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NPC 제페토는 어이가 없었다.
당신도 넘어올 수 있다니.
‘누가 넘어가고 싶지 않아서 안 넘어가는 줄 아나…….’
NPC 제페토도 강기찬이 이동한계선 넘게 해준다 했을 때, 솔깃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하려고!’
강기찬이 자신의 몸이 필요하단다.
이동한계선을 넘어가는 즉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잠깐, 저놈이 날 해코지할 수 있나? 아니잖아?!’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불안해하는 건가 싶기도 하구먼, 겁먹을 필요가 없지 않나?’
화상 입긴 했지만, 저 용사가 화상을 입히려고 의도한 건 또 아닌듯했다.
‘무언가 있긴 하지만, 저놈도 그게 뭔지 모른다. 즉 이동한계선을 넘어가도 괜찮다, 이거지.’
근거 있는 자신감을 가지는 순간,
슈우웅.
강풍기가 꺼졌다.
NPC 제페토보고 넘어오라 이거다.
그러나.
1초, 2초…….
NPC 제페토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강기찬이 넘어가려 했다.
그때였다.
“어떻게 선을 넘으면 되는 거냐?”
NPC 제페토가 말했다.
이에, 강기찬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깐 넘어오기 싫다더니?”
돌연 마음이 바뀐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도 내가 어떻게 화상을 입을 수 있었는지 궁금하거든. 네가 그걸 알 것 같다기에, 내 친히 넘어가 주려고 그런다네.”
NPC 제페토는 허세를 부려보았다.
좀 전까진 네가 해코지할 줄 알고, 근데 생각해보니 네가 날 못 건드릴 테니, 건너가려고 해, 라고 솔직히 답하진 않았다. 뭔가 좀 없어 보이지 않나.
“그렇습니까?”
NPC 제페토의 말이 퍼뜩 공감되진 않았지만,
“잘됐습니다.”
강기찬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좋은 게 좋은 거지.’
그저 번거로운 과정이 생략된 게 달가웠다. 그에게 넘어오라고 한 게, 이쪽에서 넘어가기 껄끄러워서다.
지금 NPC 제페토가 있는 곳은 화재 현장이지 않나. 그것 때문에 일부러 여기까지 넘어왔는데 굳이 다시 위험을 무릅쓰고 돌아가야 하는 게 영 못마땅하던 참이었다.
‘본인이 알아서 와준다면 마다할 게 없지.’
강기찬이 친절히 넘어오는 법을 설명해주었다.
“이쪽으로.”
NPC 제페토는 강기찬의 지시에 따라 보이지 않는 벽과 벽 사이를 지나왔다.
‘참나, 이렇게 간단한 거였다니.’
별다른 기예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저 게걸음을 걸으며 넘어가면 될 뿐이라니.
물론 이 1미터도 되지 않을 법한 보이지 않는 벽과 벽 사이를 찾아내야 하지만, 그래도 허탈한 건 허탈한 거다.
넘어오는 그를 강기찬이 반겨주었다.
“잘 오셨습니다.”
“흠, 별거 없구먼…….”
NPC 제페토가 주위를 둘러보며 읊조렸다.
절대 넘을 수 없을 거라고 여겼던 이동한계선을 넘었음에도 경이롭다거나 하진 않았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실망감은 그것을 상회하고도 남았다.
“늘 봐왔던 풍경이구먼?”
“저도 그랬죠.”
강기찬이 공감해주며 강풍기를 켰다. 이리로 넘어오려던 연기를 도로 밀어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NPC 제페토가 강풍기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강기찬을 보았다.
“자, 내 몸으로 뭘 어쩔 셈이지?”
“우선 한 번 만져보죠.”
강기찬이 NPC 제페토의 어깨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그런데.
타-아앙.
손이 튕겨 나왔다.
같은 극의 자석이 서로 밀쳐내는 것처럼.
손이 미처 NPC 제페토의 어깨에 닿기도 전에 튕긴 것이다.
‘역시 안 잡히네.’
하나, 강기찬은 당황할 만한 상황임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되레 미소지었다.
‘이럴 줄 알았지.’
역설적이게도 NPC 제페토가 손에 잡혔으면 더 곤란할 뻔했다. 기존의 생각을 바꿔야 하니까. 감사하게도 생각대로 되어서 심증이 굳었다. 최종 검증만을 남겨놓은 상태.
‘이제 확인할 수 있겠네. 어째서 죽기는커녕 다치지도 않는 NPC가 화상을 입을 수 있었는지.’
한편,
“하하, 내 몸을 만지지도 못하면서 뭔 실험을 해?”
NPC제페토가 새삼 안심이 되었다. 자신을 못 만질 줄 알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도주하려고 했는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역시 저놈은 날 잡을 수가 없지, 아암, 그렇고말고.’
실없이 쪼개고 있는 NPC 제페토에게 강기찬이 말했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보세요. 어디 좀 갔다 올 테니까.”
“어딜 갔다 온…….”
강기찬은 로그아웃을 해버렸다.
* * *
강기찬이 재빨리 현실에서 장갑을 가지고 돌아왔다. 장갑 끼고 다시 만져보았다.
“어, 뭐 하는……!”
NPC 제페토가 미처 반응하기 전에 일이 끝났다.
‘역시, 되네.’
강기찬이 NPC 제페토의 어깨를 잡았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현실의 물건은 NPC에게 통한다.’
그간의 정황이 이를 뒷받침해주었다.
헬파이어도 안 먹히는 NPC 제페토가 화상을 입었다.
결정적으로 그의 어깨를 못 잡았다가 현실에서 가져온 장갑 껴서 잡았다.
‘하긴, 게임 아이템이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 반대라고 안 될 것도 없지. 현실 물건이 허수아비도 불태우는데 NPC라고 예외가 될 리가.’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으이이잇!”
NPC 제페토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강기찬의 손을 떨쳐냈다. 꼭 어깨 위에 징그러운 벌레가 앉았다는 듯한 반응.
그도 그럴 게, 대개 NPC는 무적이다. 유저한테 살해당할 수 있으면 게임이 돌아가겠나. 따라서 동의하지 않은 신체접촉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런데 지금 동의하지 않고도 신체접촉이 되었으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신기하죠? 저도 신기합니다.”
NPC 제페토만큼은 아닐지언정 강기찬 또한 놀랐다. 또 하나의 상식이 부서졌으니까.
다만 그에겐 긍정적인 상식파괴였다.
‘NPC 제페토만 통할 리 없지. 다른 NPC도 통할 텐데, 이걸 어떻게 써먹어 볼까.’
이걸 어떻게 활용할지, 당장 떠오르는 게 몇 가지 있었지만, 자세한 건 나중에 생각해보기로 했다.
‘우선은 퀘스트에 집중하자.’
지금은 퀘스트 마무리가 중요했다. 물론 그것도 자동화 시스템(?)이라 문제없지만.
그는 이동한계선-보이지 않는 벽 너머를 보았다.
생존한 허수아비가 몇 없다. 그마저도 조만간 화마에 녹아내리지 싶고, 얼추 정리되어가는 듯했다.
‘슬슬 가볼까.’
소방용 마스크를 얼굴에 덮어쓰고 소화기를 들고선 이동한계선 너머로 재진입했다.
NPC 제페토가 못돼먹었지만, 그래도 남의 거주공간에 방화를 저질렀다.
‘나도 잘한 건 없지.’
그래서 불이라도 꺼주려 했다. NPC 제페토는 그런 것 따윈 안중에도 없었지만.
‘어떻게 내 어깨를 만진 건진 모르겠다만, 위험하구먼. 마음만 먹으면 날 해코지할 수 있다는 거니.’
심하게는 살해당할 수도 있다고 여겼다.
‘내가 한 짓이 있으니…….’
불현듯, 좀 전의 일이 떠올랐다.
난이도를 전부 다 공개한 뒤 하나씩 줄여나가는 것.
명백한 도발이었다.
‘하…아…….’
몇 올 있지도 않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거야…….’
* * *
“뭐 하는 겁니까?”
강기찬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방금 타다가 만 허수아비 잔당을 처리하고 오는 길이었다. 돌아오니 다짜고짜 무릎을 꿇으니 왜 저러나 싶었다.
“살려주게.”
강기찬은 NPC 제페토가 저러는 이유를 눈치챘다.
‘공략 불가 & 헬 난이도를 강요한 것 때문이겠지.’
솔직히 그의 도발에 별 감정이 없었다.
어차피 공략 불가 난이도를 선택할 예정이었기에.
분노하는 대신 궁금한 걸 물었다.
“왜 그랬죠?”
단지 이유가 알고 싶었다.
대체 무엇을 위해 그래왔던 걸까?
“그 두 난이도 중 하나라도 클리어해주십사, 하고…….”
“그래야 하는 이유는?”
“내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였네.”
“아이? 아이를 살리는 거랑 퀘스트 클리어가 무슨 상관이죠?”
“용사가 두 난이도 중 하나라도 클리어하면 내 아이를 돌려주신다고 했기 때문이네.”
“누가?”
“신께서.”
“신?”
강기찬은 진지하게 되물었다.
“신이 왜?”
“나도 상세히는 알지 못하네. 다만, 불만이셨지.”
“뭐가 말입니까?”
“요즘 용사들은 이지나 노멀 난이도만 선택한다고, 노력이나 고생할 생각은 안 하고 쉬운 길로만 가려 한다고…….”
“… 그래서 용사들한테 공략 불가나 헬 난이도만 선택하게끔 선택지를 줄인 겁니까? 고생해보라고?”
NPC 제페토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내 뜻은 아니었네. 오히려 난 신을 설득하려고 했지. 용사가 알아서 난이도를 선택하게끔 하자고. 용사들에게 처음부터 너무 큰 시련을 주는 건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으니.”
“그런데요?”
“신께서 노하셨지. 말대꾸했다고. 그에 대한 대가는 가혹했다네. 내 아이를 납치할 줄이야.”
“그래서…….”
“그렇다네. 그 상황에서 내 고집을 내세울 순 없었지. 당장 선택지를 줄였네. 고의는 아니나 앞선 용사들에게나 자네한테나 미안할 따름이네.”
“…….”
강기찬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제페토가 인성질 해서 버려진 세계로 쫓겨난 게 아니었던 거야?’
난이도를 전부 다 공개한 뒤 하나씩 줄여나가는 연출이나, 공략 불가 & 헬 난이도를 강요한 것, 그런 행태를 처벌하고자 운영자가 쫓아낸 건 줄 알았다.
실상은 정반대였다. 운영자가 문제였던 것.
그러자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당신은 왜 이곳에 버려진 거죠? 시키는 대로 했잖습니까.”
“말하지 않았나, 신의 미움을 샀다고.”
처음 물었을 때 했던 말이다.
다시 들으니 다르게 들렸다.
“날 이곳으로 추방한 이유? 내게 절망을 주고 싶으셨던 게지. 그래도 이곳으로 오기 전엔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었거든. 신규 용사가 유입되어 헬 난이도가 클리어될지 모른다는……. 하지만 이곳으로 오면서 용사의 발길이 완전히 끊기게 되었으니…….”
한 박자 쉬고 말했다.
“신은 그걸 노리셨던 게야.”
강기찬이 말을 이었다.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근데, 제가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아이를 돌려받을 수는 있는 겁니까? 말만 그러고…….”
“그건 신께서도 약조하셨네. 퀘스트의 형식으로.”
“다행입니다. 그럼, 이제 준비를 하셔야겠네요.”
“뭘 말인가?”
“아이와 재회할 준비.”
NPC 제페토의 눈이 커졌다.
한편 강기찬이 무언가를 보았다.
[허수아비가 사망했습니다.]
[허수아비가 사망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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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허수아비 수] 1 / 100,000,000
[남은 허수아비 수] 0 / 100,000,000
[허수아비가 전멸했습니다.]
[축하합니다!]
[튜토리얼 퀘스트(공략불가 난이도)를 클리어하셨습니다.]
띠링!
NPC 제페토의 귓가에도 알림음이 들렸다.
[강기찬 용사가 튜토리얼 퀘스트(공략불가 난이도)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아들 되찾기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 피노키오가 소환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