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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 테스트서버-43화 (43/151)

43화

* * *

강기찬은 정체를 숨기고자 복면을 썼다.

완벽한 방법은 아니다.

본의 아니게 복면이 벗겨지거나 걸음걸이, 신장, CCTV 추적, 그 외에도 사소한 단서로 자신이 특정될 여지도 있기에.

경석으로 로그인하면 어떨까?

정체가 들켜도 경석으로 들킬 터.

완벽하게 정체를 숨길 수 있으리라.

* * *

퉤-에엣!

경석이 물을 내뿜었고.

그 물은 GM미르의 얼굴을 덮쳤다.

“야, 잇씨! 뭐야 너! 미쳤냐!”

GM미르가 경석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둘은 한국 여행 중이었다.

국밥집에 들렀는데 TV에 하늘에서 웬 복면인이 나와 썬더버드와 사라지는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뉴스속보라는 파란 바탕에 하얀 글씨가 적히더니… 경석의 얼굴과 이름이 뜨는 게 아닌가.

복면인의 정체라면서…….

‘내가 왜 저기서 나와?’

경석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GM미르는 휴지로 얼굴을 닦다가 경석의 시선을 따라 TV를 보았다.

“어?”

GM미르가 TV화면과 경석을 연신 번갈아 보았다.

“저거 너야? 실물이 왜 저래?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가 얼굴로 몰렸… 아니 그보다, 너 화장실에서 오래 있었던 게 저 짓하고 오느라 그랬던 거야?”

“아, 아니, 제가 한 게 아닙니다.”

경석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

GM미르는 단박에 상황을 이해했다.

경석이 한 게 아니라면 누가 했겠나.

“걔도 참, 성격도 좋다. 자길 죽이려 했던 놈을 영웅으로 만들어줬네. 뭐, 다 생각이 있어서 저지른 짓이겠지만… 그나저나 너, 기분 좋겠다? 가만히 앉아서 영웅 됐어!”

“…….”

경석은 무표정했다. GM미르의 말을 곱씹으면서.

‘…이게 과연 기분이 좋은 일인가?’

누가 제 얼굴과 몸을 하고선 나라를 구했다?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제 몸을 뺏고선 제멋대로 일을 벌인 거니.

그리고 그 영광을 자신이 누리는 것도 아니고, 강기찬만 그 영광을 누릴 텐데.

그런 그가 인상 찌푸리자 GM미르가 이해를 도왔다.

“네가 길 한복판에서 벌거벗고 똥 누는 걸 생중계하는 것보단 낫지 않아?”

물론, 그것보다는 저러는 게 낫다.

하지만…….

“저… 그건 너무 극단적입니다.”

“아니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

“……예?”

경석이 정색했다.

제 얼굴과 몸을 한 강기찬이, 길 한복판에서 벌거벗고 똥 누는 걸 생중계하는 것.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GM미르가 말했다.

“어차피 기찬이 기준에선 남의 얼굴과 몸인데 못 할 게 뭐야? 일을 저질러도 부끄러움은 네 몫인데.”

“…….”

“그러니까, 앞으로 기찬이한테 잘 보여야 할 거야.”

“아…….”

경석은 그제야 깨우쳤다.

강기찬이 마음만 먹으면‘경석’이란 인간을 사회적으로 매장할 수 있음을.

‘… 그래, 미르의 말이 맞아. 못할 것도 없지.’

그간 강기찬의 행보를 비추어봤을 때, ‘경석’이란 인간을 인간쓰레기로 만드는 것 따위는 일도 아닐 터.

GM미르 말을 이었다.

“너나 나나, 기찬이에게 잘 보여야 해. 물론, 나한테 잘하는 게 기찬이에게 잘하는 거나 진배없지.”

경석은 이 여자도 참 영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강기찬보다 위의 존재라는 걸 각인시킨 거다.

네가 허튼수작 부리는 즉시 강기찬이 경석의 몸을 한 채, 나체로 춤을 출 거라고 경고하는 것 같지 않나?

문제는 마냥 비현실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거다.

“뭐야, 너 왜 국밥 안 먹어?”

“아, 전 입맛이…….”

본인의 나체 쇼를 상상했는데 입맛이 있을 수가…….

“그래? 그럼 내가 먹어도 돼?”

“예?! 아니, 하나 더 시켜 드시죠. 돈도 많으신데.”

경석은 또 한 번 짜증이 솟구쳤다.

지금 여행비, 식비, 강기찬이 줬지만, 자신의 돈일 확률이 높았다.

“아, 하나 더 시키는 것도 좋지. 근데 남의 거 뺏어 먹는 게 최고 아니겠어?”

경석도 그 마음을 잘 알았다. 남의 거 뺏어 먹는 게 최고인 거.

하지만, 굳이 남이 먹다가 남긴, 그것도 물 뿜은 걸 먹겠다니.

“다 먹었다! 이모! 다섯 그릇 더!”

경석은 놀랐다. GM미르의 식사 속도와 위장용량에.

순식간에 열 그릇째.

회전초밥집에 접시를 쌓아두는 건 많이 봤어도 뚝배기를 탑처럼 쌓는 건 처음이었다.

GM미르가 막 열한 그릇째를 다 먹자마자 배를 탕탕 두드렸다.

“나, 화장실 좀!”

GM미르가 화장실을 가자 경석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람이라도 쐬려고 한 것이다.

그러다가…….

“어?”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는‘경석’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왜 여기로 들어와? 아, 아니지!’

경석은 이내 깨달았다.

자신의 얼굴과 몸을 한 이가 다름 아닌 강기찬이라는 것을.

“어? 경석이다!”

“경석님 싸인 좀!”

“아, 네.”

손님들이 벌떼같이 모여와 그에게 사인을 요청했다.

“저, 셀카도…….”

“얼마든지요.”

이를 지켜보는 경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기분 개 같네, 진짜…….’

강기찬의 등장이 의외였으나 마침 만나고 싶던 참이었다.

사인회가 마무리되고, 강기찬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야! 너 잘 만났다. 미쳤어?”

경석이 다짜고짜 욕부터 날렸다.

그에 반해 강기찬은 시큰둥했다.

“뭐가?”

“내 허락도 없이 멋대로 굴면 어떡해?”

경석의 시선이 TV로 향했고 강기찬도 그걸 보았다.

“아… 저거? 허락해줄래?”

“… 장난해?”

“누가 복면 쓰고도 털릴 줄 알았나?”

“처음부터 네 몸이었으면 됐잖아.”

“썬더버드한테 몸 상할지도 모르는데 굳이 내 몸으로? 결과를 보니까 너로 로그인한 게 천만다행이다 싶은데?”

실은, 강기찬은 노출이 되든 말든 상관없었다. 다만, 그걸 굳이 경석에게 말하진 않았다.

“으-이씨! 이번 일, 어떡할 거야? 어떻게 수습할 거냐고!”

“걱정하지마, 나 대신 네 아버지가 잘 수습 중이시니까.”

“아, 아버지가?”

“아주 좋아하시던데? 가문의 영광이라고…….”

“하… 그럴 리가…….”

“강기찬 섭외에 구국의 영웅까지 되었으니…….”

“…….”

경석은 씁쓸했다. 자신은 일평생 이루지 못한 아버지의 인정을, 강기찬은 불과 며칠 새에 이룬 셈이니.

“근데 내가 초보자인데 썬더버드를 잡은 건 아버지께 어떻게 설명해 드린 거야?”

“자-알, 근데, 너 잘 어울린다.”

현재, 경석은 눈, 코, 입만 뚫린 스타킹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나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냐? 사람들이 쳐다볼 때마다 얼마나 엿 같은지 알아?”

“너 그거 벗으면 더 엿 같을걸?”

“됐고! 본론만 말해. 여긴 왜 온 거야?”

경석이 강기찬이 온 목적을 물었다.

“네가 해줄 일이 있어.”

“아, 그래서 오셨구먼. 뭔데?”

“가서 말해줄게. 가자.”

“말해주기 전까진 못 가지.”

강기찬은 대략 설명해주었다.

이를 들은 경석이 정색했다.

“위, 위험한 거 아닌가?”

“괜찮아.”

“이걸 공짜로 해달라고?”

“그럼?”

“나한테도 떨어지는 게 있어야지?”

경석이 거래를 제안했다.

강기찬이 쪼갰다.

“내가 너 국민 영웅으로 만들어줬고 집안에서의 입지도 한층 탄탄하게 해줬는데 뭘 더 바라?”

“어차피 그 혜택은 네가 다 누릴 거잖아.”

“너도 TV 보면서 대리만족할 수 있잖아?”

“…….”

경석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이런 끔찍한 대리만족이 있다니.

그때였다.

“싫다 이거지? 어쩔 수 없지…….”

강기찬이 테이블 위로 올라섰다.

그러더니 벨트를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불현듯, 경석은 GM미르의 말이 생각났다.

- 네가 길 한복판에서 벌거벗고 똥 누는 걸 생중계하는 것보단 낫지 않아?

- 저… 그건 너무 극단적입니다.

- 아니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

경석이 헐레벌떡 일어섰다.

“뭐, 뭐 하려고!”

이미 손님들의 이목이 이리로 집중되었다.

강기찬은 아랑곳하지 않고선 바지를 약간 내렸다.

팬티색이 보일락 말락 하는 단계.

“어머! 저 사람 왜 저래?”

“미쳤나 봐.”

강기찬이 활짝 웃으며 경석을 내려다보았다.

“사람들, 스마트폰 들기 직전이다. 난 화보 찍는다는 마음으로 최고의 포즈로 응해줄 예정이야. 내일 기사 제목, 국민 영웅 경석, 알고 보니 노출증 환자? 어떡할래? 내일 신문 1면에 또 한 번 실려 볼래? 아니면…….”

“아, 아아아알았어! 그만하고 내려와! 얼른!”

경석의 만류에 강기찬이 한숨을 쉬고선 내려왔다.

“다음부터는 괜한 반항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명예롭게 죽고 싶으면…….”

“아, 알겠어…….”

경석은 단념하고야 말았다.

“나 먼저 나가 있을 테니까, 미르님하고 같이 나와.”

강기찬은 국밥집에서 나오면서 귓속말했다.

[강기찬] 끝났습니다. 나오셔도 됩니다.

[GM미르] 어떻게 됐어?

[강기찬] 미르님 덕분에 수월했습니다. 경석이가 자기 몸 가지고 노출쇼할까봐, 얼른 수락하더군요.

[GM미르] 내가 뭐랬어,

네크로맨서 전직, 진시황의 100만 대군을 쓰러뜨리기.

그 첫 번째 준비로 어인족들의 협조를 약속받은 상태다.

지금, 경석을 포섭함으로써 그 두 번째 준비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 * *

세 번째 준비부터는 난이도가 대폭 상승한다.

중국, 진시황릉 던전으로 찾아가야 했다. 이는 경석의 재력과 인맥으로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강기찬과 경석은 진시황릉 던전 입구에 도착했고, 경석이 무심결에 포탈에 한 발을 내디뎠다.

띠링!

[입장할 수 없습니다.]

[입장 제한]

1. 유저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

2. 3,000레벨 이상만 입장 가능

“어? 이걸 어떻게 들어가겠다는 거야? 너도 안 되잖아?”

경석은 의아했다.

자신도 유저가 아니니 1차에서 튕기고, 강기찬도 유저라 1차는 통과한들, 절대로 3,000레벨일 리 없으니 2차에서 튕길 터.

결론은 둘 다 입장 불가능.

그런데 강기찬의 말이 가관이었다.

“우리 둘 다 들어갈 거야.”

둘 다 입장 가능하다고 단언했다.

하긴, 입장 조건도 모르고 여기 왔을 리는 없을 터.

무언가 생각이 있으니 중국행을 했을 터였다.

그런데도 경석은 미덥지 않았다.

강기찬이 아무리 허언할 성격이 아니라지만 동시에 던전 입장 제한도 절대적이니까. 3,000레벨 이상의 유저만 입장할 수 있다면, 그런 거다.

두 요소가 충돌한다면 당연히‘입장 제한’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러나.

“일단 나부터 들어갈게.”

“그래…….”

몸소 보여준다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랴.

강기찬이 포탈에 들어갔다.

띠링!

[네크로맨서 전직 퀘스트 중입니다.]

[레벨과 무관하게 특별 입장이 가능합니다.]

새벽에 테스트서버 접속 때, 해저왕의 심해에 들렀다가 네크로맨서 전직 교관NPC와 접촉해 퀘스트를 받았었다.

그렇기에 입장 조건미달이어도 특별히 입장이 가능했다.

강기찬은 진시황릉 던전에 입장했다.

그러자마자-

[강기찬님이 당신을 지구서버 - 진시황릉으로 소환하려 합니다.]

[소환에 응하시겠습니까?]

[경석님이 강기찬님의 소환에 응했습니다.]

[지구서버 – 진시황릉 던전으로 소환됩니다.]

강기찬은 경석을 진시황릉 던전 안으로 소환 요청했다.

경석은 즉각 소환에 응했다.

“난 유저가 아닌데도 던전에 들어와 지네?”

경석이 의아해했다.

“어, 무임승차와 같은 개념이지.”

지하철은 반드시 돈을 내고 타야 하지만, 무임승차를 하려면 또 할 수 있지 않은가. 소환이 그 역할을 한 것이다.

“이제 어쩔 거야?”

경석이 물었다.

아무래도‘일반인’ 신분으로 던전에 들어왔기에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데려와.”

“누, 누굴?”

“진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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