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강기찬이 GM미르에게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어, 근데 이쪽은 누구?”
GM미르가 경석을 보며 물었다.
이에, 강기찬이 대답했다.
“제가 데려왔습니다. 일반인이에요.”
“아…, 왜 데려온 건데?”
“절 죽이려 해서…….”
GM미르가 정색했다.
“널 죽이려 했다고? 이게 미쳤나?”
GM미르가 다짜고짜 경석의 멱살을 잡았다.
가녀린 체구와는 달리 가볍게 들어 올렸다.
경석은 대롱대롱 매달린 모양새가 되었다.
그런 그를 올려다보며,
“이런 개새…….”
GM미르가 쌍욕을 퍼부었다.
음량은 또 어찌나 큰지 귀를 막아야 할 정도.
“… 감히 내 귀중한 고객에게! 야이…….”
그렇게 한동안 쉬지 않고 할 말, 못할 말 다 내뱉고 나서야 말을 끝맺었다.
‘내가 경석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다니…….’
강기찬은 경석이 불쌍했다. 자신을 죽이려던 자에게 동정을 내보일 만큼 GM미르의 태도는 무서웠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왜 GM미르가 과격하게 나갔는지 알 것 같았다.
‘이동한계선 왕복권, 기다렸을 테니.’
접속하자마자 나타난 걸 보면 이동한계선 왕복권을 오매불망 기다렸지 싶었다.
약속하지 않았나, 강기찬의 제안(신규 유저 유치를 가장한 패치로 현실에서도 자신이 원활한 사냥을 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이 먹히면 이동한계선 왕복권을 주기로.
그런데 만약 자신이 경석에 의해 살해당했다면 이동한계선 왕복권을 주지 못했을 테고, GM미르의 여행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을 터. 상상만 해도 끔찍했을 거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경석이 더 미웠을 테고.
퍼-어어억.
GM미르가 경석을 땅에 내팽개치며 말했다.
“이딴 자식을 왜 죽이지 않은 거야?”
“여러모로 번거롭거든요…….”
“내가 죽여줄까?”
“아, 아뇨.”
강기찬은 극구 사양했다.
방금 경석에게 대하는 걸 보고 확신했다.
자신이 상상한 그 이상의 방식으로 경석을 제거하지 싶었다. 그리고 애초에 바라던 건 무기징역이었고.
GM미르가 아쉬운지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여기로 오면 괜찮아?”
“예, 여긴 저쪽 세상에선 저만 아는 곳이라…, 절 의심해도 그 이상으로 뭘 하지는 못할 겁니다.”
“잘됐네.”
GM미르가 의외의 소리를 했다.
“얘는 내 노예로 삼아도 되지?”
경석을 보고하는 거다.
‘경석을 노예로 삼으려 하다니…….’
강기찬은 잠깐 고민하더니 되물었다.
“예? 노예요? 그래도 됩니까?”
“너도 얘 싫잖아?”
“예, 좋아할 수는 없죠.”
“죽이는 것보단 평생 고통받게 하는 게 좋지 않겠어? 범죄자에게 죽음은 너무 편한 길이야.”
“제 생각이 그 생각입니다.”
강기찬의 단호한 말에 경석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자신을 넘기지 말라는 의사 표현이었다.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거다.
이 여자, 위험하다고.
‘확실히 보통 성격은 아니지.’
자신이야 GM미르가 원하는 패를 쥐고 있으니 잘 대해주지만, NPC 제페토만 봐도 알지 않나. 말대꾸했다고 피노키오 잡아갔다.
그뿐이랴, 공략 불가 & 헬 난이도를 용사에게 강요해왔다. 고생해보라고.
‘고생 좀 하겠네…….’
강기찬이 경석에게 애도의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따뜻한 위로의 말도 함께.
“사요나라.”
“뭐? 그, 그……!”
경석이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뻐끔거렸다.
말을 하려 해도 못 하는 걸 보니 무언의 압력이 작용하는 듯했다. 그 힘의 주체는 GM미르였다.
GM미르가 중얼거렸다.
“어이, 노예! 조용히 있어 봐, 기찬이랑 할 말이 있으니.”
“경석은 어디에 쓰려고 하십니까?”
“지구에 가면 관광 가이드가 필요하지 않겠어?”
“아…….”
확실히 GM미르 혼자 지구에 가면 애로사항이 많을 거다. 말투부터 대중교통, 택시, 결제, 주문, 등등…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이 정도니.
경석을 데리고 다니면 여러모로 편할 터.
강기찬도 나쁠 건 없었다.
아니, 경석에게 고마웠다.
GM미르의 이 말로 인해서.
“너한테 부탁할까, 했는데 뭐 너도 바쁠 테니까, 얘로 만족하려고.”
강기찬은 식은땀이 날뻔했다.
혹여나 자신에게 관광 가이드를 부탁했다면?
단칼에 거절하지도 못할 터.
그렇다고 수락했다간 체력, 정신, 시간 낭비가 막심했을 거고. 그것들을 몽땅 경석에게 떠넘긴 셈이 되었다. 거기까지 고려하니 솔직히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지만, 거슬리는 게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경석을 현실로 돌려보낸다는 게…….’
기껏 테스트서버로 잡아 온 경석이었다.
그런 그를 얼마 안 가 다시 현실로 보내는 것이다. 애써 노력한 게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 같지 않나. 영 못마땅했다.
강기찬은 일순 낭패한 표정을 지었고 GM미르가 속마음을 잡아냈다.
“걱정하지마, 허튼수작 못 부리게 할 테니까. 무사히 여기로 귀가시킬 테니까.”
강기찬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다행입니다.”
‘그래… 괜한 걱정인 거지…….’
GM미르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강기찬의 노고를 허사로 돌리려 하겠나.
그리고 경석을 현실로 보낸다 한들 GM미르가 동행하기에 불안하지 않았다. 그녀는 보통 사람이 아니니까. 일반인 한 명 다스리는 거야 일도 아닐 터.
‘하긴, 강제로 입도 다물게 할 수 있는데…….’
보이지 않는 물리력을 행사해 경석의 입도 다물게 했다. 일전에 구름 위에서 뛰어내려도 끄떡없었다. 그 외에도 초자연적인 현상을 일으키는 게임의 운영자이기까지 하다.
괜히 운영자의 위치에 있는 게 아닐 것이다.
‘누가 누구 능력을 의심하는 거야… 하.’
강기찬이 진중하게 말했다.
“경석을 믿고 맡기겠습니다. 아, 그리고 죄송한데 이동한계선 왕복권은 몇 시간 뒤에나 드릴 수 있겠습니다…….”
강기찬이 매우 조심스레 알렸다.
GM미르가 발끈했다.
“머-어?! 왜! 왜-에에!”
“제가 쓰느라…….”
강기찬이 주저하며 고백했다. 일전에 휠체어를 타고는 이동한계선 보이지 않는 벽과 벽 사이를 지나갈 수 없었다. 부득이하게 이동한계선 왕복권을 쓴 것.
다행히 GM미르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얼마나 기다려야 해?”
“자정, 그러니까 다가오는 12시가 되면 드릴 수 있을 겁니다.”
“뭐…, 좋아!”
“아참, 그리고 이거…….”
“이건 뭔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지 TOP100이 수록된 책입니다. 가시는 데 참고하시라고.”
“오, 오오! 좋아! 이거지!”
GM미르가 기뻐하는 걸 보고 강기찬이 안도했다.
“저번엔 말할 겨를이 없어서 그랬는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
“테스트서버에 백색의 탑이 있습니까?”
백색의 탑.
과거 본 서버에서 사라졌던 던전이다.
그 탑의 꼭대기에 의술의 신 NPC 화타가 있다.
강기찬이 다리를 고치기 위해서 반드시 찾아야 할 NPC다.
“백색의 탑이라…….”
GM미르가 그 명칭을 읊조렸다.
“…있긴 있지.”
약간 망설이는 듯 하더니 끝내 말했다.
“어디에 있습니까?”
강기찬이 힘을 실어 물었다.
백색의 탑의 경우, 본 서버에서 던전이 통째로 빠진 경우다. 테스트서버에선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예전엔 무릉도원 근처에 있었는데…….’
990레벨 이상만이 입장 가능했던 무릉도원.
그 근처에 백색의 탑이 있었다.
‘한데, 그 무릉도원도 없어졌던지라…….’
무릉도원은 용왕의 바닷길을 통해서 갈 수 있는데 용왕의 바닷길도 없어졌다.
세계지도에서 아시아 대륙이 통째로 지워진 수준.
고로, 운영자여야 명확하게 알 터.
백색의 탑의 위치를…….
“그게…….”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나온 건 뜻밖의 말이었다.
“삭제될 예정이야.”
“예? 삭제될 예정이라니요?”
강기찬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애써 침착하려 노력하면서 물었다.
“그, 그, 그러면 다신 갈 수 없는 겁니까?”
“음… 이 정도면 말해줘도 되려나?”
GM미르는 잠시 고민했다.
“말해줘도 되겠네. 좋아.”
“…….”
강기찬은 침을 삼켰다.
그나마 다행인 게 분위기가 아주 절망적이진 않다는 것?
GM미르가 말했다.
“백색의 탑에 다신 갈 수 없냐고? 아니, 갈 수는 있지. 아직 삭제된 건 아니니까… 갈 수는 있는데… 불가능에 가깝까울 뿐이야.”
“아까 삭제될 예정이라고…….”
“그것도 맞는 말이야. 복구하면 돼.”
“어떻게 복구해야 합니까?”
“그 전에. 왜 그렇게까지 가려고 하는데?”
강기찬은 생각했다.
대충 얼버무리지 말자고.
GM미르에겐 솔직히 말하자고.
최대한 자세하게 사정을 설명했다.
* * *
GM미르가 말했다.
“너도 절박하구나.”
“예, 꼭 가고 싶습니다.”
“우선 복구하려면 휴지통에서 빼내야 해.”
“네? 휴지통이요?”
휴지통.
친숙하면서도 뜬금없는 명칭이었다.
그게 설마 운영자의 입에서 나올 줄이야.
그렇지만 분위기상 농담할 리는 없을 터.
진지하게 듣기로 했다.
GM미르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겉보기엔 그냥 휴지통인데 무한 아공간이야. …거기에 필요 없는 걸 버려.”
“대체 왜 백색의 탑을 버린 거죠?”
NPC 화타의 가치가 자신에게만 있을 거라 여기지 않았다.
이 세계, 그리고 게임사에서도 필요하지 않을까?
강기찬의 물음에 GM미르가 답했다.
“화타가 우리 통제를 벗어났으니까.”
“그게 무슨 말이죠?”
“NPC가 너희들 게임에서 나오는 데이터쪼가리 같아?”
“…아뇨.”
GM미르가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그래, 데이터쪼가리 아니야, 실제로 살아있는 이계인이야.”
강기찬은 순간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금세 지웠다. 그러고선 좀 더 쉽게 풀이하고선 확인차 물었다.
“다른 차원의 인간이라는 거죠?”
“어. 뭐 자세히는 알 거 없고.”
어째 이 부분에 대해선 자세히 설명하는 건 꺼리는 듯했다. 강기찬도 굳이 설명하길 꺼리는 걸 파고들기는 좀 그랬다.
대신, 다른 생각에 잠겼다.
‘NPC가 실제로 살아있는 다른 차원의 인간이라니…….’
레전드스토리가 보통 게임은 아닌 줄 알았고, 또 NPC가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는 것도 알았다. 한데 설마 다른 차원의 인간일 줄이야.
GM미르가 말했다.
“얼마 전, 화타에게 마지막 기회를 줬지. 그런데 끝까지 고집불통이었어. 그래서 본사에서도 지침대로 삭제를 택한 거야. 지금 휴지통에 있는 건, 삭제실행에 옮기기 전까지 유예기간이 주어진 거고.”
NPC 화타도 버려진 세계에 쭉 있다가 휴지통으로 옮겨졌단다. 버려진 세계는 일노예의 감옥인 모양. 그곳에서 형량을 채우는 와중 NPC 화타는 끝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고 결국 삭제판정을 받고선 최후의 시간을 휴지통에서 보내는 것이리라.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을 줄이야…….’
GM미르와 대화를 나눌수록 충격의 연속이었다.
모르던 세계를 알아간달까…….
그건 그거고…….
“휴지통은 어디에 있습니까?”
강기찬은 본론을 꺼냈다.
그때, GM미르의 안색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 휴지통 어디 있냐고? 회장님 책상 옆에…….”
강기찬은 어째 느낌이 싸했다.
“그 회장님이라는 분이…….”
“맞아, 레전드스토리 게임사 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