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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 테스트서버-23화 (23/151)

23화

* * *

오전 9시 5분.

세 번째 이벤트 시작까지 1시간 남짓 남았다.

유저들이 하나둘씩 허수아비 논밭에 입장하는 중이었다.

슉! 슉슉슉- 슉!

포탈을 타고 넘어오는 유저들.

목적은 하나. 남들보다 일찍 사냥하려고. 몬스터를 하나라도 더 잡는 게 이득이니까.

그런 그들이 이상함을 느낀 건 직후였다.

“어?”

누군가 먼저 와 있었다.

‘누워있네?’

누가 있는 건 이상한 게 아니다.

다만, 누워있다는 게 의아했다.

이내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얼마나 일찍 와서 사냥했기에…….’

사냥하다가 지쳐서 휴식 겸 누워있는 거라 여겼다.

하나,

“크르러-어엉!”

잠꼬대까지 하고 있다.

‘자네?’

자고 있던 것.

‘뭐, 잘 수도 있지.’

거기까진 이해할 수 있었다.

허수아비가 공격해올 리 없으니 안전할 테고 휴식 취하다가 졸 수도 있지.

‘누굴까.’

누군지 궁금했다.

저만큼 부지런하다면 높은 확률로 신규 유저 중, 상위권에 들 터. 알아보고 싶었다.

상대는 입구에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거기까지 가다가 얼굴을 보았다.

‘경석?’

신규 유저 중, 경석을 모르는 이는 없다.

‘선착순 자리를 돈 주고 샀던 걔 맞지? 어느 기업 자식이라던데…….’

가까이 가서 보니 초췌한 몰골이었다.

머리도 안 감고 왔는지 엉겨 붙어 있었고.

‘채 씻지도 않고 온 건가? 아니, 여기서 아예 밤을 새웠을지도 모르겠네.’

그러고 보니, 입고 있는 옷도 어제와 같은 것 같기도 하고…….

‘의외네? 성실보다는 망나니 이미지였는데, 유저가 되면서 환골탈태를 한 건가?’

하긴 소문으로 들었다.

경석의 형제자매 중 그가 유일하게 무능력하다고.

그래서 열등감이 어마어마할 거라고.

‘유저로서의 활약이 가문에서 인정받을 마지막 기회일 거고,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겠지. 선착순도 돈 주고 살 정도로 경제적 지원을 받기까지 하는데…….’

경석을 보면서 그도 의욕이 불타올랐다.

그때였다.

쿵!

“어?”

습관적으로 스트레칭하다가 무언가에 부딪쳤다.

“아…….”

새삼 현 위치를 알았다.

‘여기 이동한계선이구나.’

여긴 외곽지역이다.

즉, 방금 부딪친 건 보이지 않는 벽일 터.

거기까진 태연했다.

그런데,

“어?!”

생각해보니까 말이 안 되었다.

“겨, 경석은 어떻게 저길 넘어가 있는 거야?”

경석이 이동한계선 너머에 있었다.

그 외침을 들은 걸까?

“뭔데?”

“왜 그래?”

“저기 누워있는 유저는 누구고?”

유저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어? 진짜네? 저길 어떻게 넘어가 있는 거야?”

“저기 이동한계선 너머 아니야?”

“누군데? 누가 이동한계선을 넘었는데?”

“경석.”

“경석이 누구더라, 아아아!”

아주 놀란 이가 있는가 하면, 대다수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놀랄 것도 없지.”

“강기찬도 그랬잖아.”

그랬다.

전례가 있지 않나.

어제 강기찬이 이동한계선에 대한 상식을 파괴했다.

대놓고 이동한계선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주진 않았지만, 아이템 산에서 아이템을 하나씩 빼 왔었다. 그게 자유롭게 이동한계선을 넘나드는 게 아니면 뭔가.

“혹시 경석이 강기찬에게 돈 주고 이동한계선을 넘어가는 방법에 대해 정보를 얻은 건 아닐까?”

“그럴 가능성이 있지.”

“근데 저거 버그 아니야? 역사상 저런 적은 없었잖아.”

“버그였으면 진작 조치가 되지 않았을까요?”

“제가 제보해봤는데 운영자가 버그 아니랍니다.”

“그럼 뭐지?”

“히든피스겠네.”

“히든피스라… 우리도 찾을 수 있을까?”

“아무나 찾아내면 그게 히든피스겠습니까?”

“하긴…….”

“히든피스라 해도 소유권 개념도 있으니까, 이미 늦었을 수도 있고…….”

“괜히 히든피스 찾으려고 헛고생할 바엔 허수아비 한 마리라도 더 잡는 게 낫지.”

어느새 유저들은 사냥은 도외시하고 떠들기 바빴다.

경석이 어떻게 이동한계선 너머에 있는가.

그에 대해 각종 추측과 의혹이 쏟아졌다.

강기찬과 관련이 있을 거란 추정이 지배적이었다.

자연스레 강기찬으로 주제가 옮겨졌고.

“강기찬은 히든피스를 어떻게 찾았을까?”

“뭔가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하기야…….”

“지금 처지야 그래도 명색이 한때는 전 랭킹 1위였으니…….”

“강기찬은 보통이 아니죠. 여기 들어오는 것도 초보자만 가능한데 들어왔잖습니까.”

“그건 어떻게 된 거라던데요?”

“어제 집 갈 때 기자들이 있긴 했는데.”

“그래서요? 뭐라고 대답하던가요?”

“뉴스 안 보셨나 보네.”

“예.”

“이거 보세요.”

한 유저가 기사를 보여주었다.

< 10년 만의 왕의 귀환, 인성은 글쎄? >

금일, 전세계엔 커다란 이슈가 있었다.

대격변 10년 만에 신규 유저를 모집한 것. 그리고 또 하나, 바로 전 한국 랭킹 1위 강기찬의 귀환이었다.

그런데 그의 등장은 다소 예상 밖이었다.

허수아비 논밭 던전에 나타나더니 자연스럽게 입장했다.

이에, 본 기자는 추후, 허수아비 논밭에서 퇴장하는 강기찬에게 물었다.

아래는 인터뷰 내용 전문이다.

Q. 허수아비 논밭 던전은 어떻게 입장하신 건가요?

A. 자알.

믿기 어렵겠지만 그 어떤 왜곡도 없는 사실만을 나열한 것이다. 이후, 강기찬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귀가했다.

물론, 강기찬만의 비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국민의 알 권리를 저버린 행위이기도 하다.

이런 태도를 보인 강기찬에게 심히 유감을 표한다.

* * *

기사를 다 읽은 유저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와! 미친.”

“저, 정말 이랬다는 건가요?”

“못 믿으시겠다면, 동영상 보세요. 거기 나와 있으니까.”

“너무 싸가지가 없는데?”

모두가 강기찬을 욕하진 않았다.

“전 이해해요.”

“이해한다고요?”

“강기찬이 기자들한테 얼마나 물어뜯겼었는데…….”

“맞아, 언론이…, 기자들이 강기찬에게 한 짓을 생각해보세요.”

10년 전, 대격변 때, 강기찬은 맛있는 먹잇감이었다.

그런 까닭에 강기찬을 물어뜯는 기사들이 며칠간 실시간으로 오르내렸었다.

< 랭킹 1위, 하루아침에 퇴물로 전락! >

< 암살을 할 수 없는 암살자의 향후 행방은? >

< 일주일째, 자택 칩거 중…,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나……. >

< 충격! 과거 강기찬의 고교동창 曰, ‘강기찬은 게임폐인이었을 뿐, 교우 생활도 원만치 못했다.’>

< 레전드스토리 프로리그 관계자 曰, ‘강기찬은 시대를 잘 만나 운이 좋아 떴을 뿐, 이제야 비로소 제 자리를 찾아간 것.’ >

하도 시끄러웠던지라, 당시 분위기를 몰랐던 이가 없었다.

강기찬이 묵묵부답이어서 사실무근인 찌라시들도 넘쳐났었고, 정확한 출처 여부도 따지지 않고 곧이곧대로 믿는 이들도 적지 않았었다.

“…하긴, 그땐 기자들뿐만 아니라 안티팬들도 악플로 강기찬을 물어뜯기 바빴죠.”

“기자들한테 호의적이지 않은 게 이해는 가네요.”

“지금은 행태를 보면 더더욱 기가 찰 테죠.”

“기사 한 줄이라도 써보려고 강기찬에게 달라붙었으니까요.”

“이율배반적이죠.”

“어, 저기…….”

“일어나셨네요.”

정신없이 떠들다 보니 어느덧 깨어난 경석이 보였다.

경석이 오더니 대뜸 물었다.

“강기찬은 어딨죠?”

“아…….”

일어나자마자 찾는 게 강기찬이라……?

유저들은 내심, 둘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고 보았다.

이를 내색하지 않고선 대답했다.

“글쎄요, 아직 안 들어오셨는데.”

“아직도?!”

경석이 직접 강기찬을 찾았다.

인원수가 많긴 하나 못 찾을 것도 없었다.

아무래도 저 유저의 말은 진짜인 듯싶었다.

강기찬이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안 왔다고? 대체 왜 이렇게 늦는 거야?’

시간이 다 되었다.

곧 이벤트가 시작될 예정인 것.

‘이러다가 나 이벤트 못 하는 건 아니겠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면 이벤트에 참여 못 할 수도 있다.

손가락 빨면서 구경이나 해야 하는 건 아닐까…….

* * *

허수아비 논밭 던전 입구.

강기찬은 입구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강기찬씨?”

“……?”

웬 안경 쓴 청년이 다가와 명함을 건넸다.

“전 주작길드 영업3팀 박평식 과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요?”

“강기찬씨께서 시간이 없으실 테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강기찬씨를 저희 길드로 스카웃하고 싶습니다.”

강기찬의 귀가 솔깃해졌다.

느닷없이 스카웃 제의라니?

“저를요? 왜?”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강기찬은 그 이유를 짐작했다.

어제 인터넷에 싹 퍼지지 않았나.

그가 이동한계선 너머에 아이템 산을 쌓고 장사했다는 걸.

‘하긴, 당시 현장에 1천 명이 있었으니, 소문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겠지.’

인간은 유명인의 목격담을 떠벌리길 좋아하는 법.

특히, 유저라면 주변에서 이야깃거릴 풀라고 재촉했을 터.

10년 만에 돌아온 강기찬의 얘기가 흥미로웠을 것이다.

길드 쪽으로도 정보가 돈 모양.

‘길드에서도 나를 탐낼 만하지. 그 누구도 넘을 수 없다던 이동한계선을 넘은 거나 다름없으니.’

박평식 과장이 양해를 구했다.

“…듣는 귀가 많으니 여기서부턴 귓속말로 하겠습니다.”

곧장 귓속말을 해왔다.

[박평식] 이동한계선을 넘으실 수 있잖습니까.

역시나, 예상적중.

[강기찬] 그렇죠.

강기찬은 내빼지 않았다.

[박평식] 그게 허수아비 논밭 한정입니까? 아니면 다른 던전에서도 되는 겁니까?

이동한계선 넘나들기.

허수아비 논밭에서만 가능하다면 가치 없다.

반면, 다른 던전에서도 가능하다면 가치는 천정부지로 솟구칠 것이다.

[강기찬] 다른 던전을 가본 적이 없어서.

[박평식] 아, 하하하! 그렇군요. 제가 경솔했습니다.

[강기찬] 그게 중요한가 보죠?

[박평식] 예, 아무래도 다른 던전에서도 이동한계선을 넘나들 수 있다면 그건 사상 유례없는 전략적 요충지를 얻는 셈이니까요. 안전지대로도 이용할 수도 있고. 가치는 무궁무진하죠.

박평식의 말이 정확했다.

던전에서 보장된 안전지대?

여태껏 없어 왔다.

그러나 보장된 안전지대가 생긴다면 레이드의 역사가 바뀔 것이다.

길드가 참여하는 던전 레이드는 길게는 한 달이다.

한데, 도중에 던전 밖으로 나올 수 없을 때도 많았다.

그럴 땐 던전 안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한다.

식사야 어찌한다지만, 잠은 아니다.

필시, 보초를 세워야 했다.

누군가는 잠을 안 자고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

그런데 모두가 안전하게 잘 수 있다면?

체력 & 정신 & 컨디션 자체가 달라질 터.

[박평식] 혹시 다른 던전에서도 이동한계선을 넘나들 수 있다면 꼭 연락해주십시오.

[강기찬] 생각해보죠.

[박평식] 꼭!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바라시는 조건은 다 맞춰드리겠습니다.

강기찬은 허수아비 논밭에 입장했다.

그러기가 무섭게,

“야! 왜 귓속말 차단해놓았냐고!”

경석이 괴성을 내질렀다.

강기찬이 귓속말을 열었다.

[강기찬] 자는 데 방해할까 봐 그랬지.

[경석] 빨리 꺼내줘!

[강기찬] 레전드등급 아이템은?

[경석] 꺼내주면 줄게.

[강기찬] 먼저 넘겨.

[경석] 내가 널 뭘 믿고?

[강기찬] 나 안 믿으면 누굴 믿을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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