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NPC제페토가 외쳤다.
“나와라!”
그 외침에 땅이 쩍 쩌-억 갈라지기 시작했다.
갈라진 틈새에선 시커먼 무저갱이 모습을 드러냈다.
끼긱, 끼객!
불쑥-
무언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강기찬이 그것들을 보았다.
“나무 인형?”
나무로 된 인형이었다.
“피노키오?”
“하하, 비슷하게 생겼지요? 피노키오 형,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뻘 된답니다.”
다들 피노키오와 똑 닮았다. 머리, 팔, 다리 다 달린 게.
그걸 보면서,
“아…….”
강기찬은 눈치챘다.
NPC제페토가 어떤 식으로 도와줄지.
“이게 공략비법이군요.”
“네.”
“대단합니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나무 인형들은 지속해서 땅 위로 올라서는 중이었다.
이젠 그 수가 수천이 되었다.
그러고도 잦아들 기미가 없었다.
“전 인형술사입니다.”
나무 인형 수가 100만을 넘어섰을 즈음, NPC제페토가 한 말이었다.
“저를 데려가 주시겠습니까?”
강기찬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저만한 전력을 투입할 수 있다면… 진시황의 100만 대군을 쓰러뜨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건가…….’
단순히 물량만 많으니 도움이 된다고 하지는 않았을 터.
네크로맨서 전직 퀘스트 제작에 가담했다고 하지 않았나.
승산이 있기에 한 소리일 거다.
‘믿어보자.’
NPC제페토를 믿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강기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제페토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하, 이렇게 도울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서로 고마워하는 훈훈한 상황.
강기찬이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다만…….”
“예?”
“…다른 용도로 써도 됩니까?”
“예?”
“저 나무 인형들로 진시황의 100만 대군을 쓰러뜨리는 게 아니라…….”
강기찬의 말을 들으며 NPC제페토가…….
“아…….”
당황 섞인 탄성을 터트렸다.
‘아, 악마다……!’
NPC제페토에게 강기찬은 악마였다.
강기찬이 한 말로 인해서.
- 저한테 죽어도 될까요?
- 어차피 100만 대군과 싸우다가 죽을 거니까. 이러나저러나 죽는 건 똑같잖습니까.
요지는 이것이었다.
나무 인형, 내 레벨업을 위해 제물이 되어라.
‘허… 이거 참…….’
NPC제페토는 복잡미묘한 기분이었다.
강기찬을 위해 저들을 희생시킬 거긴 했다.
하나, 예상 밖의 방향이었다.
‘저런 요구를 해오다니.’
약간 뻔뻔하다고 해야 하나.
“제가 뻔뻔하지요?”
NPC제페토는 일순 심장이 덜컹했다.
‘내 속마음을 읽었어?’
“마음이 읽힌 거 같죠?”
강기찬이 또 생각을 읽자, NPC제페토가 신기해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럴 거 같아서요.”
“음… 예, 솔직히 그렇습니다.”
“사실, 제 선에서 가능할 거 같거든요.”
NPC제페토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예? 강기찬 용사님 선에서 가능하다뇨?”
“진시황하고 100만 대군을 쓰러뜨리는 거요.”
“그러니까, 제 나무인형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용사님이 진시황과 100만 대군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네.”
강기찬이 선선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처음부터 할 수 있다고 했으면 모를까, 인제 와서?
“저 친구들, 제물로 바쳐주시면 보여드리지요.”
“하… 보고 싶다…….’
그의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강기찬 혼자 힘으로 진시황과 100만 대군을 쓰러뜨리는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100만 대군을 쓰러뜨릴까?’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어쩌겠나.
“그렇게 하지요.”
수락하기에 이르렀다.
강기찬이 중얼거렸다.
“저도 이 방법을 생각지 못했으면 제페토님의 힘을 빌렸을 테지만, 굳이 쉬운 길 놔두고 어려운 길 갈 것도 없지 싶어서요. 그리고 저 친구들은 제물로 쓰는 게 더 효율적이기도 하고… 제가 너무 계산적인가요?”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시작해도 될까요?”
“좋습니다.”
NPC제페토가 고개를 끄덕이고선 뒤를 돌아보았다.
“얘들아…, 뭐 하냐? 준비 안 하고.”
그 말이 시작이었다.
두두,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나무 인형 무리가 다가오더니 일렬로 섰다.
그러더니 엎드려 뻗쳤다.
“이건…….”
당황한 강기찬이 묻자,
“제가 빠따질할 때 저 자세를 취하게 합니다. 때려잡기 좋은 자세지요.”
NPC제페토가 담담하게 답했다.
“…아… 환상적인 자세입니다.”
강기찬이 나무 인형들의 레벨을 보았다.
‘확실히 잡기만 하면 쏠쏠한 경험치를 주겠네.’
선두 무리를 향해 가던 그때였다.
퍼, 퍼퍽퍽! 퍼퍽퍽퍽퍽퍽퍽퍽퍽!
저 뒤편에선 자기네들끼리 싸우기 시작한다.
“뭐죠?”
강기찬의 물음에 NPC제페토가 이를 설명했다.
“미리 준비하는 겁니다.”
“뭘 말입니까?”
“지금이야 레벨업 빠르실 테지만, 5레벨만 올라도 성장 속도가 성에 안 찰 겁니다. 그때를 대비해 서로 킬을 먹여 성장시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용사님의 성장 속도가 느려지지 않을 테지요.”
NPC제페토는 강기찬의 성장 속도마저 배려하고 있었다.
거의 담당 트레이너 수준.
‘이 정도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최상급의 사냥터인데?’
허허벌판같이 건질 게 없어 보였던 곳이었다. NPC제페토 덕분에 지상 최고의 사냥터가 되었다.
‘적정 레벨대에 맞는 사냥터에 가는 것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네.’
사냥감이 유저의 수준에 맞춰서 알아서 성장해준다.
극한의 사냥 효율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제 이곳에서 받는 경험치는 이전과 비교를 불허했다.
현실에서 허수아비 논밭 한정 ‘경험치 25만 6천 배’적용보다 더 커진 것!
바로 이것들의 추가로 인해서.
1. 테스트서버 경험치 10배.
2. 경석 소유였던 허수아비의 논밭 선착순 1등 보상, 경험치 10배 쿠폰.
3. 허수아비 왕 처치 - 전원 보상 경험치 2배.
…가 기존의 허수아비 논밭 한정‘경험치 25만 6천 배’적용에 곱해져서, 더욱더 커졌다.
총 경험치 5,120만 배.
“그럼, 시작해보겠습니다.”
NPC제페토가 신명 나게 놀아보라고 판을 깔아주었다.
이젠 강기찬이 짜인 판 위에서 신명 나게 놀면 되었다.
그렇게…….
퍽!
[골렘 인형을 처치했습니다.]
[거대고목 인형을 처치했습니다.]
[가고일 인형을 처치했습니다.]
[자이언트 가고일 인형을 처치했습니다.]
[아이스골렘 인형을 처치했습니다.]
.
.
미친 듯이 사냥을 이어나갔고…….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 : 56]
레벨이 올랐다.
레벨이야 오를 줄 알았다.
한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동시에 레벨이 2나 올랐다?
그럴 리 없다.
알고 보니,
[레벨 : 64]
[레벨 : 1,000]
본 계정(암살자)의 레벨이 올라버렸다…….
처음엔 필요경험치가 거의 다 차올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 : 1,001]
아니었다.
그냥 얘네들이 경험치를 너무 짭짤하게 줘서다.
‘부계정만 올린다는 생각을 했지, 본계정도 레벨이 오를 줄이야… 당분간 여기서 사냥해야겠다.’
전멸시킬 때까지는…….
* * *
한편, 레전드스토리 본사 회장실 휴지통 안.
피노키오는 무사히 백색의 탑 꼭대기 층에서 NPC화타와 만났다.
“누구지?”
NPC화타의 날카로운 물음.
“저는 피노키오예요! 제가 왜 여기 왔냐 하면…….”
피노키오는 우선 자기소개부터 했다. 목적을 밝히기 전, 통성명부터 하는 게 예의라고 배웠으니.
그런 다음 목적을 밝혔다.
이를 들은 NPC화타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 음, 그래? 요약하자면 그 녀석의 다리를 고치기 위해서 내가 필요하고, 여기서 탈출시켜주겠다?”
“예…….”
우선, NPC화타가 나갈 마음이 있어야 했다.
그것부터 물었다.
“화타님께서 나갈 마음이 있으시다면요.”
“당연히 나가야지! 여기서 죽기엔 살려야 할 환자가 많아!”
다행히도(?) NPC화타가 나갈 마음이 있었다.
그것도 잠시, 그가 의심의 눈초리를 쏘아 보냈다.
“한데, 무슨 수로 여기서 탈출시켜주겠다는 거지? 여긴 한 번 들어온 이상 나갈 수가 없다. ‘권한이 있는 신’이 꺼내주지 않는 이상.”
지극히 합리적인 의구심이었다.
운영자가 신이라면 회장은 신 중의 신일 터.
그런 자의 행위를 거스를 시스템이 있다?
피노키오가 사기꾼처럼 보이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내가 널 어찌 믿을 수 있겠나.”
“믿지 말던가요!”
“이 녀석이……!”
“저는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져요.”
“아, 들어봤다!”
“아시니까 대화가 빠르겠네요.”
“한 번 보여줄 수 있나?”
“좋아요. 화타님은 잘 생겼다.”
쭈-우우욱.
“어, 왜 코가 길어졌지? 죄송해요.”
쭈-우우우욱.
“하여간 전 진심이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해요.”
쭈-우우우우우우우우우욱.
“큰일이다, 일단 좀 줄일게요. 나는 최고다. 진짜 잘생겼고 멋지다! 인기가 많다!”
코 길이가 줄어들었다.
‘왜 줄지? 저 말들이 진심이라는 건가?’
NPC화타는 찝찝했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본인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거니까.
“좋다, 탈출 가능하다고 믿어보지.”
“대신, 탈출하려면 조건이 있어요.”
“조건…? 뭐지?”
피노키오는 소환의 사용조건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에 따라오는 반응.
“뭐-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엇?!”
이후, NPC화타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심호흡을 몇 번을 하고 나서야 간신히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레벨을 내려야 한다고?”
소환의 사용조건을 들었을 때, 이쪽이 레벨을 내리는 건 상상도 못 했다. 당연히 강기찬이 레벨을 올리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다고 여겼고…….
그래서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내 레벨을 내려야 한다는 거지? 내 레벨을?”
어찌나 믿기 어려운지 언성을 높이며 강조까지 했다.
그러나 코도 대답도 변함없었다.
“예, 당연히 강기찬 용사님도 레벨을 올릴 테지만, 방금 말했다시피 워낙 레벨이 낮으셔서 화타님도 도와주셔야 해요.”
“얼마나? 내가 얼마나 레벨을 내려야 한다는 거지? ”
“3천에서 1천까지요. 2천 레벨만 내려주시면 돼요.”
“허, 참… 아무리 살 수 있다지만, 너무하구먼. 죽기 싫으면 죽으라는 소리니. 그것도 레벨을 2천이나 떨어뜨릴 때까지면 도대체 몇백, 몇천 번을 죽어… 하아…….”
수십 년간 쌓아온 탑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라고 한다.
하지만.
‘이게 차선이구먼…….’
어차피 한 달 후면 무너질 탑, 그때 무너뜨리나 지금 무너뜨리나 시간문제일 뿐이다. 더 일찍 무너뜨리면 목숨이라도 건질 수 있으니.
‘떨어진 레벨이야 다시 올리면 그만이고.’
결심이 굳었다.
“좋다.”
“잘 생각하셨어요.”
“아니, 내 대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대로 끝내기엔 아쉽지. 내가 호구도 아니고 말이야.”
NPC화타가 분위기를 반전했다.
그러나 피노키오는 태연했다.
왜냐하면,
‘정말이구나, 강기찬 용사님이 말씀해주셨던 게…….’
NPC화타가 저리 나올 거라는 걸 강기찬이 예상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