌 수도 없었다.
그랬기에 고물상에서‘고철’ 가상현실 접속 기기를 구해서 직접 고쳤다.
어찌어찌 게임은 돌아갔지만, 당연히 성능은 최악. 한 발 내딛기도 전에 렉이 걸렸고 5분간 멈추기 일쑤.
그래도 게임을 포기할 수 없었다.
한 번 걸어보니 잊을 수가 없었다.
답은 그래픽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성능이 안 좋으면 돌멩이의 그림자 하나, 하나도 속도에 지장을 줄 정도니까. 우습게도 저화질이었는데도 그랬다.
결국, 초저화질로 떨어뜨렸다.
그렇게 하고 나니 비로소 렉이 없어졌다.
그리고 게임을 하다가 깨달았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밤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착잡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남들은 자연히 찾아오는 밤이, 나한테는 오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게 좋은 점도 있다는 걸 금세 알았다.
남들은 밤에 사냥 못 한다.
하더라도 편하지 않다.
안 보이는 대로 하거나 횃불을 들었다.
반면 자신은 그냥 잘 보였다.
‘현실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을 보지 못하는 대신, 큰 이점을 얻은 것이다.
‘그 덕분에 여러모로 이득이 쏠쏠했지.’
나중에 프로게이머로서 돈을 벌고나서도 필요할 때마다 잠간씩 일부러 초저화질로 떨어뜨리기도 했었다.
‘오랜만이네, 이 화질도…….
초저화질답게 시야가 흐릿했다. 눈 나쁜 사람이 안경을 벗었을 때의 시야 같달까.
‘좀 화질이 구리긴 하지만… 뭐 아예 못 보는 것보단 낫지.’
빠르게 비행해 열쇠를 찾았다.
도중에 함정이 많았지만 다 보이고 또 프리스탯포인트 400을 민첩에 때려 박아서 피하는데 문제없었다.
이제 탈출구로 나가면 끝난다.
그러나…….
‘뽕뽑고 나가야겠지.’
눈뜬장님이 곳곳에 널려있다.
그냥 지나치면 강기찬이 아니다.
‘하인스 할아버지가 심장마비 안 걸리셔야 할 텐데…….’
벌써 NPC하인스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꽤 놀라게 해줄 예정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