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 * *
강기찬과 유저들은 떠나갔다.
이벤트에 참여하러 간 것.
남은 건 경석뿐.
경석은 저들이 가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이벤트 따위 더는 중요치 않았기에.
그보다 더한 고민거리가 있지 않나.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이제 어쩐담…….’
인생에 이만큼 고민한 적이 있나 싶었다.
강기찬이 준 선택지는 둘.
1. 이동한계선 감옥에서 죽기.
2. 계정 바치고 이동한계선 밖으로 나오기.
그 외, 선택지는 없다고 단단히 못 박은 상태.
‘하…….’
빨리 선택해야 했다.
- 이번 이벤트가 끝날 땐 확답이 나와야 할 거야.
강기찬이 떠나기 전 남긴 말이었다.
- 전직하면 여기는 다신 돌아오지 못하니까.
강기찬이 전직하는 순간 초보자가 아니게 될 터.
그땐 경석을 구해주고 싶어도 구해줄 수 없다.
그러니 구해줄 수 있을 때, 구해달라고 해야 한다.
사실 오래 고민할 거리도 못 되었다.
‘당연히, 2번인데.’
2번, 계정 바치고 이동한계선 밖으로 나오기.
이걸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죽을 수는 없으니까.’
강기찬에게 계정을 넘기는 것.
최악이었다.
그러나, 목숨에 비할 바는 아니다.
‘비참해도 살아있어야 해! 그래야 다음이 있는 거니까. 산 다음에 힘을 길러 복수하는 거다…….’
이제는 알았다.
자신을 가둔 게 박창준이 아니라 강기찬이라는 것을.
‘어쩐지 박창준이 이동한계선을 넘을 수 있다는 게 이상하다 싶었지…….’
이동한계선을 넘을 수 있는 인간이 하루아침에 두 명이나 나왔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강기찬이 박창준을 제압한 뒤, 이용해서 나를 불러냈고 기절시켜 이곳에 감금한 거다.’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그걸 알면서도 바라는 대로 해줘야 한다는 게…, 뭣 같지만…….’
별수 없었다.
‘계정을 바치자.’
강기찬에게 계정을 바치고 이곳에서 나가기로 했다.
* * *
띠링!
[세 번째 이벤트이자 마지막 이벤트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세 번째 이벤트는 허수아비 왕 처치입니다.]
《 허수아비 왕 처치 》
[허수아비 왕 처치 시, 처치한 구역, 전원 보상!]
[허수아비 왕을 처치하는 용사에게는 특별 보상이 주어집니다.]
[허수아비 왕은 무적 허수아비가 전멸할 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난이도 : 헬]
[무적 허수아비 수 : 1억]
[제한시간 : 한 시간]
[제한시간이 지나면 이벤트가 종료됩니다.]
유저들이 경악했다.
적지 않게 당황도 했고.
“뭐?! 헬 난이도?!”
“무적 허수아비? 정말 무적인가?”
“무적 허수아비 수 1억?!”
“1억 마리를 전멸시켜야 한다고?”
“그래야 허수아비 왕이 나온대.”
“하… 허수아비 왕은 구경도 못 해보고 끝나겠네.”
“이걸 깨라고 만든 거 맞나?”
“아니, 신규 유저 이벤트인데 뭐 이래? 누가 보면 랭커들 이벤트인줄 알겠어?”
혼란스러운 와중,
“재미있겠다.”
강기찬만 미소지었다.
순수하게 흥미를 보인 것이다.
“아, 아저씨.”
노재민은 보았다.
강기찬의 미소를.
정신병자로 보기 딱 맞았으나,
“멋져요!”
팬의 눈엔 뭘 하든 예뻐 보이는 법.
“넌 안 떨리냐?”
강기찬이 물었다.
벌벌 떨고 있는 자들도 보였기에.
“예, 뭐…….”
노재민은 담담히 답했다.
“…목숨이 걸린 것도 아닌데.”
무적 허수아비 1억 마리?
직접 보면 압도적일 거다.
하나 겁먹을 것까진 없다.
던전에선 죽지도 다쳤다고 아프지도 않으니까.
“맞아, 바람직한 태도다.”
“근데, 무적 허수아비가 정말 무적일까요?”
허수아비의 무적 여부.
노재민도 그 점만큼은 심히 거슬렸던 모양.
“무적이라 했으니 무적이겠지.”
강기찬이 태연히 중얼거렸다.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반면 노재민은 걱정이 되었다.
“…그럼, 어떡해요?”
“기다려보자, 지금 고민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야.”
강기찬이 노재민을 안심시켰다.
“공략 불가 난이도가 아니고 헬 난이도야.”
“…예?”
“헬 난이도는 깨라고 만든 거야.”
헬 난이도는 무진장 어려울 뿐, 깰 수 있다.
공략 불가 난이도를 깬 사람의 생각이었다.
* * *
두두, 두두두두.
갑자기 지면이 진동했다.
“지, 지진?”
“갑자기 웬 지진이야?”
유저들이 공포에 떠는 가운데 강도가 점점 심해졌다.
다들 넘어지지 않고자 발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 안간힘을 쓰며 지탱하고 섰는데…….
쫘, 쫘자자자작!
땅이 뒤틀리더니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흔들리던 땅은 이내 잠잠해졌다.
언제 지진이 났었냐는 듯.
“…끝난 건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이러다가 또 돌발변수가 생기면 그땐 넘어질 것 같았기에.
30초쯤 지나서야…….
“끝난 것 같네.”
끝났다.
저벅.
다들 멈췄던 걸음을 내디뎠다.
땅 곳곳이 갈라진 게 보였다.
띠링!
[무적 허수아비가 소환됩니다.]
[전투를 준비하십시오.]
시스템 메세지가 뜨는 것과 동시에…….
슉, 슈슈슈슉!
땅의 갈라진 틈새에서 무언가 뛰어나왔다.
무적 허수아비들이었다!
“어, 어어! 온다-아아아!”
“싸울 준비해!”
그야말로 깜짝 등장이었다.
멀리서 올 줄 알았는데 매복에 습격이라니.
“후, 후우!”
“하! 아앗!”
유저들은 긴장의 끈을 바짝 당겼다.
허수아비라고 방심하지 않았다.
아니, 방심할 수 없었다.
헬 난이도에, 무적이란 수식어가 붙은 허수아비다.
게다가 1억 마리이기까지 하니…….
결코, 만만할 리 없을 터.
그렇게…….
전투는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없이 급작스레 시작되었다.
“으아!”
“이야아-아앗!”
땅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바람에 누구의 진영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아군, 적군의 경계가 없는 난전이 펼쳐졌다.
유저들은 짧게 당황했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대항했다.
각자의 기합을 불어넣으며 무적 허수아비를 공격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새삼 밝혀졌다.
“지…, 지진짜다!”
“진짜 무적 허수아비야!”
곳곳에서 증명되고 있었다.
무적 허수아비는 무적이라는 것을.
퍽, 퍼퍼퍼퍽!
퍽! 퍽! 퍽! 퍽!
연달아 울리는 타격음.
하나, 정작 쓰러지는 무적 허수아비는 없었다.
데미지가 1도 들어가지 않았기에.
때려도 때려도 끄떡없었다.
되레, 유저들이 치명상을 입었다.
“아악!”
“뭐가 이렇게 단단해!”
“내 팔, 내 파-아알!”
“다리가 부러졌다, 망할!”
“나 좀 도와줘! 이러다간 죽겠어!”
“이번에 죽으면 네 번째라고!”
아수라장이었다.
죽고 또 죽고 부활하고 또 부활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심지어 후퇴하는 자들까지 속출했다.
웃기는 건 후퇴하다가도 죽는다는 거다. 땅이 갈라진 탓에 실족사를 면치 못하니.
고의로 그 길을 택하는 이들도 있었다. 몬스터한테 죽는 것보다 사고사가 경험치가 덜 깎여서.
“나, 나 나갈래!”
“이거 안 해! 안 하고 말지!”
이벤트 포기자가 속출했다.
괜히 죽어서 경험치를 잃느니 보상 안 받고 말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둘씩 던전을 나가기 시작했다.
* * *
강기찬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무적 허수아비에게 데미지를 줄 수 없었다.
다만 다른 이들과의 차이점이 있었다.
‘그래, 헬 난이도는 이래야지.’
승리욕에 불타올랐다는 것이다.
‘뭘까?’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이 반드시 있다고 믿었다.
‘해결책이 없으면 공략 불가 난이도여야지. 헬 난이도가 아니고.’
바로 난이도 헬 난이도인 것.
그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몹시 어려울 뿐, 깰 수는 있단 거니까.
하지만,
‘작전상 후퇴다.’
물러서기를 택했다.
지금은 일렀기에.
무적 허수아비와 맞붙는 것?
해결책을 찾은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터.
지금 맞붙으면 괜한 체력만 낭비할 것이다.
단, 던전 밖으로 나가진 않았다.
나가는 순간 아웃이다.
그것도 그렇고 굳이 나갈 것도 없었다.
던전 안에 안전한 대피소가 있으니.
가볍게 이동한계선을 넘어갔다.
그곳을 넘어가서 뒤돌아섰다.
지옥도와 같은 상황이 더 잘 보였다.
끊임없이 생성되는 무적 허수아비…….
유저들이 던전을 빠져나가는 것도 보였고.
강기찬은 우두커니 선 채 그 광경을 관찰했다.
“저기…….”
경석이 말을 걸어왔으나,
“나중에.”
강기찬이 그 말을 끊었다.
“그, 그래…….”
경석은 입을 꾹 다물었다.
강기찬의 말이 맞았다.
굳이 지금 얘기하지 않아도 되니.
그 이후로도 침묵은 이어졌다.
꽤 장시간 동안.
그러다가…….
‘뭐지?’
문득, 경석은 의아했다.
‘뭘 저렇게 집중해서 보는 거야?’
강기찬은 뚫어지라고 이동한계선 너머를 보는 중이었다. 1, 2분도 아니고 무려 5분째.
이에, 경석의 시선도 그리로 향했다.
하지만,
‘다를 게 없잖아?’
한참 전, 조금 전, 그리고 지금. 아마 나중에도…….
달라질 게 없었고 달라질 건 없지 싶었다.
허수아비의 논밭을 꽉꽉 채운 무적 허수아비 무리.
그리고 도망치는 유저들…….
똑같은 상황의 되풀이.
‘음?’
일순, 자신이 착각했음을 깨우쳤다.
‘아, 여기가 아니구나.’
강기찬이 보는 곳이 아닌 엉뚱한 곳을 보았던 것.
약간 왼쪽을 보자…….
‘저기구나!’
강기찬이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있었다.
‘뭐지?’
주변 유저들은 도망치느라 못 보고 놓칠 테지만.
여유로운 이곳에선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가능했다.
지금 저곳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쟤, 쟤네 왜 저래?”
얼떨결에 말이 튀어나왔다.
슬며시 강기찬을 보았다.
혹시 그라면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무언가 알고 있다면 알려주었으면 했다.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으니까.
“쟤네 왜 싸우는 건지 알아?!”
강기찬이 건조하게 대답했다.
“나도 그게 궁금해서 보고 있지.”
그도 모른다는 의미.
무적 허수아비가 자기네들끼리 싸우는 이유를.
그만큼 참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유저라는 공동의 적을 앞에 두고 있지 않은가.
“왜 저럴까?”
* * *
경석은 막 보았지만, 강기찬은 몇 분 전부터 쭉 저런 광경을 지켜보았었다.
그러다 보니 여러 공통점을 찾아냈다.
1. 무적 허수아비들은‘서로’ 싸우는 게 아니었다.
‘다수’가‘소수’를 공격하는‘일방폭행’이었다.
하나 더.
2. 구타당하는 무적 허수아비들은, 묵묵히 맞기만 할 뿐이었다. 체념한 듯,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않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3. 이 일련의 상황은 단체로 넘어지고 난 뒤에 일어났다.
‘지금까지 몇 번을 보았지만, 예외는 없었어.’
어떠한 법칙.
이에 따라 일어나는 게 틀림없었다.
그만큼‘몬스터’끼리 싸우는 경우는 드물다.
그것도 그냥 싸우는 게 아니라 일방적인 구타이기까지 했으니, 이건 드문 정도가 아니다.
처음 보았다.
그만 처음 보는 게 아니라 어쩌면 이 사례가 최초일 수도.
이런 사례가 있었으면 몰랐을 리가 없으니까. 레전드스토리 커뮤니티가 난리가 났을 테니.
그런 현상이 한 군데도 아니고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무려 여섯 군데다.
여섯 군데서 다수가 하나를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중이다.
과연, 이 현상이 우연일까?
특히, 이 시기에 일어난 게?
아니다.
무언가 원인이 있기에 이런 결과가 나온 거라 믿었다.
단지, 그게 무엇인지 모를 뿐.
그렇게 앉아서 얼마나 관찰했을까.
벌떡.
강기찬이 일어섰다.
입가에 호선을 그린 채.
‘이거다.’
드디어 원인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