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 * *
이벤트가 시작한 지 10분.
‘무적 허수아비의 폭행 이유’를 찾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그 이유는‘1억 마리의 무적 허수아비를 전멸시키는 방법’과 일맥상통했다.
그런데도 마냥 성공할 거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시간이 촉박할지도 몰라.’
바로 제한시간 때문이었다.
현재 남은 시간 50분.
그 안에 1억 마리를 전멸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래도 뭐 어쩌겠어, 해봐야지.’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강기찬은 천천히 이동했다.
그걸 보고선 경석이 외쳤다.
“뭐야? 찾은 거야? 쟤네들이 왜 싸우는지?”
강기찬은 달리 대답하지 않았지만, 무언의 긍정 아니겠나.
‘저 자식, 대체 뭐야?’
경석은 강기찬을 다시 보았다.
처음엔 단순히 대피한 거로 보았다.
이동한계선을 넘어온 것 말이다.
한데 돌이켜 보니 아닌 듯했다.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던 것.
‘해결책을 궁리할 공간 확보를 위한 거였어.’
강기찬이 이동한계선을 넘어온 까닭.
대피처가 아니라 생각할 공간으로 쓰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해결책을 찾은듯했고.
반면,
‘근데 나는 왜 모르겠지?’
경석은 아직도 몰랐다.
무적 허수아비가 자기네들끼리 싸웠던 원인을.
강기찬과 같은 장면을 보았음에도 말이다.
수학 풀이를 옆에서 보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거랄까.
‘대체 뭘까?’
강기찬에서 이동한계선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무적 허수아비들이 유저들을 쫓느라 여념이 없었다.
단, 넘어지기 일쑤였다.
한정된 공간에 막대한 물량이었기에 자의로 타의로 넘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무적 허수아비 하나가 앞으로 넘어지자 그 뒤의 녀석도 넘어졌다. 그렇게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넘어진 뒤…….
…그다음에 구타가 일어났다.
‘아!’
경석은 그제야 깨달았다.
‘넘어지게 만들면 되는 건가?’
현상만 보자면 맞는 말이다.
무적 허수아비가 넘어지면 구타가 일어나긴 했으니.
정확한 원인은 몰라도 상관없지 않나.
어차피‘전멸’ 그 자체가 목적이니 넘어뜨리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넘어뜨리지?’
또 그게 문제였다.
그러다가 깨우쳤다.
‘아, 아니네?’
넘어졌다고 구타가 일어나는 건 또 아니었다.
실제로 넘어졌음에도 구타당하지 않는 것들이 꽤 있으니.
‘씨, 대체 뭐야?’
강기찬이 왜 10분씩이나 지켜보았는지 알 것 같았다.
한두 번으로는‘명확한 원인’을 찾기 어려웠기에.
* * *
강기찬은 끊어진 이동한계선 앞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이동한계선 너머를 보았다.
‘역시 맞아.’
간헐적으로 넘어지는 것들을 보며 확신했다.
어떤 이유로 폭행 사건이 일어났는지 심증이 굳은 셈.
마지막으로 최종 점검을 해볼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이를 위해 강기찬이 끊어진 이동한계선 앞에 갔다.
그러고선 외쳤다.
“야!”
가까이에 잡을 유저들이 많아선지.
아니면 이동한계선 너머를 인지하지 못하는 건지.
인지하면서도 넘볼 수 없다고 여겨선지…….
너무 멀리 있어선지…….
어떤 건지 잘 모른다.
그중 하나일 터.
무적 허수아비가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이유가.
그 덕에 집중해서 관찰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관심을 주었으면 했다.
그 바람이 통했던 걸까.
“야-아아아!”
휙, 휘휘휘휙!
강기찬의 단말마와 같은 외침에 무적 허수아비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다소 섬뜩한 상황.
강기찬은 웃을 뿐.
다다,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무적 허수아비들이 강기찬을 향해 뛰어왔다.
그러다가 또 넘어졌고 구타하고…….
이윽고…….
무적 허수아비 선두대열이 강기찬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그렇게 강기찬에게 닿으려고 부단히도 애를 썼으나.
두, 두두두!
보이지 않는 벽과 벽 사이에 끼일 뿐이었다.
몸이 십자(十)로 고정되어있기에 정면으로는 보이지 않는 벽과 벽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방향을 돌릴 생각조차 못 했다.
그럴 지능도 없었다.
그 결과, 선두대열은 보이지 않는 벽과 벽 사이에 끼였고, 뒤에선 들어오려고 무작정 밀쳐댔다.
그때였다.
【염력】
강기찬이 염력을 사용한 것은.
저 멀리, 한 무적 허수아비의 밀짚모자를 공중으로 띄웠다.
이후, 변화가 일어났다.
휙, 휘휘휘휙!
무적 허수아비들이 더는 강기찬을 쫓지 않았다.
어딘가로 방향을 틀었다.
같은 무적 허수아비 쪽으로.
그리로 가더니 동족을 패기 시작했다.
또다시, 동족에게 하는 일방적인 폭행이 일어났다.
그 상황을 지켜보며…….
‘역시.’
강기찬이 웃었다.
‘공격하는’ 쪽과‘공격당하는’ 쪽.
그걸 결정짓는 차이는 단 하나였다.
밀짚모자를 썼냐, 안 썼냐, 그 차이다.
지금, ‘공격당하는’ 무적 허수아비.
밀짚모자를 안 쓰고 있다.
강기찬이 방금 밀짚모자를 벗겼기에.
밀짚모자를 안 썼다는 이유만으로 얻어맞고 있는 거다.
그게 바로 무적 허수아비들의‘적 인식 기준’이었다.
구타 사건이 일어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넘어져서 공격대상이 된 게 아니라 넘어지면서‘밀짚모자가 벗겨졌기에’ 공격대상이 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세 마리가 죽었다.
‘강기찬이 밀짚모자를 벗긴’ 녀석을 구타하다가 두 마리도 밀짚모자가 떨어졌고 그 결과 맞아 죽은 것이다.
‘흐음, 어떡한담…….’
분명 밀짚모자를 벗기는 게 해답이다.
유저의 손으로는 단 1의 데미지도 들어가지 않았다.
반면, 무적 허수아비끼리는 데미지가 들어가는 건 물론이거니와 처치하기까지 하다.
밀짚모자를 벗기는 것 자체가 공격, 아니 필살기인 셈.
다만,
‘너무 많아.’
문제는 9천만여 마리의 밀짚모자를 벗겨야 한다는 점.
아니, 다 벗길 필요는 없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벗겨야 했다.
그러나 그‘어느 정도’도‘몇천만…….’
염력을 쓴다고 해도 감당할 물량이 아니다.
다수의 밀짚모자를 동시에 벗기진 못하니까.
‘어떡하지?’
그새, 폭력사태는 종결되었다.
여럿이서 한 마리 잡는 거야 금방이니.
‘이대로면 남은 시간 안에 전멸은 무리다.’
다른 방법을 써야 했다.
서둘러 인벤토리에서 강풍기를 끄집어냈다.
보이지 않는 벽과 벽 사이에 세워놓고선 틀었다.
최대 세기로.
직후,
“야! 야-아아아!”
고함을 질렀다.
본인을 미끼로 내세운 것.
이로써 무적 허수아비를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런 다음, 그들을 향해 강풍기를 틀면?
적어도 자신을 노리고 오던 것들의 밀짚모자는 확실하게 벗길 수 있다.
중요한 건, 그걸로 끝이 아니라는 점.
밀짚모자가 벗겨진 것들은 나머지 것들의 표적이 될 터.
자연스레 이리로 오게 된다.
오는 즉시 강풍에 밀짚모자가 벗겨질 테고.
그렇게 되면 서로 싸울 수밖에 없다.
일방폭행에서 쌍방폭행으로 변하게 되는 구조.
그러다 보면 규모가 커져 대규모 난전이 될 테고.
외곽에 있느라 미처 강기찬에게 어그로가 끌리지 않았던 것들마저 끌어오게 될 터.
밀짚모자가 벗겨진 녀석을 구타하러 오던 것들도 밀짚모자가 벗겨졌고, 그것들을 구타하러 오던 것들 또한, 밀짚모자가 벗겨졌다. 그리고 또 그것들을 구타하러 오던 것들도…….
완벽한 선순환 구조의 무한 반복.
이쪽에서 벗겨주면 알아서 서로 죽여준다.
그저 강기찬은 물끄러미 구경하기만 하면 되었다.
얼마나 편한가.
비록 보이지 않는 벽과 벽 사이의 좁은 틈새로 바람이 나오고, 그 근처의 소수의 무적 허수아비만 밀짚모자가 벗겨져서 초당 사망하는 수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던전은 게임시스템이 99.9%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사망한 무적 허수아비 시체는 그때그때 사라져주어, 다른 무적 허수아비가 그 공간을 메워 밀짚모자가 벗겨질 수 있게 허용해주었다.
이 광경을 보며…….
경석은 뒤늦게 알아차렸다.
“아… 밀짚모자가 벗겨진 무적 허수아비를 공격하는구나…….”
무적 허수아비가 동족을 해치는 원인이 무엇인지.
동시에 그런 생각도 들었다.
“저, 저거 완전 날로 먹네…….”
강기찬이 편하게 이번 이벤트를 독차지하게 생겼다는 점이다. 유저들이 전부 나간 뒤였기에.
현재 허수아비의 논밭에 있는 이는 둘.
강기찬과 경석뿐이었다.
사실상 자신은 이벤트에 참여 못 하니 강기찬이 이벤트를 독차지한다고 보는 건 당연했다.
‘물론 저기까지 가는 게 아무나 못 하지만…….’
강기찬이 날로 먹는다는 표현을 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 순간만을 놓고 한 얘기다. 여기까지 오는 건 결코 날로 먹은 게 아니다.
어딘가에 반드시 필승법이 있을 거란 믿음.
그리고 그걸 찾아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끈기 있게 관찰해 기어이 찾아내는 것까지.
끝으로, 강풍기를 통해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능력.
이 모든 걸 할 수 있어야지 가능한 거니.
실제로 다른 유저들은 그걸 못 해 이벤트를 포기하고 줄행랑친 거고.
더군다나 설령 밀짚모자에 대해 알았다고 해도 이동한계선 왕복, 강풍기 등이 없으니 1억 마리나 되는 무적 허수아비의 밀짚모자를 벗기지 못했을 테고 말이다.
그러므로,
“강기찬만이 할 수 있는 거야.”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일련의 기적은 강기찬만이 해낼 수 있다고.
또한,
“되겠는데?”
가능성을 엿보았다.
1억 마리의 무적 허수아비를 전멸시킬 수 있을 거라고.
동시에,
‘아, 아니다. 너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비관적으로도 보았다.
‘30분 정도 남았는데 아직 저렇게 많이 남았는데…….’
[현재 남은 시간 : 29분]
[현재 남은 무적 허수아비 수 : 64,891,202]
6,400만 마리나 남았다.
헬 난이도의 수준을 새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랬기에 절망했다.
‘여기까지 왔음에도 깰 수가 없는 구나…….’
강기찬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기찬은 할 만큼 했어. 헬 난이도의 벽이 그보다 훨씬 더 높고 견고했을 뿐…….’
그때였다.
“어!”
경석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강기찬이 대뜸 이동한계선을 넘어가는 게 아닌가.
“… 왜, 왜 나가!”
저건 자살행위다.
지금껏 잘해놓고선 왜 저런단 말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돌발행동이었다.
“무언가 방법을 찾은 건가?”
의구심이 들었다.
확실히 작금의 방법엔 한계가 있었다.
동시에,
“이 이상으로 좋은 방법이 있어?”
지금 하는 방법이 최선이지 않나.
시간이 부족해서 탈이지.
그리고 그건 강기찬도 어쩔 수 없는 문제다.
“…그래도 무언가 있으니까, 저럴 거 같긴 한데.”
강기찬의 저 행동, 생각 없이 하는 게 절대 아닐 거다.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하는 것일 터.
다만, 겉보기에는 뭘 하려는지 모를 뿐.
“잠깐, 저, 저것들은 또 왜 저래?”
이상한 짓을 하는 건, 강기찬 혼자만이 아니었다.
무적 허수아비들 또한 그랬다.
강기찬이 다가오는 걸 인지하고 뛰어들었다.
거기까진 정상이었다.
그런데 그다음이 비정상이었다.
강기찬의 지척에 다다라 공격하려던 찰나…….
“지나쳤어?”
무적 허수아비들이 강기찬을 지나쳤다.
강기찬도 무적 허수아비들을 지나쳤고.
서로가 서로를 무시한 것.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 미친… 또 뭘 보여주려고?”
아무래도 강기찬은 무언가를 또 발견한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