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 * *
익사(溺死)
물에 빠져 죽는 것.
레전드스토리에선 익사가 가능하다.
실제로 숨이 막혀서 죽는 건 아니고 생명력이 깎여나간다.
물론, 수중에서 숨 쉬는 방법이 있으나…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썬더버드가 너무도 갑작스럽게 등장해서. 현실로 나가 숨을 쉬고 돌아오면 된다고 여겼는데…….
‘좀 귀찮네.’
막상 경험해보니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테스트서버에서 나올 때마다 누가 계속 말을 걸기까지.
“저… 저기…….”
누가 있을 줄은 알았다. 썬더버드가 사라지자마자 해산했을 리는 없었을 테니.
국가의 중대사다. 저들 기준에선 의문투성이인 상태로 사건을 종결시키기엔 무리였을 터. 그런 까닭에 누군가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거라 본 것이다. 시간도 얼마 안 지났기도 하고…….
다가온 자는 한 명.
썬더버드는 어떻게 된 거냐, 당신 정체가 뭐냐, 귀찮게 굴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예의를 갖추고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말이 통하는 상대인가…….’
강기찬이 말했다.
“저기요. 혹시 산소호흡기 있습니까? 아니면 수중에서 숨 쉴 수 있는 도구라던지…….”
청용이 즉각 인벤토리에서 산소통과 산소호흡기를 꺼내며 물었다.
“이거면 되겠습니까?”
“딱 좋네요. 진작 물어볼걸…….”
“호, 혹시 더 필요한 건 없으신지?”
“생각나면 말씀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아, 아닙니다! 필요한 거 있으면 부담 없이 말해주시길.”
“예! 전 바빠서.”
강기찬은 냉큼 그것들을 챙겨 테스트서버로 돌아갔다.
청용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산소호흡기를 찾는 걸 보면 썬더버드를 물속으로 강제로 데려간 거야. 근데 물속은 썬더버드뿐만 아니라 저분한테도 위험한 거 아닌가? 자칫 감전되면 어쩌려… 아, 아니지. 저분은 감전을 걱정할 레벨이 아니셔. 그랬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지…….’
계속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잠깐, 근데 물속인데 왜 안 몸이 젖으셨지? 뭐… 방법이 있으시겠지… 그나저나 아직 썬더버드와의 전투가 한창이구나, 하긴, 벌써 썬더버드를 쓰러뜨리셨을 리가…….’
청용은 얕게 웃었다.
‘어쨌든 이걸로 나도 체면은 지킨 거야! 한국을 구한 영웅에게 도움이 된 거니! 킬을 못하면 이렇게 어시스트라도 해야지!’
강기찬의 업적에 숟가락을 얹는다고 착각하는 순간이었다.
* * *
테스트서버 – 해저왕의 심해 - 수심 4,000미터.
강기찬은 산소호흡기 덕분에 한결 여유가 생겼다.
‘썬더버드…….’
그 어떤 유저도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는 보스몬스터, 썬더버드. 그렇기에 어떤 아이템을 드랍하는지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다.
‘설마하니 알을 줄 줄이야.’
수중에 둥둥 떠있는 거대한 알.
썬더버드가 죽어서 자신의 알을 드랍한 것이다.
‘개이득이네.’
썬더버드가 어떤 아이템을 드랍하는지 온갖 상상을 했지만, 알일 줄은 몰랐다.
하나, 정말 좋았다. 아직 아이템 설명도 안 봤지만, 대략 용도를 유추 가능했기에.
‘보통 알은 깨 먹으라고 주는 게 아니지. 알을 부화시켜 새끼부터 키우라고 주는 거지.’
몬스터를 키우는 데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알을 부화시켜 새끼부터 키우거나.
기존의 몬스터를 길들이거나.
당연히 후자가 좋다. 기존의 몬스터를 길들이는 것 말이다. 성장에 드는 시간과 노력 없이 즉시 전력감으로 쓸 수 있기에.
하지만 이 상황에선 전자가 좋다. 알을 부화시켜 새끼부터 키우는 것 말이다.
기존의 몬스터를 길들이려면 생명력을 10%까지 깎는 선행 조건이 붙는다. 썬더버드의 생명력을 어떻게 깎을 것인가. 현재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
그래서 다행인 것이었다.
‘잘 키워줄게.’
썬더버드의 알에 다가가 붙잡았다.
‘와, 진짜 크네…….’
멀리서 봤을 때도 그랬지만, 가까이 오니 더 확실해졌다.
썬더버드의 알의 크기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개미가 수박을 바라보면 이렇지 않을까.
‘하긴, 썬더버드도 누우면 상암 월드컵 경기장 덮어버릴 정도였으니 그 새끼가 나올 알이라고 다르겠어?’
이윽고 썬더버드의 알에 대한 정보창이 떠올랐다.
띠링!
《 썬더버드의 알 》
[분류] 아이템
[등급] ???
[설명] 썬더버드의 새끼가 태어날 예정인 알.
[효과]
- 알에 접촉 중일시, 뇌 속성 공격 면역
[조건]
A. 썬더버드의 온기로 데워 부화할 수 있다.
B. 특수 조건 충족 시, 즉시 부화할 수 있다.
[제약] 획득일로부터 일주일 안에 부화하지 않을 시, 알이 깨진다.
썬더버드의 알 정보창에는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썬더버드의 알의 부화 조건.
총 두 가지다.
그중 첫 번째, 썬더버드의 온기로 데우기.
‘썬더버드의 온기로 데우라… 말인즉 썬더버드한테 가라는 거 아니야? 또 다가가라니…….’
두 번 할 짓은 아니다.
아니, 두 번 못 한다.
‘물약도 다 썼는데…….’
인벤토리에 물약이 다 떨어졌기에.
이젠 무적이 아니다.
그때였다.
호랑이도 제가 말하면 온다던가.
[최저 30% 생명력 보장 물약의 효력이 소멸합니다.]
[최저 30% 체력 보장 물약의 효력이 소멸합니다.]
[최저 30% 활력 보장 물약의 효력이 소멸합니다.]
.
.
이미 마셔서 적용 중이었던 효력도 소멸하였다.
‘이젠 진짜로 맨몸이 된 거야…….’
마셔야 할 물약도 떨어졌고, 마셨던 물약의 효과도 사라져버렸다.
이제부턴 썬더버드는커녕 어지간한 몬스터한테 맞으면 죽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그게 있어서 그나마 썬더버드와 찰나의 순간이라도 접촉할 수 있었던 건데…….’
썬더버드의 꼬리를 잡은 것도‘무적’이라, 그리고 ‘무적’인 우드골렘이 시선 분산을 해주어서 가능했다.
그런데 이젠 백지상태다.
심지어 썬더버드의 곁에서 더 오래 머물러야 하기까지.
‘온기로 데워 부화할 때까지 10~20초로 그칠 것 같지는 않은데, 못해도 1분 이상은 잡아야겠지… 썬더버드의 곁에서 1분 이상이라…….’
썬더버드의 곁에서 얼마나 머물러야 하는지 모른다.
확실한 건, 난도 상승은 불가피하다는 것. 썬더버드는 무리 지어 생활하는 특성까지 있기에.
‘한 마리만 있어도 온기로 데우기는 충분한데 여러 마리가 있다니… 쓸데없이 난도만 높아졌네…….’
몰래 접근해야 하는 처지에선 적의 수가 많은 것은 최악의 환경이었다.
‘운이 좋아야겠는데?’
일전에 썬더버드의 꼬리 잡는 데에 들었던 운보다 몇십 배의 운이 더 필요할 거다.
‘그때도 쉽지 않았는데, 더 어려워지다니…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점은 썬더버드의 알‘효과’가 아주 괜찮다는 것이었다.
‘어디 보자, 다음은… 효과, 알에 접촉 중일시, 뇌 속성 공격 면역이네. 죽으라는 법은 없구먼.’
썬더버드의 알을 들고 있을 시, 뇌 속성 공격은 면역이 된단다. 썬더버드한테 죽을 염려는 덜었다.
‘어디 보자, 다음은…….’
썬더버드의 알의 부화 조건.
그중 두 번째, 특수 조건 충족 시, 즉시 부화할 수 있다.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썬더버드에게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으니. 물론 그에 걸맞게 특수 조건을 충족해야 하지만.
‘그렇지만, 이건 패스.’
빠르게 포기했다.
‘정보가 너무 없어. 약간의 단서라도 있으면 모를까…….’
일주일 안에 알을 부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알이 깨진다.
불분명한 것에 시간 낭비할 여력이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상념을 털어버리고선,
[썬더버드의 알을 인벤토리에 보관했습니다.]
썬더버드의 알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띠링!
「 경고! 」
[인벤토리 용량이 초과했습니다.]
[인벤토리를 비워주십시오.]
[이동속도가 90% 느려집니다.]
‘와… 무게도 상당하네.’
썬더버드의 알이 커서 무거운 줄은 알았지만, 인벤토리에 넣으니 객관적으로 체감되었다. 프리 스탯 포인트를 힘 200에 분배했음에도 변함없었다.
‘이대로는 이동속도가 심하게 느려지는데, 인벤토리에 보관 못 하겠다…….’
인벤토리에서 썬더버드의 알을 빼냈다. 그러자 천근만근 무거웠던 몸이 이전처럼 가벼워졌다. 짐을 덜긴 했으나 고민이 끝난 건 아니다.
‘이건 어쩐담…….’
썬더버드의 알…….
최고급보물인데 당장 보관할 수가 없다.
방법은 두 가지다.
‘여기에 내버려 둬야 하나…….’
첫 번째 방법.
썬더버드의 알을 이곳에 놔두고 다음에 회수.
인벤토리에 넣었다 뺀 것은 밖에 놔둔다고 자연 소멸하진 않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두 번째 방법.
‘옮길까?’
썬더버드의 알을 염력 써서 옮기는 것이다. 다만, 사물의 무게에 비례해 마력 소모가 되는 방식인 게 걸렸다.
‘내 마력으로 감당할 수 있으려나? 일단 해보자.’
마음먹은 이상 빠를수록 좋다. 수중에 떠있는 나머지 드랍 아이템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 소멸할 테니까.
[프리 스탯 포인트 200을 마력에 분배했습니다.]
[마력] 100 …▶ 2,100
[염력을 사용합니다.]
[마력이 소모됩니다.]
집중했다.
썬더버드의 알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듯.
그러자 썬더버드의 알이 부들댔다.
무형의 힘이 가해지고 있다는 방증.
[마력이 1,000 소모됩니다.]
[마력이 1,000 소모됩니다.]
[마력이 전부 소모되었습니다.]
[마력을 충전해주십시오.]
‘하…….’
30센티미터는 옮겼을까?
마력이 0이 되어 염력이 풀려버렸다.
‘마력 물약이야 더 있지만…….’
마력 물약이야 더 있었다.
첫 접속 때, 나이주 NPC들이 자체 퀘스트 클리어 처리하고 보내준 것들.
하지만,
‘의미가 없지.’
썬더버드의 알이 가라앉고 있다. 한 번 건드려‘고정’되었던 게 풀려서.
‘고정’되었던 것도 30센티미터 올리는데 순식간에 마력을 소모했다. 이젠 가라앉기까지 하는데 작금의 마력으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심지어,
‘물약을 마실 수가 없으니…….’
마력 물약을 뚜껑 따고 직접 입에 대고 마셔야 했다. 과거, PC & 모바일 게임에서 가상현실로 넘어오면서 오히려 안 좋아진 요소 중 하나였다.
‘개같은 리얼리티…….’
이제는 물약 마시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 되었다.
웃기는 건, 물 안에서는 그조차도 힘들다는 것이다. 물 안에서 물통에 든 물을 온전히 다 마실 수 없듯이.
물론 현실로 나가서 마시고 돌아오는 방법이 있지만, 그 시간에 썬더버드의 알은 더 가라앉을 테니, 무용지물.
이렇듯, 수중은 제약이 너무 많았다.
‘어쩐지 요즘 따라 운이 좋더니…….’
요즘은 하루하루가 즐겁고 내일이 기대되었다.
그러다가 균형이 잡힌 느낌이었다.
‘썬더버드의 알을 현실로 가지고 나갈 수도 없고.’
현실에선 도움을 받을 수라도 있다.
하나 썬더버드의 알을 현실로 가지고 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현실에서 테스트서버로 갈 때는 손에 쥐고 있으면 갖고 들어갈 수 있는데, 나올 때는 아니었다. 만약 그게 되었다면 진즉, 이동한계선 왕복권 없이도 GM미르 손잡고 현실로 데려왔을 것이다.
‘일단, 다른 것들부터 챙기자.’
근처의 드랍 아이템부터 하나씩 챙기려 했다.
그러던 그때였다.
‘해저왕의 군대?’
다수의 어인족이 헤엄쳐 오는 중이었다.
하긴, 바다 전체가 번쩍였는데 안 오고 배기겠나.
‘망할…….’
이땐 몰랐다.
저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게 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