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 * *
두 번째 이벤트 내용이 공개되었다.
미로 탈출.
이 사실을 알게 된 유저의 반응은 비슷했다.
“아, 어렵겠다. 나 진짜 길치인데.”
“이걸 어떻게 해?”
“그냥 길만 복잡하겠냐?”
“하긴, 길만 복잡하면 다행이게, 보나마나 곳곳에 몬스터나 함정도 도사리고 있을 텐데…….”
“아, 큰일이네. 이번에는 포기해야 하나.”
“근데 지금까지 보상으로 추정컨대 이번에도 꽤 괜찮은 보상 줄 거 같은데…….”
“맞아, 포기하긴 아쉽단 말이지.”
“도전해야지!”
“에휴, 마음은 그런데 걱정은 걱정이다…….”
다들 걱정하는 가운데 강기찬만 태평했다.
사전 점검 때 개발진이 미로를 들락날락하는 걸 보기도 했고.
무엇보다, 미로 탈출은 자신 있었다.
“이거 내 주 종목인데?”
“네? 아저씨는 인간 내비게이션이에요?”
노재민의 물음에 강기찬이 웃었다.
“그런 편이지.”
강기찬은 길을 잘 찾지 못한다.
여러 번 갔던 길도 초행길로 만드는 길치였지.
하지만,
‘맵핵이 있는데…….’
맵핵.
그거면 길치도 길치가 아니게 되며 내비게이션 부럽지 않다.
그러므로 미로 탈출은 아주 쉬울 것이다.
노재민이 말했다.
“저 이번엔 제힘으로 한 번 탈출해볼게요.”
“당연히 그래야지.”
강기찬은 노재민이 대견했다.
다 큰 성인도 옆에 전문가가 있으면 의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10대 초반의 어린 나이임에도 독립심이 강하다.
“두 번째 이벤트 기다리면서 상자부터 까볼까?”
두 번째 이벤트 시작 전이다.
막간을 이용해 노재민에게 받은 선물을 확인해보자.
“흐! 기다렸어요!”
노재민도 달가워했다.
이럴 때는 영락없는 어린애다.
“오, 오오오!”
노재민은 계속 보물상자를 열었다. 그럴 때마다 신나 했다.
‘그래, 상자 까는 맛이 있을 거다.’
노재민과는 달리 강기찬은 딱 한 번이었다.
물론, 에픽 등급이라 노재민 못지않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에픽 등급의 보물상자를 열었습니다.]
《 공중부양의 반지 》
[분류] 아이템
[등급] 에픽
[설명] 보물 허수아비 찾기 보상
[제한] 착용 제한 없음.
[스탯] 지력 +50 / 마력 +500
[효과] 사용자의 신체를 허공에 띄울 수 있다.
[조건] 소량의 집중력 + 마력 소모(사용자의 몸무게에 비례)
[제약] 없음.
‘미쳤구먼…….’
우선 스탯부터 살펴보았다.
[지력 +50 / 마력 +500]
지력은 레벨을 50이나 올려야 얻을 수 있는 양이다.
그뿐이랴, 마력도 올려준다. 마력은 1스탯포인트 당 10이 오르기에, 이 역시 레벨을 50이나 올려야 얻을 수 있는 양이다.
합계 100.
사실 에픽등급 치고는 별로다.
평균보다 아래, 아니 최하급이니.
단, 효과가 마음에 들었다.
[신체를 허공에 띄울 수 있다.]
‘나한테는 더할 나위 없는 효과지.’
강기찬에겐 단순히 강해지는 그 이상이다.
실생활에서 유용할 터.
휠체어 외에 제2의 이동수단이 생긴 거니.
‘얻으려고 그렇게 애를 써도 못 얻었는데…….’
그도 이러한 효과가 있는 아이템을 구하고 싶지 않아서 안 구한 게 아니다. 못 구한 거지.
이러한 효과를 지닌 액세서리는 인기가 많다.
착용 제한이 없기에.
즉, 유저끼리 경쟁하는 게 아니라 일반인과도 경쟁해야 했다.
가뜩이나 효과 붙은 건 에픽등급부터라 물량도 적은데 시장에 풀리는 족족 갑부들이 채가니 강기찬에겐 기회가 돌아올 리가…….
아무리 전직 랭커였다 한들, 일개 프로게이머가 갑부와 경쟁이 되겠나.
“후.”
지난 10년간 염원하던 것.
얼른 착용해보고 싶었다.
낀 반지를 빼내려다 멈칫했다.
‘잠깐, 나 지금 계정 두 개잖아.’
선착순 공동 1등.
경험치 동시 축적…….
‘아이템 동시 착용도 안 될 리가…….’
손가락을 펼쳐보았다.
열 손가락에 다 끼워져있는 반지.
다만,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다.
안 낀 것처럼 설정하는 게 있어서.
각설하고, 반지는 열 개가 한계다.
반지 하나를 더 끼려 해도 불가능하다.
원래라면…….
하나, 지금은 어떨까?
‘과연…….’
기대를 품고 공중부양의 반지를 약지에 밀어 넣었다.
수우욱.
‘오, 된다. 돼!’
반지가 손가락에 쏙 끼워졌다.
시스템상으로 허용된 거다.
대충 예상은 했지만, 막상 되니 신기했다.
‘반지를 열 한 개를 끼다니.’
계정 두 개 동시 로그인.
그 위력이 점차 실감 났다.
‘말이 열 한 개지, 총 스무 개를 낄 수 있네. 다른 장비나 액세서리도 그럴 거고, 이건 남들보다 두 배의 보정을 받게 된다는 거네.’
본래 무기와 방어구, 장비, 액세서리엔 착용 제한이 있다.
모자, 목걸이, 허리띠 등은 무조건, 하나.
이는 어떤 유저도 예외 없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나는 달라.’
오직 강기찬만이 하나가 아닌 둘이 적용되는 것이다.
예컨대 모자나 신발도 겹쳐 쓰고 신을 수 있단 의미.
더 좋은 스펙, 즉 질로 경쟁하던 템빨을…….
같은 스펙에서 양으로 이길 수도 있게 되었다.
‘슬슬 써볼까.’
좋은 걸 얻었으면 바로 해보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래도 자신이 공중부양하는 걸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강기찬은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부-아아아.
떠올랐다.
휠체어에서 엉덩이가 떨어지는 감각.
늘 겪지만, 이번엔 색달랐다.
꽤 오래 엉덩이 밑이 허전했기에.
‘쥑이네.’
약간의 집중, 그리고 마력이 들긴 했지만.
처음인데도 잘 되었다.
더 떠 있고 싶지만, 적당히 하고 내려왔다.
다시 휠체어에 탄 채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노재민을 보았다.
아주 사랑스럽게.
“어디 갔다 오셨어요?”
“저~기, 잠깐 갔다 왔어.”
“상자에서 좋은 거 나오셨어요?”
“어, 좋은 거 나왔지. 너는?”
“만족해요! 아저씨가 주신 상자에서 꽤 괜찮은 게 나왔걸랑요!”
“그래? 다행이다.”
강기찬은 노재민이 정말 고마웠다.
그런 까닭에,
“너 2등 하면 안 되냐?”
미로 탈출 2등 시켜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1등 자릴 내줄 순 없으니까.
“네?”
노재민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2등 하라는 거죠. 저 1등 할 건데…….”
웃기는 소리일 거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한다는 소리가 2등 해라?
마치 결과가 정해졌다는 듯 굴지 않는가.
시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있는 한 1등은 안 될 텐데…….’
현실이 그랬다.
1등 자리는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없다.
‘맵핵이 있는데 어떻게…….’
맵핵을 쓰고도 2등 하면 바보다.
그렇기에 타협안으로 2등이라고 시켜주려고 한 것이다.
그건 가능하니까.
‘맵핵이 있다고 알려줄 수도 없고.’
그와 노재민은 협력하는 사이이지, 깊은 신뢰를 쌓은 관계도 아니다. 맵핵까지 알려줄 이유는 하등 없었다.
“그렇지만, 무언가 있으니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겠죠?”
노재민은 예리했다.
강기찬이 무언의 고갯짓을 했다.
“그래도 전 제힘으로 한 번 해볼게요. 1등 하려고 유저가된 게 아니거든요.”
“그럼?”
“우리 집이 형편이 좀 어려워요.”
노재민이 철이 일찍 들었나 싶었는데 그런 사연이 있을 줄이야.
“그렇구나…….”
“근데 아저씨 덕분에 한시름 놓았어요.”
“다행이네.”
“돈 걱정도 줄었겠다, 한 번 즐겨보려고요.”
“즐긴다라…….”
즐거움.
강기찬에겐 새삼 낯선 단어였다.
‘그러고 보니 나도 처음엔 즐기려고 이 게임 시작했었지.’
그도 처음엔 게임을 순수하게 즐겼었다.
어느샌가 치열한 경쟁에 미치게 되었을 뿐.
하나, 경쟁을 위한 경쟁은 아니었다.
경쟁도 즐거웠다.
남들보다 잘난 게 없었는데 난생처음으로 남을 이겨보기도 인정을 받기도 했으니.
여러 상념이 스치듯 지나갔고.
띠링!
마침내…….
[두 번째 이벤트가 시작됩니다.]
[미로 탈출]
[미로를 탈출하세요!]
[미로 곳곳엔 좀비 허수아비와 함정, 그리고 보물상자가 존재합니다.]
[미로 탈출 순위에 따라 차등 보상도 지급됩니다.]
[미로가 소환됩니다.]
[제한시간 : 한 시간]
[제한시간이 지나면 두 번째 이벤트가 종료됩니다.]
두 번째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슈-우우우웅- 툭!
하늘에서 벽이 떨어졌다.
그 벽이 땅에 박혔고 다닥다닥 붙더니 미로가 되었다.
그리고 천장이 덮였다.
완성된 미로는 웅장했다.
감히 뛰어넘을 수 없을 만큼 높았고.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넓었다.
그리고…….
“시작부터 갈림길이라…….”
입구가 둘이었다.
고민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닌지라 다들 감으로 진입했다.
“아저씨, 저 먼저 들어갈게요!”
“그래.”
노재민이 강기찬에게 인사를 하고선 쌩 들어가 버렸다.
다른 유저들도 각자 갈 길을 갔고.
마지막으로 딱 4명 남았다.
강기찬과…….
“도련님, 안 들어가십니까?”
경석과 부하들.
“흐흠.”
경석이 강기찬 쪽을 힐끔 보았다.
‘저건 왜 안 들어가지?’
경석은 강기찬이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하나, 부하들의 재촉에 떠밀리듯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내 모두가 다 들어가고 강기찬만 남았다.
강기찬이 텅 빈 주위를 둘러보다가…….
위-이이이이이이잉!
전동 휠체어를 움직여 전방으로 향했다.
다만, 그 방향이 의외였다.
갈림길이 있는 입구가 아니라 그보다 옆에 벽으로.
그 벽은 분명 막혀 있었다.
그러나.
‘이러면 되려나?’
강기찬이 벽을 툭, 하고 건드렸다.
그러자,
지-이이이잉!
벽의 중간 지점에 실금이 생기더니, 위아래로 벌어졌다.
그 안쪽으로는 계단이 나 있었다.
비밀통로다.
‘다행이네.’
비밀통로를 발견했다는 기쁨보다는 다른 감정이 앞섰다.
강기찬이 전동 휠체어를 내려다보았다.
‘이 꼴로는 못 올라갔을 텐데.’
계단을 보면 마냥 웃을 수 없는 몸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계단을 오를 수 있게 되었으니.
강기찬은 전동 휠체어를 인벤토리에 넣고선 몸을 띄웠다.
기립 자세로 허공에 붕 뜬 상태.
그대로 계단을 향해 나아갔다.
계단 양옆에 촛불이 걸려있어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올라간‘2층’에선 꽤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없잖아?’
아무도 없는 거야 당연했다.
그가 문을 열고 그 혼자 2층으로 올라온 거니.
그런데 마땅히 있어야 할 게 보이지 않았으니…….
‘이거 뭐…….’
강기찬은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 * *
한편, 지구서버 운영진 회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지구서버 운영1팀 팀장 자쟈.
그녀가 벌떡 일어섰다.
주변에 앉아있던 이들도 하던 일을 멈췄다.
다들 정면에 비치된 프로젝트빔 영상에 집중했다.
영상에는 좀 전에 설치한 따끈따끈한 미로가 보였다.
다른 유저들은 다 들어간 지 오래고 웬 남성만이 홀로 남아 있었다. 그쯤부터 자쟈가 집중했었다. 그 남성이 낯이 익었기 때문이었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불안하게…….’
딱 이 생각으로 지켜본 것이다.
그러다가 벽의 상하가 이등분이 되며 문이 열렸다.
그때 소리친 거다.
“저긴 운영자 전용 출입구잖아!”
그랬다.
회사에 회장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듯. 미로에는 운영자 전용 출입구가 있었다. 입구에서 출구로 바로 향할 수 있는.
강기찬이 그곳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