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 * *
미로 1층과는 달리 미로 2층은 환했다.
그렇게 자연스레 알게 된 지형지물.
벽이 없었다.
그저 뻥 뚫린 공간.
‘이러면 미로가 아니잖아.’
또 다른 특징을 발견했다.
바닥에 경계가 없달까.
발 아래, 미로 1층이 투명하게 내려다보였다.
호기심에 그리로 발끝을 닿게 했다.
그러자 작은 파동이 일었다.
맑은 호수에 발을 담근 기분이랄까.
‘통과가 되는 건가?’
‘이렇게 바로 내려갈 수가 있구나.’
내려가진 않고 아래쪽에 시선만 주었다.
‘저것들…….’
미로 1층엔 열 명의 유저가 있었다.
경석도 있었는데 수상했다.
벽에 달라붙은 채, ‘입구’를 주시하는 게 아닌가.
막 미로에 진입했다. 한창 나아가고 있어야 할 시기에 저런다? 저들의 속셈이 눈에 선했다.
‘음?’
강기찬은 귀를 쫑긋 세웠다.
미로 1층의 소리가 이리로 전해졌기에.
“왜 이렇게 안 오죠?”
“야, 쉿! 조용히 해! 강기찬 듣겠다. 귓속말로 해!”
이후, 아무 말이 안 들렸다.
서로 귓속말로 소통하지 싶었다.
하나, 상황파악은 끝났다.
‘저것들이 나를 노리네.’
낌새는 느꼈었다.
우연히 맵핵으로 경석과 몇몇 유저가 모이는 걸 봤기에. 조만간 무슨 짓을 저지를 거라 여겼다. 그 대상이 자신이고, 미로 시작부터 기습할 줄은 몰랐지만.
‘경험치 10배 쿠폰 때문인 건가.’
딱 봐도 주동자는 경석이다.
허수아비의 논밭 이벤트 선착순 1등 보상인 경험치 10배 쿠폰을 돌려주지 않아 원한을 품은 거지 싶었다.
나머지 유저들은 돈으로 매수했던가 할 테고.
‘한심하네.’
기습하려는 걸 뭐라 하는 게 아니다.
그거야 자유다.
다만,
‘미로 통과하고 휴식시간에 해도 될 일 아닌가.’
일의 우선순위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싶었다.
미로 통과가 우선 아닌가.
이건 자신들의 기회를 날리는 거다.
‘뭐,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좀 더 지켜볼까?’
강기찬은 저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입구에 자신이 없음을 머지않아 알게 될 터.
그 뒤의 반응 말이다.
기다리면서 맵핵을 보았다.
‘나머지 유저들은 아직 출구 근처도 못 갔고 말이야.’
맵핵으로 보니 출구 근처엔 유저가 없었다.
전반적으로 입구 근처에 모여있었지.
저들이 분주하게 움직여도 출구를 찾는 데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다.
반면,
‘나야 원할 때 얼마든지 출구로 갈 수 있지.’
강기찬은 지금 당장 미로 탈출이 가능했다.
맵핵으로 이미 출구도 찾아놓은 상태니.
그냥 뻥 뚫린 이 공간을 가로질러 출구 위에서 아래로 수직으로 하강하면 되었다.
‘타임어택도 아니고 선착순인데 조금 늦어도 상관없지. 그래도 1등이니까.’
이런 까닭에 여유를 부릴 수 있지 싶었는데…….
‘아, 안 되겠다.’
강기찬이 돌아섰다.
‘여기도 보물상자가 있구나.’
맵핵을 살펴본바, 곳곳에 보물상자가 있었다.
지금이야 유저들이 그 근처에도 없지만, 나중에는 모른다.
‘아쉽긴 하지만.’
이쪽을 좀 더 구경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보물상자 파밍이 우선이었다.
‘어쩔 수 없지.’
고민은 짧았다.
슈-우우웅.
목적지로 신속하게 쏘아졌다.
[허공을 부유 중입니다.]
[소량의 마력이 지속해서 소모됩니다.]
「 경고! 」
[속도 증가로 마력 소모량이 커집니다.]
[막대한 마력이 소모 중입니다.]
속도 증가로 마력 소모가 커졌지만, 그거야 문제 될 게 없었다.
[힘에 분배한 프리 스탯 포인트 200을 초기화했습니다.]
[힘] 205 …▶ 5
[프리 스탯 포인트 200을 마력에 분배했습니다.]
[마력] 100 …▶ 2,000
프리 스탯 포인트를 마력으로 옮기면 그뿐.
「 경고! 」
[속도 증가로 마력 소모량이 커집니다.]
[막대한 마력이 소모 중입니다.]
[마력 50이 소모되었습니다.]
[마력 50이 소모되었습니다.]
[마력 50이 소모되었습니다.]
[마력 50이 소모되었습니다.]
.
.
.
‘마력이 초당 50씩 깎이네.’
현재 마력이 2,000이다.
고속 부유는 40초 밖에 못 한다.
‘짧아, 좀 더 늘리고 싶은데…….’
물론 마력 물약을 마시면 되지만, 그러면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추락할 거다.
고로, 마력 양을 늘리거나 부유의 반지를 강화하는 게 최선이다.
‘그거야, 나중에 해결될 일이니,
슈우우웅.
‘도착했다.’
가장 가까운 보물상자 위쪽으로 가는 건 금방이었다.
장애물이 없어서 목적지까지 일직선으로 갔기에.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보물상자 앞이다.
다만, 하나 걸렸다.
‘내려가는 건 문제없는데, 문제는 올라오는 거지.’
이대로 내려가면 다시 못 올라올까?
‘못 올라오면 낭팬데.’
2층은 그만큼 유용했다.
한 번 쓰고 버릴 패는 아니다.
하지만, 1층으로 내려가고 수직으로 상승해서 못 올라올 경우, 굳이 다시 입구까지 가서 2층으로 올라오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는가? 아니면 내려간 상태에서 미로를 거닐 것인가.
그 답은 보류.
‘일단 내려가 보고 생각해보자.’
확실한 건, 지금은 1층으로 내려갈 거란 거다.
눈앞에 보물상자를 두고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뭐 그래도 남들보다 선두에 서 있는 건 맞으니까.’
맵핵을 살펴본바, 자신보다 진도 나간 자는 없었다.
아직도 미로 초입에서 길을 헤매고 있다.
강기찬이 선두다.
가장 늦게 출발했음에도.
‘하긴, 맵핵이 있어도 길이 복잡하긴 하지.’
맵핵으로 길이 다 보이는 데도 어렵다.
내비게이션처럼 갈 길을 다 가르쳐 주지 않고서야…….
하물며 지척의 지형만 맵으로 표시되는 유저들은?
길 한 번 잘못 들면 그때부터 지옥행 시작이다.
‘고생들 하시길, 전 편하게 꽃길만 걷겠습니다.’
강기찬은 상념을 끝내고 서서히 몸을 내려가게 했다.
2층 바닥이자 1층 천장.
2층과 1층의 경계.
그곳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수-컹.
꼭 젤리 속에 파묻힌 감각을 뒤로하고선.
수우욱.
머리끝까지 1층으로 내려왔다.
다시 어둠에 잠식된 시야.
그나마 벽면의 횃불로 주변은 보였다.
구석에 방치된 보물상자도.
그리로 향했고,
덜컹.
보물상자를 냅다 열었다.
[보물상자를 열었습니다.]
슈-아아악!
바람 빠지는 소리?
훅!
무언가 보물상자에서 튀어나왔다.
“하.”
강기찬이 튀어나온 걸 옆으로 쳐냈다.
가볍게 맨손으로.
쳐내고 나서 벽에 처박힌 걸 보았다.
피범벅인 걸 보니 생명체인데…….
‘뱀이네…….’
뱀이 보물상자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이미 죽은 뒤였지만.
‘보물상자에 함정을 숨겨놨네, 발칙하게.’
강기찬은 놀라지 않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석에도 깔려본 적이 있는지라, 이건 애들 장난 수준이다.
‘아무것도 없나?’
어쩐지 일이 술술 잘 풀린다, 싶더니만, 이런 데서 똥을 밟을 줄이야…
…가 아니었다.
혹시나 하고 열린 보물상자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오호.”
돌멩이 하나가 들어있었다.
푸른 빛이 나는.
‘강화석.’
저건 강화석이다.
‘나쁘지 않은걸.’
기본 강화석만 해도 시세로 10만 원이다.
거저 얻는 거나 다름없기에 쏠쏠한 용돈 벌이는 했다.
‘어라?’
강화석을 잡자마자 안색이 변했다.
‘보통 강화석이 아니었네.’
강화석은 외관만 보고 판단해선 안 되었다.
종류가 달라도 다 비슷하게 생겼기에.
하지만, 초보자 이벤트에서 주는 게 기본 강화석 아니고 뭐겠나.
…만지고 나니 깨달았다.
《 확정 강화석 》
[분류] 아이템
[등급] 이벤트
[설명] 허수아비 미로 – 보물상자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
[효과] +1 강화
“이거 뭐…….”
대박이다.
“하…….”
말문이 막혔다.
“이게 여기서 뜬다고? 그게 말이 돼?”
무조건 +1 강화가 되는 확정 강화석.
아주 귀한 아이템이다.
“이거 부르는 게 값인 건데…….”
6강화부턴 수억이 깨진다.
그것도 강화석 구매비용만 따졌을 경우.
강화 실패 시, 소멸하는 아이템까지 더하면?
그 이상의 지출이 생긴다.
강화 성공까지 돈, 시간, 스트레스를 저 돌멩이 하나로 대신할 수 있다. 어찌 안 좋겠나.
‘좋네.’
새삼 보물상자의 가치를 알아버렸다.
하나 열었는데 이러면, 나머지는?
이젠 보물상자 찾기에 박차를 가해야 했다.
‘전부 다 내가 독차지해야 한다…….’
눈에 탐욕이 깃들었다.
‘올라 가보자.’
몸을 띄웠다.
다행히 2층 천장을 통과할 수 있었다.
2층으로 올라서면서 생각했다.
‘다른 유저들도 올라올 수 있겠네?’
자신도 특별해서 된 게 아니지 않나.
다른 이들도 될 터.
다만, 확률이 낮다.
천장 뚫고 올라갈 생각을 할까?
생각한들, 실천에 옮길 수 있을까?
천장까지 10미터다.
2층으로 올라오고도 공중부양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물론 가능할 수 있다.
일전에 보물 허수아비를 통해 보물상자를 얻었을 테니.
강기찬도 그것 덕분에 공중부양할 수 있지 않나.
그러나,
‘그땐 늦을 거야. 내가 끝을 본 뒤일 테니.’
강기찬은 그들보다 빠르다.
속전속결로 싹쓸이할 속셈이었다.
* * *
강기찬은 올라갔다 내려왔다, 반복했다.
미로의 모든 보물상자를 다 털 때까지…….
그렇게 미로에 존재하는 모든 보물상자를 다 털었다.
총 1,102개.
1천 명에게 분배되어야 할 걸 독식했다.
보기만 해도 배부를 지경.
그런데도,
‘더 없나?’
아쉬웠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던가.
맞는 말이다.
그때였다.
“으-아아악!”
1층에서 비명이 난무했다.
내려다보니 살인이 일어나고 있다.
그 이유야 즉각 알았다.
“쿠폰 내놔!”
경험치 2배 쿠폰을 가지려고.
또는,
“흐하하! 아이템이다!”
보물 허수아비를 통해 얻었을 아이템을 노리고.
이를 본 강기찬이 미소지었다.
‘음, 보물상자는 다 털었지만, 걸어 다니는 보물상자가 남아있었네.’
강기찬도 저 살육의 대열에 동참하기로 했다.
돌멩이를 꺼냈다.
‘이걸 1층으로 떨어뜨리면 어떻게 될까?’
툭-
슈-우우웅.
퍽!
[정민준을 처치했습니다.]
힘을 준 것도 아니다.
그저 흘리듯 떨어뜨린 것이다.
그런데도 즉사했다.
정수리에 맞아서일까?
아니, 힘 스탯이 205다.
초보자가 안 죽으면 이상하지.
“어? 엉?”
이에, 싸우던 유저들이 정지했다.
그러고선 바닥에 떨어진 돌멩이를 보았다.
“이건 뭐지?”
“평범한 돌멩이인데?”
열두 명의 유저가 일제히 위를 올려다보았다.
“저 위에서 떨어진 거지?”
“근데 저긴 천장이잖아?”
“막혀 있는데?”
“그럼, 도대체 저 돌이 어디서 떨어진 거지?”
“저 사람은 왜 저만한 돌멩이 하나 맞았다고 죽은 거며…….”
“그, 그러게…….”
“무슨…….”
그 순간.
“조, 조심해!”
“돌 떨어진다!”
두둑, 두두두둑.
다량의 돌멩이가 천장에서 떨어져 내렸다.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돌멩이 수가 워낙 많아서.
빡! 빠-악! 빠-아아악!
[김도신을 처치했습니다.]
[최명진을 처치했습니다.]
[김요한을 처치했습니다.]
[박신애를 처치했습니다.]
[이순미를 처치했습니다.]
.
.
강기찬은 그들이 떨어뜨리는 아이템을 보면서.
‘잠깐, 이거 너무 비효율적이잖아.’
벌써부터 효율을 찾았고,
몇 차례 테스트해보고선…….
‘음, 그거면 되겠네.’
효율적인 사냥법을 찾아냈다.
양민학살이 벌어질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