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스페셜 클래스.
노멀 클래스의 상위호환이었다.
대표적으로 대마법사, 네크로맨서가 있다.
그러니 유독 여기 대기 줄이 길 수밖에.
대마법사 전직 조건은 세 가지이지 않나.
1. 대마법사 전직 교관 NPC 하인스 찾기.
2. 마법사.
3. 전직 가능 레벨 9,000.
이것들을 생략하지 싶었다.
진입장벽이 대폭 낮아진 셈.
레전드스토리에 무지한 사람도 이게 얼마나 천재일우의 기회인지를 모르진 않을 것이다.
‘이러면 기존 유저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겠는데…….’
강기찬은 SNS는커녕 인터넷도 켜지 않았지만,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그쪽이 얼마나 활활 타오르고 있을지.
‘뭔가 다른 조건이 있겠지… 설마 이 많은 수를 스페셜 클래스로 전직시켜주겠어?’
대기인원만 1천 명이 넘어갔다. 사회적으로 이슈되어 추가 합류도 될 터.
‘… 대마법사를 수천 명을 양산하진 않을 것 같은데…….’
그때였다.
“아니! 이걸 어떻게 하라고! 장난하나 지금?!”
맨 앞줄에서 고성이 오고 갔다.
선두에 선 유저가 NPC에게 내는 고함이었다.
“1억? 1억이 누구 집, 개 이름도 아니고!”
“무슨 일인데요?”
뒷줄 유저들이 호기심이 못 참고 물었다.
맨 앞에 있던 유저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 글쎄 참가비를 걷는답니다.”
“차, 참가비요?”
“예, 전직을 위한 시련이 있는데 참가비로 1억을 내랍니다.”
“1억이 코인? 아니면 현금?”
“현금이요.”
“헉…….”
그 소식이 퍼지며 일대가 술렁였다.
다들 공짜로 대마법사 전직할 줄 알았나 보다.
반면, 강기찬은 아니었다.
‘역시. 레전드스토리 본사가 미치지 않고서야 대마법사를 날로 줄 리 없지. 대마법사로 홍보해서 사람 좀 끌어모은 뒤에 돈 좀 벌겠다, 이거네.’
애초에 공짜로 대마법사 전직할 수 있을 거라 여기지 않았다. 그랬기에 참가비를 걷는다고 해도 동요하지 않았다.
아니, 다행이었다. 참가비가 1억에 그쳐서.
1. 대마법사 전직 교관 NPC 하인스 찾기.
2. 마법사.
3. 전직 가능 레벨 9,000.
‘이 세 가지 진입장벽을 생략해주는 대신 1억 받는 거라고 보면 이득이지.’
예전 같았으면 돈을 줘도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돈이 없다면 모를까, 돈만 있다면 정말 편한 거다.
그리고 그의 기준에서도 1억이면 싸게 먹히는 것이었다.
‘1억이야 나한테도 있고, 경석에게도, 그 아버지에게도 있으니까.’
1억을 얻을 길이 많았다.
고로, 1억 준비야 전혀 문제없었다.
그건 그 혼자만 그런 건 아닌듯했다.
‘많이 안 빠지네.’
대열 이탈이 거의 없다.
참가비 1억을 내겠다는 거다.
‘그럴 만하지.’
1억이 누구 집, 개 이름도 아니지만, 못 낼 것도 없다.
돈이 없으면 대출을 내서라도 마련해야 했다.
대마법사가 될 수 있다면 그깟 1억이 대수겠나. 수백억대 연봉은 떼놓은 당상이고, 장래에는 재산 순위 TOP10에도 들 수 있을 터.
아니, 그때부턴 돈이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국가 정상이 함부로 대할 수 없다.
그야말로 독보적 위치에 설 수 있는 것!
망상이 아니다.
실제로 현실에서 그러고 있는 인물이 있기에.
유일무이한 대마법사 앤드류가 그러했다.
제2의 앤드류가 될 수 있다는데 기회비용으로 1억쯤이야 능히 감수할 수 있었다.
모두가 인생역전을 상상할 때…….
강기찬은 다른 걸 꿈꾸었다.
‘대마법사는 레벨 격차가 많이 나도 데미지가 들어간다!’
본래 레벨 격차가 너무 나면 데미지가 아예 안 들어간다.
필살기를 갈겨도 Miss의 연속.
하지만, 대마법사는 2차 전직이다.
1차 전직 9,999레벨보다 등급이 높다.
즉, 강기찬이 대마법사가 되면 웬만한 유저는 레벨이 9,999라도 데미지를 줄 수 있게 될 터.
물론 유저에게만 통한다.
몬스터에겐 1차 전직 같은 게 없으니까.
그래도 이득이다.
‘유저한테만이라도 데미지가 아예 안 먹히는 거랑, 먹히긴 하는 거랑은 다르지.’
이거 하나만 보고 전직하는 것도 아니고 일종의 보너스 개념이었다. 좋았다.
한편,
“자!”
대마법사 전직 교관 NPC 하인스.
그가 지팡이를 목에 갖다 대고 말했다.
듣기 좋은 확성기로 통보하는듯했다.
- 각자 시야에 창이 하나 뜰 게다…….
띠링!
[대마법사 전직 시련 참가비를 내시겠습니까?]
[참가비] 1억(현금)
[ Y / N?]
* 수락할시, 계좌에서 1억이 빠져나가며 즉시 시련에 참여할 수 있게 시련의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제한 시간] 1시간
- 다 보았는가? 입 아프게 말하지 않겠노라. 딱 1시간. 그 안에 결정하길!
슉- 슈슈슉! 슉, 슉 슉 슉슉슉슉!
유저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참가비 내고 시련의 공간으로 이동한 것일 터.
하나, 그건 극소수였다.
대다수가 제자리에 있었다.
참가비 때문에 망설여서가 아니다.
알아보고 있는 거다. 대마법사 전직 시련에 대해서.
전직 시련이 무엇인지, 뭘 해야 하는지, 뭐가 있는지, 어떤지, 팁은 뭐가 있는지, 공략 영상이라고 올린 것들을 훑어보고… 생각하고… 나도 할 수 있을까, 하기까지…….
사전 지식을 쌓는 중이었다.
그랬기에,
‘풋!’
일찍이 공간으로 이동한 자들을 비웃었다.
‘뭘 알아보지도 않고선 냅다 들어갔네?’
‘멍청하긴, 하인스가 괜히 1시간씩이나 시간을 준 게 아닌데.’
‘이게 다 미리 알아보고 들어가라는 거잖아… 대마법사 전직 시련이 어떤 건지를…….’
‘바보네, 바보.’
다들 우월감에 심취해 있었다.
자신들은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했는데 저들은 못 했다고.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대마법사 전직 시련 참가할지 안 할지를 정하는데 1시간이나 시간을 줄 필요가 있나 싶었으니.
‘일단 경쟁자 몇 명은 제친 거지.’
시작도 하기 전에 몇 명의 경쟁자를 제친 거라고 보았다.
그렇게 먼저 간 이들을 깔보는 것도 잠시…….
장내는 금방 조용해졌다.
‘진정한 경쟁자’는 좀 전의 극소수가 아닌 이곳 대다수니까.
그랬기에 내적으로 분주했다.
데구르르, 눈알 구르는 소리가 날 것 같았다.
다들 그만큼 빠르게 눈을 굴리고 있었다. 앞으로 닥치게 될 시련을 조금이라도 더 잘 헤쳐나가기 위해서.
하나, 강기찬은 느긋했다.
다른 이들을 따라 동영상을 보기는커녕 인터넷에 접속하지도 않았다.
‘… 의미가 없지.’
그도 과거에 대마법사 전직 시련을 많이 봤었다.
그렇기에 다시 볼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너무 잘 기억나서가 아니다.
기억은 희미했다.
그렇지만,
‘그건 예습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
대마법사 전직 시련은 보고 베낄 수 있는 게 아니다.
축구경기 같은 거다.
선수 본다고 따라 할 수 없지 않나.
또한,
‘예전에 했던 시련을 그 내용 그대로 다시 한다는 보장도 없고…….’
레전드스토리는 하루에도 몇 번을 잠수함 패치를 했었다. 그래서 유저들이 나중에야 바뀐 게 있다는 걸 눈치채기 일쑤였다. 고이지 않고 흐르는 물 같달까.
대마법사 전직 시련도 바뀌지 않았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시련 내용이 바뀌었을 수도 있었다.
물론,
‘높은 확률로 예전에 했던 시련을 그 내용 그대로 다시 할 것 같긴 하다만…….’
똑같은 문제를 20년간 냈는데 맞춘 사람이 한 명밖에 없다고 치자, 그리고 그 한 명이 해답을 유출 시키지 않았고.
그럼 그 문제를 굳이 엎고 다른 문제를 낼 필요가 있을까?
즉, 시련 내용이 안 바뀌었을 수도 있었다.
그럴 확률이 매우 높았고.
‘뭐 확실한 건 들어가 봐야 알겠지.’
확실한 건, 시련의 공간으로 이동해봐야 알 터. 이번에도 20년간 내왔던 그 문제와 똑같은 문제인지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잠깐’ 기다렸다.
‘만약 예전에 했던 시련과 그대로라면…….’
시련의 공간이 열리자마자‘바로’ 들어가면 안 좋다.
그렇다고 너무‘늦게’ 들어가는 것 또한 안 좋지만.
굳이 적기를 따지자면,
‘지금이 적기다!’
지금이었다.
시련의 공간으로 진입하기 가장 좋은 타이밍은.
[대마법사 전직 시련 참가비(1억(현금))를 내셨습니다.]
[시련의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강기찬은 시련의 공간으로 이동했다.
이를 본 몇몇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경쟁자가 또 하나 사라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 가네? 어느 정도 알고 안 가는 줄 알았는데…….’
‘저렇게 눈치가 없을 줄이야…….’
이해가 안 갔다.
참가비를 내라고 할 때, 넘어갈 자들은 진작 넘어갔다. 나머지는 예습할 정도의‘눈치’는 있어서 안 가고 있다고 여겼다.
강기찬은 바로 가는 것도, 자기네들처럼 나중에 가는 것도 아니다. 참 묘한 시기에 갔다.
‘뭘 보기는 보고, 가긴 간 건가?’
5분이 채 안 지났을 시간.
인터넷 게시글 하나 읽거나, 짧은 동영상 스킵해서 볼 시간밖에 안 되었다.
그래서 결론이 났다.
시련에 대해 예습은 하지 않을 거로.
‘그냥 다른 사람 눈치 보다가 들어가는 거네…….’
‘실망이네…….’
‘개이득이다!’
* * *
대마법사 전직 교관 NPC하인스.
그는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이게 커피라는 거구나… 맛있구먼?’
코끝으로 커피 향을 훑으며 홀로그램 화면을 응시했다.
그 속에서 멈춰 있는 용사들이 보였다.
정지 화면이 아니다.
호흡도 하고 고개를 휘젓기까지 한다.
그런데도 이동하지는 못했다.
저긴 아무것도 안 보이는 어둠 속이니까.
그런 데서 대뜸 걷기부터 하는 인간이 어디 있겠나……. 불을 밝혀도 밝아지기도 전에 어둠에 침식되는 수준인데.
그저 어둠이 걷히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겠지.
그러던 그때였다.
“어?”
NPC하인스의 눈이 커졌다.
그러더니 마시던 커피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잘못 본 건가 싶어 뚫어지게 보았고 그제야 확신했다.
“뭐야? 왜 움직여?”
유독 한 명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이동하는 중이다.
이동 자체야 문제없다.
저자가 나타나기 이전에도 몇몇은 이동했으니.
하지만 얼마 못 가 멈추고 만다.
아니면 가더라도 몇 번 부딪치다 보면 포기하거나.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니 그게 한계인 것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아니다.
이동하다가‘장애물’을 피하기까지?
우연?
그래, 우연이어야 한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이 어둠을 물리칠 수는 없다.
어떻게 장애물을 피하겠는가.
특이한 점은 저 자는 어둠을 물리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자신이 주목하기 전에는 시도했었을까?
아니면 시도하지 않았을까?
그건 알 수 없다.
지금이 중요하지.
한 번, 두 번, 세 번…….
마치 앞이 잘 보인다는 듯이‘장애물’을 피하고 있다.
또한, 어떠한‘목적성’을 지니고 돌진하고 있다!
벌떡!
NPC하인스가 황급히 일어섰다.
“저… 저… 뭐야? 핵인가? 아니, 내가 설정을 잘 못 건드렸나? 대체 뭐란 말인가!”
와장창!
어찌나 놀랐던지 근처에 있던 커피잔을 깨부수고야 말았다.
“앤드류 때와 똑같… 아니, 더 빠른 속도다!”
유일하게 이 시련을 통과한 대마법사 앤드류, 그보다 훨씬 더 빠르게 시련을 헤쳐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