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테스트서버-6화 (6/151)

6화

* * *

‘비좁네.’

보이진 않으나 더듬거리며 만져본바, 보이지 않는 벽과 벽 사이, 그 가운데 뚫린 공간은 아주 비좁았다.

감옥 쇠창살 두 배 너비? 정면이 아니라 몸을 옆으로 돌린 채 어깨로 선진입해야 할 만큼의 너비였다.

‘이러니까 못 찾았지.’

레전드스토리에는 많은 히든피스가 존재한다. 히든피스만 미친 듯이 찾아다니는 유저가 있을 정도. 그런 이들조차 못 찾았다.

‘이동한계선을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조차 안 해봤을 테니까.’

이 히든피스를 찾으려면 우선 상식부터 깨부숴야 했다.

이동한계선은 넘어갈 수 없다는 상식을…….

발상의 전환이 안 되면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셈.

‘또 많고 많은 장소 중에 튜토리얼에 그런 곳이 있다는 것도 어떻게 알겠어.’

설령 이동한계선을 넘을 수 있단 걸 알게 돼도 허수아비 논밭에서만 된다는 건 어찌 알겠나.

‘알아도 문제지.’

허수아비 논밭에서도 외진 곳이다. 그마저도 협소하고.

‘여길 어떻게 찾아?’

맵핵에 표식이 뜨지 않았다면, 아니 표식이 떠도 찾는데 애먹지 않았나.

‘운이 좋네.’

맵핵의 가치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단순히 타 유저의 위치를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으리라.

이동한계선 안으로 한 발짝 옮겼다.

- 아니, 이동한계선을 넘어갈 수가 있다니요?

- 깜짝 놀랐네.

- 와, 진짜 부럽다.

NPC들이 놀라움과 부러움의 채팅을 쳤다.

그들도 이동한계선에 의해 행동반경에 제한이 있었다.

대개 마을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 우리도 나가고 싶다…….

이동한계선 너머를 향한 갈망은 유저보다 더 했다.

강기찬도 이 점을 떠올렸다.

‘NPC들이 나를 통해 더 넓은 세상을 구경할 수 있겠네. 그걸로 내가 받게 될 보상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는 거야.’

받기만 하는 관계에서 주기도 하는 관계가 된 것에 의의를 두었다.

‘보이지 않는 벽과 벽 사이’를 간신히 빠져나와 주위를 둘러보았다.

‘별로 다를 건 없어 보이는데?’

당장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평범했다.

‘이동한계선을 넘으면 신세계가 펼쳐질 줄 알았건만.’

이동한계선을 넘기 전에 본 것.

그리고 이동한계선을 넘은 뒤에 본 것.

똑같았다.

기대감이 한풀 꺾였다.

‘뭐 아직 모르지. 더 들어가 보자.’

어차피 표식 있는 데까진 가볼 거다.

저벅.

띠링!

[버려진 세계 - 허수아비 논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곳이 버려진 세계란다.

몇 걸음 내딛자 허수아비가 보였다.

보자마자 눈이 커졌다.

폐타이어 공장처럼 허수아비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규모.

그뿐이랴, 허수아비의 상태가 예사롭지 않았다.

“어째 하나같이 모양새가…….”

- 걸레짝이 되어있네요.

- 저 허수아비는 머리가 없어요, 끔찍해라!

- 또 저건 다리가 부러져있네요.

허수아비는 하나 같이‘정상’이 없었다.

어딘가‘하자’가 있었다.

한창 구경하고 있다가 문득 깨달았다.

‘여기 어딘가인데?’

미니맵의 표식에 다다랐음을.

‘저 위에 있다는 건가?’

검은점과 표식의 위치가 겹쳤다.

같은 지점에 있단 의미.

한데, 보이진 않았다.

즉,‘허수아비가 산’ 위에 있지 싶었다.

허수아비가 산을 타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어, 움직였다.’

미니맵의 표식이 약간 움직였다.

‘NPC 아니면 몬스터?’

자세한 건 모르지만 계속 이동 중이었다.

강기찬도 그리로 향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선 표식을 찾으려 했고 흠칫 놀라며 멈춰 섰다.

누군가 ‘허수아비가 산’에서 내려오는 중이었다.

망가진 허수아비 하나를 어깨에 짊어지고선.

‘저 NPC는?’

강기찬은 저 NPC를 잘 알았다.

아니, 레전드스토리를 오래 한 유저는 다 알 거다.

NPC 제페토.

레전드스토리 초창기 허수아비 논밭 NPC였으니까.

작금의 NPC 알렉스는 따지자면 2기다.

‘제페토를 여기서 보다니.’

예기치 못한 재회, 강기찬이 얼어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

‘여전하구나.’

NPC 제페토는 예전 그대로였다.

백발에 안경을 쓴 왜소한 노인.

강기찬이 멍하니 보는 새, 다 내려온 그가 말을 걸었다.

“자네도 버려졌나?”

의미심장한 발언이었다.

강기찬은 반 박자 늦게 정신을 차리고선 고개를 저었다.

“아뇨.”

NPC 제페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버려지지 않았다고? 그런데 어떻게 여길?”

“버려지지 않으면 오지 못하나요?”

“보시다시피…….”

NPC 제페토가‘허수아비가 산’을 눈에 담았다.

그러고선 입가에 은은한 웃음기를 그렸다.

“저것들이나, 나나 버려졌거든.”

“…….”

“희한한 일이구먼, 버려진 존재가 아닌데 이곳을 출입하다니…….”

강기찬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기에.

대신 NPC 제페토가 제안했다.

“이렇게 온 것도 인연인데, 내 오두막에서 차 한 잔 마시지 않겠나. 아! 차는 버려진 게 아니라 새것이라네.”

* * *

게임에는 있었는데, 없어진 게 있기 마련이다.

아이템, 스킬, NPC, 사냥터, 기타 등등.

이유는 다양하다.

기간 한정 아이템.

밸런스 붕괴 스킬.

이벤트용 NPC.

가치가 없어진 사냥터.

.

.

.

강기찬이 이동한계선 너머에서 발견한 것은 그중 일부였다.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었는데.’

쓰레기 버릴 때 뒷일을 떠올리지 않듯, 게임에서 사라진 몬스터나 NPC에 대해 깊이 생각지 않는다.

‘당연히 삭제된 줄 알았지, 이렇게 남겨두었으리라고는…….’

설마하니 테스트서버, 그것도 이동한계선 너머에 있을 줄은 몰랐다.

그의 상념이 깊어질 때쯤,

“자…아.”

NPC 제페토가 차를 한 잔 내왔다.

강기찬이 창밖 너머의‘허수아비가 산’을 가리켰다.

“저 허수아비들은…….”

“쓰레기지. 자네와 같은 용사들이 부숴버린…….”

“당신은?”

“난 저들을 새것처럼 고치는 목수라네.”

“…….”

강기찬은 약간 고민했다.

하고픈 말이 있는데 할까, 말까…….

그 의중을 꿰뚫은 걸까.

“하고픈 말이 있나 보군.”

NPC 제페토가 말해보라고 했다.

“저걸 고쳐서 얻다 씁니까?”

“다시 용사들의 교보재로 썼었지.”

“…썼었지?”

“이젠 필요 없다더군. 더는 저걸 쓸 용사가 없다고.”

강기찬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본 서버가 닫혔으니까, 신규 유저가 없고 허수아비도 쓸데가 없어진 거겠지. 그래서 저렇게 산더미처럼 쌓였구먼.’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그럼 아까 거긴 왜…….”

더 수리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는 속내가 담긴 한 마디였다.

“여기서 할 거라곤 그것밖에 없으니, 허수아비 수리나 해야지. 언젠가 그것들이 다시 쓰일 날이 오길 바라면서…….”

허수아비가 다시 쓰일 날? 안 올 것이다.

강기찬은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했다. NPC 제페토는 실직자 신세니까. 시대가 바뀌어 사양 업종이 되었다고 어떻게 말하겠나.

“어쩌다가 여기 오시게 된 거죠?”

초창기, 갑자기 NPC가 교체되었다.

NPC 제페토에서 NPC 알렉스에게로.

그‘정확한’ 이유가 궁금했다.

“신의 미움을 사서…….”

NPC제페토가 작게 속삭였다.

‘하긴…….’

강기찬은 수긍했다.

NPC 제페토는 비호감이다. 신규 유저를 대하기에 적합한 NPC는 아니었고. 그건 운영자가 보기에도 그랬나 보다.

“아.”

강기찬은 문득 생각 난 게 있었다.

“혹시 퀘스트 클리어 처리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여기 왔으니 건질 건 건지고 나가고자 했다.

“퀘스트? 내가 여기 오기 전까진 그런 일도 했었긴 하지. 응? 잠깐! 방금 뭐라고 했냐? 퀘스트 클리어 처리해달라고?”

“네.”

“퀘스트야 내줄 수 있지만, 클리어 처리해달라니, 참 뻔뻔하구먼. 정당한 노동 없이 대가를 요구하는 게 요즘 용사들 성향인가?”

강기찬도 날로 먹겠단 생각은 없었다. 그의 시청자들도 엄밀히 말해 조건 없는 베풂이 아니었으니.

척.

강기찬이 무언가를 내밀었다.

“전 이걸 드리겠습니다.”

“그게 뭔가?”

강기찬이 내민 걸 NPC 제페토가 받고선 내용을 확인했다.

“이동한계선 왕복권?”

“예, 그게 있으면 이곳에서 나갈 수 있습니다.”

강기찬에 제시한 카드는 매력적일 것이다.

자유가 억압된 이에게 이보다 더한 게 있을까.

‘나도 저걸 줘도 상관없지.’

이동한계선 왕복권은 1일 1매 지급되었다.

즉, 이걸 줘도 내일 또 1매를 받게 될 터.

양도금지도 아니니 문제 될 것도 없었다.

“음, 자네가 이걸로 여길 온 거구먼.”

NPC제페토가 틀린 말을 했지만,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됐네.”

NPC제페토가‘이동한계선 왕복권’ 돌려주었다.

“필요 없으니 가져가게.”

의외였다.

- 그깟 퀘스트 클리어 처리가 뭐라고…….

- 저걸 마다하다니.

- 와, 필요 없으면 제게 주세요!

- 내가 갖고 싶네.

갖고 싶어 환장해야지, 거절이라니? 무슨 생각일까?

“바깥 세계로 나가고 싶지 않으십니까?”

“왜 안 그러겠나, 그렇지만 사양한다네.”

“혹, 다른 게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

“다른 필요한 거라…, 있긴 하지만. 어차피 자네는 들어주지도 못할뿐더러, 애당초 이 퀘스트는 내 임의로 클리어 처리할 수 없다네.”

몰랐던 사실이다.

“임의로 클리어 처리를 하려면 내가 직접 보상을 줄 수 있어야 하네만, 내 퀘스트의 보상은 신께서 하사하시는 거라, 정 보상이 탐나면 직접 퀘스트를 클리어 해보게나.”

NPC 제페토가 거짓말한다고 보진 않았다.

실제로 그의 퀘스트는 그 누구도 클리어한 적이 없기에.

그런 퀘스트의 보상이라면 일개 목수가 주는 것보다는 신이 주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렇군요, 그럼 퀘스트라도 내주시겠습니까?”

NPC 제페토는 약간 조소를 지었다.

“좋지.”

띠링!

[퀘스트, 제페토의 시련]

[시련 난이도를 설정해주십시오.]

[난이도에 따른 차등 보상이 주어집니다.]

[난이도는 공략 불가, 헬, 하드, 노멀, 이지까지 있습니다.]

NPC 제페토가 쫓겨난 이유?

알 사람들은 다 알았다.

바로 인성.

그는 막 게임을 시작한 뉴비에게 지옥을 선사해주었다.

이런 식으로.

[난이도는 공략 불가, 헬, 하드, 노멀, 이지까지 있습니다.]

[난이도는 공략 불가, 헬, 하드, 노멀, 이지…….]

[난이도는 공략 불가, 헬, 하드, 노…….]

[난이도는 공략 불가, 헬, 하…….]

[난이도는 공략 불가, 헬.]

난이도를 전부 다 공개한 뒤 하나씩 줄여나간다.

선택지는 딱 둘.

공략 불가, 헬 난이도.

참으로 지독한 연출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NPC 제페토의 표정이 예상과는 달랐다.

‘보통 유저 괴롭히는 NPC는 음흉하게 웃어야 어울릴 텐데, 표정이 썩 밝지 않네?’

마치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있다는 듯한 얼굴.

무엇보다,

“오랜만에 만난 용사에게 못 할 짓을 하는구먼, 미안하네.”

말하는 것도 그렇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처럼 굴었다.

뭔가 싶어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어차피.

“공략 불가를 선택하겠습니다.”

공략 불가를 선택할 거라서.

도무지 자신이 없었기에.

클리어 못 할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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