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테스트서버-35화 (35/151)

35화

* * *

계정을 만들 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본래의 외모를 유지할 것이냐, 성형할 것인가.

대다수가 성형하는 편이다.

경석은 원판 그대로였다.

집안과 길드를 이끌어가길 원한다.

그렇다면 원형을 유지하는 게 좋다. 자신이 떳떳하다는 걸 외부에 알리는 방식이기에.

그 덕에 경석 계정으로 로그인한 강기찬은 경석 그 자체였다.

‘문제는 다리인데…….’

강기찬이 휠체어를 내려다보았다.

계정이 바뀌어도 다리는 여전했다.

‘이건 어쩔 수 없지, 연출하는 수밖에.’

강기찬은 포탈에 다가가서는 휠체어에서 내려왔다.

바닥에 엎드린 채로 기어가 포탈을 타고 밖으로 넘어갔다.

* * *

허수아비 논밭 던전 밖엔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반인도 있었고 기자들도 장사진을 쳐놓고 카메라를 전방으로 향하게 하고 있었다.

‘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겠지.’

그도 그럴 게, 갓 나온 경석을 좀 보다가 포탈로 시선을 옮기는 이들이 많았다.

“어! 도련님!”

경석의 부하들도 대기 중이었다.

강기찬은 생각했다.

‘나 혼자 나왔으면 경석 어떻게 했냐고 멱살 잡혔겠는데?’

다시 생각해도 잘한 선택이지 싶었다.

경석의 계정으로 로그인하고 나온 거 말이다.

“다, 다치신 겁니까?”

“대체 무슨 일이……!”

부하들이 바닥을 기는 강기찬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연출을 위해 일부러 얼굴에 흙도 묻히고 머리카락도 좀 뜯고 그랬다.

“혹시! 강기찬 그 자식이 도련님을……!”

“아니, 걔는 나를 도와줬어. 내가 살아남은 건 강기찬 덕분이야…….”

“흠, 그렇군요.”

그때였다.

누군가 강기찬에게 오더니 소리쳤다.

“야! 기찬 형은 어떻게 되고 너 혼자 나왔어?!”

‘어? 노재민?’

강기찬은 정말 당황스러웠다.

노재민이 다가올 줄은 몰랐기에.

더 당황스러운 건,

“야!”

노재민이 강기찬의 머리채를 잡았다는 점이다.

“아! 아아! 야! 재민아!”

노재민은 잡은 머리채를 놓아주지를 않았다.

“도, 도련님!”

그제야 부하들이 노재민을 떼어놓으려 달라붙었다.

퍽!

부하들이 강기찬에게서 노재민을 간신히 떼어냈다. 노재민은 반동으로 튕겨나 자빠지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잇!”

그러면서 한쪽 손에 쥐고 있던 매직펜과 신발을 떨어뜨렸다. 그 신발이 강기찬의 눈에 들어왔다.

‘저 신발은…….’

강기찬은 노재민이 떨어뜨린 신발이 낯이 익었다.

‘내가 준 거잖아.’

허수아비 논밭 던전 안에서 노재민에게 준 신발이었다. 유저들이 떨어뜨린 경험치 2배 쿠폰을 빨리 쓸어 담으라고.

‘저건 왜… 아, 반납하려고?’

노재민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신발을 돌려주려고 기다린 거지 싶었다.

‘일 잘 마무리되면 가지라고 했을 텐데.’

강기찬은 신발을 노재민에게 영영 줄 생각이었다.

“저기……!”

강기찬이 노재민을 불렀다.

‘계속 기다리게 둘 수는 없지.’

강기찬이 간 줄도 모르고 노재민은 한동안 기다릴 터.

모르면 몰랐지, 알고도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강기찬이 전해달라던데?”

“…어? 뭐! 뭐?!”

강기찬이란 이름에 노재민이 즉각 반응했다.

이에,강기찬이 웃으며 말했다.

“신발은 가지라고. 그리고 강기찬은 한동안 저기서 안 나올 거다.”

“뭐?”

이에, 다른 사람들도 귀를 기울였다.

강기찬이 말을 이었다.

“폐관 수련 한대.”

노재민에게 일러주는 거다.

더 기다리지 말고 돌아가라고.

‘폐관 수련은 안 할 거지만, 집에 보내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지.’

폐관 수련을 한다.

더 설명이 필요 없다.

한동안 안 나오니 귀가하란 의미.

“가자.”

“예, 도련님!”

강기찬은 그 말을 남기고 현장을 이탈했다.

한편, 노재민은 땅에 떨어져서 더럽혀진 신발을 보며 울상을 지었다.

‘힝, 싸인 받아야 하는데…….’

신발에 싸인 받으려고 강기찬을 기다렸다. 인벤토리에는 싸인 받을 A4용지 10장도 들어있었다.

강기찬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모든 일이 다 마무리된 이 시점에 몰아서 받으려고 한 것이다.

‘망했다…….’

이미 친구들한테 강기찬 사인받는다고 호언장담을 한 게 뒤늦게 떠올랐다.

* * *

부-우우웅.

강기찬은 차가 이렇게 안락할 수도 있구나, 라는 사실을 느끼며 드라이브를 만끽했다.

그러면서 할 일을 하기로 했다.

[강기찬] 경석이한테 들었어. 너 나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노재민] 형!

강기찬은 노재민에게 귓속말했다.

지금은 경석 계정으로 로그인 중이지만, 테스트서버 계정은 동시 접속이 가능하지 않나.

테스트서버 계정으로 노재민에게 귓속말하는 거다.

‘연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1인 2역을 하려니 낯 간지러웠다.

[강기찬] 그동안 수고했다.

[노재민] 아니에요! 형이 다 하셨는데.

[강기찬] 그것도 맞는 말이야.

[노재민] 그래도 제가 큰 도움이 됐쬬!

[강기찬] 그것도 맞는 말이고.

[강기찬] 언제 한 번 밥 한 끼 하자.

[노재민] 좋아요!

도움이 되었던 친구인데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헤어지긴 섭섭했다. 가능하다면 관계를 더 이어나가서 나쁠 것도 없었고.

[노재민] 오늘 저녁 어때요?

[강기찬] 오늘은 좀 바쁠 거 같아서.

[노재민] 그럼, 내일 아침은?

[강기찬] 아침? 그건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냐?

[노재민] 그럼, 아점!

[강기찬] 너, 나랑 밥 한 끼 먹고 싶어서 환장한 거 같다.

[노재민] 그럼! 점시이임!

[강기찬] 그냥 내가 되는 시간 정해서 알려줄게.

[노재민] 기다릴게요!

[강기찬] 부담스럽다. 기다리지 말고 그냥 하던 일 하고 지내…….

[노재민] 기다리는 게 제 일인걸요. 1년 뒤라도 괜찮아요!

[강기찬] 거, 되게 부담 주네? 그냥 밥 먹지 말까.

[노재민] 아, 아니에요! 잊고 있을게요! 강기찬이 누군지도 모를 만큼!

그렇게 노재민과 귓속말을 이어가고 있던 와중…….

“다 왔습니다.”

차가 멈춰 선 곳은 으리으리한 저택이었다.

저택 입구에 도착하고도 한참을 안으로 진입하고 나서야……,

‘무슨 집 안에 호수도 있어…….’

…호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 큼지막한 4층짜리 저택이 있었다.

‘잘 사는 집은, 집이 아니라 궁궐이네…….’

건물 한 채가 아니라 무슨 학교 건물처럼 두세 채가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었다. 끝에서 끝으로 가려면 20분은 걸릴 터.

‘이제부터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강기찬은 목적을 일깨웠다.

여기 놀러 온 게 아님을.

목적은 여럿 있었다.

우선,

‘경석이 무사히 왔음을 알리는 것.’

경석의‘무사 복귀’를 공식적으로 알려야 했다.

경석 아버지도 자식이 이동한계선 너머에 갇혔다는 걸 알 터. 그 이후로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를 의심하겠지.’

강기찬을 의심할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의심으로 그칠 일도, 이런 데선 일을 크게 벌이곤 하지.’

경석의 복귀는 의심을 없애줄 터.

복귀 시기는 지금이 적절하다.

‘경석은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해. 유저로서 첫 던전과 퀘스트를 수행했는데 곧장 집으로 와서 보고해야지, 딴 길로 새면 쓰나.’

한편.

“오셨습니까?”

비서진이 그를 맞이했다.

“이쪽으로…….”

이미 전화통화를 끝마친 상태.

경석이 걷지 못하는 걸 알기에.

척.

휠체어를 준비해두었다.

경석을 앉히고 알아서 끌어준다.

가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내 다리가 멀쩡했어도 다친 척을 해야 했네.’

겉모습은 영락없는 경석이다.

한데 아는 게 없다. 어디가 경석의 방인지, 경석의 아버지의 집무실인지 등등.

‘온전히 걸을 수 있는데 자기 방이 어딘지도 모르면…….’

걷지 못하기에 부축을 받으며 자연스레 중요 장소로 안내받을 수 있지, 걸을 수 있는데 앞장서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으면 이상할 것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곧 경석의 아버지를 뵐 터.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경석의 아버지다.

그것도 오너일가의 가장.

아무런 대비 없이 상대하긴 버겁다.

‘불리해지면 기억상실증 걸렸다고 해야겠네.’

경석이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들.

그걸 모를 때의 대비, 기억상실증이면 다 해결될 것이다.

‘뭐 때문이라고 둘러댈까?’

기억상실증 원인을 지어내는 동안,

똑, 똑똑.

노크 소리가 났다.

“회장님…….”

“그래.”

세련된 장식의 양쪽 문이 열리며 서재, 그리고 내부의 탁상에 앉아있는 중년 남성.

“왔냐.”

“다녀왔습니다.”

“다리는 어찌 된 거냐?”

“허수아비 왕과 싸우다가 그만.”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결국 강기찬이 허수아비 왕을 잡았다니, 남의 뒤치다꺼리나 해주고 온 게냐?”

강기찬은 불쾌했다.

‘경석의 일인데 내가 다 기분 나쁘네?’

종종 경석으로 활동할 텐데 그럴 때마다 이런 취급을 받으면 기분 더러울 것이다.

‘다신 나한테 저딴 소리 못하게 해야겠네.’

우선 저 배불뚝이 회장의 콧대부터 꺾어놓기로 했다.

“네, 맞습니다. 결국, 허수아비 왕을 잡은 건 강기찬이지요.”

“……?”

“하지만 제가 아니었다면 못 잡았을 겁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너도 할 만큼 했다 이거냐? 그딴 놈한테 져놓고선 변명이나 나불거릴 거면 가서 쉬어라.”

강기찬은 속으로 웃었다.

‘이런 식으로 경석을 무시해온 건가? 하긴 무시 받을 만한 놈이긴 했지. 인성이나 실력이나…….’

무표정하게 계속 말했다.

“제가 어떻게 이동한계선에서 나왔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허, 강기찬에게 무릎을 꿇고 빌었잖아?”

“아뇨, 스스로 나왔습니다.”

“뭐…? 그게 정말이냐? 설마… 너도?”

“제 방법과 강기찬의 방법은 다릅니다. 저는 나갈 수 있는 틈새를 발견한 거고, 강기찬은 그 틈이 아닌 곳으로 드나들었습니다.”

“흠… 그렇구나…….”

경석의 아버지가 약간 김빠진 얼굴을 했다.

“그리고 저도 허수아비 왕 처치 보상을 받았습니다.”

“무, 무슨 보상이냐…….”

“아버지 병풍 뒤, 제 발밑의 카펫 아래, 이 방에 두 명의 가드가 있군요.”

은신해있는 이 방의 경호원들의 위치.

그걸 강기찬이 술술 불자,

“너… 대체…….”

“모든 기운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강기찬은 가진 패 중 하나를 공개했다.

맵핵 하위호환으로 둔갑시켜서.

‘이것만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겠지.’

경석은 좋은 패다.

한 번 쓰고 버리긴 아까운 패.

경석의 가치를 올린다고 손해 볼 건 없었다.

그 가치는 오롯이 강기찬의 것이 될 테니까.

“모든 기운을 읽을 수 있다고?! 그, 그게 사실이냐? ”

“예.”

기운을 읽는 건 기존에 없던 개념이다.

소년 만화처럼 멀리서부터 기를 느껴서 알아차리고 하는 건 불가능하단 의미. 경석이 그걸 해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겠지.

“그리고 강기찬이 제 밑으로 들어오기로 했습니다.”

“뭐?”

모든 기운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격인데, 강기찬까지?

강기찬이 누군가?

대한민국, 아니 전세계의 길드에서 눈독을 들이는 인물이지 않나.

‘대한민국 4위 길드, 주작길드에서도 아직 포섭하지 못했다고 하던데… 설마 저 녀석이 선수를 친 거란 말인가…….’

주작길드에서도 못한 걸 어떻게 해냈다는 걸까?

‘저 녀석 뭔가 달라졌다…….’

경석의 아버지는 경석을 다시 보았다.

“잘했다…….”

“…해서, 부탁이 있습니다.”

칭찬받을 짓을 했다.

칭찬만 받기엔 나이가 많았고.

‘보상도 받아야지.’

보상도 챙기기로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