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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 테스트서버-27화 (27/151)

27화

* * *

처음엔 우스웠다.

‘고작 밀짚모자 벗었다고 적이라고?’

다음엔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럼, 밀짚모자를 쓰면 아군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궁금했다.

‘한 번 해볼까?’

실험해보기로 했다.

염력으로 밀짚모자를 띄웠다가 도로 씌워주었다.

그 사이의 변화를 잡아냈다.

‘진짜구나.’

밀짚모자를 벗기자마자 공격하려 들더니.

밀짚모자를 씌우자마자 공격을 멈췄다.

다음 의문.

‘내가 밀짚모자를 쓰면?’

무적 허수아비에게 실험했으니 본인 차례다.

‘밀짚모자를 안 썼다고 동족을 적으로 돌리는 지능이야. 내가 밀짚모자를 써도 아군으로 쳐주나?’

무적 허수아비의 지능은 처참했다.

밀짚모자 벗으면 동족도 적.

그 반대로 밀짚모자 쓰면 적도 아군이 되지 않을까?

가능하리라.

헬 난이도는 깨지 말라고 만든 건 아니기에.

1억 마리를 초보자가 감당하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으니. 무적이 아니고는 답이 없다.

‘됐다…….’

밀짚모자를 쓰니 공격은커녕 다가오질 않는다.

‘가자.’

이로써 안전하게‘외출’할 수 있다.

이동한계선을 넘었으나 반응이 없다.

무시를 즐기며 허수아비의 논밭 중앙으로 갔다.

턱, 터-어억!. 턱! 터-억!

신속하게 강풍기를 설치했다.

[설치대수] 네 대.

[방향] 동, 서, 남, 북.

자신을 중심으로 사방을 쳐다보게끔 깔고 밀짚모자를 벗었다.

우르르! 사방에서 몰려오는 무적 허수아비들. 그들을 바라보며 강기찬이 입맛을 다셨다.

‘아쉽단 말이지.’

강풍기 수가 아쉬웠다.

다다익선이라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그러면‘공격 범위’가 보다 넓어지니까.

이동한계선을 넘은 것도 공격 범위를 넓히기 위함이었다. 한 방향에서 여러 방향으로 확장하려고.

그러나 네 방향이 한계였다.

‘쩝, 어쩌겠어. 이렇게까지 많이 필요할 줄은 몰랐으니…….’

아쉬워도 최악은 면했다는데 안주했다.

아예 없는 것보단 낫지 않나.

‘헬 난이도답네. 밀짚모자의 비밀을 알아도 강풍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니…….’

새삼 헬 난이도임을 실감했다. 밀짚모자의 비밀, 강풍기, 둘 다 있어야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으니.

‘나도 강풍기를 유독가스 때문에 들고 온 거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의문.

‘대체 기획자는 무슨 생각으로……?’

이벤트 기획자는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까지 어렵게 만든 건가 싶었다.

‘기획자도 유저들이 강풍기를 가져올 거라 여겼는지도?’

패치노트에 유독가스가 있으니 강풍기를 가져올 줄 알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건 너무 낙관론이라 보았다.

‘아니지, 일반 유저라면 모를까, 신규 유저를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아무도 패치노트를 안 보았고 유독가스를 대비해 강풍기를 안 들고 왔다.

‘나한테는 감사할 일이지.’

덕분에 독식하게 생겼다.

성공한다면.

한편,

‘잘들 오네. 저승길인 줄도 모르고…….’

강기찬이 밀짚모자 벗은 탓에 무적 허수아비들이 벌떼같이 몰려들고 있었다.

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런 그들을 향해 강풍기 바람이 덮쳤다.

두둑, 두두두두두두두두둑!

후두둑, 후두둑—두두두둑!

무적 허수아비들의 밀짚모자가 벗겨졌다.

벗겨진 밀짚모자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 땅에 떨어졌고 데굴데굴, 구르면서 저 멀리 멀어져갔다.

그런데도 제 밀짚모자를 주우러 가지 않았다.

대신.

휙!

방향을 틀어 서로를 마주 보았다.

밀짚모자를 쓰지 않았기에 적으로 간주한 것.

더는 강기찬만 표적이 아니게 되었다.

퍼, 퍼퍼퍽퍽--- 퍼 퍼퍼 퍼퍼 퍼퍼퍽! 퍼, 퍼퍼퍼퍽!

자기네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

‘밀짚모자를 쓴’ 것들이‘밀짚모자가 벗겨진’ 것들을 구타하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풍기는 계속 돌아가고 있고, 운 좋게 밀짚모자가 안 벗겨졌던 무적 허수아비마저 강풍기로 가서 벗겨지기에 이르렀다.

그쯤 되니 밀짚모자가 안 벗겨진 무적 허수아비를 찾는 게 더 어려워졌다.

대다수의 무적 허수아비가 밀짚모자를 안 썼다.

그로 인해 일방폭행에서 쌍방폭행으로 변했다.

무적 허수아비들은 서로서로 공격했다.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참상.

난장판이었다.

몇 분 안 지나고, 모든 무적 허수아비 밀짚모자가 벗겨지기에 이르렀다.

폭행하지 않고, 폭행당하지 않는 무적 허수아비는 없었다. 모두가 폭행하고 폭행당했다.

[무적 허수아비가 사망했습니다.]

[무적 허수아비가 사망했습니다.]

[무적 허수아비가 사망했습니다.]

[무적 허수아비가 사망했습니다.]

[무적 허수아비가 사망했습니다.]

[무적 허수아비가 사망했습니다.]

[무적 허수아비가 사망했습니다.] .

.

.

[전멸시켜야 할 무적 허수아비 수] 3,811

실시간으로 무적 허수아비가 죽어 나갔다.

[전멸시켜야 할 무적 허수아비 수] 98

[남은 시간] 11분 32초…….

무적 허수아비 수가 100마리 이하로 줄었다.

모두가 불가능할 거라 보았던 헬 난이도, 그 끝이 보였다.

그제야, 강기찬은 강풍기 뒤에서 나왔다.

노골적인 등장.

그런데도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공격은커녕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직 강기찬만 밀짚모자를 쓰고 있고, 그보다 더 가까이 밀짚모자를 안 쓴 적이 가득해서.

‘끝이다. 아니, 이제 시작인가.’

이번 이벤트의 제목은‘허수아비 왕 처치’였다.

‘무적 허수아비 전멸’은 허수아비 왕을 불러내는 수단이었을 뿐, 즉 이제부터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는 거라 보면 되었다.

‘흠.’

[남은 시간] 10분 12초…….

[전멸시켜야 할 무적 허수아비 수] 0

[무적 허수아비가 전멸했습니다.]

[허수아비 왕이 소환됩니다.]

무적 허수아비가 전멸했다.

이벤트 종료까지 10분 12초를 남겨두고.

달리 말하면, 10분 12초 만에 허수아비 왕을 처치해야 한다는 의미.

‘빡빡하네.’

빡빡한 시간이다.

최소한 여유 있지는 않을 터.

무려 1억 마리를 제물로 바쳐 소환한 보스몬스터니.

‘쉬울 리가.’

처치하기 어려우면 어려웠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두근… 두근!

가슴이 떨려왔다.

두려움? 아니, 기대감이다.

‘실패한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다쳐도 아프지도 않고. 뭐가 무서워.’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던전 내부에는 죽음도 고통도 없지 않나.

그렇다고 가볍게 임하지는 않을 거지만.

‘허수아비 왕 잡아서 한층 더 성장하자.’

던전에서 얻은 모든 것이 현실로 이어진다. 안 죽는다고 안 아프다고 대충할 수 없다. 늘 그래왔듯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저놈인가…….’

무적 허수아비 시체가 소멸하고 텅 비게 된 허수아비의 논밭. 언제부터였을까, 오직 딱 한 마리만이 우두커니 서 있는 게 보였다. 허수아비 왕이리라…….

‘특이하네…….’

왕이라고 티를 내는 건지 아주 특이했다.

우선 신체 구조.

허수아비는 각목으로 십자(十)에 지푸라기가 덮여있었다.

반면, 허수아비 왕은 나무인간 같았다.

비유하자면,

‘피노키오 같네.’

피노키오처럼 손과 발, 팔다리에 관절이 있어 꺾였다.

또한, 밀짚모자가 황금색이었다.

‘그나저나… 안 오나?’

좀처럼 허수아비 왕이 다가오지 않았다.

‘안 오면 내가 가야지.’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법.

급한 쪽이 가는 수밖에.

위-이이이이-이이잉!

그렇게 꽤 가까이 갔을 때까지도…….

‘어쭈? 안 움직이네?’

허수아비 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가면 반응할 줄 알았는데…….’

일절 반응하질 않으니 잡념이 섞인다.

‘혹시 방심한 틈을 타서 기습공격을 하려고?’

허수아비 왕을 유심히 관찰했으나 표정이랄 게 없어서 그런지 수읽기도 불가능했다.

그랬기에 강기찬은 더 다가가지 않았다.

그리고 10초, 20초, 30초…….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어쩔 수 없지…….’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는 없었다.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었기에.

‘불안하게 접근전을 할 건 없으니.’

현 안전거리를 지키고선,

척.

표창을 꺼냈다.

단검 암살자지만, 표창을 못 쓸 것도 없었다.

관련 스킬을 못 써 데미지가 약할 뿐이지.

‘과연 얘한테는 어떻게 될까? 데미지가 좀 들어가려나?’

표창을 날렸다.

타-아앙!

표창이 허수아비 왕의 머리통을 강타했다.

하지만, 박히지도 않았고,

[Miss!]

공격도 실패했다.

단 1의 데미지도 들어가지 않은 것.

그 후, 수차례 시도했으나 역시나.

‘설마 또?’

공략법을 알 것도 같았다.

‘이벤트에 일관성이 있다면…, 이전의 공략법과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즉시 염력을 사용했다.

허수아비 왕의 황금 밀짚모자를 띄우려고.

그런데… 실패했다.

‘왜? 실패했지?’

실패 원인을 따져보았다.

‘무거워서?’

너무 무거우면 못 들 수도 있다.

‘아니면… 혹시 애초부터 못 들게 되어 있는 건가?’

시스템적으로 허수아비 왕의 머리와 황금 밀짚모자가 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결론은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럼 이건 어떨까?’

또 역발상을 하기로 했다.

자신의 밀짚모자를 벗어보았다.

그러자마자,

두두, 두두두두!

허수아비 왕이 달려온다.

‘오 이제야 반응하네.’

강기찬은 제 나름대로 해석했다.

허수아비 왕이 그동안 가만히 있었던 이유를.

‘날 아군으로 인식해서 공격할 대상이 없어서 멈춰 있었던 거구나.’

강기찬은 밀짚모자를 썼으니 아군.

즉, 움직일 이유가 없었던 것.

지금은 밀짚모자를 안 썼으니 적.

적을 공격하고자 움직이는 거고.

‘그렇다면, 내가 밀짚모자를 벗은 상태에서 공격하면?’

좀 전에는 밀짚모자를 쓴 상태에서 공격했다.

어쩌면 그래서 공격이 안 통했던 게 아닐까?

‘공격해보면 알겠지, 어떨지!’

표창이 공기를 가르며 허수아비 왕의 머리통에 박혔다.

‘됐다!’

아까는 박히지도 않았었는데, 박혔다!

막막함이 뻥 뚫리는 순간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공략을 해…….’

그러던 그때였다.

“어?!”

띠링!

[허수아비 왕이 사망했습니다.]

“헉!”

강기찬이 놀랐고, 이를 지켜보던 경석도 놀랐다.

그리고…….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지구서버 운영1팀 팀장 자쟈도 놀랐다.

* * *

지구서버 운영진 회의장은 한창 시끄러웠다.

“쟤…, 허수아비 왕을 왜 저렇게 쉽게 잡아?”

부하 직원 중 하나가 답했다.

“저 그게… 초보자를 대상으로 한 보스몬스터잖습니까, 그걸 999레벨이 잡았으니…….”

“하…, 그럼 허수아비 왕 레벨을 올렸어야지!”

“대놓고 저격 패치를 하란 말씀입니까?”

특정 유저를 대상으로 하는, 일명 저격 패치는 금지되어 있다. 허수아비 왕의 레벨을 함부로 올릴 수는 없는 것.

부하 직원이 조심스레 말했다.

“그렇다고 강기찬 수준에 맞추면 나머지 유저들이 피해를 볼 겁니다.”

“…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네? 쟤가 설치는 거 계속 봐야 하는 거야? 우리가 야심 차게 야근하면서 준비할 신규 유저들을 위한 각종 컨텐츠! 그거 쟤 혼자서 다 빨아먹는 거 봐야 하냐고!”

“…….”

운영자들은 일동 침묵했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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