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테스트서버-7화 (7/151)

7화

NPC제페토는 제 귀를 의심했다.

‘공략 불가 난이도를 선택하겠다고? 왜?’

피치 못한 사정이긴 하나, ‘난이도를 전부 다 공개한 뒤 하나씩 줄여나가는’ 연출까지 했다.

그걸 보고도 침착한 게 기가 막히는데, 거기에 더해서 제 발로 공략 불가 난이도를 선택하다니?

물론, 이런 용사가 몇 있긴 했으나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물어보고자 했다.

“헤, 헬 난이도도 있는데 굳이 공략 불가 난이도를 하겠다고 하는 거냐?”

“깰 수 있으니까.”

“뭐, 뭣?”

– ???

– 제정신이세요?

NPC들은 난리가 났지만 강기찬은 번복할 마음이 없었다.

‘이렇게 해야, 빠른 성장이 가능하니까.’

10년째 성장이 멈춰 유저 평균 레벨도 못 미친다.

남들과 같은 길로, 같은 속도로 가선 1만 레벨은커녕 상위권 유저들조차 따라잡을 수 없다. 따라잡고 또 뛰어넘으려면 남들이 한 것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할 터. 거기서 시간 절약할 길이 있다면 할 수밖에 없다.

바로 고난도 퀘스트 위주로 클리어하는 것.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퀘스트가 어려울수록 더 좋은 보상이 나온다.

그로 인해 더 빠른 성장이 가능하고 또 그걸로 어려운 퀘스트를 깨는 선순환구조.

이것만이 빠른 성장을 가능케 할 것이다.

- 공략 불가 난이도를 선택한 게 실수는 아닌 거 같은데?

- 당황하질 않아…….

- 우리가 더 당황했어요.

- 방법이 있는 건가?

과거, 자•타의로 공략 불가 난이도에 도전한 유저는 많았고 퀘스트 내용은 유출될 대로 유출되었다. 그랬기에 아무도 도전하지 않게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강기찬은 오히려 그래서 도전하는 거지만.

“깰 수 있다라…….”

NPC 제페토는 강기찬이 허세 부리는 거라 여겼다.

공략 불가 난이도.

공략하라고 만든 게 아니다.

공략하지 말라고 만든 거다.

예컨대 하늘을 무너뜨려라. 같은…….

피나는 노력, 타고난 재능, 천부적인 실력. 정점에 이른 연륜, 그런 것들이 무의미한…….

“그저 신들의 유희다.”

“네?”

‘절망하는 용사의 모습을 보기 위한‘가벼운 유희’… 우리 사이에선 그렇게 부르고 있지. 공략 불가 난이도를 말이야…….’

“그렇습니까?”

“차라리 헬 난이도를 하는 게 어떤가?”

“그럼 헬 난이도와 공략 불가 난이도, 둘 다 할 수 있습니까?”

“아니, 하나만 가능…….”

“그럼, 공략 불가 난이도만 하죠.”

“흠. 정말 자신이 있나?”

“네.”

“하… 참나… 왜 굳이 어려운 길을… 뭐 어쩔 수 없지. 부디, 꼭 깨주길 바라네…….”

무슨 의미일까, 꼭 깨주길 바란다니? 망하길 바라는 처지가 아닌가? 비꼬는 건가? 표정은 안 그런데? 포커페이스 달인?

‘아 몰라.’

이내 관심을 껐다. 튜토리얼 퀘스트 내용이 떴기에.

띠링!

《 튜토리얼 퀘스트 》

[등급] 노멀

[난이도] 공략 불가

[목표] 허수아비 전멸

[처치해야 할 수] 100,000,000

[제한 시간] 없음

* 시작을 외칠 시,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허수아비 1억 마리 처치.’

지난 30여 년간 레전드스토리 한국 본서버 유저들이 잡아 온 허수아비 수에 필적하는 물량일 거다.

왜‘공략 불가’판정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게르’님이 「1,000코인」후원!

[미친. 저걸 어떻게 깹니까? 저거, 깨면 제 손에 장을 지집니다.]

- 맞아요, 너무 욕심내셨어요.

- 헬 난이도를 하시지. 뭐, 그게 그건가?

- 아뇨, 헬 난이도는 그래도 기적 같은 확률로 깰 수는 있다고 하더라고요.

- 이건 기적이 일어나도 못 깰까요?

- 방법이 있습니다.

- 뭔데요?

- 기적 그 자체가 되는 거죠.

- 지금이라도 안 한다고 하셨으면…….

- 안 한다고 하시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겁니다.

- 못 본 척해줄게요.

- 자, 눈 감았습니다.

- 자, 눈 떴습니다.

- 무슨 일이 있었죠? 못 봐서.

- 지금 강기찬용사님이 공략 불가 난이도 퀘스트 도전하세요.

- 아니, 그걸 말해주면…….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이해 못할 것도 없다.

1초에 한 마리씩 잡아도 1억 초, 일수로 환산하면 1157일 9시간 46분 40초가 걸린다.

하루에 한 시간 접속 가능하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약 76년.

일생을 다 바친 숙원 사업 격이다. 그마저도 장수한다는 전제하에.

물리적으로는 가능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그런 까닭에 NPC들은 끝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직접 보여주는 수밖에 없겠지.’

말이 아닌 행동으로 퀘스트 클리어를 보여줄 요량이었다.

“시작.”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두두, 두두두두.

변화는 즉각 일어났다.

여기저기 널려있던 수백 수천의 허수아비 산.

그 꼭대기가 깎여나가는 중이었다.

허수아비가 산더미에서 빠져나와서.

그런 다음, 강기찬에게 뛰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강기찬이 따라잡힐 확률은 0%였다.

저럴 줄 알고선 일찍이 대피 중이었던 것.

심지어 이미 안정권에 들어선 뒤다.

- 어? 어디까지 가시는 거지?

- 도망치는 중이시잖아요. 어디까지가 어디 있어요. 최대한 멀리 달아나야지!

- 하긴, 저 같아도 그러겠어요.

- 감히 싸워볼 엄두가 안 나는데?

- 그래도 명색이 용사인데 한 마리도 안 잡고 줄행랑을 치나.

- 근데 이러면 퀘스트 못 깨겠네요.

- 설마 깰 거라고 일말의 기대라도 한 건 아니죠?

- 지금 퀘스트가 눈에 들어오겠어요?

- …….

그들의 말대로 강기찬은 갈 데까지 갔다.

더 갈 데가 없을 데까지.

이동한계선에 다다른 것이다.

궁지에 몰린 셈.

그러나 NPC들은 몰랐다.

강기찬이 궁지에 몰린 게 아니라는 걸.

애당초‘도망’ 간 게 아니었기에.

작전상 후퇴, 아니‘유인’하는 거다.

상대를 압도할 능력이 안 되니‘압도당하지는 않기 위해서.’

그러려고 보이지 않는 벽으로 왔다.

잽싸게 보이지 않는 벽과 벽 사이를 지나쳤다.

돌아서서 허수아비들의 동향을 살폈다.

놈들도 제법 날랬다.

어느새 지척까지 왔다.

하나, 이곳으로 넘어오지 못하고 있다.

쾅, 쾅!

보이지 않는 벽에 몸통박치기만 하고 있다.

부서질 리가…….

안 되는 걸 알면 멈춰야 하는데 연신 두들기고 있다. 그게 놈들의 지능이었다. 강기찬이 간 길을 따라가면 되건만, 그 쉬운 것도 못 했다.

물론, 강기찬을 따라와도 막힐 거다. 벽과 벽 사이를 지나려면 몸을 옆으로 돌린 채 게걸음으로 와야 하는데 그게 될 리가.

허수아비는 T자 형태다. 팔 관절을 꺾을 수 없으니 정면으로 우연히 지나올 가능성도 없다. 그러기엔 벽과 벽 사이가 너무 비좁으니.

이에 강기찬은 흡족해했다.

저들이 정면 돌격밖에 모르는 저능한 존재라.

그리고 주어진 환경을 활용할 수 있어서.

‘여기가 최고의 명당이지.’

허수아비가 절대 못 넘어오며, 그 어떤 공격도 받지 않는 안전지대. 실로 허수아비 논밭의 명당이었다.

- 애당초 이곳으로 피신할 생각이었네요.

- 어쩐지 퀘스트가 시작하기도 전에 이쪽으로 오시더니.

- 살아남은 건 좋다 이겁니다, 근데 이 이후는요?

- 네?

- 어찌 되었건 1억 마리를 전멸시켜야 하잖아요.

- 아, 퀘스트는 포기한 거 아니었어요?

- 그냥 생존만 하고 끝?

- 그럼, 여기까지 와서 다시 들어가라고요?

- 아니지, 들어가려고 해도 허수아비가 빽빽하게 틀어막고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는데.

- 정, 퀘스트 계속하고 싶으면 하나씩 처치해야죠.

- 아, 1억 마리를요? 대단한 인내를 요구하겠군요.

강기찬은 채팅창을 보지 않았다.

지금은 퀘스트에 집중할 시기라.

‘허수아비를 유인하고 명당에 자리 잡았으니 다음은 공격이지.’

안전이 확보되었다.

공격만 남은 셈.

강기찬은 인벤토리를 열었다.

‘여기에 써먹을 줄은 몰랐지만, 여기서 가장 효과적이겠네.’

- 어 저건 뭐죠?

- 낯선 물건인데?

강기찬이 인벤토리에서 꺼낸 것은 화염방사기였다.

그걸 보이지 않는 벽과 벽 사이로 조준했다.

그러고는 방사.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화염방사기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보이지 않는 벽과 벽 사이를 삽시간에 채우고 전방의 허수아비를 집어삼켰다.

허수아비들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녹아내렸다.

허수아비의 재료가 나무와 지푸라기였기에, 화염방사기는 위력을 온전히 발휘했다.

불길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이 허수아비에서 저 허수아비로, 저 허수아비에서 여러 허수아비로 불이 옮겨붙었다.

화르르륵! 화아악!

순식간이었다.

수천만의 허수아비가 타버리는 건…….

‘편하네.’

강기찬은 별로 한 게 없었다.

그저 화염방사기로 한 번 쏘았을 뿐.

그러면 불이 알아서 건너 건너까지 골고루 태워주었다.

허수아비들의 협조도 컸다. 절대 후퇴를 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완벽한‘몰이사냥’이 되었다.

뿔뿔이 흩어지면 화력도 분산되어 잔당 처치를 하러 진입해야 해서 번거로웠을 텐데.

화—아악!

땅은 불바다가 되었고 하늘은 매캐한 연기로 뒤덮였다.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강기찬은 위화감을 느꼈다.

저쪽은 아수라장인데 이쪽은 평화로웠으니.

전혀 다른 두 세계를 본달까.

‘이게 다 이동한계선-보이지 않는 벽 덕분이지.’

보이지 않는 벽은‘생명체의 이동’만 저지하는 게 아니다. 그 외의 물리 • 마법 효과, 심지어 공기마저도 차단한다. 그 덕에 화마가 여기까지 미치지 못한 것.

동시에 강기찬이 저 안에서 화염방사기를 쓰지 않은 이유다. 불붙은 허수아비들로 인해 이쪽에도 불이 붙으면 큰일이니.

물론, 보이지 않는 벽과 벽 사이의 틈새로 불길과 연기가 들어올 여지가 있지만, 강풍기가 있다.

위- - -

위-아아아아아아아----앙!!!!

강풍기(强風機) 날개가 빠르게 회전했고.

불붙은 허수아비들 방향으로 바람이 휘몰아쳤다.

불길과 연기가 감히 이쪽을 넘보지 못했다.

그때였다.

“이게 무슨… 짓이냐!”

NPC 제페토가 여기까지 왔다.

팔에 불이 잔뜩 붙은 채로.

얼굴은 잿가루로 꺼멓게 되었고 머리는 탔다.

더 오지는 못했다. 강풍기의 바람에 가로막혀서.

‘아직 바람은 끌 수 없고. 대신…….’

강기찬은 소화기로 NPC 제페토의 팔에 붙은 불부터 꺼주었다.

그러자 NPC 제페토가 십 년 감수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기찬이 그의 팔의 꺼먼 부위를 보며 의아해했다.

“어? 화상 입었네요?”

“뭐? 어, 어!”

NPC 제페토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도 하도 경황이 없어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은 원래 화상을 입으면 안 되는 몸이라는 걸.

죽기는커녕 다치지도 않는 NPC였기에.

‘아…, 아. 그것 때문에?’

강기찬은 그 이유를 금세 알 것 같았다.

그가 눈을 빛냈다.

“야, 저랑 실험 좀 해보죠.”

“뭐, 뭐?”

“제페토도 왜 화상 입었는지 궁금할 거 아닙니까? 제가 짐작하는 게 있는데, 당신 몸이 필요합니다.”

“내, 내 몸이 필요하다고?”

“제가 잠시 이 바람 멎게 할 테니까 저한테 넘어와 보시죠.”

“아, 아니 됐네.”

NPC 제페토가 극구 사양했다.

강기찬의 눈을 보라, 변태의 그것이 보였다.

왠지 지금 넘어가면 다칠 것 같았다.

“난 거기로 못 넘어…….”

“제가 도와드리죠.”

“모, 못해!”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안 한다고 이 새끼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