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 * *
경석을 집 밖으로 불러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박창준을 이용하니 금방 밖으로 나왔다.
직후,
“억!”
경석을 기절시켰다.
* * *
시간이 흘러… 오전 5시.
“으, 으음? 왜 이렇게 추워?”
경석이 인상을 구기며 눈을 떴다.
“엉? 여긴 어디지?”
낯선 감각에 눈을 떴고 황급히 일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긴 어디야?’
그것도 잠시.
“아!”
이제야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박창준이 불러서 나왔고 곧이어 의식이 끊겼다.
눈 떠보니 낯선 장소.
정황상 박창준의 짓이다.
“어? 박창준! 박창주우우우운! 당장 나와-아아아! 이 새끼야!”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아무래도 혼자 있지 싶었다.
‘치, 침착하자.’
아무도 없다는 건 오히려 다행이다. 탈출기회다!
‘일단, 여기가 어딘 지부터 알아야 한다. 그래야 구조요청을 하든 탈출을 하든 뭘 하든 할 거 아니야…….’
우선 이곳의 정확한 위치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어두워서 앞도 안 보일 정도니 원…….
미니맵을 보았다.
‘응?’
[허수아비 논밭 - 버려진 세계]
“뭐? 허수아비 논밭이면 허수아비 논밭인 거지, 버려진 세계?”
황당했다.
버려진 세계는 생소한 지명이다.
반면 허수아비 논밭은 익숙하고.
그 둘의 조합이라니?
‘이런 데도 있었나?’
신선하면서도 문득 위화감이 들었다.
‘버려진 세계고 나발이고 어찌 되었든 허수아비 논밭이라는 거잖아? 초보자 던전! 근데 1,100레벨인 박창준이 날 어떻게 여기에 집어넣은… 아… 그건 강기찬과 같은 경우인가? 무슨 이런 무질서가…….’
머릿속이 혼잡했다.
그러나 금세 지워버렸다. 고민해봤자 풀리지 않을 문제니까.
‘후, 앞도 안 보이고 어떻게 나간담? 무작정 걸어야 하나? 뭐, 그러다 보면 출구가 보이려나…….’
그렇게 편한 방법을 찾다가 뒤늦게 생각났다.
‘귀환하면 되지?’
귀환하면 바로 탈출할 수 있을 터.
귀환지로 설정해둔 집으로 갈 것이다.
그러나,
[버려진 세계에선 귀환할 수 없습니다.]
나갈 수가 없었다.
“뭐? 왜? 왜 귀환이 안 돼?”
귀환은 미니맵처럼 유저의 기본 스킬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설정해둔 귀환지로 갈 수 있다.
비전투 상태에서 움직이지 않고 10초만 있으면.
‘귀환이 안 되는 경우가 있었나?’
그럴 리 없다.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다.
바닷속에서도, 심지어 우주에서도 되었다.
물론, 귀환이 안 되는 던전도 더러 있었다.
특수공간.
‘특수공간이라서 귀환이 안 되는 건가.’
이곳 역시 귀환이 안 되는 특수공간이지 싶었다.
‘뭐라도 해야 한다.’
이대로 있을 순 없다.
대책을 찾아야 했다.
“이, 인벤토리!”
서둘러 인벤토리를 열었다.
거기에도 탈출용 아이템이 더러 있었다.
그런데,
[버려진 세계에선 사용할 수 없습니다.]
[버려진 세계에선 사용할 수 없습니다.]
[버려진 세계에선 사용할 수 없습니다.]
.
.
시도하는 족족 실패.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아씨, 없네.’
스마트폰도 없었다.
잠깐 나온다고 놓고 온 것이었다.
박창준과의 연락은 귓속말로 했었고.
그게 증거가 안 남고 더 편하기도 했으니.
다행히 그 외의 연락수단이 있었다.
‘귀, 귓속말…….’
다행히 귓속말이 되었다.
급하게 귓속말로 부하들을 불렀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니 대충 허수아비 논밭이라고…….
‘후, 어쩐담… 게네들이 오는 동안 가만히 있긴 좀 그런데, 한 번 나가볼까?’
부하들 부른 건 부른 거고, 탈출구를 찾아보기로 했다.
천천히 걷다가 조급해져서 뛰었다.
그런데…….
쿵!
무언가에 부딪쳐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씨팔, 뭐야?”
다시 일어나 천천히 손을 뻗었다.
무언가 평평한 게 걸렸다.
“아무것도 없는 거 같은데?”
동시에 무언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딱딱한 벽 같은 게 있었다.
스윽.
창문을 닦듯 쓸어내렸다.
이곳만 막힌 게 아니라 옆에도 그보다 더 옆에도…….
‘진짜 벽인데? 이 벽, 설마 그건가?’
문득 레전드스토리에 대해 공부할 때 배웠던 게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벽?’
거기까지 생각하니…….
‘여긴 이동한계선 너머?!’
현재 위치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여, 여기서 나갈 수가 있을까……?’
심각성을 깨닫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털썩.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주저앉았다.
‘이걸 어째…….’
부하들이 온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부하들이라고 해봤자 결국 자신처럼 초보자 아닌가.
이걸 누가 해결할 수 있을까?
세계 랭킹 1위?
어림도 없다.
여기 오기는커녕 던전을 못 들어오는데.
아니, 던전 입장이 되어도 이동한계선은 어쩔 건가.
‘살다 살다 이동한계선에 갇힐 줄이야.’
이곳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감옥이 아닐까?
‘로, 로그아웃하자.’
신규 유저 교육회 때, 배웠다.
던전에서 로그아웃하면 튕겨서 던전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물론 그만한 페널티를 받게 되지만 지금 그게 대수인가.
그런데,
[로그아웃합니다.]
‘뭐, 뭐야 왜 안 튕겨?’
로그아웃했는데, 안 튕기고 여전히 제 자리에 있었다.
아무래도 버려진 세계에선 탈출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 싶었다.
‘박창준은 도대체 어떻게 이곳을 드나든 거지?’
쿵.
드러누운 채 연신 한숨을 퍽퍽 내쉬었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벌떡.
황급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아!”
이마를 세게 쳤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그러고 보니 이동한계선을 넘나들 수 있는 건 박창준뿐만이 아니었다.
또 한 사람.
‘강기찬!’
두 번째 이벤트였던 미로 탈출이 종료되었을 무렵. 미로에서 나오자 아이템 산이 있지 않았나.
그때, 강기찬에게 물었었다.
- 저런 차단 스킬은 어떻게 배운 거지?
- 저게 차단 스킬이 아니라 이동한계선 - 보이지 않는 벽이라 생각하진 않나?
- 그 말은 네가 이동한계선 - 보이지 않는 벽을 넘을 수 있다는 거냐?
- …저 아이템 산이 네가 한 짓인 걸 부정하진 않네?
- 어. 저 아이템 산, 내가 한 짓이야.
강기찬이 정답을 알려준 것이었다. 아이템으로 산은‘이동한계선 - 보이지 않는 벽 너머’에 있었기에.
달리 말하면 강기찬이 이동한계선을 넘을 수 있다는 의미.
그라면 자신을 구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 강기찬은 죽었지?’
박창준에게 의뢰하지 않았나.
‘잠깐, 아닌가?’
믿기 어렵지만, 박창준이 실패했을 수도 있다. 성공했다면 나머지 의뢰비를 받고 깔끔하게 끝날 관계. 굳이 자신을 납치할 이유가 없으니.
‘실패해서, 그래서 나한테 돈이라도 뜯어보려고…….’
강기찬이 살아있길 바랐다.
그게 얼마나 우스운 소리인지를 알지만.
그리고 강기찬의 생사는 지금 당장 확인할 수 있다.
[경석] 야!
강기찬에게 귓속말했다.
사망했다면 귓속말이 되지 않을 터.
살아있다면 귓속말이 될 것이다.
이윽고,
[강기찬] 왜?
돌아오는 강기찬의 대답.
“……!”
경석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오전 5시에 칼 같은 대답을 해서?
아니.
‘살아있다고……?!’
강기찬이 살아있어서.
‘미친, 어떻게 살아있을 수가 있지?’
강기찬이 살아있길 바랐지만, 막상 살아있자 신기했다.
‘레벨이 100이나 차이 나는데 어떻게? 아, 아니지! 나한테는 좋은 소식이구나…….’
역설적이었다.
죽이고자 했던 상대에게 살려달라고 해야 하다니.
그리고 죽이려 했는데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니.
참으로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경석] 저기…, 잠을 깨웠다면 미안한데…….
[강기찬] 괜찮다. 안 자고 있었으니까. 웬일이지?
[경석] 저…, 부탁이 있다.
경석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강기찬] 부탁? 이 시간에? 내일 하면 안 될까?
[경석] 미안한데…, 내가 지금 납치를 당했거든.
[강기찬] 납치? 경찰에 신고할 일 아닌가? 왜 나한테?
[경석] 너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서 그래.
[강기찬] 그런 일도 있나? 랭킹에 집계도 안 될 정도로 허접인 나한테? 잘나신 도련님께서?
[경석] 여기 허수아비 논밭의 이동한계선 너머야.
강기찬이 당황한‘척’했다.
[강기찬] 아니! 거긴 어떻게 들어간 거야?
[경석] 나도 몰라.
경석은 차마 박창준의 이름을 들먹일 수 없었다.
[경석] 넌 이동한계선 너머에 아이템을 옮겼었지?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날 좀 도와줬으면 한다. 여기서 나갈 수가 없다. 나갈 수 있게 좀 도와줘.
[강기찬] 그땐 믿지도 않더니…….
[경석] 이해해주라, 누가 봐도 믿기 어려웠잖아.
[강기찬] 뭐, 좋아.
경석은 눈을 빛냈다.
‘정 안 되면 돈이라도 들이밀려 했는데…….’
[강기찬] 근데 내가 좀 피곤해서… 밤을 새웠거든. 웬 불청객이 찾아와서. 이제 좀 잘 수 있을 거 같은데…….
[경석] 뭐?!
경석이 소리쳤다.
저 말은 지금 당장 못 온다는 소리로 들려서.
[강기찬] 내가 널 위해서 이 시간에 거기까지 갈 수고를 해야 하나?
[경석] 그, 그럼, 여기서 나가는 방법이라도 가르쳐줘. 내가 알아서 나갈 테니까. 도, 돈 줄 테니까!
[강기찬] 나가는 방법? 내가 직접 가야 하는데…….
채 말이 끝맺지 못했다.
그러고도 약 1분이 지나고.
[경석] 저기……?
참다못한 경석이 운을 뗐으나, 강기찬이 말이 없다.
경석은 슬슬 불안해졌다.
그것도 잠시.
[강기찬] 아, 미안 잠깐 졸았네……,
[경석] 자, 자자잠깐만! 자지 말아봐!
경석은 다급해졌다.
마음 같아선 당장 오라고 하고 싶었지만,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아는 이상 재촉할 수도 없었고,
[경석] …언제 와줄 수 있는데?
비굴해질 수밖에 없었다.
[강기찬] 10시에. 그때 이벤트 하잖아. 가는 김에 겸사겸사 도와줄 수 있겠는데?
경석은 불쾌했다.
‘이 새끼, 일부러 이러는 거지?’
강기찬이 자신을 약 올리는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경석] 사례비는 섭섭지 않게 줄 테니까, 지금 와주면 안 될까?
[강기찬] 미안. 내 잠은 돈 주고 팔 수 없어.
경석은 생각했다.
‘어제, 돈도 많이 벌었겠다, 돈으로도 안 넘어온다 이거지? 그럼 이건 어떨까?’
경석은 결심했다.
강기찬을 꼭 지금 오게 하기로.
[경석] 레전드등급 보물상자에서 나온 아이템을 줄게.
‘이래도 안 올 거냐?’
그 누구도 혹할만한 미끼를 던졌다.
‘돈 하고는 또 얘기가 다르지… 어떠냐!’
물론, 강기찬이 와도 넘겨주지 않을 거다.
‘날 먼저 탈출시켜달라고 하고, 그다음에 준다고 해야겠다.’
나름대로 강기찬의 뒤통수를 칠 계획을 세웠다.
이윽고 강기찬의 귓속말이 들려왔다.
[강기찬] 레전드등급 보물상자에서 나온 아이템? 오늘, 아니 어제 보물 허수아비 잡고 나온 거?
[경석] 어.
[강기찬] 하, 어쩐지 찾아도 찾아도 안 나오더니만, 네가 들고 있었구나. 하긴 인벤토리가 빵빵했을 테니…….
[경석] 어때?
[강기찬] 진짜 네가 들고 있는 거 맞지? 거짓말 아니지?
[경석] 그렇지. 내가 이걸로 왜 거짓말을 하겠어? 금방 들통날 건데…….
[강기찬] 하, 드디어 찾았네. 오늘 꿀잠 예약이다. 고맙다, 고마워!
[경석] 뭐? 뭔 소리야? 안 와?
[강기찬] 지금? 자야 한다니까.
[경석] 아니, 지금 와야 주지.
[강기찬] 아… 그래서 나중에 가면 안 줄 거야?
[경석] …….
[강기찬] 내가 자는 동안, 네가 어딜 가는 것도 아니고, 나 말고 널 빼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경석] 야 인마!!!!!
경석이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