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 * *
경석은 말문이 막혔다.
강기찬이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기에.
‘뭐? 레전드등급 아이템 먼저 넘기라고? 이 자식이 나를 가지고 흥정을 하겠다는 거야 뭐야?’
물론 강기찬은 이렇게 나오는 게 정상이다. 상황이 유리하니까.
그러니 경석은 아니꼬워도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상황이 불리하니까.
강기찬에게 레전드등급 아이템 먼저 넘기고 그다음에 나가야 했다. 유불리를 떠나 그게 순서에 맞다.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는 속담도 있지 않나. 지금 경석이‘물에 빠진 놈’인 셈.
‘설마 알아차린 건가? 내가 레전드등급 아이템 안 줄 거라는 걸?’
저 속담, 진짜 실천할 계획이었다.
…정말로 레전드등급 아이템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도움만 받고 내뺄 작정인 것이다.
한데, 마치 그런 불상사를 방지하겠다는 듯, 레전드등급 아이템 먼저 넘기라고 하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그럴 수는 없지! 난 여기서 무사히 나가고 레전드등급 아이템도 안 줄 거다! 이건 내가 얻은 내 거라고!’
서로에게 득이 되는 거래는 있을 수 없었다.
무조건 자신만 웃어야 한다.
하나, 강기찬은 이에 반하려고 하고 있다.
‘일개 흙수저 게임폐인 새끼가 감히 나한테?’
강기찬이 못마땅했다.
‘…곱게 뒤통수를 맞아주면 될 걸 가지고.’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언급했듯 자신이 철저하게 불리하니까.
지금은 숙여야 할 때다.
[경석] 이봐, 내가 레전드등급 아이템을 안 주겠어? 그 순간 너한테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데?
뒤통수를 치지 않겠노라, 하는 의도에서 한 말이었다.
그걸 떠나서 일리가 있지 않나.
지금 그를 도울 수 있는 부하들도 초보자에 불과하다.
즉, 강기찬이 뒤통수를 치면 쳤지, 경석이 떼먹을 수가 없는 처지인 셈.
경석은 그 점을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강기찬, 네가 먼저 나를 꺼내 달라고.
‘뭐, 다 생각이 있지만.’
강기찬의 뒤통수를 칠 자신이 있었다.
강기찬의 신체 구조상 자신이 따라잡힐 리는 없다고 보았다. 뭣하면 부하들을 방패막이로 시키고 튀면 되고. 그걸 믿고 이러는 것이다.
이내, 강기찬의 반응이 나왔다.
[강기찬] 이런 거로 시간 끄려고 하니까, 좀 그러네…….
경석은 불길했다.
강기찬의 말투가 영…….
[강기찬] 널 죽이고 인벤토리에 든 아이템 다 토해내게 해야겠다. 몇 번 죽다 보면 오늘 안에는 레전드등급 아이템 떨굴 거 같은데.
[경석] 진심 아니지?
[강기찬] 그다음에 다른 거로 협상하자. 레전드등급 아이템만큼의 가치가 있어야 할 거다. 그 안에서 평생 살 거 아니면…….
[경석]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될 텐데?
[강기찬] 왜지?
[경석] 날 건드리는 건 내 아버지, 아니 우리 길드를 건드리는 거니까!
요즘엔 기업에서도 레전드스토리를 신경 쓴다.
그런 까닭에 각 기업의 산하 길드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경석 아버지 기업인 A기업도 그러했다.
A기업의 산하엔 A길드가 있었다.
[경석] …너도 대한민국에서 편히 살 생각은 접는 게 좋을 거다.
[강기찬] 그거 협박?
[경석] 그렇다면? 너 하나 쥐도 새도 모르게 담그는 거, 어렵지도 않지.
경석도 믿는 구석이 있는지라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천하의 강기찬이라 해도 개인이 단체를 이길 수는 없을 테니.
강기찬이 잠시 A길드를 검색했다.
[강기찬] A길드라… 길드랭킹이 딱 200위네?
[경석] 갑자기 순위는 왜?
[강기찬] 아니, 그냥…….
[경석] 하! 200위라고 얕보다간 큰코다친다. 말단 길드원의 레벨이 1천이라고.
[강기찬] 똑같이 유치하게 구는 거 같긴 한데, 너한테는 이게 직방일 거 같네.
[경석] 뭐라는 거냐?
[강기찬] 자…….
강기찬이 경석에게 명함을 보여주었다.
[경석] 주작길드 명함?
경석은 짧게 생각 후 말했다.
[경석] 이게 뭐, 어쩌라는 거냐.
[강기찬] 주작길드에서 나한테 관심 있다더라고.
주작길드는 한국 길드 랭킹 4위였다.
그랬기에,
[경석] 하, 나보고 믿으라고? 주작길드가 미치지 않고서야 너 따위에게 관심 있다고?
경석은 믿지 않았다.
[경석] 참, 구라도 정성스럽게 치네.
단지 명함이다. 마음만 먹으면 도용하거나 구할 수 있는.
고로, 강기찬이 수작 부리는 거로 보았다.
[강기찬] 안 믿을 줄 알았어. 물어보지.
강기찬은 주위를 보며 물었다.
“주작길드가 저한테 관심 가지는 거 보신 분?”
“봤죠…….”
“저도.”
“예.”
제법 많은 수가 호응해주었다.
이에 경석은 표정이 안 좋았다.
‘그새 이 많은 사람을 포섭하진 않았을 테고, 저 반응 진짜다…….’
믿기 어려웠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어, 어째서 너 따위에게?”
궁금했다.
주작길드가 강기찬에게 관심 갖는 이유가.
[강기찬] 이동한계선이면 답이 되려나.
[경석] 뭐?
[강기찬] 소문난 거 같더라고. 내가 이동한계선 넘나들 수 있다고.
[경석] …….
경석은 무언의 인정을 하고야 말았다.
주작길드에서도 관심 가질 만하다고.
[강기찬] 아직 스카우트된 건 아니야. 근데, 너희 길드가 나한테 행패 부린다면 주작길드가 어떻게 나올까? 나한테 잘 보일 기회라고 여기지 않을까?
강기찬 말이 맞았다.
그를 건드리는 건 위험하다.
A길드는 주작길드의 하청 업체다.
관계가 틀어지면 곤란했다.
무엇보다, 현재 강기찬은 스카우트된 게 아니다.
즉 잡지 않은 물고기라는 의미.
강기찬의 환심을 사기 위해 A길드 밟는 건 일도 아닐 거다.
더군다나 다른 길드도 눈독 들일 터.
어쩌면 그 길드들과도 상대해야 할 것이다.
[강기찬] 자, 이제 누가 갑이지?
* * *
▶ 거래가 성사되었습니다.
경석이 강기찬에게 레전드등급 아이템을 넘겼다.
이런 말을 남기면서.
“기분 나빠하진 마라…….”
경석이 왜 그런 말을 한 걸까?
강기찬은 받자마자 알아차렸다.
《 힘팡이(+0) 》
[분류] 무기
[등급] 레전드
[습득] 보물 허수아비
[설명] 고대 전투 마법사, 하이켈의 유품.
[공격 범위] 근거리
[효과]
- 물리 공격력 +10,000 ~ +15,000
- 물리 관통력 +5,000
- 물리 치명타 확률 50% 증가
- 물리 치명타 공격력 200% 증가
- 물리 타격 시, 생명력 회복 10% 증가
- 물리 타격 시, 마력 회복 10% 증가
- 물리 공격 속도 200% 증가
[버프]
- 지력에 비례 힘 상승.
- 10대 타격 시, 물리 치명타 1회.
- 힘 +1,000
[디버프]
- 물리 공격 스킬 쿨타임 증가(상대) 50%
[액티브 스킬]
강화
- 강력한 한 방을 날릴 수 있게 해준다.
[패시브 스킬]
조력
- 근거리 딜러와 전투 시, 전투 가이드라인 제시.
[착용 조건] 마법사 계열 / 힘 1,000 이상
[제약] 없음
한 줄 한 줄이 굉장했다.
마! 이게 레전드 등급이다!…하는 것 같지 않나.
단, 근거리 딜러의 기준에서.
‘원거리 딜러’에겐 최악이다.
‘…이게 마법사 전용이 맞아?’
마법사만 들 수 있는데 마법사 무기 같지 않았다.
착용 조건이 괴이했다.
힘 1,000 이상의 마법사만 착용 가능.
‘힘 찍은 마법사가 어디 있다고?’
마법사는 힘 스탯, 절대 안 찍는다.
찍는 순간 망한 거니 계정 삭제하라고 할 정도.
‘이걸 누구 쓰라고? 경석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겠네.’
- 기분 나빠하진 마라…….
경석이‘힘팡이’를 넘겨주면서 한 말이었다.
‘기분 나쁠 수밖에 없네.’
이걸 받고 기뻐할 마법사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을까?
공짜로 받아도 욕할 거다.
인벤토리 용량 낭비라면서.
가뜩이나 힘 스탯 낮아 인벤토리 용량도 적은데.
그랬기에,
‘경석이 왜 그랬었는지 이해가 가네.’
경석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자신을 꺼내준 다음에‘힘팡이’를 주겠다 했었지.
‘내가 이걸 먼저 받으면 자길 안 꺼내줄까 봐.’
강기찬에 대한 불신이 아니었다.
경석 자신의 패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거래 물품에 하자가 있으니 나가기 전에 줄 순 없었던 것.
“…….”
강기찬이 경석을 보았다.
어서 꺼내달라느니, 하지 않았다.
그저 침묵할 뿐.
제 주제를 아는 것이다.
‘똥을 줬는데 안 꺼내줘도 할 말 없지.’
그런데,
‘쟤는 모르지, 이게 마냥 똥은 아니라는 걸.’
다른 마법사에겐 힘팡이는 똥이 맞다.
강기찬에겐 아니다.
‘똥은 무슨, 보물이지.’
다른 마법사들은 힘 1,000 찍을 수 없지만.
강기찬은 힘 1,000 찍어도 괜찮다.
프리 스탯 포인트가 있으니까.
‘지금 프리 스탯 포인트가… 200이지? 이제 800 남았네.’
딱 800 프리 스탯 포인트가 남았다.
힘팡이를 쥐기까지 말이다.
‘기대되네…….’
힘팡이야말로 진정한 마법사용 무기다.
‘근접전에 취약한 마법사를 탈바꿈시켜주니까.’
마법사도 부득이하게 근접전을 치러야 할 때가 온다.
대비해봤자 방어력, 이동속도 향상, 장비 착용이 고작.
약간 버티게 해주는 거지, 상황을 뒤집을 순 없다.
‘힘팡이는 맞대응이 가능하지.’
힘팡이라면 마법사로도 원활한 근접전이 가능할 터.
‘좋다, 좋아.’
힘팡이가 만족스러웠다.
하나, 이를 티 내지 않았다.
여전히 하자 있는 무기로 보이는 게 좋다.
지금은 거래 중이니까.
[강기찬] … 이딴 걸 줘놓고선 꺼내주길 바라는 건 아니지?
잠시간의 침묵 끝에 경석이 답했다.
[경석] 어떻게 안 될까? 원하는 건 다 해줄게.
강기찬에게는 좋은 흐름이다.
힘팡이는 거저 얻은 게 되니까.
[강기찬] 원하는 건 다 해준다고?
[경석] 어? 어, 어 그래!
[강기찬] 네 아이디랑 비밀번호.
[경석] 뭐?
[강기찬] 네 아이디랑 비밀번호 넘겨라.
[경석] 진심이냐?
[강기찬] 어, 두 번 말 안 한다.
“아니, 씨… 아니, 그건 아니지!”
경석이 격앙된 어조로 외쳤다.
어찌나 흥분했는지 귓속말을 하는 걸 잊어버렸고.
“왜, 왜 저러지?”
“대체 무슨 얘길 나눴기에?”
타 유저들이 들어버렸다.
그들은 그제야 깨우쳤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경석] 솔직히 너무 가혹한 거 아니냐? 내가 뭐 너한테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경석은 이성은 잃지 않았는지 다시 귓속말을 사용했다.
[경석] 어떻게 유저에게 아이디랑 비밀번호 넘기라는 말을 할 수 있냐고!
유저에게 아이디랑 비밀번호는 생명줄이다.
그걸로 로그인하니까.
강기찬은 그걸 빼앗겠다는 것이다.
[강기찬] 너무 가혹한 거 아니냐고? 날 죽이려 해놓고선? 내가 뭔 죽을 짓을 했다고?
경석의 표정이 굳었다.
[경석] 그, 그그걸, 어, 어떻게?
[강기찬] 박창준, 네가 보낸 암살자.
더한 설명은 불필요했다.
털썩.
경석이 무릎 꿇었다.
“제, 제발. 그것만은… 그것만은 빼앗지 말아줘!”
양손을 싹싹 비볐다.
울먹이기까지.
“왜 빌지?”
“경석이 무슨 잘못을 했나 봐.”
뭣도 모르는 타 유저들은 그저 황당해할 뿐이었다.
하나, 사정을 다 아는 강기찬은 무뚝뚝했다.
[강기찬] 난 너하고는 다르지. 날 죽이려 했다고 다짜고짜 널 죽이려 하진 않아.
정확히는 죽일 가치가 없어서다.
살릴 가치는 충분했고.
[강기찬] 봐라, 살 기회를 주잖아. 그 안에서 죽을 건지, 나한테 계정을 바치고 나올 건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라.
경석에게는 가혹한 선택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