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테스트서버-36화 (36/151)

36화

경석의 아버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부탁? 좋다, 말해봐라.”

“길드원 좀 빌려 가도 되겠습니까?”

“왜?”

“강기찬의 레벨업을 도와주려고 합니다.”

“버스를 태우려고?”

“예.”

“너는 어쩌고?”

“제 성장은 좀 늦어도 됩니다. 길드가 우선이죠. 강기찬을 버스 태우는 걸 찍어 언론에 뿌리면 강기찬이 우리 사람이라는 걸 만천하에 알리고 또 길드 홍보도 되지 않겠습니까.”

“호오… 그런 생각까지 할 줄이야……. 기특하구나, 네가 아닌 길드를 우선시하다니!”

“감사합니다.”

“한데… 강기찬은 도대체 어떻게 포섭한 거냐?”

“제 진심을 보여줬습니다.”

“진심이라…….”

일순, 전에 비서진을 통해 들었던 게 생각났다.

“설마, 그놈에게 무릎을 꿇은 게?”

“예, 제가 가진 거로는 그 남자를 가질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제 제 자존심을 버리고 진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럴 테지. 강기찬은 돈에 회유될 남자가 아니다. 그랬다면 주작길드에서 진작 채갔을 테니… 한데, 단순히 무릎을 꿇은 것만으로는…….”

“A길드의 부길드장 자리를 약속했습니다.”

“부길드장 자리를……?”

“제가 주제넘게 함부로 나섰던 걸까요?”

“아니다.”

경석의 아버지가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잘했다. 데려오는 게 우선이지.”

“…….”

“우리가 사냥개 한두 번 키우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쓰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버리면 그뿐.”

“…….”

“최대한 빨리 이동한계선을 넘나드는 법을 알아내.”

“예?”

“그놈의 가치는 그게 전부야. 그게 크긴 하지만, 그 외에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놈을 언제까지고 부길드장 자리에 앉혀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

강기찬은 할 말을 잃었다.

‘나를 사냥개 취급에… 적당히 쓰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버리면 된다고?’

경석의 아버지가 자신을… 사람들을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 알게 되었다.

‘하… 안 좋게 볼 줄 알았지만, 사람 취급도 안 할 줄이야. 인성이 개차반이네…….’

썩 불쾌하진 않았다.

도리어 웃겼다.

‘이거 어쩌나… 그쪽이 날 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버리게 생겼는데…….’

강기찬은 A길드 부길드장 자리에서 단물만 쏙 빼먹고 빠질 요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애초부터 가치가 없는데…….’

스스로가 가치 없는 걸 알아서.

‘다 데리고 이동한계선을 넘나들 수 없으니까.’

저들이 원하는 건‘길드원 전원’이 이동한계선을 넘나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동한계선을 넘나드는 거, 한 명만 되잖아.’

하루에 한 명만 이동한계선을 넘나들 수 있다.

길드가 이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 잘못은 아니지.’

애초에 강기찬은 별말 안 했다.

‘자기네들끼리 오해한 거니까.’

다들 맹목적으로 믿을 뿐이었다.

강기찬이‘길드원 전원’을 데리고 이동한계선을 넘나들 수 있다고.

‘아무 근거 없이…….’

그때였다.

“참 웃기지 않냐?”

경석의 아버지가 대뜸 말했다.

“네가 죽이려 했던 놈이 우리 길드를 위해 일하게 된다니.”

강기찬은 순간 멍해졌다.

‘뭐야, 저 아저씨도 알고 있었어?’

경석 아버지도 경석이 벌인 짓을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알고도 방관한 걸까?

몰랐다가 알게 된 걸까?

곧 알 수 있었다.

“…암살 실패가 이런 결과를 불러일으킬 줄이야… 뭐, 잘됐지. 강기찬, 그 사회 부적응자를 쓰임새 있게 쓰고 버릴 수 있게 되었으니.”

“…….”

“…그래도 다음번엔 꼭 성공해라. 암살자는 비싼 걸 쓰거라, 싼 걸 쓰니까 탈이 나는 게야. 비싼 게 괜히 비싼 게 아니다. 그러게, 지원해준다고 할 때, 받지! 내빼더니 이게 뭐냐, 이게…….”

그랬다.

경석과 그의 아버지.

두 부자(父子)는 공범이었다.

피해자인 강기찬은 기가 막힐 따름.

‘이놈의 집구석은 완전 개판이구먼.’

강기찬은 이 집안을 어떻게 요리할까, 고민에 잠겼다.

그리고 결론이 났다.

‘망하게 해야겠네…….’

탁!

녹음기를 껐다.

* * *

지구엔 두 종류의 사냥터가 있었다.

던전과 필드.

던전은 포탈을 타고 넘어간다.

필드는‘포탈을 타지 않고’ 넘어간다.

고로, 필드는 입장 레벨 제한이 없다.

그런 까닭에 강기찬도 왔다.

1,100레벨 전용 필드에.

A길드와 함께.

“하… 이렇게까지 하실 건 없는데.”

“아닙니다. 강기찬님,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A길드의 길드장, 윤형식.

그가 강기찬에게 연신 굽신거렸다.

강기찬도 가식을 섞어 대응했다.

“길드장님이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전 부길드장인데 편하게 대하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강기찬님은 말이 부길드장이지, 귀빈이시잖습니까, 어찌 함부로 대하겠습니까?”

상부의 지침이 떨어졌다.

강기찬을 성심성의껏 보필하라고.

윤형식은 길드장이기 이전에 A기업의 장학생 출신이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그것과는 별개로 흑심도 품었고.

‘경석 그 자식이 성장하면 난 나가리야,’

그에게 명예퇴직은 있을 수 없다. 언젠가 경석이 유저로서 입지를 다지면 길드장 자리를 물려줘야 하기에.

‘좌천은커녕 권고사직 당하겠지. 제 아들이 길드장되는데, 그리고 길드장이 되고 난 뒤에도 내가 가장 걸림돌일 테니…….’

경석이 길드장이 되면 윤형식은 눈엣가시일 터.

굳이 조직에 남기기보단 쫓아낼 것이다.

윤형식은 그날까지 차근차근 대비하기로 했다.

그것이 강기찬에게 잘 보이는‘최우선적인’ 이유였다.

‘강기찬이라는 인맥 만들어놓으면… 나쁠 거 없지.’

유저 생활 시작하자마자 이동한계선 넘나드는 법을 알아낸 자다. 과연 저게 다일까? 아닐 거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유저였다.

‘마침, 지금이 강기찬에게 가장 잘 보일 수 있는 위치고…, 본래 상관이 잘 대해주면 아랫사람의 기억엔 오래 남는 법이잖아?’

* * *

사냥 방식은 간단했다.

각자가 몬스터를 몰아 생명력을 깎고 강기찬이 막타.

파티를 맺지 않아서 강기찬이 경험치를 100% 먹는다.

덕분에,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현재 레벨 : 64 …▶ 330]

[현재 레벨 : 1,001 …▶ 1,020]

강기찬의 레벨이 급속도로 올랐다.

본 & 부계정 골고루 동반성장 중이었다.

한창 사냥을 이어나가던 그때.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봐도 됩니까?”

윤형식이 신기하다는 듯 물어왔다.

“네, 말씀하세요.”

“허수아비의 논밭에 어떻게 들어가신 겁니까?”

“곤란합니다. 영업비밀이라서.”

“그렇군요. 솔직히 처음엔 계정을 하나 더 만드신 줄 알았습니다.”

“아, 네…….”

“근데 그건 말도 안 되지 않습니까? 새 계정이라니요? 레전드스토리는 1인1계정이 원칙인데. 물론 이동한계선을 넘나드는 것도 말도 안 되지만… 1인 2계정은 더 말도 안 되니까…….”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는 몰랐습니다. 계정을 하나 더 만든 줄 아셨다니…….”

“예, 허수아비의 논밭 방문이 워낙 말이 안 되니까…….”

“그렇긴 하죠.”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흠…….”

“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윤형식은 할 말이 더 남았지 싶었다.

“실은…….”

말하기를 주저하다가 결국 말했다.

“길드원들이 불신이 팽배합니다.”

“어떤 점에서요?”

“그 이동한계선을 넘는 걸 보진 못했으니까요.”

“이거… 참, 필드라서 보여드릴 수도 없고.”

“아쉽습니다. 필드에는 이동한계선이 없으니…….”

필드는 던전처럼 따로 공간이동을 하는 게 아니다.

레전드스토리에서 그대로 가져온 필드도 있지만.

대다수는 에베레스트, 지리산, 동해 앞바다 등, 현실 공간에 몬스터를 풀어놓은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게임에서 물리 엔진 한계로 접근할 수 없는 이동한계선이 없을 수밖에.

‘그래서 내가 여길 골랐지.’

강기찬이 던전을 두고 필드를 고른 이유다.

‘예상했으니까.’

이동한계선을 넘는 걸 보여달라 할 걸 예상했다.

‘애초에 나를 영입한 이유가 그거뿐이니.’

그런데,

‘너희들 다 데리고는 이동한계선을 못 넘는데 어떻게 보여줘?’

저들이 바라는 걸 강기찬은 해줄 수가 없다.

그 즉시 사기꾼으로 찍히고 버스에서 하차할 터.

그뿐이랴, 기만죄로 보복이 들어올지도 몰랐다.

‘언젠가 들키긴 하겠지만, 그건 최대한 늦을수록 좋지.’

최대한 늦게까지 비밀을 유지할 작정이다.

‘적어도 내 한 몸 건사할 수 있을 때까지는…….’

강기찬이 말했다.

“그렇다고 굳이 이동한계선을 넘나드는 걸 증명하려고 필드를 두고 던전을 고를 수도 없는지라…….”

“예, 잘 압니다. 저희도 던전보다는 필드가 버스 태워드리긴 편하니까요. 효율적이고…….”

강기찬이 아무 이유 없이 필드를 고집했다면 의심 샀을 거다.

하지만, 선택에는 근거가 있었다.

버스 태우기는 필드가 나으니까.

사냥터의 면적이나 몬스터 수가 비교가 안 되었다.

강기찬이 물었다.

“혹시 절 의심하는 건 아니죠?”

“아, 아닙니다. 경석 도련님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셨다고까지 했으니까요.”

경석이 강기찬이 이동한계선을 넘나드는 걸 봤단다. 여전히 의심의 여지는 있어도 불신할 것까진 없다는 얘기.

‘그 얘기도 내가 한 거지만…….’

윤형식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 강기찬이 경석으로 로그인하고 한 말이다.

‘실제로 본 건 맞잖아.’

경석은 강기찬이 이동한계선을 넘나드는 걸, 보았다. 강기찬이 대신 말해줬을 뿐.

“레벨이 몇입니까?”

윤형식이 강기찬의 레벨을 물어왔다.

“1,020이네요.”

“후… 아직 많이 남았군요.”

A길드도 강기찬의 레벨이 얼른 오르길 바랐다.

2,500레벨은 돼야 A길드 던전 레이드에 참여할 수 있기에.

윤형식이 고개를 숙였다.

“면목 없습니다. 레벨업 속도가 느려진 건 다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아닙니다.”

강기찬은 윤형식을 나무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최선을 다해주고 계시잖습니까…….”

그렇지만,

‘레벨업 속도가 느려지는 건 사실이야…….’

레벨업이 느려졌다.

레벨이 오를수록 레벨업 속도가 느려지는 거야 당연하다.

문제는 길드원들이 몬스터를 몰이해오는 속도도 느려졌다는 것이다.

눈에 띌 정도로 확연히

‘몰이 사냥의 한계지.’

필드는 넓고 몬스터는 퍼져있다.

거기에 유저가 일일이 몬스터 어그로 끌어 데려오는 방식.

몬스터를 잡으면 잡을수록 점점 더 멀리 나가서 데려와야 하니 시간이 지체되는 수밖에.

‘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강기찬은 결심했다.

자신이 나서기로.

[이벤트 스킬, 소환을 사용합니다.]

* * *

지지직-

[속보입니다. 방금 들어온 소식에 따르면… 필드에서 이상 현상이 벌어지고 있답니다.]

[한 제보자가 보내온 영상입니다.]

“몬스터들이…….”

“어… 어어! 없어진다! 없어져!”

“다 어디 가는 거야?”

“돌아와! 돌아오라고!”

[보시는 바와 같이 필드에 있던 몬스터들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 등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전대미문의 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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