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NPC제페토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조아렸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목소리엔 울먹거림이 가득했다.
한편, 강기찬은 걱정되었다.
NPC 악행이 운영자의 협박 때문이었단다.
‘과연 저 NPC는 어떻게 될까?’
‘운영자가 이걸 가만히 두고 볼까?’
평생 절망하라고 버려진 세계로 추방했던 작자다.
NPC 제페토를 그냥 놔둘 것 같지 않았다.
‘잠깐, 나는?’
그러고 보니 NPC 제페토 걱정할 게 아니었다.
NPC 제페토의 염원을 풀어준 꼴이 되었다.
본의 아니게 운영자의 심기를 거스른 꼴.
NPC 제페토를 향하는 화살이 자신에게도 향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설마 나한테까지 불똥이 튀려나? 그럴지도…….’
운영자는 유저를 건드려선 안 되었다.
한데 간혹 그런 운영자가 있었다.
레전드스토리 운영자는?
미지수다.
동시였다.
쏴-아아아!
NPC 제페토가 고개를 들어 올린 것도.
강기찬이 시선을 하늘로 옮긴 것도.
하늘에서 빛기둥이 내리는 것도.
“피, 피노키오!”
NPC 제페토가 외쳤다.
빛기둥을 타고 피노키오가 내려왔다.
NPC 제페토가 강기찬에게 간청했다.
“죽기 전에, 저 아이와 인사라도 하게 해주십시오.”
강기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죽일 마음은 없었지만, 나중에 말해도 될 일이다.
NPC 제페토가 달려가 피노키오를 껴안았다가 뗐다가 얼굴 보고 다시 안고 안부 묻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강기찬은 잠시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제 내 보상을 봐야지.’
공략불가 난이도 퀘스트를 클리어하고선 보상을 보지도 않고 있었다. 마침 로그아웃할 시간, 마무리를 장식하기엔 제격이었다.
[튜토리얼 퀘스트(레전드 - 공략불가 난이도)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최초 업적입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레벨이 10 올랐습니다!]
[1,000만 코인을 얻었습니다!]
[프리 스탯 포인트 100를 얻었습니다.]
[현재 레벨 : 30 …▶ 40]
[현재 코인 : 313,441 …▶ 10,313,441]
[현재 프리 스탯 포인트 : 100 …▶ 200]
‘미쳤네.’
대박이 터져버렸다.
과연 그 누구도 깬 적 없는 퀘스트를 최초로 깬 값어치를 했다.
우선 레벨이 10 올랐다.
레벨이 30에서 40으로 훌쩍 뛰긴 했지만, 엄청날 것까진 없었다.
다음은 프리 스탯 포인트 100.
《 스탯 포인트 현황》
[프리 스탯 포인트 : 200]
[잔여스탯 포인트 : 40]
▶ 총 스탯 : 240
‘40레벨에 총 스탯 포인트가 240이라니…….’
현질로도 이룰 수 없는 경지임이 틀림없었다.
레벨업 외에 최고의 스탯업 방법은 장비 착용인데 그건 착용레벨제한도 있고 또 동시 착용가능장비 수도 제한이 있다.
예컨대, 돈이 아무리 많아도 목걸이는 하나만 맬 수 있으며 그 목걸이가 좋아봤자 올려주는 스탯의 한계가 명확하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도 40레벨에 총 스탯 포인트가 240이 될 수는 없다.
살필 보상은 더 있고 이게 핵심이다.
[튜토리얼 퀘스트(레전드 – 공략불가 난이도) 클리어 보상!]
[레전드 등급의 보상이 주어집니다.]
‘레전드 등급의 보상.’
절로 침이 꿀떡 삼켜졌다.
과거 랭킹 1위를 하던 시절에도 레전드 등급의 보상은 구경 못 했었다.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1. 스탯 강탈(스킬)
2. 천공의 눈(아이템)
‘흠.’
우선, 1번 스킬을 확인해보았다.
《 스탯 강탈 》
[분류] 스킬
[등급] 레전드
[설명] 상대방의 스탯 1을 강탈할 수 있다.
[조건] 유효타를 먹였을 시.
[제약] 없음.
[주의] 상대방에게 약탈 알림이 간다.
‘오…….’
스탯 강탈.
제 전력을 높이고.
상대 전력을 낮추는 스킬이다.
‘장난 아니네.’
실로 사기적인 스킬이었다.
하지만, 선택하기 꺼려졌다.
[주의] 상대방에게 약탈 알림이 간다.
이 문구 때문이었다.
1레벨업 당 1스탯이다.
상대방에게 약탈 알림이 안 가도 나중에 들킬 우려가 있다.
하물며 그 자리에서 알림이 간다?
대놓고 죽여달라고 애원하는 격이다.
그리고 소문이 날시, 보이지 않는 적을 양산할 수 있고.
무엇보다 단시간 만에 프리 스탯 포인트를 200을 얻었다.
테스트서버라면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스탯 포인트를 얻을 기회가 무궁무진할 터.
‘스탯 강탈’에 목맬 것 없었다.
나머지 선택지를 살펴보기로 했다.
《 천공의 눈 》
[분류] 아이템
[등급] 레전드
[설명] 하늘에서 3인칭 시점으로 내려다볼 수 있다.
[조건] 눈을 감았을 시.
[제약] 없음.
‘이거네.’
천공의 눈을 보자마자 스탯 강탈은 머릿속에서 치웠다.
‘무조건 이거다.’
천공의 눈. 제2의 맵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맵핵이 2D면 천공의 눈은 3D랄까.
맵핵은 단편적이면서 직관적인 정보…….
천공의 눈은 현장을 직접 보니 생생한 정보…….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지 싶었다.
- 아, 아쉽네요.
- 저희가 대신 봐 드리는 게 행복이었는데.
NPC들이 아쉬워했다.
NPC알렉스와 붙을 때 강기찬의 사각지대를 봐주었고 쭉 봐줄 예정이었으니.
하지만 그 방법은 한계가 명확했다. 강기찬의 주변만 보였다. 시야가 좁은 것. 누가 옆에서 봐주는 거랑 하늘에서 내려보는 거는 하늘과 땅 차이 아니겠나.
“천공의 눈은 눈을 감아야 보이니, 평상시엔 제 주변의 사각지대는 여러분이 봐주는 게 좋은데, 계속해서 봐주실 수 있죠?”
- 맞네, 천공의 눈은 전투 중에는 쓰기 힘들겠네요?
천공의 눈을 쓰려면 눈을 감아야 하니 긴밀한 전투 중엔 쓰기 어렵다.
그에 반해 시청자 NPC들은 전투 중에도 실시간으로 알려줄 수 있으니, 둘 다 섞어 쓰면 유용하리라.
- 눈 감은 동안에는 채팅 못 보실 테니 음성채팅으로 알려드릴게요!
- 아니지! 평상시에도 음성채팅을 써야겠어요! 갑작스럽게 대처해야 할 상황에선 음성으로 알려드리는 게 나으니까.
“든든하네요.”
맵핵, 천공의 눈, 그리고 시청자 NPC까지…….
시각적인 요소는 완벽에 가까웠다.
기습도 전투도 훗날의 전쟁도, 유리하게 판을 짤 수 있을 테니.
[레전드 아이템, 천공의 눈을‘선택’하셨습니다.]
[레전드 아이템, 천공의 눈을‘장착’하셨습니다.]
살포시 눈을 감아보았다.
‘오.’
눈을 감았음에도 세상이 환하게 보였다.
‘어, 나다.’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내 모습이랄까.
그것도 저 위, 높은 곳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야다.
지금은 아파트 5층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높이인데 그 높이를 낮추거나 높일 수도 있었다.
고도를 확 높이자 자신이 개미만큼 작아 보였다.
더 올리자 주변엔 구름이 가득했고.
그 상태로 상하좌우로 이동했다.
버려진 세계로 갔고…, 더 멀리 갔다.
칠흑 같은 정글을 지나고 또 지나자 비로소 보이는 것은…….
‘어?’
황급히 눈을 떴다.
[레전드 아이템, 천공의 눈이‘해제’되었습니다.]
‘뭐지?’
황당했다.
좀 전에 본 것으로 인해서.
버려진 세계 너머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아파트?’
고층 아파트였다.
한글도 보였다.
딱 봐도 한국 도시의 풍경…….
‘다시 봐야겠다.’
[레전드 아이템, 천공의 눈을‘장착’하셨습니다.]
다시 본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그대로다. 헛것을 본 게 아닌 것.
맵핵도 살폈다.
맵핵은 현재 위치한 곳의 위치와 명칭만 보여준다. 다행히 천공의 눈으로 가도 실제 이동한 거로 쳐주었다.
그러므로 그곳의 명칭을 알 수 있었다.
[버려진 세계의 끝 – 현실(대한민국 – 서울)]
‘하.’
천공의 눈이 하나면 모를까, 맵핵마저 실제상황이라 한다.
이로써 또 하나의 진실이 드러났다.
버려진 세계의 끝엔 현실이 있다.
그리고 이건 또 다른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동한계선 왕복권.’
《 이동한계선 왕복권 》
[분류] 아이템
[등급] 갓
[설명] 넘을 수 없는 선을 넘어가게 해준다.
[조건] 없음.
[제약] 없음.
시작지점에서 버려진 세계로 넘어갔듯, 버려진 세계에서 현실로 넘어가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화타.’
그 이름이 절로 나왔다.
의술의 신, 화타.
못 고치는 게 없는 전설의 NPC다.
그 역시 NPC 제페토처럼 초창기에 사라진 NPC이기도 했고.
‘화타라면 내 다리를 고칠 수 있지 않을까?’
이전에 화타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다만, NPC는 현실로 못 나간다고 보았으니 미련을 버린 것일 뿐. 고쳐야 할 다리는 현실에 있는데 게임 속에서 고칠 수는 없으니까.
하나, 이젠 아니다.
‘로그아웃’ 외에 현실로 향하는‘길’을 찾았다.
‘확인해봐야겠다.’
강기찬은 냅다 뛰었다.
다시 버려진 세계로, 정글로 진입했다.
얼마나 갔을까, 정신을 차리니 멈춰선 곳은‘이동한계선’이었다.
딱 한 발자국을 남겨놓고선‘현실’이 보였다.
그리로 한 발을 내디뎠다.
띠딕!
넘어갈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벽이 가로막고 있어서.
그런데도,
씨익.
웃음이 나왔다.
이깟 벽? 마음만 먹으면 넘을 수 있지 않나.
‘이동한계선 왕복권을 쓰면 넘어갈 수 있겠지.’
‘굳이’ 이동한계선 왕복권을 쓸 것도 없다.
하지만, 이동한계선 왕복권을 쓸 것이다.
NPC화타는 이동한계선 왕복권을 통해 넘어가게 될 테니.
‘내가 이동한계선 왕복권으로 현실로 넘어가면, NPC 화타도 똑같이 적용되겠지.’
물론, 화타를 만나려면 멀었지만.
또한, 그의 동의도 구해야겠지만.
여하튼 엄청난 가능성이 열린 거다.
‘화타를 통해서 다리를 고치면 소원권으로 다른 소원을 빌 수 있다!’
소원권은 다리 고치는 데 쓰려 했다.
하나, NPC화타를 통해 다리를 고칠 수만 있다면 소원권으로 다른 소원을 빌 수 있을 터.
그걸 떠나서라도 NPC화타를 통하면 소원권보다 더 빨리 다리를 고칠 수 있을 터.
이동한계선 왕복권을 사용하려던 그때였다.
“잠깐!”
의문의 외침.
강기찬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목소리가 난 곳이 위쪽이었다.
그런데 안 보였다.
[레전드 아이템, 천공의 눈을‘장착’하셨습니다.]
천공의 눈을 쓰고나서야 알았다.
‘저러니 안 보였지.’
구름 위에 누군가 있었다.
구름 끄트머리에 앉아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누군지 보고자 좀 더 가까이 갔다.
여대생 같았다.
170cm의 늘씬한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의 고양이상 여성.
헤어스타일은 짙은 갈색에 파마를 했고 고대 그리스 시대에나 입을 법한 하얀 천을 두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지?’
정체를 알 수는 없었다.
머리 위에 띄울 수 있는 이름을 숨겨두었기에.
‘원래 있었던 걸까? 아니면…….’
다른 장소면 몰라도 허수아비의 논밭의 하늘은 미지의 영역이다. 시작부터 하늘을 날 수는 없으니.
따라서 원래 저 자리에 있었던 건지 아닌지는 모를 일이다. 천공의 눈이 아니었다면 평생 모르고 넘어갈 일이기도 했고.
‘맵핵엔 적혀 있겠지.’
맵핵을 보았고 정체를 알아차렸다.
‘운영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