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테스트서버-40화 (40/151)

40화

* * *

인천 앞바다 상공.

4대길드 길드원들은 말문이 막혔다.

복면인이 갑자기 등장하더니 우드 골렘들도 떼거리로 나타났다. 그러다가 썬더버드가 사라졌다. 덩달아 복면인도.

남은 건 우드 골렘들뿐. 복면인이 없어서 그런지 정지되어 있었다.

일대는 고요해졌다. 언제 썬더버드와 생사를 건 접전을 펼쳤냐는 듯. 바닷물이 첨벙거리는 소리, 바람 부는 소리 외에는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몇 분이 지났을까?

그 누구도 현장을 이탈하지 못하고 있었다.

쉽사리 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게 끝인지, 아니면 진행 중인지, 또 다른 시작인지. 현재로선 아무것도 몰랐기에.

하지만, 점차 긴장은 풀리는 중이었다. 일단 썬더버드가 사라졌긴 사라졌으니.

쭉 지켜보다가 누군가 입을 열었다.

“자, 잘된 일인 거죠?”

“… 그렇긴 하지.”

잘된 일.

다들 그 말을 곱씹었다.

워낙 의문투성이였으나 그건 확실했다.

나쁠 거 없다.

적어도 썬더버드가 한반도로 침입하진 못했으니.

“그 복면인이 무언가를 한 거겠죠?”

“잘은 모르지만, 그럴걸. 처치했을지는 모르고.”

“그러면?”

“어딘가로 데려간 거 같긴 한데…….”

“어딘가로 데려가서 처치하려나?”

“굳이?”

“복면 쓴 거 봐라, 남들 이목을 신경 쓰는 스타일인가 보지. 나도 100만 명이 보는 앞에서 단독으로 사냥하면 좀 부담스러울 거 같은데…….”

“음, 어찌 되었건 좀 찝찝하네요.”

찝찝하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썬더버드의 사체라도 있다면 안심하겠지만, 존재 자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당장 별일 없겠으나 추후 재등장을 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으니까.

“설령 나중에 썬더버드가 나타난다고 해도 일단 시간을 번 거야.”

“…그렇긴 하죠.”

“썬더버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기다려봐, 살아있다면 살아있어서 시끄러울 테고, 죽으면 사체로라도 발견되겠지……. 안 나타나면 안 나타나는 대로 불안하면서도 다행인 거고…….”

“대체 그 복면인은 누굴까요?”

모두가 품는 호기심이었다.

썬더버드의 생사야 언젠가 알 수 있다지만, 복면인의 정체는 평생 모를 확률이 높았다. 막말로 이번 일 이후로 작정하고 숨으면 찾을 길이 요원하니.

그런 까닭에 복면인의 정체가 더욱더 궁금해졌다.

“복면인의 정체? 글쎄다, 나도 궁금하네, 그건… 대체 누굴까?”

“다른 건 몰라도 그건 확실하지 않아?”

“뭐가 확실해?”

“랭킹 1위…, 그보다 더 위의 존재라는 거…… 랭킹 1위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낸 거니…….”

“야, 목소리 낮춰. 들으시겠다.”

“다 듣고 있다.”

“흐어업!”

현 랭킹 1위, 청룡길드의 길드마스터, 청용.

그가 헛기침을 내며 인기척을 드러냈다.

그러자 속닥거리던 이들이 당황했다.

“아, 마, 마스터! 어, 언제부터…….”

“좀 전부터.”

“아…….”

자기네들이 말실수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아… 하하, 그럼 말씀들 나누세요.”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다른 길드원들은 얼른 자리를 비켜주었다.

남은 건 청룡길드원들뿐.

그들이 청용의 눈치를 살필 때.

“그 복면인이 나보다 뛰어난 건…, 나도 인정해.”

청용이 선선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아닙니다!”

“아니긴 개뿔이. 내가 아무것도 못 한 건 팩트인데 뭘… 랭킹 1위면서…….”

청용도 썬더버드처럼 전기 속성 스킬을 사용하는 마검사다. 그 덕에 속성 저항력으로 큰 데미지를 입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우세를 점하지도 못했다.

“한데, 그 복면인은 서울시민, 아니 한국을 구했으니까 나보다 뛰어난 건 맞지.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보다…….”

“…….”

“우리도 목숨을 빚졌지…… 그런데 말이야…, 나보다 강한지 약한지는 모르지 않나?”

“아… 맞습니다.”

다들 어떤 말이 그의 심기를 거슬렀는지 깨우쳤다.

복면인이 랭킹 1위, 그보다 더 위의 존재라는 것.

청용도 그것만은 부정했다.

“그 복면인은 비공식 랭킹 1위로 하자.”

“예? 그럼 맹인 검객은?”

세간의 평가가 그랬다.

청용이 공식 랭킹 1위.

맹인 검객이 비공식 랭킹 1위.

청용은 맹인 검객의 자리에 딴 사람을 앉힌 꼴이다.

“뭐… 그냥 그렇다고. 어차피 비공식 아니야? 확실한 건 그 복면인이 공식 랭킹 1위는 아니라 이거지.”

그게 뭐가 중요한가 싶기는 하지만…….

“예! 그렇습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저… 다들 세차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길드마스터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니까.

“아, 근데 좀 그러네. 조금 자존심도 상하고…….”

“아닙니다. 마스터는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건 기본이야. 최고의 성과를 내야지. 난 그걸 못 했고, 그 복면인은 그걸 해냈고… 그뿐이지.”

“저… 그나저나 어떡할까요? 철수할까요?”

“아, 맞다. 그 얘기 해주러 왔지? 혹시 모르니까, 초소에 몇 명 남기고 다 철수해. 오늘은 주작길드에서 수고해준다니까.”

청용은 뒤돌아서며 생각에 잠겼다. 여전히 머릿속에서 복면인이 떠올라서.

‘그 복면인, 썬더버드 소환한 걸 텐데…, 보통 자기보다 높은 레벨을 소환할 수는 없잖아. 그렇다는 건 최소 9,999레벨이라는 소린데… 세계 최초의 만렙 아닌가? 근데 왜 여태껏 정체를 숨기고 살아왔지? 하…….”

생각하면 할수록 머릿속에 복잡해졌다.

‘당사자를 붙잡고 물어볼 수도 없고.’

당사자를 붙잡고 실체를 밝혀보고 싶었다.

‘다음에 보면 알 수는 있을 거 같은데…….’

다행히‘복면인’을 알아볼 실마리가 있었다.

‘썬더버드 특유의 전기 표식이 있지.’

썬더버드는 공격 대상에게 특유의‘전기 표식’을 남긴다.

비유하자면 스파크가 몸에 튀는 거다.

단, 그건 보통의 유저나 일반인들은 못 보고 못 느낀다.

반면,

‘난 그 전기 표식을 볼 수 있고.’

청용은 전기 표식을 볼 수 있었다.

따라서 다음에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알 수 있지 싶었다. 얼굴도 이름도, 다 모르지만 말이다.

‘너무 오래 걸리지만 말아라…….’

부디 썬더버드의 전기 표식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만나볼 수 있었으면 했다.

* * *

테스트서버 – 해저왕의 심해 - 수심 4,000미터.

썬더버드는 자신이 쏜 전격을 맞고 감전되어 사망했다.

그 여파로 바다를 꽉꽉 채울 정도로 많은 수의 몬스터들 또한 감전사했다.

강기찬은 물약들을 마셔둔 뒤였기에 살 수 있었다.

- 최저 30% 생명력 보장 물약

- 최저 30% 체력 보장 물약

- 최저 30% 활력 보장 물약

‘이것들 덕분에 경험치를 안 잃었네.’

사망 페널티는 크다.

한 번 사망할 때마다 레벨이 1씩 떨어진다.

유저가 안 죽으려는 이유였다.

하나, 강기찬이 죽길 꺼린 건, 이 때문이 아니다.

‘뭐 죽으면 죽는 거지…….’

죽어도 상관없었다.

NPC화타를 소환하고자 레벨업 중임에도.

‘…이 계정은 말이야.’

정확히는 이 계정이 죽어도 상관없는 것이다.

어차피 현실의 암살자 계정의 레벨을 올려‘NPC화타를 소환’할 거니까.

‘이 계정은 레벨도 낮아서 죽어도 금방 복구할 수도 있고. 1레벨 다운쯤이야…….’

‘1레벨 다운’이 안 아깝다면 거짓이겠으나, 물약과 가치를 저울질한다면 1레벨 다운은 별거 아니기도 하고.

그런데도 물약을 소비한 까닭은…….

‘오! 뜬다 떠!’

몬스터들의 드랍 아이템 루팅 때문이었다.

둥둥 떠다니는 몬스터들의 사체가 서서히 옅어졌고 완전히 소멸한 자리엔 아이템이 생겼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 몬스터가 사망했으니 아이템이 드랍된 것이다.

한데 이걸 먹기 위해선 죽지 않아야 했다. 여긴 수심 4,000미터이지 않나.

사망하고 부활지에서 다시 여기까지 내려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터.

물론 직접 헤엄친 게 아니라 염력의 반지와 공중부양의 반지를 활용해 빠른 속도로 내려온 거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 시간이면 드랍 아이템이 자연 소멸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렇게 자연 소멸로 보내버리기엔 아까웠다. 루팅해야 할 좋은 드랍 아이템이 어디 한둘이어야지.

루팅해야 할 드랍 아이템, 그리고 물약의 가치를 저울질한다면 이번에는 루팅해야 할 드랍 아이템의 승리다.

해저왕의 심해 몬스터들은 9,000레벨 이상이라 드랍 아이템의 가치도 클 테니까.

그래서 죽지 않고자 생존이 보장되는 물약을 마신 것이다.

‘좋네.’

휙- 휘익.

당장 고개만 돌려도 드랍 아이템이 수백 개다.

가시거리 밖의 범위까지 몬스터들이 사망한 걸 확인했다. 거기까지 다 루팅하려면 바삐 움직여야 할 것이다. 바빠질 예정에 몹시 기분이 좋았다.

‘내가 이러려고 여기를 골랐지.’

‘바다’를 선택한 건 썬더버드 격리 및 살해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썬더버드도 기왕 죽을 거, 은혜롭게 죽으면 좋잖아.’

썬더버드의 죽음마저도 자신에게 이득이길 바랐다.

‘나도 보상은 있어야지.’

인천 앞바다에 온 것. 순전히 나라를 지킨다는 사명감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기엔 위험도와 부담감이 컸으니.

마땅히 본인에게도 돌아오는 게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기왕이면 최대한 좋은 보상으로 돌아오길 바랐고.

고르고 골라 고심 끝에 해저왕의 심해를 골랐다.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사냥터 중에서 가장 레벨이 높은 몬스터들이 서식하는 곳이기에.

하지만, 그래봤자 썬더버드보다 레벨이 낮을 터.

그리고 뇌 속성에 취약하기에 썬더버드의 전격에 전멸할 것이고 몬스터들의 드랍 아이템은 다 독차지하는, 그런 그림을 그렸다.

그중, 가장 먼저 챙길 건 단연 썬더버드의 드랍 아이템.

썬더버드가 사망한 자리, 거기에 드랍된 아이템을 보며 경악했다.

‘이걸 준단 말이야?’

상상 이상의 보상이었다.

그렇지만, 거기에 온전히 신경을 쏟을 수는 없었다.

[바닷속입니다.]

[산소가 부족합니다.]

[산소를 충전하십시오.]

[곧 익사할 예정입니다.]

살고 봐야 했다.

* * *

청용은 제 눈을 의심했다.

“어?”

복면인이 나타난 게 아닌가!

사라졌던 허공, 그 자리 그대로.

‘하,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이야…….’

방금 바라지 않았나. 재회에 너무 오래 걸리지만 않기를.

많이도 아니고 썬더버드의 전기 표식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만나볼 수 있으면 족했다.

그런데 이렇게 곧바로 만날 줄이야.

‘역시 나는 될 놈이야!’

급히 복면인을 향해 날아갔다.

가다 보니 의아했다.

“후-우우-우우우웁!”

복면인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는 게 아닌가?

‘왜 저래?’

의문이 들었으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우선 썬더버드의 생사부터!

“저기요? 실례하… 어?!”

복면인이 사라졌다.

“뭐, 뭐야?”

일단, 기다렸다.

또 나타날 수도 있지 않겠나.

몇 초? 아니 몇 분이 지났을까?

슉!

또 나타났다.

“저기!”

슉!

또 사라졌다…….

어이가 없었다.

나타났다가 호흡하고 사라지기를 미친 듯이 반복하는 게 아닌가?

“아우- 환장하겠네!”

청용은 깊은 고뇌에 빠졌다.

붙잡을까? 몇 대 때릴까? 예의 있게 기다릴까? 그냥 집에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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