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훅.
NPC알렉스가 강기찬을 기습했다.
높게 올린 검을 급속도로 내리치며 스킬을 발동했다.
[파워 스트라이크!]
그런데 왜일까? 스킬이 발동하지 않았다.
그 이유야 금방 알 수 있었다.
‘왜 이래?’
말이 나오지 않아 스킬명을 못 외쳤으니.
‘왜 말이 안 나와?’
당황해서가 아니라 진짜‘말’이 안 나왔다.
말을 하려고 해도 금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원인도 알 수 없으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 풀리지 않을 문제를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없었다.
그보다는 강기찬에 중점을 둬야 했다.
‘내 검을 어떻게 피했지?’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강기찬이 기습공격을 피했다.
피할 수 없어야 정상이었다.
‘스킬이 발동 안 되어도 피할 수는 없어야 하잖아?’
스킬과는 별개로 피할 수 없어야 했다.
스탯이 있지 않나.
힘과 민첩만으로도 강기찬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스킬만큼 위력적이진 못할 뿐, 강기찬에겐 충분히 먹히는 일격이었을 터.
그런데 옷깃 하나 스치지 못하니 의아할 따름이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프리 스탯 포인트 50을 민첩에 분배했습니다.]
[민첩] 5 …▶ 55
강기찬의 민첩이 55였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감시카메라 역할을 해주는 NPC들까지 있으니 NPC알렉스의 공격을 피할 수밖에.
NPC알렉스는 침착하려 애썼다.
‘다시 상대해보자.’
이 모든 게 일시 오류이길 바랐다.
지금부터가 진짜라는 마음을 품고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디 있지?’
강기찬이 보이지 않았다.
찾으려는 찰나, 갑자기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고개를 돌리려는데,
퍽.
등에 주먹이 꽂혔다.
[민첩에 분배한 프리 스탯 포인트 50을 초기화했습니다.]
[민첩] 55 …▶ 5
[프리 스탯 포인트 50을 힘에 분배했습니다.]
[힘] 5 …▶ 55
민첩을 빼고 올힘 찍은 스트레이트 펀치였다.
NPC알렉스로선 감당할 수 없는 파괴력일 터.
빠-아악!
그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그대고 앞으로 고꾸라졌고.
퍽.
쓰러졌다.
한 방이었다.
[NPC알렉스 : 삼가‘본인’의 명복을 빕니다.]
NPC알렉스는 농담을 한 게 아니다.
[NPC알렉스가 사망했습니다.]
진짜 NPC알렉스가 사망해버렸다.
강기찬은 멀뚱히 서서 NPC알렉스를 내려다보았다.
서서히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중이었다.
사망한 이에게서 나타나는 현상.
‘내가 알렉스를 죽이다니.’
상상도 못 했다.
‘최초 사망이겠네.’
본서버와 테스트서버를 통틀어 NPC알렉스는 최초 사망일 것이다.
띠링!
[보상이 주어집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현재 레벨 : 30]
레벨은 20에서 10이 더 올라 30을 찍었다.
과연 이게 튜토리얼에서 가능한 수치인가 싶었다.
1레벨로 졸업하는 게 당연한 곳에서 30레벨이라니…….
‘테스트서버니까.’
마법의 단어를 갖다 대면 흔쾌히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보상은 이걸로 그치지 않았다.
[코인을 얻었습니다!]
[현재 코인 : 313,441]
[알렉스의 전투복(물리 방어력 + 3)]
[알렉스의 검(물리 공격력 + 5)]
[알렉스의 부츠(이동속도 + 1)]
NPC알렉스의 유품도 챙겼다.
또한,
[프리 스탯 포인트 랜덤박스를 얻었습니다.]
프리 스탯 포인트 랜덤박스를 얻었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개봉해보았다.
[프리 스탯 포인트 50을 얻었습니다.]
자유로이 쓸 수 있는 스탯 포인트가 도합 100이 되었다.
엄청난 스펙이 아닐 수 없다.
더 놀라운 건 보상이 이게 끝이 아니란 거다.
[죽일 수 없는 NPC를 최초로 죽였습니다.]
[불가능한 업적을 달성합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줄 보상, 맵핵이 주어집니다.]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나? 잘못 본 거 아니지?’
보상으로 맵핵?
게임에서 핵은 계정 영구정지 사유다.
그런 핵을 준단다.
‘미친…….’
그는 맵핵에 부정적이었다.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게임사나 유저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니까.
‘나도 맵핵으로 피해를 엄청나게 봤었지.’
강기찬 또한 맵핵 피해자다.
그래서 맵핵을 끄려 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은 안 될 짓이었기에.
맵핵을 끄고 이전의 평범한 미니맵을 키려 했다.
그런데,
‘맵핵이 안 꺼져?’
미니맵을 켜니 맵핵이 뜬다.
이것저것 건드려보았으나 묵묵부답이었다.
‘설마, 예전의 평범한 미니맵을 켤 수 없는 건가?’
파일로 치면 덮어쓰기를 한 걸까?
이전으로 돌이킬 수 없지 싶었다.
참담한 현실이었다.
강제로 맵핵 보게 생겼다.
‘어쩌지? 아예 끌 수도 없고…….’
맵핵을 끄고 안 보면 안 되나 싶겠지만, 맵핵을 안 본다는 건 맵을 안 본다는 게 되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맵엔 유저의 위치만 보이는 게 아니다. 각 필드나 던전의 지형지물, 길 찾기에도 쓰인다. 여행자에게 지도와 나침반 같은 것. 이것 없이 여행을 다니라는 건, 길 잃고 미아가 되라는 거다.
‘어쩔 수 없다, 맵은 꼭 봐야 해.’
그는 법과 도덕을 지키려 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걸 위해 손해를 보는 성격은 아니었다.
‘내가 안 보고 싶다고 안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게임사가 쓰라고 허용해준 거니.’
이미 게임사는 맵핵 사용을 허용했다고 봐도 되었다. 다름 아닌 시스템이 보상으로 준 것이니.
남은 건 유저.
‘죄 없는 유저에게만 피해가 안 가게…….’
선량한 피해자만 나오지 않으면 그나마 되지 않을까?
그게 그가 취할 수 있는‘차악’이었다.
* * *
맵핵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상, 제대로 써야 했다.
자세히 살펴보았다.
얼핏 보기엔 기존 미니맵과 비슷하다.
지형지물이 그려져 있었고 가운데에 검은 점이 찍혀 있다.
‘이 검은 점은 내 위치를 가리키는 거네.’
지도상, 검은 점은 딱 하나만 찍혀 있고 이는 강기찬 본인의 위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른 점은 안 보이고.’
그 주위에 다른 점은 찍혀 있지 않았다.
‘뭐, 그거야 당연하지.’
테스트서버에 혼자 있으니 점은 하나만 찍혀 있는 게 당연했다.
‘본 서버라도 마찬가지일 거고.’
본 서버도 맵이 있다.
단, 유저 위치는 비공개다.
본인이 공개 여부를 결정할 수 있지만, 다들 비공개한다. 제 위치정보를 굳이 공개하는 이는 드물었기에.
‘맵핵은 공개 여부와는 상관없이 볼 수 있겠지.’
그것이 바로 맵핵의 강점이었다.
상대방의 동의 없이 위치를 엿볼 수 있는 것.
전장에서 괜히 척후병 보내는 게 아니다. 병력이나 매복 여부 등, 승패를 가를 요소를 일찍이 알아보기 위함이다.
레전드스토리도 전쟁, 길드전이 있고 또 파티단위나 개인전으로 가더라도 상대방의 위치는 중요하다. 가령 은신이나 투명 같은 거로 숨어있어도 맵핵으론 파악할 수 있으니.
‘뭐, 여기선 쓸 일이 적더라도 현실에선 요긴하게 쓰겠네.’
테스트서버엔 유저가 없으니 사용범위가 줄어드나 어차피 현실에서 사용 가능한 게 더 중요했다.
‘근데 참 신기하단 말이지, 레전드스토리에선 맵핵은 꿈도 못 꿨었는데.’
레전드스토리는 맵핵은커녕 핵 자체가 없던 게임이다. 그런 점에서 보상으로 맵핵을 줬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컸다.
레전드스토리에도 핵은 있었다. 단지 비공개일 뿐. 그런 까닭에 이런 보상은 이번 한 번으로 그치지 않을 것 같았다.
또 다른 핵의 사용, 이 역시 신경 쓰였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고.’
맵핵을 마저 살펴보았다.
‘음?’
불현듯 맵의 구석진 곳에 자그마한 표식이 있음을 발견했다.
‘일반 미니맵에는 이런 표식은 없었는데?’
노란색 삼각형 안에 검은색 느낌표.
아무래도 표식이 있는 곳에 무언가 있지 싶었다.
강기찬은 빠르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표식에 다가갔을 즈음.
‘뭐가 있다는 거지?’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미니맵만 보지 않으면 주변과 전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한 가지 특징은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긴 이동한계선인데?’
이동한계선.
유저가 이동 가능한 한계 지점을 의미한다.
아무리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라 한들, 이동한계선이 존재한다.
예컨대 눈앞에 나무가 있어도 만질 수도 다가갈 수가 없다. 배경일 뿐, 거기까지 물리적으로 구현하진 않은 것이다.
‘근데, 왜 이동한계선 너머에 표식이?’
미니맵을 좀 더 확대해보니 보다 명확해졌다.
표식은 이동한계선‘너머’에 찍혀 있는 게 틀림없었다.
‘저긴 넘어갈 수가 없는데?’
앞은 보이지 않는 벽이 가로막고 있다.
손을 뻗었으나,
퍽.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다.
이러면 둘 중 하나다.
표기 오류거나‘보이지 않는 벽’을 넘어갈 수 있거나.
강기찬은 표기 오류 같았다.
그의 상식으론 넘어갈 수 없다고 보았으니.
그렇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여긴 상식이 박살 난 곳이니까.’
생각을 달리 해보기로 했다.
‘보이지 않는 벽’을 넘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 표식이 있는 거겠지.’
물리적인 이동은 불가능하나, 안은 들여다볼 수 있다.
표식이 있을 거로 추정되는 구간에 초점을 맞추었다.
‘흠.’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아닌가? 좀 더 시선을 돌려야 하나? 정확하게 봐야겠는데.’
맵의 우측하단에 돋보기 모양의 아이콘을 눌렀다.
띠융.
미니맵의 크기가 커졌다.
다시금 표식을 보고선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건?’
맵에, 강기찬을 뜻하는 검은 점이 있고 그 바로 위에 가느다란 실선이 그어져 있었다.
검은 점이 강기찬이니 실선은 이동한계선이었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실선이 끊어져 있었다.
너무 미세해서 이렇게 확대해서 보지 않으면 놓쳤을 만큼.
‘끊어졌다?’
실선이 끊어졌다는 건 이동한계선이 끊어졌다는 것.
강기찬은 맵을 참고하며 그리로 이동해보았다.
‘그 지점’에 가서 섰으나 육안으론 식별이 어려웠다.
보이지 않는 벽이 끊어져 있어도 이 역시 보이지 않기에 모르는 것일 터.
하지만,
‘아는 방법이 있지.’
보이지 않는 벽은 보이지 않을 뿐, 만져지긴 했다.
부딪치지 않게 조심스레 다가간 뒤, 손바닥을 펼쳐 벽에 갖다 댔다. 벽에 밀착한 채로 짚으면서 옆으로 갔다.
흡사 마임을 하는 듯했다.
그렇게 몇 센티미터를 이동했을까.
벽을 짚던 손이 훅, 하고 벽을 통과했다. 아니, 벽이 없는 허공에 닿았다고 보는 게 맞으리라.
좀 더 팔을 뻗어 보았다.
애당초 벽이란 없었다는 듯, 쑥 들어갔다.
하지만, 명백히 그 바로 옆엔 보이지 않는 벽이 실재했다.
딱 이 구간만 뚫려있는 것이다.
띠링!
[이동한계선을 넘었습니다.]
[최초업적입니다!]
[칭호, 선을 넘는 자를 얻었습니다!]
[이동한계선 왕복권이 1일 1매 지급됩니다!]
그 누구도 넘어본 적 없는 선.
그 선을 넘었다.
여기까지 오니 표식도 표식이지만, 저 선 너머가 궁금했다. 뭐가 있을까. 아니면 별거 없을까.
그렇게 몇 분 후, 제 눈을 의심했다.
이때껏 볼 수 없었던 것을 목격했으니까.
레전드스토리 유저 중에서 저걸 보고 안 놀라면 장을 지질 자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