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테스트서버-13화 (13/151)

13화

* * *

강기찬이 소년에게 일자리를 제안했다.

“일이요?”

“나쁜 일도, 어려운 일도 아니야. 어때 해볼래?”

“음, 일단 들어보고요.”

같이 일하려면 사전 이해가 우선이다.

레전드스토리 홈페이지 접속헤 오늘 자 패치노트를 클릭했다. 제일 아래쪽으로 스크롤을 내린 뒤, 보여주었다.

《 지구 서버 패치노트(Ver. 13121) 》

▶ 화재 발생 시, 「유독가스」 효과 추가.

- 화재 연기 흡입 1분 이하 시, 중독 & 지속 피해.

- 화재 연기 흡입 1분 초과 시, 질식사.

- 불 속성 관련 스킬 사용시 주의를 필요로 합니다.

소년은 한동안 패치 노트를 보더니,

“아.”

뒤늦게 깨달음의 탄성을 내질렀다.

“이거 위험하잖아요.”

드디어 알아버린 거다. 이 패치가 뜻하는 바를.

이어서 유저들의 화염방사기를 보았다.

“화염방사기로 여길 불태운다면…….”

“유독가스가 나오기 좋은 환경이지.”

“그러면… 여기 있는 모두가 질식사를……?”

“그렇게 될 테지. 그런데…….”

강기찬이 유저들을 둘러보면서 중얼거렸다.

“… 다들 모르고 있네.”

유저들은 모르고 있었다. 화재 발생 시, 유독가스가 나온다는 것을.

“웃기는 일이지.”

화재 발생 시, 유독가스가 나온다.

현대인이라면 알법한 상식이다.

하나,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걱정하지 않았다.

‘던전’에선 화재 발생 시, 유독가스가‘안’ 나온다.

이 역시 상식이었기에.

그 상식이 무려 10년간 지속하여 왔다.

같은 조건이라도 결과가 달라지는 것.

이것이 게임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던전의 특이점이었다.

그건 장점이었다.

유독가스 걱정 없이 불을 뿜어왔으니.

하나 지금은 오히려 그게 단점이 될 것이다.

강기찬이 나직이 말했다.

“패치의 양면성이지.”

패치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

어제는 좋았던 아이템이 하루아침에 쓰레기가 된다든지.

사양 된 직업이 꿈의 직업이 된다든지.

막말로‘평범한’ 얼음이 불에 안 녹을 수도 있다. 그렇게 패치만 된다면.

소년이 경외의 눈빛을 담아 강기찬에게 물었다.

“이걸 어떻게 아셨어요?”

“오늘 패치노트를 봤으니까.”

엄청 특별한 대답을 바랐다면 실망하게 하기 딱이다.

너무도 정석적인 대답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어렵지.”

정석이 어려운 법이다.

유저라면 응당 패치노트를 봐야 했다.

가장 기본이니까.

하나 그 기본을 지키는 게 어려웠다.

“예, 어려워요. 저도 안 봤거든요.”

소년이 패치노트를 안 봤음을 실토했다.

이상하지 않다.

매번 패치노트 내용은 길다.

많을 땐 A4용지 두 장 분량일 정도로.

그걸 보는 건 쉽지 않지.

특히 초보자들에겐.

강기찬이 말했다.

“괜찮아, 오늘 첫날이니까.”

굳이 알리지 않았다.

자신은 첫날부터 패치노트를 봤음을.

‘내가 비정상이었지.’

누가 처음 게임 할 때부터 패치노트를 보겠나.

어느 정도 알 거 알고 레벨이 오른 뒤에야 보지.

“보통은 레벨이 오를수록 챙겨보게 돼. 너도 그렇게 될 거야.”

“오늘 우연히 패치노트를 보신 거예요? 아니면…….”

“평소에도 봐. 하루도 안 거르고 매일. 매시간…….”

“우와…….”

언뜻 보기엔 멋없어 보인다.

매일 독서를 한다, 도 아니고 게임 폐인 같아 보이지 않나.

하나, 소년은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거룩한 일을 하는 상대를 보는 것처럼 우러러보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대단해요! 역시 어둠보다 짙은 그림자!”

어둠보다 짙은 그림자.

팬들이 강기찬에게 붙여준 애칭이었다.

“그나저나, 지금이라도 이 사실을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패치노트를 보여주면 당장 불을 쏘는 걸 그만둘…….”

다른 유저들에게 가려는 소년에게 강기찬이 말했다.

“늦었어.”

“예?”

“이미 불은 번질대로 번지고 있어…….”

허수아비의 논밭이 불타고 있었다.

“야! 경험치 오르는 속도 봐!”

“최고다!”

“신규 유저 중에선 우리가 앞서나가는 거야!”

화염방사기를 쓰는 유저들은 행복해했다.

곁에 있던 유저들도 여전히 부러워하고 있고.

이에 괴리감을 느낀 소년이 아쉬워했다.

“이 사실을 조금 더 일찍 알렸더라면… 아무도 화염방사기를 안 썼을 텐데…….”

“일찍 알렸어도 쓸 놈은 써.”

“쓸 놈은 쓴다고요? 저 패치 내용을 보고도?”

“어.”

“어째서요?”

“던전에선, 유저는 죽어도 부활하니까.”

“하지만, 죽으면 경험치 잃고 아이템 드랍하잖아요.”

“아이템 드랍? 가진 게 있어야 잃는 게 두렵지. 경험치? 경험치는 오히려 이득이고.”

“이득이요? 경험치를 잃는데?”

“대신 허수아비 대량학살하잖아. 사망 페널티로 잃는 경험치보다 허수아비 대량학살로 얻는 경험치는 훨씬 더 많아. 실보다 득이 큰데 화염방사기를 안 쓸 이유가 없지.”

“아, 그렇군요. 그럼 사냥도 제대로 못 하는 나머지 사람들이 불쌍해요.”

“우리가 다 불쌍하게 만들어주면 되는 거야.”

“네? 무슨 말씀이신지?”

척.

“자.”

강기찬이 인벤토리에서 헬멧과 방화복, 산소호흡기까지 내밀었다.

“이건?”

“어떡할래? 일할래? 죽을래?”

선택의 여지가 없다.

“사, 살고 싶어요.”

살고 싶다. 즉, 일하겠다는 거다.

강기찬이 신발을 건넸다.

“이건?”

“이동속도 높여주는 거야.”

“이거, 꽤 비싼 건데요? 중고도 100만 원은 하는데.”

“일할 때 필요해. 그리고 일 잘 마무리되면 그거 너 가져.”

“저…….”

“왜?”

“이거 말고 사인 좀 해주시면 안 돼요?”

“그… 그래…….”

“10장이요. 하나는 소장이고 또 몇 장은 전시용에다가 팬클럽 회원들도 나눠줄 거예요.”

“어, 어어…….”

“아싸!”

소년이 기뻐했다.

“근데 너 이름이 뭐냐.”

강기찬이 새삼 늦었다고 여기며 이름을 물었다.

같이 일할 건데 이름을 몰라서 쓰겠나.

“재민이요, 노재민.”

“재미있는 이름이네. 난 강기찬이다.”

“네, 잘 알죠. 덕질만 몇 년짼데…….”

“잘 들어, 이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줄 테니까.”

* * *

강기찬은 노재민에게 계획을 알렸다.

그다음은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노재민은 장비를 하나씩 교체했다.

헬멧, 방화복, 산소호흡기까지…….

몇몇 이들이 옆에서 곁눈질했다.

별 미친놈을 다 보겠다는 듯이.

“쟤는 왜 저래?”

“옆에는 걔 아니야? 강기찬?”

“어, 둘이서 뭘 하는 거지?”

“여기가 진짜 불이라도 난 줄 아나?”

“냅둬, 소방관 꿈이라도 꾸나 보지.”

“이 불이 실제 불인 줄 아나 보네, 등신들…….”

강기찬과 노재민은 싸늘한 시선을 무시했다.

최후의 웃는 자가 누가 될지는 뻔하기에.

[강기찬님이 파티를 신청합니다.]

[파티 신청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이건?”

노재민의 물음에 강기찬이 답했다.

“우리도 사냥해야지. 쟤네들만 사냥하게 놔두리?”

“아니, 그것보단 파티라니요! 이런 영광이……!”

“뭐 영광까지야…….”

영광은 모르지만, 몇 없는 일이기는 했다.

암살자의 특성상 파티는 거의 안 맺어왔으니까.

“자, 받아.”

강기찬이 인벤토리에서 화염방사기를 꺼내 던졌다.

엉겁결에 노재민이 받아들었다.

“이건…….”

“너도 써,”

“네-에에!”

이럴 땐 혼자보단 둘이 낫다.

[파티가 되었습니다.]

강기찬은 휠체어를 움직여 전방으로 향했다.

“저도.”

“따라와, 내가 좋은 터를 알아.”

강기찬은 맵핵으로 허수아비가 몰린 데로 이동했다.

그 결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

경험치가 미친 듯이 올라갔다.

‘이제 허수아비도 경험치가 오르고, 좋네. 세상 많이 바뀌었어.’

그간 허수아비를 잡아도 경험치가 오르지 않았다.

오늘부터 허수아비를 잡으면 경험치가 오르는 거로 패치되었다. 게임사 측에서 작정하고 신규유저를 키워보겠다, 이거다.

‘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동시에 오르는구나.’

동시 접속 중인 초보자랑 암살자.

그 두 계정 각각 경험치가 올랐다.

이등분으로 나뉘지 않고 똑같은 양의 경험치가…….

‘이러면, 고레벨 던전에서 몬스터 잡으면 그 경험치를 고스란히 초보자 계정도 먹는다는 거네.’

타 유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쩔하는 거랄까.

지금이야 허수아비 잡아서 암살자의 레벨은 미동도 하지 않지만, 반대의 경우는 다르다.

눈높이를 낮춰 100레벨 몬스터만 잡아도 초보자 계정은 폭렙할 거다. 당연히 100레벨 이상의 몬스터를 잡을 거고.

‘좋네.’

이렇게 되면,

‘초보자 계정도 금세 999레벨까지 따라잡겠는데?’

고레벨 유저가 저레벨 유저 쩔해주는 것도 같은 던전에서나 가능하다. 즉, 레벨이 크게 차이나지 않아야 한단 말씀.

반면 이건 레벨이 959나 차이 나는데도 쩔이 가능한 거나 다를 바 없다.

역대 최고 속도의 레벨업이 가능할 터.

그리고 이건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동반성장이 가능하다…….’

지금은 암살자 계정으로 초보자 계정을 키운다면.

초보자에서 원거리 딜러로 전직하고 레벨이 1천만 되어도 암살자 못지않게 강해질 것이다.

그때부턴 마냥 암살자 계정으로 원거리 딜러 계정을 키운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터.

그렇게 두 계정의 이점을 살리며 동반성장이 될 테고.

거기까지 생각하자 절로 흐뭇해졌다.

그것도 잠시.

[레벨이 올랐습니다!]

드디어 레벨이 올랐다.

‘내 레벨에 허수아비를 잡고도 레벨이 올랐다니.’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그만큼 터무니없는 일이었기에.

[현재 레벨 : 40 …▶ 41]

[잔여 스탯 포인트 : 41]

그의 레벨은 무려 41이었다.

원래 일개 허수아비를 잡고는 레벨업은 어렵다.

그런데 몇 초 만에 레벨업을 했다.

이게 가능한 건, 경험치 1,000배 버프를 적용 중이라서다.

게다가 허수아비 논밭에 풀리는 허수아비의 물량도 이전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어마어마해졌다.

한 구역당 1천 명이 정원이다.

그들이 잡아도 충분한 물량이 풀렸지만, 1천 명이 다 안 잡고 있지 않나.

화염방사기를 든 이는 고작 십수 명.

단 십수 명의 유저가 수만의 허수아비를 독식하고 있는 거다. 그것도 화염방사기라는 치트키로.

허수아비가 사망하는 족족 빠르게 리젠되기까지.

고속 성장이 안 될 리가 없는 사냥환경이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하지만 성장세가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아무리 경험치 1,000배라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가 너무 높아졌으니.

‘뭐, 지금 레벨이 43나 되니…….’

허수아비 잡고 40레벨에서 43레벨이 된 것도 기적이다. 그 이상을 바라면 욕심이고 레벨업도 여기까지인듯싶었으나.

‘그럴 순 없지.’

강기찬은 욕심쟁이였다.

‘슬슬 시작해볼까.’

누가 봐도 미친 짓을 할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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