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빡!
겉보기엔 강하지 않은 노재민의 일격.
그런데도 묵직한 타격감!
남자의 다리는 가볍게 접혔고.
남자의 시선은 잠시 하늘로 향했다.
일순간 떠오르다가 땅에 처박혔다.
쿠-웅.
엉덩이와 머리를 찍었고 기절해버렸다.
진단명은 가벼운 뇌진탕.
이에 외려 노재민이 놀랐다.
“나 진짜 강해졌구나…….”
제가 낸 힘임에도 낯설다.
“이 사람 너무 약한데요?”
상대를 이리 쉽게 이긴 게 믿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은 최강자가 아니다.
이곳 최강자는 강기찬이다.
그다음 순위는 불분명.
확실한 건 자신은 아니다.
파티여서 온전히 경험치를 먹진 못했으니.
반면 혼자 사냥해 온전히 경험치를 먹은 이들이 더러 있었다. 화염방사기를 든 십수 명의 유저들이 그랬다.
“약하기는…….”
강기찬이 답했다.
“네?”
“저 사람 최소 15레벨인데?”
“…레벨을 어떻게 알아요?”
강기찬이 턱짓했다.
“지력의 반지를 꼈잖아.”
노재민이 남자의 손가락을 보았다.
반지를 끼고 있었다.
“저거, 15레벨부터 착용할 수 있거든.”
“그, 그렇군요…….”
노재민은 강기찬의 눈썰미에 놀랐다.
‘그 짧은 시간에 상대의 반지를 보고 레벨을 추정하다니…….’
한편으론 가슴을 쓸어내렸다.
“큰일 날 뻔했네요. 전 14레벨인데, 질뻔했어요.”
하마터면 역으로 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니.”
강기찬의 말은 뜻밖이었다.
“무조건 네가 이기지.”
“제가 이긴다고요? 그것도 무조건?”
레벨 격차가 크게 나면 모를까, 고작 1차이다.
승패를 가늠할 수 없지 않나.
객관적으로 불리한 건 이쪽이고.
그런데 강기찬은 승패를 확신하고 있다.
“왜 그렇죠?”
궁금할 수밖에.
“쟤는 지력 찍었으니까.”
강기찬은 남자가 스탯을 지력에 분배했을 거라 보았다.
근거는 명확했다.
“지력의 반지는 지력만 올려주는데 그걸 열 개 다 끼고 있어. 마법사 지망생이란 방증이지. 그런데 올힘 찍은 네가 질 리가 있나?”
“… 질 리가 없죠.”
노재민이 쉬이 시인했다.
초보자일 때는 힘이 깡패다.
다른 스탯보다도.
“다른 사람이었어도 네가 이겼을 거야.”
“어째서죠?”
“여기 있는 전부 다 높은 확률로 스탯 안 찍었을 테니까.”
강기찬이 주변에 있던 유저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에 유저들이 움찔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는 듯.
“그럴 수도…….”
노재민도 공감했다.
본인도 스탯 안 찍고 있다 강기찬의 말을 듣고선 올힘을 찍지 않았나. 이는 단순히 스탯 찍는 걸 까먹어서가 아니다.
“함부로 찍을 수 없으니까.”
스탯은 한 번 찍으면 돌이킬 수 없다.
섣불리 찍지 못할 수밖에.
인생이 걸린 문제 아닌가.
신중히 고민할 문제다.
“그러니 너보다 레벨이 높을 순 있어도 강할 수는 없지.”
대다수가 스탯을 찍지 않은 와중에 힘 스탯을 찍었으니 강한 것이다.
“아, 근데, 근데, 저는 스탯을 찍어버렸네요…….”
강기찬이 올힘 찍으라 해서 찍었다.
당시만 해도 망설임 따윈 없었다.
강기찬의 말은 곧 법이니.
한데 돌이켜 보니 회의감이 들었다.
“하려던 직업이 있었어?”
“아뇨, 체험해보려고 그랬죠.”
직업을 확정 짓기 전에 미리 직업을 체험해볼 수 있다.
대다수가 스탯 찍길 미루는 이유 중 하나였다.
선호 직업이 있어도 막상 그 직업을 체험해보고 마음이 변할 수도 있으니까. 직업과 스탯이 긴밀한 연관성이 있는 만큼, 스탯 찍기가 신중할 수밖에.
“흠, 미안하게 됐네.”
“아, 아니에요. 힘 찍는다고 망한 것도 아닌데.”
“네가 마법사 할 거면 망한 거 맞아.”
“히, 힘법사도 있잖아요.”
“응원은 해줄게.”
* * *
분위기가 살벌했다.
대다수의 유저들이 단 한 사람만을 노려보았기에.
그 대상인 강기찬이 단호히 선을 그었다.
“경험치 쿠폰은 돌려줄 수 없습니다.”
“왜?”
“왜 돌려줄 수 없다는 거지?”
“그건 원래 우리 경험치 쿠폰이었어.”
본래 이쯤 되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경험치 쿠폰을 돌려받기를 포기하거나.
경험치 쿠폰을 강탈하기 위해 공격하거나.
유저들은 제3의 선택지를 택했다.
“돌려줘.”
말로 풀려 한다.
초보 유저들이 흔히 하는 선택지다.
노재민이 가벼이 상대를 제압하는 걸 보았기에.
강기찬은 그 이상일 테고.
“싫습니다.”
강기찬은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수적으론 우리가 우세해.”
상대는 말이 안 되니 협박이라도 해본다.
“강기찬. 네가 아무리 강해도, 우리 모두를 적으로 만들어서 좋을 건 없을 텐데?”
“적이라뇨. 고객이 될 텐데.”
“뭐? 고객?”
강기찬은 바로 그 의문을 풀어주었다.
“쿠폰 팝니다.”
“뭐?”
“쟤 지금 뭐라고 했어?”
“쿠폰 판다고?”
“뭐라는 거야! 그 쿠폰 원래 우리 거였잖아? 그걸 왜 네가 함부로 팔아?”
강기찬은 또다시 실소했다.
“원래 우리 거? 그게 어떻게 원래 당신들 거죠? 원래 게임사 거지.”
“새끼야, 말장난하지마.”
“일단…….”
강기찬이 자신을 욕한 이를 쏘아보았다.
“당신에겐 안 팝니다.”
“뭐?”
목소리에 힘이 좀 빠졌다.
당황했다는 방증.
그러거나 말거나 강기찬이 말했다.
“갖고 있던 걸 잃었으니 기분 나쁠 법합니다. 하지만 이건 성장할 기회입니다.”
“기회?”
“뻔뻔하네.”
몇몇이 어이없어했다.
갖고 있던 경험치 쿠폰을 잃었는데 어떻게 그게 기회란 말인가.
강기찬이 이어 말했다.
“나도 남도 다 경험치 20배입니다. 그런데 그 이상일 수 있다면? 저 밖, 수천 만의 신규유저들보다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을 겁니다.”
“…….”
“아시다시피 경험치 쿠폰은 중복 적용이 됩니다. 최대 10개. 다 적용하면 경험치 10,240배…….”
강기찬은 말을 줄였다.
다분히 의도적인 여운 연출 법이다.
이제부턴 상상해보라 이거다.
경험치 10,240배를 적용받은 자신을.
“…….”
다들 조용해졌다.
그때쯤부터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어, 얼마. 얼마요?”
“얼마면 됩니까?”
경험치 쿠폰을 하나도 잃지 않은 자들.
그들이 구매의 시작을 끊었다.
강기찬에게 반감을 느끼지 않았기에.
오히려 호감을 느꼈지.
그가 아니었다면 남들처럼 경험치 20배에 안주했을 터.
그러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은연중에 그런 분위기가 퍼져나갔다.
언제까지고 경험치 쿠폰 하나 잃은 것에 얽매여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은 더 미래를 볼 때다. 그러기 위해선 하나가 아니라 더 많은, 가능하면 10장의 경험치 쿠폰이 필요했다.
타인과 싸우지 않고 돈으로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강기찬을 천하의 나쁜 놈으로 몰아세우던 분위기는 사라졌다. 아니, 나쁜 놈이면 어떤가, 나만 이득을 보면 그만인데.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강기찬이 가격을 공개했다.
“개당 100만 원.”
* * *
이쪽이 가격을 책정했으니 선택은 저들 몫이다.
불현듯, 노재민이 말했다.
“아! 저기 이거 돌려드려야 했는데, 깜빡했네요!”
《 거래창 》
[경험치 10배 쿠폰(1등)]
강기찬이 웃었다.
“안 빼돌렸네?”
“아니, 절 뭐로 보고!”
강기찬이 노재민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웃었다.
“농담이다.”
노재민은 허수아비 논밭 선착순 보상들을 몽땅 강기찬에게 넘겼다.
강기찬이 좌판대를 열었다.
그러고선,
[경험치 2배 쿠폰(x717)을 좌판대에 등록되었습니다.]
자신과 노재민 몫을 제외한 717장의 경험치 2배 쿠폰을 좌판대에 올렸다.
좌판대는 자동 판매 시스템이다.
판매자가 직접 손님을 응대해 팔지 않는다.
경험치 쿠폰이 필요한 유저들이 알아서 좌판대에서 구매할 것이다.
유저들이 좌판대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신규 유저임에도 익히 알았다.
TV나 우투브 등을 통해 본 것이다.
뒤편에서 머뭇거리던 이들도 늦게나마 경쟁에 합류했다.
일종의 경쟁심리가 발동된 것이다.
998명이 717장을 살 수 있다.
넘쳐나는 수요에 비해 지극히 한정된 물량이다.
1인당 1장도 아니고 최대 10장을 보유할 수 있기까지.
물량이 소진되는 금방일 터.
[경험치 2배 쿠폰이 판매되었습니다.]
[1,000,000원을 받았습니다.]
[경험치 2배 쿠폰이 판매되었습니다.]
[1,000,000원을 받았습니다.]
[경험치 2배 쿠폰이 판매되었습니다.]
[1,000,000원을 받았습니다.]
.
.
[더 이상 판매할 물건이 없습니다.]
[판매할 물건을 등록해주십시오.]
순식간에 다 팔렸다.
또한, 레전드스토리는 현금거래도 허용이 되었다.
덕분에 코인이 아닌 원화로 받았다.
그렇게 강기찬과 노재민이 얻게 된 총수입은…….
[717,000,000원]
7억 1700만 원!
“자, 네 몫이다.”
강기찬이 거래창을 열어 노재민 몫의 돈을 주었다.
《 거래창 》
[올린 금액 : 358,500,000원]
[거래가 성사되었습니다.]
====
“하, 하아… 하으으.”
노재민이 경악했다.
달동네 판잣집에서 자란 그에겐 보기는커녕 상상도 못 해본 액수였기에.
“이, 이거… 이걸 제가 다, 다다 받아도 되, 될까요?”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이는 어려도 발음도 또박또박하던 애가…….
“어. 그리고 이미 거래 확인 눌러놓고선… 크크.”
강기찬이 답했다.
“땀 흘린 대가는 받아야지. 땀 안 흘렸으면 안 주려고 했다.”
“따, 땀 흘려서 다행이다…….”
진지하게 믿는 노재민에 강기찬이 크게 웃었다.
한편,
“와! 나 10장 다 샀다! 경험치 10,240배야!”
“나도 다 샀지롱!”
“와씨, 개부럽네.”
유저들이 희로애락이 이곳까지 전해졌다.
강기찬은 저들을 보며 피씩, 쪼갰다.
‘10,240배라……. 내가 먹는 경험치를 알면 까무러치게 놀라겠네.’
강기찬과 저들의 경험치 버프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강기찬의 경험치 버프는 25만 6천 배다.
경험치 10배 쿠폰이 세 장이나 있기에 가능한 수치.
‘이 정도면 레벨을 좀 더 올릴 수 있겠네.’
덕분에 또다시 허수아비만으로도 폭풍 레벨업이 가능하게 되었다.
‘성장세가 더뎌져서 더는 허수아비 잡아선 레벨업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는데…….’
경험치 25만 6천 배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때였다.
누군가 다가왔다.
‘경석?’
부티 나게 생긴 부잣집 도련님으로 선착순 1, 2, 3등 자리를 30억 주고 산 양반이다.
경석이 말했다.
“좌판대에 보니까, 경험치 10배 쿠폰이 없던데?”
“아…….”
왜 찾아왔나 했더니.
“그건 안 팝니다.”
팔 거였으면 진작 경매했을 거다.
강기찬의 단호함에 경석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얼마를 원해?”
“안 원하는데?”
경석이 먼저 말을 놓는데 이쪽이 안 놓을 이유가 없었다.
나이대도 비슷해 보이고.
“10억.”
“아니.”
“10억도 부족하다? 좋아, 선제시. 얼마면 팔래?”
“당분간은 돈 필요 없는데.”
경석이 제법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 확인 못 한 거 같은데 경험치 10배 쿠폰은 선착순 1등 보상이야.”
“그래서?”
“선착순 1등만 사용할 수 있지.”
“아, 그렇구나. 안 팔아.”
이제야 경석이 정색했다.
“왜 안 팔아? 선착순 1등만 사용할 수 있다니까.”
“그래서 안 판다고.”
경석은 미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