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테스트서버-14화 (14/151)

14화

* * *

하늘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허수아비 논밭은 검붉게 타들어서 갔고.

화염방사기를 든 유저들은 신이 나서 외쳤다.

“이야, 쥑인다!”

“경험치가 팍팍 오른다고!”

“여긴 천국이다! 천국이야!”

폭풍 성장을 맛보며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기존의 경험치 10배에 허수아비 논밭 방문으로 경험치 2배까지, 총 경험치 20배의 버프를 받고 있지 않나.

게다가 낮은 레벨에 비해 막대한 물량을 신속하게 사냥하기까지.

반면 강기찬은 화염방사기를 인벤토리에 넣은 뒤였다.

성장세가 심하게 꺾여서.

‘이쯤 하면 되겠다.’

이득을 볼 만큼 보았으니 철수할 시기이기도 했다.

시커먼 연기에 정면이 보이지 않게 되기도 했고.

저벅, 저벅.

자리를 정리하고선 뒤를 돌아 이동한계선을 넘어갔다.

그러고선 입고 있던 방화복을 확 벗어던졌다.

온몸에 땀이 범벅이었다. 방화복을 입는 것만 해도 그럴 지인데 불바다에 있다가 왔으니.

어느새 꺼낸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이동한계선 너머를 보았다.

완전히 딴 세상을 보는 기분이었다.

아니, 이곳은 딴 세상이 맞았다.

불도 연기도, 바람과 열기마저 전해지지 않았으니까.

완벽히 분리된 세상.

그 속에서 땀을 식히는 중이었다.

그러고도 얼마나 흘렀을까.

“어?”

“이거 뭐야?”

유저들이 난색을 보였다.

띠링!

[유독가스를 흡입했습니다.]

[생명력이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감소합니다.]

.

.

“이거 뭐야? 유독가스라니?”

“유독가스가 던전에서 왜 나와?”

“생명력이 계속 감소한다! 이거 어떻게 해? 어떡하냐고 이 씨브으을…….”

“야, 숨 참아!”

“아니…아악!”

아비규환이었다.

비명과 함께,

콜록, 콜록!

연신 터지는 기침 소리!

유저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동시다발적이었다.

픽, 피피픽. 털썩. 털썩!

살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허사였다.

몇 센티미터 기어가다가 결국 땅에 코를 박았다.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느꼈지만, 너무 늦은 것.

그 누구도 현장을 이탈하지 못했다.

모두가 공평하게 눈을 까뒤집고 자빠졌다.

[질식사하셨습니다.]

1천 명 중에서 998명의 유저가 질식사했다.

그렇기에 현장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그러나 적막은 오래가지 않았다.

발걸음 소리, 전동 휠체어 소리.

두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또한,

촤-아아아!

물 뿜는 소리까지!

소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노재민이 강기찬, 둘은 분업했다.

강기찬이 화재진압을.

노재민은 경험치 쿠폰 회수를.

강기찬이 소화기를 분사해 불을 끄고 대량의 강풍기를 투입해 매캐한 연기와 유독가스도 몰아냈다.

그렇게 연기를 걷어낸 자리엔…….

자그마한 쿠폰 여러 장이 있었다.

예사 물건이 아니라는 듯 반짝거리기까지.

실제로 그것들은 예사 물건이 아니었다.

[경험치 2배 쿠폰을 얻었습니다.]

경험치 2배 쿠폰이다.

허수아비의 논밭 방문 보상으로 모두에게 주어졌던.

‘와, 죽인다…….’

노재민은 금광을 발견한 광부처럼 눈이 희번들해졌다.

띠링!

쿠폰을 얻자 상세한 내용이 떠올랐다.

《 경험치 2배 쿠폰 》

[분류] 아이템

[등급] 이벤트

[설명] 허수아비의 논밭 방문 보상.

[효과] 기존의 경험치에 2배를 더 얹어준다.

[조건] 소지하고 있으면 자동 적용.

[제약] 허수아비의 논밭 한정.

* 타 경험치 혜택과 중복 적용 가능.

* 중복 적용 가능 경험치 쿠폰 최대 10장.

‘미쳤네,’

지금도 경험치 20배 적용 중이다. 거기에 이 쿠폰으로 경험치 2배를 더 얹으면?

경험치 40배.

아니, 중복되니 80배, 160배, 그 이상이 될 터.

그걸 가능케 하는 아이템이 곳곳에 널려있다.

‘고맙습니다, 여러부우우운! 알라뷰!’

노재민은 흥에 겨운 채로 사망한 유저들에게 고마워했다.

그랬다.

저것들은 다 유저들이 죽으면서 남긴‘유품’이었다.

사망 시, 유저는 보유한 아이템 중 하나를 무작위로 떨어뜨리는데, 다들 이제 시작한 지라 가진 게‘경험치 2배 쿠폰’뿐이었다.

그렇기에 죽으면서 떨어뜨린 아이템 대부분이‘경험치 2배 쿠폰’이었다.

강기찬은 이를 예측했고 그래서 노재민에게 일자리를 제안한 것이다. 혼자서 불 끄고 연기와 유독가스를 몰아내고 쿠폰을 줍기까지 하는 것보다는, 둘이서 분업하는 게 더 효율적이니까.

때마침 노재민이 눈에 들어왔다.

강기찬도 이건 정말 운이 좋았다고 자평했다.

그의 광팬인지라 배신할 가능성도 거의 없기에.

물론 배신도 염두에 두었다.

배신해도 일이 조금 더 생길 뿐이지 문제 될 건 없었다.

‘다행히 지금까진 별다른 불순한 낌새가 없지만, 또 모르지.’

막상 재물을 얻고 나면 달라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노재민이 어리기는 하나 일찍 철들면 또 모르는 일이고.

몇 분 지나면 알게 될 일이다.

노재민의 성향을.

[강기찬] 시간 없다, 빨리 주워.

[노재민] 예!

강기찬이 노재민을 채근했다.

여유 부릴 틈이 없었다.

단 1분.

그 안에 최대한 많은 양의 쿠폰을 회수해야 했다.

최초 사망 후, 1분 뒤에 부활하기에.

‘전부 다 가질 수는 없겠지.’

강기찬도 일찍이 고려한 부분이다.

여기 떨어진 아이템을 다 가질 수 없음을.

그도 그럴 게, 떨어진 아이템이 998개다.

단둘이서 감당하기엔 버거운 양이다.

그렇지만,

‘뭐, 전부 다 가질 필요가 없지.’

애초에 전부 다 가질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쿠폰은 여기에서밖에 못 쓰니까.’

경험치 쿠폰은 허수아비 논밭 한정 사용할 수 있다.

허수아비 논밭 밖으로 나가는 순간 무용지물이란 말씀.

‘적당히 챙기고 레벨 올려야지…….’

현재로선 얼마나 더 경험치 버프를 받을지, 레벨을 올릴 수 있을진 모르지만, 결국엔 또 성장 한계점이 찾아올 터 그때까지만 이 쿠폰의 혜택을 누리면 그뿐이다.

‘흠, 10배는 안 보이네.’

강기찬이 우선하여 찾는 경험치 쿠폰이 있었다.

바로 경험치 10배 쿠폰.

알기로는 998개 중 단 하나만 경험치 10배 쿠폰이다. 허수아비 논밭 선착순 1등 보상이니까.

그래서 일부러 허수아비 논밭에 1등으로 입장했던 경석의 위치는 파악해둔 뒤였다. 그가 죽은 자리에 아이템이 떨어질 테니까.

그런데 찾아보니 없었다.

‘경석이 있던 자리를 착각한 건 아니야.’

맵에는 좌표를 찍는 기능도 있었다.

그러니 경석이 있는 곳은 정확했다.

‘근데, 없다는 건…….’

강기찬의 시선이 노재민에게 향했다.

‘재민이가 챙겼다는 거겠지.’

이미 노재민이 경험치 10배 쿠폰을 먹었다는 거다.

‘잘했네.’

강기찬이 그에게도 경험치 10배 쿠폰을 우선시하라고 했었다. 그 말을 잘 따라준 모양.

시야 한 편에 설정해둔 타이머를 보았다.

[남은 시간 : 10초]

‘다 됐네.’

겨우 60초.

빨리 주워 1초에 한 장씩 주웠다 쳐도 60장밖에 안 된다.

원시적이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부-부와아아아앙.

노재민의 손에서 강렬한 모터음이 들렸다.

이 소리의 근원은…….

‘청소기 좋네.’

강기찬이 노재민에게 건넨 청소기다.

덕분에,

[현재 획득한 경험치 2배 쿠폰 : 735장]

경험치 2배 쿠폰을 735장 챙겼다.

* * *

‘노다지네. 노다지야…….’

노재민은 침을 질질 흘렸다.

‘고맙습니다, 강기찬 아저씨이잇!’

강기찬에게 정말 고마웠다.

이 장대한 계획에 자신을 끼워준 게.

덕분에 무사히 생존해 경험치도 안 잃었고.

파티를 해줘서 경험치도 왕창 챙겼으며.

이동속도 높여주는 신발을 받았다.

중고도 100만 원은 하는.

‘신발에는 꼭 사인을 받는다!’

또 이렇게‘경험치 2배 쿠폰’도 다량 얻게 생겼다.

무엇보다,

‘강기찬 아저씨랑 함께하는 영광을……!’

그에게 있어선 최고의 인맥을 얻게 되었다.

‘친구등록, 무조건 한다!’

강기찬이 주위의 불길까지 꺼뜨리는 사이,

사삭, 사사사사삭!

노재민은 열심히 ‘경험치 2배 쿠폰’을 쓸어 담는 중이었다.

강기찬은 비교적 여유로웠지만, 노재민은 환장했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악착같이 쿠폰을 끌어모았다. 시간이 가기 전에 하나라도 더 얻고자.

다행인 점은 다들 다닥다닥 붙어있던 채로 죽은지라 이동시간이 딱히 소요되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기분 좋은 것과는 별개로,

“후…….”

노역이었다.

단, 숨이 차올라서 노역은 아니었다.

던전 안에선 아무리 달려도 숨이 차지 않는다.

그런데도 노역이라고 하는 까닭은…….

“언제 다 해… 지루해 죽겠네!”

몇 발자국 채 내딛지도 않았는데… 벌써 지루해서였다. 그에 반해, 할 일은 많았고.

“어쩔 수 없지, 참는 수밖에.”

그때였다.

척.

“……!”

노재민은 깜짝 놀랐다.

갑자기 상체가 들어 올려지더니,

퍼어억!

고개가 돌아갔다.

강렬한 통증과 함께.

‘무슨 일이…….’

몇 초가 흘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만큼 순식간이었다.

뺨이 화끈 달아올랐다.

흐트러졌던 시야가 천천히 돌아온다.

천천히 고개를 원래 자리로 되돌렸다.

그러자 정면에 비치는 남자의 얼굴.

유저였다.

매우 화난 표정의.

‘부활했구나.’

그걸 알아차림과 동시에,

뻐어억.

남자가 노재민을 내팽개쳤다.

노재민은 속수무책으로 땅에 엎어졌다.

남자가 말했다.

“다 지켜보고 있었다.”

“네?”

“네가 한 짓, 다 지켜보고 있었다고!”

노재민도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았다.

유저는 사망하면 유체이탈을 한다.

그런 다음 부활 시간까지 허공을 부유하며 지상을 내려다볼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이 아이템을 회수하는 걸 다 지켜보고 있었다는 거다.

“…….”

“내 아이템 내놔라.”

“싫어요!”

남자가 경험치 2배 쿠폰을 요구했다.

자신이 떨어뜨린 걸 도로 돌려받겠다는 거다.

하나, 노재민은 완강히 거절했다.

“돌려줄 거였으면 안 뺏었겠지?”

어느새 나타난 강기찬이 말했다.

“뭣이?”

남자가 강기찬을 돌아보았다.

강기찬이 말했다.

“못 할 짓 한 거도 아니잖아?”

“뭐?”

“우리가 당신들 죽인 것도 아니고, 어디서 화풀이지? 그리고 죽은 유저가 남긴 아이템 먹는 게 뭐 어때서?”

“이, 이이이이……!”

남자가 이를 바득 갈았다.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봐, 허수아비 논밭에 입장만 하면 모두에게 주어지는 경험치 쿠폰에 중복 적용이 왜 가능할까?”

“닥쳐라!”

“딱 봐도 그거잖아. 남의 것을 강탈해라.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해야 고득점이 가능한 법이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너도 그냥 달라고 하지 말고, 강탈하라는 거야.”

남자가 흉악하게 웃었다.

“네 말뜻은 이놈을 죽여도 문제없다는 거겠다? 약육강식의 세계 아니냐.”

남자가 노재민을 데리고 협박했다.

이에 강기찬은 그저 피씩 쪼갤 뿐이었다.

“말 한번 잘했네. 그래 약육강식 좋지. 재민아.”

“네……?”

“한 번 보여줘라, 네 힘을.”

“예? 제가 무슨 힘을… 아……!”

노재민은 새삼 깨우쳤다.

강기찬과 파티사냥을 하지 않았나.

“올힘 찍고.”

강기찬의 말에 노재민이 올힘을 찍었다.

강기찬이 마저 말했다.

“한 대 갈겨.”

노재민이 남자의 다리를 후려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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