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 * *
‘어째서?’
부잣집 도련님, 경석은 어이가 없었다.
분명 오픈하자마자 입장한 거다.
그 전에 누가 입장했을 리 없다.
그런데 왜 2등일까?
‘망할…….’
낭패감이 서렸다.
한편으로는,
‘그나마 다행인 건가…….’
게임사 실수다.
금방 복구해줄 터.
그리고,
‘어쩌면 피해보상도 해줄지도…….’
실수한 거니 피해보상도 해줄 것이다.
얼른 오류 신고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 * *
한편, 현실서버 운영진 회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현실서버 운영1팀 팀장 자쟈.
그녀가 탁상에 서류를 내리쳤다.
그 서류의 상단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 오류 신고 게시판 》
[1등 했는데 2등이라네요? 빠른 조치 부탁드립니다.]
이미 몇 분 전 일이라 사태파악 중이었다.
멀리서 신입이 뛰어왔다.
“잘못된 건 아니랍니다.”
“무슨 소리야?”
운영1팀 팀장 자쟈가 미간을 좁혔다.
신입이 정자세로 보고했다.
“이미 1등으로 방문한 유저가 있답니다.”
신입이 방문 기록지를 내밀었다.
《 허수아비의 논밭 방문기록 》
[선착순 1등 : 강기찬 – 오전 10시 2분 32초……]
자쟈가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건 또 뭐야? 오전 10시? 이때면…….”
“사전 점검 중이었습니다.”
“사전 점검 중일 때 유저가 들어왔다고?”
“예…….”
“어떻게 들어온 거야?”
“직업이 초보자입니다.”
“초보자가 어떻게 있을 수 있지? 어제 확인했다며?”
“예, 어제까진 초보자가 없었습니다.”
“근데 어떻게 있냐고?”
“그게…….”
“말이 안 되잖아! 강기찬이 오전 10시 방문, 신규 유저 등록은 오후 4시!”
“강기찬이 테스트서버에서 신규 유저등록을 했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운 얘기였다.
“테스트서버 입장 조건이 뭐였지?”
“10년간 레벨업 안 하면 돼.”
“미쳤다. 그런 게 가능해?”
“가능했네…….”
운영팀원들도 두 사람 간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자쟈가 말했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하필 오늘 새벽에 전세계 최초로 테스트서버 유저인 초보자가 생겼고, 우린 그걸 몰랐다고 치자, 그런데 어떻게 선착순 1등이 될 수 있지? 이벤트 오픈 시각인 오후 4시를 기점으로 선착순 1등이 생기게 해뒀어야지!”
“…….”
운영1팀 팀원들은 서로 눈치 보기 바빴다.
그러다 한 명이 용기 내 팀장 자쟈를 보았다.
“그, 그게… 시간 설정을 오늘로 해놓았지, 오후 4시로 해놓지는 않았습니다. 딱히 그걸로 문제가 생길 거라고는…….”
“하…….‘
강기찬이란 변수를 상정하지 못했던 까닭이었다.
강기찬만 없었다면 시간은 중요치 않았으니.
오후 4시부터 신규 유저가 생기니, 오후 4시부터 방문자가 생겨야 순리에 맞았다. 그 전에 방문 가능한 초보자 유저가 있을 줄 알았겠나.
자쟈가 길게 호흡하며 진정하려 애썼다.
그런데 그만 주체를 못 하고 주먹으로 책상을 쳐댔다.
쾅, 쾅쾅쾅쾅쾅!
다들 고개 숙이고 어깨를 움츠렸다.
분노조절장애가 온 듯했다.
“시팔새끼들아!”
자쟈가 갑자기 일어나 신입의 정강이를 깠다.
그러면서 주변 팀원들에게도 괴성을 질렀다.
“다른 걸 떠나서! 애초에! 유저가 던전에 진입할 수 없었으면 될 일 아니야? 어떻게 유저가 점검현장에 들어오게 해뒀다는 거야?”
“저, 발견하자마자 쫓아냈습니다. 작업 과정을 보진 못했을 겁니다.”
“그걸 말이라고 해?!”
이젠 팀원들도 더 할 말도 없었다.
“점검하면 던전 봉쇄해야 하는 거 알아 몰라?”
“…….”
“그 절차는 왜 생략했어? 왜 개방해두었냐고!”
“저, 정신이 없었습니다.”
“정신없으면 절차 무시해도 된다고 누가 그러디? 어?!”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나가! 꼴도 보기 싫으니까!”
“저, 보상처리는 어떻게 할까요?”
“경석인가 걔 1등 보상 주고 나머지도 보상 줘!”
“그럼 강기찬은요?”
“하, 우리 잘못인데 줬다 뺏을래? 그대로 놔두고. 아, 아니다! 강기찬한테는 내가 직접 연락해야겠다. 걔가 제일 문제니까.”
* * *
띠링!
[쪽지가 도착했습니다.]
‘웬 쪽지? 수신거절 해놨을 텐데.’
강기찬은 프로게이머 시절, 쪽지 폭탄에 시달린 뒤로 수신 거절해뒀었다. 그걸 푼 기억이 없는데 쪽지가 오다니.
이내 그 원인을 알게 되었다.
‘아.’
본서버 암살자 계정은 여전히 쪽지 수신거절 상태다.
반면 테스트서버의 초보자 계정은 아니다.
쪽지 수신거절 안 해두었다.
그래서 거기로 쪽지가 온 거다.
게다가 쪽지가 붉은색이다.
‘운영자?’
얼른 쪽지를 열어보았다.
- 안녕하세요, 레전드스토리 지구 서버 운영1팀 팀장 자쟈입니다.
우선 사과의 말씀부터 올립니다.
저희 측 실수로 강기찬 용사님에게 선착순 1등 보상이 잘못 지급되었습니다.
.
.
.
‘올 것이 왔네.’
예상대로 운영자가 알아차렸다.
‘아쉽네.’
무려 경험치 1,000배다.
그 엄청난 혜택을 두고 허수아비 한 마리도 못 잡고 끝내다니.
‘흠, 어쩌려나?’
뒤 내용은 안 봐도 뻔했다.
‘역시 보상을 회수해 가겠지?’
운영자가 보상을 회수한다고 보았다.
‘나는 이벤트 시작하고 입장한 게 아니라 그 전에 입장한 거였으니까.’
그도 이벤트 시작하고 선착순을 매겨 보상 주는 게 타당하다고 보았다. 그러니 인간적으로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분하거나 억울하진 않았다.
그런데.
.
.
저희 측 실수인 만큼 선착순 1등 보상을 회수할 생각은 없습니다.
.
.
의외였다.
‘보상을 회수할 줄 알았는데…….’
자기네들 실수라 해도 보상을 회수하면 그뿐이다.
정당한 명분이라 반박도 못 하니.
하지만,
‘보상을 회수하지 않는다니.’
자기네들 실수이기에 보상을 회수하지 않는단다.
강기찬이 그대로 가지고 있어도 된단 의미.
‘나로서는 이득이긴 한데…, 저 사람들은?’
경석 삼인방을 보았다.
허공을 보는 게 운영자한테 쪽지 받은 모양.
표정이 풀리고 있다.
‘보상을 제대로 줄 건가? 그럼 문제는 없겠지.’
본래 보상받을 사람 받고 이쪽도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다.
강기찬은 생각을 정리하며 쪽지를 마저 읽었다.
.
.
이 일을 외부에 발설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선착순 1등 보상을 회수하지 않은 이유?
자기네들 실수가 외부에 알려지길 원치 않아서다.
‘나야 고맙지.’
강기찬은 운영진의 실수에 감사했다.
덕분에 선착순 1등 보상을 거저먹었으니까.
경석을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10억 주고 구매한 보상을 나는 날로 먹었네.’
그냥 받아도 기분 좋다.
누군가는 10억 주고 사서 그런가, 더 기분 좋았다.
‘그나저나 유저가 꽤 많네, 몇 명쯤 됐으려나.’
잠시 선착순 1등 보상에 집중한 사이 주변이 꽤 부산스러워짐을 느꼈다. 그가 입장 후, 계속해서 유입된 유저들로 인해서였다.
‘처음 레전드스토리할 때가 떠오르네.’
허수아비의 논밭에 유저가 이리 많은 것도 실로 오래간만이었다.
그때였다.
띠링!
[허수아비의 논밭 1-1구역]
[입장 인원이 마감되었습니다.]
[현재 입장 인원 : 1,000 / 1,000]
[허수아비가 리스폰 됩니다.]
[허수아비를 잡으며 사냥 감각을 키워보십시오.]
[첫 번째 이벤트는 한 시간 뒤, 진행될 예정입니다.]
피슝 피슝 피슝 피슝!
텅 비어있던 넓은 논밭에 생겨나는 허수아비들.
비선공형 몬스터라 먼저 공격하진 않았다.
그저 나타난 자리 근처를 맴돌 뿐.
“한 시간 동안 자유시간이래. 어쩔래?”
“한 번 잡아보자.”
“폭렙 한 번 해볼까!”
비록 선착순 3등 안에 들진 못했지만, 그 외에도 혜택을 주었다. 기존의 경험치 10배 외에 허수아비의 논밭에 방문한 모두(선착순 제외)에게 경험치 2배 쿠폰을 준 것이다.
그러니 신규 유저들이 각자 폭렙을 기대해볼 만했다.
허수아비를 주먹으로 치고 하나씩 쓰러뜨려 나갔다.
헛손질도 하고 혼자서 뒷걸음질 치다가 넘어지기까지.
멀찍이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강기찬이 새삼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나만 고인물이네.’
강기찬에 비해 저들은 이제 갓 유저가 된 상태.
허수아비 앞에서도 긴장할 만했다.
가만히 있으면 모를까, 움직이니까.
신규 유저가 막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 같았다.
‘귀엽네.’
문득, 웅성거리는 소리에 돌아보았다.
몇몇 유저들이 화염방사기를 꺼내는 게 아닌가.
다른 유저들이 이를 보고선 환호성을 질렀다.
“와! 화염방사기!”
“저 생각을 못 했네!”
“저거면 나무나 짚으로 된 허수아비는 잘 타겠는데.”
모두가 부러워했다.
반면,
‘지금 저거 부러워할 때가 아닌데…….’
강기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딱 봐도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대비는 없어 보였다.
‘역시 초보자들의 한계인 건가…….’
아무리 봐도 화염방사기로 말미암은‘대참사’에 대비한 이는 본인뿐이지 싶었다.
이 대목에서 격의 차이가 확 느껴졌다.
한편, 누군가는 말을 걸어왔다.
“저기요.”
“응?”
웬 10대 초반의 남자애였다.
‘목소리, 들어본 거 같은데.’
금세 생각났다.
‘아.’
그가 허수아비의 논밭에 들어설 때.
- 저긴 못 들어가요. 초보자만 들어갈 수 있거든요.
…라고 말해주었던 팬이었다.
‘다시 볼 줄이야.’
그 소년이 물었다.
“저 정말 팬이에요.”
소년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존경과 경외가 가득하다.
저 나이대엔 여실히 다 드러난다.
무엇보다,
“여기요.”
소년이 내민 스마트폰 배경화면…….
‘나네?’
강기찬이었다.
정확히는 그의 실제 모습과 게임 캐릭터 반반.
그걸로‘팬심’을 증명하긴 부족하다 여겼는지,
“이것도!”
스마트폰 갤러리에 들어갔다.
수천 장의 사진.
전부 강기찬이다.
동영상도 있었는데 프로게이머 시절 당시 활약이 담겨 있었다.
‘진짜 내 팬이구나… 이 정도면 광팬이다…….’
한데 강기찬은 달갑기보다는 어색함이 앞섰다.
‘팬이라니…….’
참 오랜만에 듣는 말이었다.
요즘엔 팬이랄게 없었다.
그다지 외출하지 않는 것도 한몫했고.
더는 게임을 못 해 활약을 못 하니 점점 잊힌 것이다.
“너 몇살이니?”
“14살이요.”
나이대가 무척 어렸다.
강기찬이 현역으로 뛰던 때엔 태어났나 싶을 정도로.
‘뭐 팬이라면 팬인 거지, 우투브도 있으니까. 내 경기 장면도 봤다고 해도 이상할 것도 없고. 잠깐 이거 어쩌면…….’
어린 팬을 보는 강기찬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돈을 좀 벌 수도 있겠는데…….’
강기찬이 소년에게 물었다.
“너 달리기 잘해?”
“예?”
소년이 눈이 커졌다.
“갑자기 그건 왜?”
“나랑 일 하나 하자.”
“무슨 일이요?”
강기찬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