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 * *
강기찬의 계획을 실현하려면 확인해야 했다.
화타의 탈출 의지부터.
“그럼 갔다 올게.”
GM미르가 힘써주기로 했다.
그녀의 가방엔 피노키오의 발이 들어있었다.
피노키오가 NPC화타와 무사히 만나면 오늘 내로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긴장됩니까?”
강기찬이 레전드스토리 본사로 떠나는 GM미르를 보고 있자 NPC제페토가 말을 걸었다.
“네. 긴장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내 운명이 남의 손에 달린 거니까요.”
NPC화타가 삶을 포기하고 휴지통 안에서 영원한 소멸을 택한다면 강기찬도 꿈을 포기해야 할 터.
“그분도 살고 싶지 않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지만, 모르죠.”
NPC화타의 속을 누가 알겠나.
“듣자 하니, 이곳에서 오래 머무르진 못 하신다고…….”
“예.”
“남은 시간 동안 뭘 하실 건지…….”
“사냥해야죠. 일이 틀어져도 레벨은 올려야 하니까요. 그 전에 직업을 구하려고 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직업 추천을 해도 될는지…….”
강기찬도 직업을 확정 지은 건 아니어서 들어나 보자 했고.
“예, 말씀해주시지요.”
“네크로맨서입니다.”
“음…….”
“… 마음에 안 드시는지?”
“아뇨. 그건 아니지만 네크로맨서를 추천받을 줄은…….”
실은 그도 네크로맨서를 생각하고 있었다.
마음을 읽힌 듯, NPC제페토가 추천해주니 놀란 것.
“아, 아무래도… 용사님의 세계로 돌아가셨을 때도 고려를 해보자면…….”
NPC제페토가 말을 흐렸고.
강기찬이 딱 잘라 말했다.
“무슨 뜻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NPC제페토도 강기찬의 사정에 대해 알지 않나.
그 사정에 걸맞은 직업을 추천한 것.
‘하긴, 현실에서 쓰기엔 네크로맨서만한 게 없지.’
늘 어떤 원거리 딜러를 할까 고민했었다.
처음엔 마법사를 염두에 두었었고.
하나, 최선의 선택지는 아니었다.
차선일 뿐.
‘마법사라고 무빙을 안 하는 건 아니니까.’
원거리 딜러를 하려는 건, 근거리 딜러를 할 수 없어서다. 근거리 딜러는 활동적인 움직임을 동반하니까.
그런데 원거리 딜러라고 안 움직이는 건 아니다. 덜 움직일 뿐, 움직여야 할 땐 움직여야 했다.
‘…나는 아예 무빙이 안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단순한 이동. 그 외에는 불가능하지 않나.
던전 & 필드의 지형지물에 따라 이동에 제약이 크고.
또, 전투 중일 땐 아슬아슬하게 피해야 할 때도 오고.
‘마법사도 썩 내키지는 않았지.’
고로, 무빙을 아예 안 해도 되는 직업이면 좋았다.
‘무빙을 아예 안 해도 되는 직업이 뭐가 있나 생각했는데…….’
대표적으로 소환사, 테이머 혹은 네크로맨서였다.
본인이 아닌 남을 시켜 사냥하는 직업.
최소한의 무빙조차 필요 없다.
‘네크로맨서가 괜찮지.’
특히 네크로맨서가 끌렸다.
네크로맨서.
시체를 깨워 조종하는 직업이다.
막말로 본인은 아무것도 하는 게 없다.
‘나한테는 최적화된 직업이야.’
강기찬은 제자리에서 명령만 내려도 될 터.
‘뭐, 다시 걸을 수 있게 된다고 해도 좋지.’
걸을 수 없는 걸 기준으로도 최선이지만.
다시 걸을 수 있게 된다고 해도 좋았다.
다만,
“네크로맨서 전직은 어디서 하죠?”
네크로맨서 전직 방법을 모른다.
출시가 되지 않았으니까.
유저들의 반발이 거셌기에 출시도 전에 취소되었다.
그 이유는 하나, 밸런스 붕괴.
혼자서 시체로 된 군대를 통솔하는 거다.
너무 사기적인 스펙인 것.
“…미르님에게 물어보려고 했는데…….”
“제가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잘 아시나 보네요?”
“그렇습니다. 제가 네크로맨서 전직 퀘스트 제작에 가담했습니다.”
* * *
운영자도 수작업하는 세계다.
NPC가 퀘스트 제작에 가담한 게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그래도 NPC제페토가 네크로맨서 전직 퀘스트 제작에 가담했다니…….’
그러나 친분 생긴 NPC가, 네크로맨서 전직 퀘스트 제작에 가담했다는 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네크로맨서가 시체에 영혼을 불어넣는 거, 그 부분이 제가 피노키오처럼 인형에 영혼을 불어넣는 것과 같은 원리라서 자문을 했었습니다.”
“음, 그렇군요.”
“그리고… 네크로맨서 전직은 어디서 하냐 물으셨죠?”
“아, 네.”
“진시황릉에서 합니다.”
“아…….”
레전드스토리는 기존의 역사, 신화, 전설, 등을 도입했다.
그렇기에 중국의 대표 무덤인 진시황릉도 있었다.
“진시황릉이라… 다행히 존재하던 곳이네요.”
진시황릉은 본 서버 서비스 종료까지 존재했던 곳이다.
테스트서버에도 같은 위치에 있을 터.
찾기 쉬우리라.
목적지는 정해졌다.
그렇기에,
“음, 이제 헤어져야겠습니다.”
강기찬은 작별인사를 고했다.
발길을 돌리려던 차였다.
“저도 함께 가면 안 되겠습니까?”
NPC제페토의 말에 멈칫했다.
동행 요청 이유는 묻지 않았다.
뻔하니까.
바깥 세계로 나갈 수 있으니.
강기찬은 그걸 가능케 할 수 있고.
진짜 동행을 위해서라기보단 그걸 핑계로 바깥 세계로 나가는 게 목적일지도 몰랐다.
평생 갇혀 살 운명인, 그것도 버려진 세계에 있었으니 바깥 세계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크겠나.
“그 이동한계선 왕복권…….”
그걸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 듯했다.
“흐음…, 아쉽게 됐습니다.”
강기찬이 단호하게 잘랐다.
“미르님이 쓰셔야 해서…….”
이동한계선 왕복권은 1일 1매 지급되었다.
오늘 분은 강기찬이 썼고.
몇 시간 뒤, 자정에는 GM미르가 쓸 차례다.
물론, 내일모레 생길 것은 NPC제페토에게 줘도 되지만.
‘그때까지 이 안에서 있을 수는 없으니.’
NPC제페토에게 이동한계선 왕복권을 주기 위해 여기 머무를 수는 없었다.
“내일모레면… 이동한계선 왕복권이 생길 테지만, 그때까지 기다리긴 좀…….”
강기찬이 우물쭈물했다. 완곡히 거절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아! 소환이 있네요!”
소환이라면 이동한계선 왕복권을 쓰지 않고도 NPC제페토를 이곳에서 빼내 줄 수 있을 터.
“한 번 써볼게요.”
[이벤트 스킬, 소환을 사용합니다.]
[NPC제페토를 소환합니다.]
[NPC제페토의 레벨이 사용자보다 높습니다.]
[NPC제페토, 소환에 실패했습니다.]
“또 실패했네. 이거, 안 되겠네요.”
“이런…….”
“레벨이 몇입니까? 저보다 낮아야만 되는 거라…….”
“3,900레벨입니다.”
“와…아. 높으시네요.”
“할 일 없이 여기 있느라… 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튜토리얼 NPC인데도 3,900레벨이다.
NPC화타보다 높다.
“안 되겠네요… 제가 3,900레벨이 넘거나 아니면 제페토님도 레벨을 내리면 되겠지만…….”
강기찬이 3,900레벨이 되기 전‘소환’이 기간만료 될 것이다.
‘NPC제페토가 레벨을 내려주면 또 모르지만… 시도해볼 거냐고 물어나 보자…….’
그때였다.
“아쉽습니다. 제가 네크로맨서 전직 퀘스트에 큰 도움을 드릴 수 있을 텐데.”
NPC제페토의 심상치 않은 소리에, 강기찬은 귀가 솔깃했다.
“뭡니까? 큰 도움이란 게…….”
들어봐서 나쁠 건 없다.
아니, 이득일 확률이 높을 터.
“네크로맨서 전직 퀘스트의 난이도는 극악입니다. 난이도로 따지면 공략불가에 가깝지요.”
“예? 공략불가요? 아니…….”
강기찬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전직 퀘스트 중 공략불가 난이도는 금시초문이다.
“이제는 헬 난이도지만…….”
“이제는?”
“예.”
“원래는 공략불가 난이도였다는 거군요.”
“맞습니다. 이에 관해선 비하인드 스토리를 좀 압니다.”
“비하인드 스토리요?”
“예, 신들도 네크로맨서가 얼마나 사기적인 직업인 줄 아셨습니다. 그래서 아무 용사님들이나 그 직업을 가질 수 없게끔 하려고 하셨죠.”
“그래서 원래는 공략불가 난이도였다?”
“예, 실은 난도를 낮추는 게 어떠냐는 논쟁이 오고 갔습니다. 헬 난이도로요. 그렇게 난도를 낮췄지만, 부족했습니다. 헬 난이도로 하되, 그 안에서 좀 덜 어렵게 하려 했었죠.”
“네.”
“그런데 하필이면 도중에 프로젝트가 무산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헬 난이도 중에선 최상급으로 쭉 남겨지게 되었답니다.”
“아…,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을 줄이야…….”
그 후, 대화는 본론으로 돌아왔다.
“… 혹시 어떤 식으로 네크로맨서 전직 퀘스트에 도움을 주실 수 있는지…….”
그냥 도움도 아니다.
큰 도움이라고 했다.
강조했다는 건 자신 있다는 거고.
실제로 네크로맨서 전직 퀘스트 제작에 가담하기도 했다니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는지에 앞서, 왜 도움이 필요한지부터 말씀드리지요. 그게 순서에 맞으니까요.”
“네, 그러시지요.”
“진시황과 진시황의 100만 대군을 쓰러뜨려야 합니다.”
“네?!”
“네크로맨서로 전직하려면 진시황의 100만 대군을 쓰러뜨려야 합니다.”
강기찬이 되물었으나, 똑같은 대답이 흘러나왔다.
잘못 들은 게 아닌 것.
“상당하네요…….”
왜 공략불가 난이도였는지 실감이 났다.
“적어도 거대길드가 대규모 레이드를 해야 할 정도…….”
정확한 판단이다.
거대길드가 나서야 가능한 난이도.
“문제는 이게 길드가 레이드하라고 만든 퀘스트가 아닌 데에 있죠.”
신, 아니 개발자들도 바보가 아니다.
길드의 개입이 가능할 리가.
“안타깝지만, 입장 인원은 한 명입니다.”
전직 퀘스트는 혼자 하는 것이다.
특별 직업이라고 예외를 두진 않는 것.
“역시 공략불가 난이도였던 이유가 있었네요.”
혼자서 진시황과 진시황의 100만 대군을 쓰러뜨려야 한다.
가능하겠나?
그것도 초보자가.
“근데 이거 너무 깨지 못하게 만든… 아, 그래서 공략불가 난이도구나.”
왜 헬 난이도로 하향 조정했는지도 충분히 공감이 갔다. 자기네들이 설계해놓고서도 너무하다 싶었겠지.
“아니, 근데 이걸 어떻게 도와주실 수 있나요?”
“저도 함께 진시황릉에 입장할 겁니다.”
“입장 인원은 한 명이라면서요?”
“용사만.”
“네?”
“용사만 한 명이고, 나머지 신분이나 생명체는 제한이 없습니다.”
“아…….”
“이쪽 세계의 인간은 입장이 가능하게 되어있습니다.”
말인즉 NPC는 진시황릉 - 네크로맨서 전직 퀘스트에 함께 참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버그인가요?”
“아뇨, 공략불가 난이도에서 헬 난이도로 하향 조정하면서 추가한 요소죠. 숨통을 틔워놓았다고 해야 하나요? 물론 그 숨은 뜻은 파헤친 용사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입니다만…….”
“…….”
“애초에 신께서 그럴 의도로 숨겨놓으신 겁니다. 현실적으로 초보 용사가 혼자서 깰 순 없으니까요. 물론 누군가의 도움을, 그것도 상당한 수나 일류 고수의 도움을 받아야 깰 수 있겠지만요. 그걸 위해 특별히 마을간 이동이 한시적으로 풀리기까지 한답니다.”
“그럼…….”
강기찬은 차마 말로 내뱉진 못했다.
네가 일류 NPC냐고.
겉보기엔 환자라 해도 믿을 허약한 노인인데.
“저와 함께라면 진시황의 100만 대군을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
“아무래도 믿기 어려우신가 봅니다. 뭐 이해합니다. 그럼 보여드리지요. 저를 데려가야만 하는 이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