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 * *
NPC화타가 거주하는 백색의 탑.
레전드스토리 게임사 회장님 방, 휴지통에 있단다.
즉,
‘레전드스토리 본사 회장실로 가야한다…….’
GM미르가 왜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게임을 현실로 옮기는 회사다.
거길 침입?
그것도 회장실로?
불가능하다.
게다가,
“시간이 촉박할 거야.”
GM미르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휴지통에서도 비워지니까.”
삭제 후, 휴지통에 임시 보관되고 일정기간 지나면 자동 소멸한단다.
“오늘로 딱 한 달 남았네.”
기한은 한 달. 그 안에 휴지통에서 빼내야 한다.
GM미르가 걱정이 담긴 어조로 물었다.
“설마 할 생각은 아니지?”
“음…….”
“나는 네가 잘못되길 바라지 않아.”
“걱정해주시는 건 알지만, 전 갈 겁니다.”
“뭐?”
강기찬은 단호했다.
“레전드스토리 본사, 어떻게 해야 갈 수 있죠?”
“…….”
“일이 잘못돼도 GM미르님이 알려주셨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내가 이렇게 설명을 했으면 알아먹어야지.”
GM미르가 친절히 설명한 것?
포기를 종용한 거다.
그런데 왜 저럴까?
강기찬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지금이 아니면 다리 고칠 기회는 다신 오지 않을 테니까…….”
시도도 안 해보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두고두고 후회하며 살 테니.
“… 하지만 잘못되기라도 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어. 너 뒤지고 싶어?”
“살기 위해서 하는 건데 죽을 수는 없죠. 방법을 찾아볼 겁니다.”
GM미르가 언성을 높였다.
“아니, 절대 안 돼! 넌 레전드스토리 본사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안 돼!”
그녀는 강기찬의 의지를 완전히 꺾으려 했다.
“입장 제한이 걸려있어.”
“어떻게 해야 들어갈 수 있죠?”
“로그아웃해야만.”
“로그아웃이요?”
“어, 법정에 날붙이 소지하고 못 들어가지? 그거랑 같아. 로그인 상태에선 힘을 쓸 수 있으니 로그아웃해야만 들어갈 수 있지. 그 이후론 본사 내부에선 로그인 못 해. 그래야 문제가 안 생길 테니까.”
“저도 로그아웃하면…… 아…….”
강기찬이 한발 늦게 깨달았다.
GM미르가 그 점을 지적했다.
“그래, 네가 생각한 게 맞아. 넌 로그아웃하면 튕겨. 현실로.”
강기찬도 지구에선 로그아웃해도 제자리다.
테스트서버에선? 바로 현실 행이다.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레전드스토리 본사도 그렇단다.
“자, 인제 그만 포기하…….”
“아!”
GM미르가 이 논쟁을 슬슬 마무리하려는데…
“저기!”
…이 말로 인해 끊겨버렸다.
강기찬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NPC 제페토의 목소리였다.
이에, 강기찬과 GM미르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
“……?”
이목을 받은 NPC 제페토가 말했다.
“이 녀석이 강기찬 용사님을 돕고 싶답니다.”
NPC 제페토가 피노키오를 가리켰다.
“저와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준 은혜를 갚고 싶다는군요.”
은혜?
은혜라면 은혜다.
강기찬 아니면 평생 피노키오와 재회하지 못했을 테니.
척, 처척.
피노키오가 전면에 나서며 말했다.
“제가 강기찬 용사님 대신 레전드스토리 본사로 갈게요!”
“음, 그래…….”
GM미르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넌 나무인간이라서 문제없겠다. 근데 검사대는 무슨 수로 통과하게? 거긴 직원이나 허가를 받은 이들만…….”
GM미르는 강기찬의 시선을 의식했다.
“나야… 뭐 들어갈 수 있지. 그래, 근데 나만 입장할 수 있어. 저 커다란 걸 같이 데리고 들어갈 수는 없다고.”
피노키오의 키는 140cm다. 동행하면 티가 날 터.
버려진 세계에 있어야 할 녀석이 본사에 있다? 의심 살 것이다.
“보여드려라.”
NPC 제페토가 피노키오를 보며 근엄하게 외쳤다.
“예!”
피노키오가 즉각 모자를 벗었다.
이어서 멜빵 조끼, 양말, 신발까지…….
완벽하게 벌거벗은 상태.
“뭘 하려고?”
GM미르의 물음에 피노키오가‘행동’으로 답했다.
두둑, 두두두두두두두!
피노키오의 팔, 다리, 몸통이 떼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겉보기엔 널브러진 나무토막이 된 것.
NPC 제페토가 말했다.
“하하, 어떻습니까? 땔감에 쓸 장작이라고 해도 믿겠지요? 검색대를 통과할 때, 이걸 보고 위험물이라 취급하진 않을 겁니다. 게다가 지금은 무생물 상태입니다.”
“그, 그렇긴 하지. 그냥 나무토막이니까… 근데 이걸 들고 가는 것도 영 어색한데. 땔감을 회사에 왜 가져가.”
“가방에 넣고 가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음, 나 정도 되면 가방 수색까진 안 하니까, 괜찮긴 하겠네. 근데 애는 괜찮은 거야? 완전히 분해되어서 죽은 건 아니…….”
“네! 전 괜찮아요!”
GM미르가 화들짝 놀랐다.
토막 난 나무가 말을 건 기분이라.
“아, 괜찮구나.”
피노키오는 몸이 분리되어도 의식은 물론이거니와 말까지 했다.
그리고…….
“이제 돌아오렴.”
“예!”
NPC 제페토의 요청이 떨어지자마자…….
두둑, 두두두두!
여러 나무토막이 허공에 떠오르더니 서로 붙기 시작했다.
마치 자석 같았다.
몸통에 머리와 팔다리가 붓더니 순식간에 나무 인간의 형태를 갖췄다. 나무토막이 합체하여 원래의 피노키오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렇게 자유롭게 합체와 해체를 할 수 있지요.”
GM미르가 강기찬을 보며 물었다.
“너 대신 피노키오가 가도 되는 거야?”
“예, 어차피 제가 NPC 화타와 만난다고 바로 치료를 받을 순 없을 테니까요.”
테스트서버에선 강기찬은 두 다리가 멀쩡하다.
NPC 화타의 치료를 받기 위해선 그를 현실로 데려가야 했다.
이에, GM미르가 의아해했다.
“피노키오가 본사에 침투하는 것까지는 무난하게 될 거야. 꼴 보니까 회장실로 갈 수 있을 테고. 근데 그다음은?”
피노키오가 휴지통에 들어가 NPC 화타를 만난 뒤에는?
GM미르는 그다음 일정을 물었다.
강기찬이 눈을 빛냈다.
“NPC 화타를 꺼내와야죠.”
“꺼내? 무슨 수로?”
피노키오야 분리해 가방에 넣을 수 있지만, NPC 화타는 아니다. 아무리 노인이라고 해도 체구가 있는 편. 경비 몰래 검색대를 통과할 수 있을까?
“다 방법이 있습니다. NPC 화타가 적극 협조를 해줘야 할 일이지만요.”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능성이 있다고 봐?”
GM미르의 물음에 강기찬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화타가 탈출 의지만 있다면 가능할 겁니다.”
그 말에 GM미르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화타가 탈출 의지가 없을 리가 있나? 죽고 싶어 환장한 것도 아닐 텐데.”
“그래서 문제입니다.”
“뭐?”
“죽고 싶어 환장해야 탈출할 수 있을 테니까요.”
“무슨 소리야? 자세히 좀 설명해봐.”
* * *
“뭐-어어어!”
GM미르가 까무러치게 놀랐다.
강기찬의 탈출 계획이 너무 충격이라서.
시작은 양호했다.
“…소환이라면 화타를 빼내 올 수 있겠네.”
강기찬은 NPC 화타를 소환할 계획이었다.
현실에서 테스트서버로 경석도 데려오지 않았나.
NPC 화타라고 안 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스킬 설명까지 이러니…
* 소환
- 어디에 있든 원하는 대상을 소환할 수 있다.
…NPC화타가 우주에 있어도 불러낼 수 있을 터.
레전드스토리 본사 회장실, 휴지통쯤이야.
[이벤트 스킬, 소환을 사용합니다.]
[NPC화타를 소환합니다.]
[NPC화타의 레벨이 사용자보다 높습니다.]
[NPC화타, 소환에 실패했습니다.]
‘이런…….’
무작정 시도해본 건데 실패했다.
실패 원인이야 뻔했다.
《 소환 사용 조건 》
- 사용자보다 레벨이 낮아야 함.
강기찬의 레벨이 NPC 화타보다 높아야 했다.
그런데 낮다.
즉, 현재로선 NPC화타 소환이 불가능했다.
“화타의 레벨이 몇인지 아십니까?”
“글쎄…….”
하긴, GM미르가 아는 게 더 이상했다.
그것도 관심도 없는 남의 레벨을.
“뭐, 피노키오를 통해 확인하면 되겠지…….”
피노키오를 투입해 NPC 화타에게 직접 레벨을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그때였다.
띠링!
‘장로스톤’님이 「1,000코인」후원!
[젊은 용사여! 내가 안다네.]
NPC 장로스톤이 후원을 통해 말을 걸어왔다.
“뭘요?”
장로스톤 : 화타의 레벨을!
“오! 어떻게 아세요?”
장로스톤 : 내가 화타랑 밥도 먹고, 목욕도 같이했지. 죽마고우였다네!
- 아니, 장로님. 화타랑 죽마고우였어요?
- 왜 이때까지 비밀로 했었어요!
- 내가 얼마나 화타님 팬인데!
- 나도 나도!
- 그럼, 정월 대보름마다 마을 밖으로 나가셨던 게… 화타님 만나려고!
NPC들이 난리가 났다.
그들도 NPC 장로스톤이 NPC 화타랑 죽마고우였는지 몰랐나 보다. 같은 마을 주민들에게도 비밀로 했던 걸 보면 입이 무거운 모양.
장로스톤 : 연락이 끊기기 전까지 화타의 레벨이 3,000쯤이었지.
강기찬이 GM미르에게 말했다.
“연락이 끊기기 전까지 화타의 레벨이 3,000쯤이었답니다…….”
“그래?”
GM미르는 강기찬이 누구와 대화를 했는지 알았다.
NPC시청자, 테스트서버 유저만의 특색 아니던가.
운영자가 모를 리 없다.
“그나저나 화타 레벨이 꽤 높네?”
GM미르의 기준에선 저레벨이다.
강기찬의 눈높이에 맞춰준 것이다.
999레벨하고 비교하자면 아주 높은 편.
“너… 의외로 당황하진 않네?”
GM미르는 강기찬이 당황할 줄 알았다.
하긴, 1,000레벨 언저리로 예상했을 텐데 그 3배다.
당황해야 마땅한 법.
하나 강기찬은 무표정했다.
“뭐, 조금 당황했지요.”
GM미르는 다소 부정적인 어조로 말했다.
“되겠어? 늦어도 한 달 안에 3,000레벨을 넘어야 하는데?”
대격변이 터지고 10년이 되어도 1,000레벨에서 3,000레벨을 못 찍는 유저가 부지기수다.
강기찬이라고 될까?
“못합니다.”
강기찬은 단호했다.
GM미르는 이번에도 의아해했다.
“… 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지요.”
“어쩔 건데?”
“그래서 제가 말했잖습니까.”
“뭘 말했… 아아아- 아아!”
GM미르는 그제야 강기찬의 의중을 읽어냈다.
“이제야 알겠다! 왜 화타가 죽고 싶어 환장해야 탈출할 수 있는지…….”
강기찬이 좀 전에 했던 말이다.
대강 흘려 넘겼는데 이제야 이해한 것.
“…화타가 탈출 의지가 있어야겠네.”
이 역시 강기찬이 좀 전에 했던 말.
GM미르가 똑같이 말했다.
공감되었으니까.
“예, 저도 최선을 다해 레벨을 올려야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화타죠.”
그랬다.
999레벨과 3,000레벨.
하늘과 땅 차이였다.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게 쉬울까?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가는 게 쉬울까?
한 달 안에 강기찬이 3,000레벨까지 올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화타가 최선을 다해 레벨을 내려주어야 하지요.”
NPC 화타가 레벨을 내려주어야 했다.
계속해서 죽음으로써.
강기찬이 레벨을 올리고 NPC 화타가 레벨을 내리다 보면?
“그러다 보면, 저보다 레벨이 떨어질 때가 올 겁니다. 그때 화타를 소환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