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강기찬은 NPC알렉스 덕분에 NPC알렉스의 약점을 알았다.
하지만.
‘약점만 가지고는 무리다.’
약점만 아는 거로는 NPC알렉스를 이길 수 없다.
약점도 건드릴 수 있어야 의미가 있는 법.
한데, 건드리긴커녕 접근조차 하지 못할 것 같았다.
‘NPC알렉스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내가 접근하게 두겠어?’
NPC알렉스가 강기찬의 접근을 원천봉쇄할 터.
강기찬은 그걸 뚫지 못할 것이다.
‘그 이상이 필요해.’
약점, 그 외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약점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잠시, 화장실 좀.”
“아, 긴장되나 보군. 이해하네. 갔다 오게.”
강기찬이 NPC알렉스에게 양해를 구하고선 자리를 이탈했다. 꽤 멀어진 뒤에야,
“NPC알렉스님.”
NPC알렉스를 불렀다.
[알렉스 : 예.]
“알렉스님은, 어떻게 하면 빈틈을 보일 것 같습니까?”
[알렉스 : 아무래도, 제가 당황하지 않는 편이라, 당황하면 빈틈이 생길 것 같습니다.]
“당황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알렉스 :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NPC알렉스가 무언가를 준비하는 듯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제법 흐르고 나서야…….
[알렉스 : 이걸 받아주십시오!]
강기찬의 우편함으로 물품이 도착했다.
그걸 열어보고선,
‘아, 하마터면 욕할 뻔했네.’
이를 악물었다.
정색하는 건 덤.
이내 보는 눈을 의식해 표정 관리에 들어갔지만.
비단 강기찬만 그런 반응을 보인 게 아니었다.
- 아, 아니 저것은……!
- 아니, 이 대련이 뭐라고 ㅠ
NPC들 또한 깜짝 놀랐다.
[알렉스 : 여러분들 반응,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것밖엔 방법이 없습니다. 이거 보고도 제가 당황 안 하면 저 자는 제가 아닙니다. 믿어보십시오!]
NPC알렉스가 호언장담했다.
당사자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믿고 실행하기로 했다.
강기찬은‘그것’을 폭탄 마냥, 조심스레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러고선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하게 NPC알렉스에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폭탄은 주어졌어, 이걸 언제 어떻게 던지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거다.’
최고의 조력자, NPC알렉스의 도움은 여기까지. 나머지는 오롯이 강기찬의 몫이다.
‘이 폭탄을 적재적소에 던진다면, 이길 수 있을 거야.’
NPC알렉스에게 받은 거라면, 무조건 NPC알렉스에게 빈틈이 생길 터. 그 빈틈을 파고들면 약점을 노릴 기회가 올 것이다.
“고맙습니다. 알렉스님의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강기찬이 속삭이듯,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건 NPC알렉스의 거룩한 결단이 아니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작전이었다.
때문에, NPC들도 덩달아 감사의 뜻을 표했다.
- 잊지 못할 거예요. (X)
-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 부디, 그곳에선 행복하시길.
강기찬이 NPC알렉스의 앞에 섰다.
“시작하죠.”
“아, 잠깐. 특별히 자네와 같은 무기를 들고 싸워주겠네. 어떤가.”
“고맙습니다.”
“고맙기는, 그것이 기사도 정신일세.”
NPC알렉스는 공평하게 한답시고 강기찬과 동등한 무기로 교체했다. 이로써 둘 다 초보자용 목검을 들었다.
“한쪽이 항복을 선언하거나 넘어지면 패배로 하지, 어떤가?”
“좋습니다.”
* * *
둘이 서로 마주 보고 섰다.
“자네에게 한 수를 양보하겠네.”
“감사합니다.”
강기찬이 목검을 내질렀다.
타-악.
NPC알렉스가 가볍게 쳐냈다.
오로지 손목 스냅만으로 한 것이었다.
검에서 손끝으로 묵직함이 전달되었다.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다.
‘역시, 강하다.’
강기찬은 상대의 강함을 인정했다.
20년간 홀로 검만 휘둘러왔을 테니 그럴 수밖에.
“이건 어떻습니까?”
“……?”
강기찬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훅!
허공으로 던졌다.
“…어?”
NPC알렉스는 제 눈을 의심했다.
강기찬이 허공에 던진 건 팬티였다.
NPC알렉스의 눈이 커졌다.
‘내 팬티가 왜 거기서 나와?’
저도 모르게 아랫도리에 시선이 갔다.
혹시 벗고 있나?
‘아닌데?’
그때쯤, 강기찬의 목검이 깊숙이 들어왔다.
NPC알렉스는 그 점을 인지하면서도 허공의 팬티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아니, 제 딴엔 빨리 거두었다, 싶었지만…….
‘아차!’
늦었다.
그의 시선이 분산된 순간은 찰나였다.
그러나 강기찬이 목검을 휘두르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한 대 맞을 터.
물론, 그래봤자 치명타는 아니겠지만, 애초에 한 대도 맞지 않고 끝낼 거라 다짐했었다.
그랬기에,
‘내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다!’
단 한 대도 맞을 수 없었다.
‘레벨 1에게 맞는 건 수치스러운 일!’
하지만, 강기찬의 공격을 막거나 피할 시간이 부족했다.
불행 중 다행히 숨겨진 한 수가 있었다.
‘웬만하면 이건 안 쓰려고 했지마-아안!’
후-아아아아악!
NPC알렉스가 살기를 발산했다.
초보자는 오금을 지리고 심하게는 기절까지 한다.
그런 까닭에, 강자가 약자를 속전속결로 끝낼 때, 주로 쓴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되니까.
다만, 공정한 대련을 위해 일부러 사용치 않은 것이다.
그러나.
‘자네가 먼저 비겁한 수를 썼으니 나도…….’
명분이 생겼다.
저쪽에서 먼저 비겁하게 굴지 않았나.
후-아아아아악
NPC알렉스에게서 뻗어 나온 살기가 강기찬을 덮쳤다.
그런데.
[초보자의 무지(無知)가 발동 중입니다.]
[살기에서 나오는 공포를 무력화합니다.]
강기찬에게 살기는 소용없었다.
빠-아악!
NPC알렉스의 왼쪽 손목을 후려치는 강기찬의 목검!
“아아악!”
NPC알렉스가 비명과 함께 오른손에 쥔 목검을 놓쳤다.
그와 동시에 강기찬도 제 목검을 버렸다. 너무 세게 쳐서 부러진 것이다. 재빨리 NPC알렉스가 떨어뜨린 목검을 주웠다.
‘운이 좋군.’
운이 좋았다.
NPC알렉스가 강기찬과 같은 초보자용 목검을 써준 것이.
만약 본래 쓰던 무기를 썼으면 강기찬은 착용 레벨 제한으로 NPC알렉스가 떨어뜨린 목검을 줍지 못한 채 무기 없이 싸웠을 것이다.
물론 NPC알렉스가 기사도 타령하며 재정비 시간을 주는지 모르나, 그래봤자 애써 팬티를 노출하면서 얻은 이 흐름을 다시 연출할 수 없을 터.
다음은 없었다.
지금 승부를 봐야 했다.
“이, 이……!”
NPC알렉스는 강기찬이 자신의 목검을 줍는걸,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아직 한 대 맞은 손목이 저렸기에.
그 사이, 강기찬은 목검을 회수하고, 또 고쳐 쥐면서 NPC알렉스의 뒤를 점했다.
‘…어딜!’
NPC알렉스도 뒤돌아봤지만, 늦었다.
빠-아아악!
목검이 오른쪽 허벅지 뒤를 두들겼다.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으아아----악!”
털썩.
NPC알렉스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다.
강기찬이 넘어진 NPC알렉스의 목에 목검을 겨누었다.
“제가 이겼습니다.”
그러자 NPC알렉스가 반발했다.
“기사도에 위배 되는 행위일세, 반칙이라고!”
“저는 기사 안 할 건데요?”
* * *
강기찬은 NPC알렉스와의 대련에서 이겼다.
그렇게 보상을 받았다.
띠링!
[최초로 NPC알렉스(허수아비 교관)를 쓰러뜨렸습니다.]
[칭호가 주어집니다.]
[칭호, 상급자의 침묵을 얻었습니다.]
‘칭호확인.’
《 상급자의 침묵 》
[분류] 칭호
[등급] 에픽
[설명] 최초로 NPC알렉스(허수아비 교관)를 쓰러뜨렸을 시, 얻는 칭호.
[효과] 사용자로부터 반경 10미터 이내의 상대에게‘침묵’ 적용.
[조건] 사용자보다 레벨이 높을 시, 적용 가능.
[제약] 없음.
칭호의 핵심은 상대를 조용히 시키는 것.
얼핏 보면 그저 그뿐인 것 같다.
흥미롭기는 하나 전투에 쓰기엔 모호한……?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건, 단순히 상대를 조용히 시키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야. 그 이상의 가치가 있지.’
대다수가 스킬명을 외치며 스킬을 쓴다.
그런데 말을 못 한다면?
스킬 못 쓴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아무렴 어떤가.
‘스킬명을 외쳐야만 발동하는 스킬은 못 쓰는데.’
스킬명을 외쳐야만 발동하는 스킬은 못 쓰게 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칭호확인은 끝냈고, 이제 퀘스트 보상 봐야지.’
방금 것은 최초로 NPC알렉스(허수아비 교관)를 쓰러뜨린 것에 대해 칭호를 얻은 거다. 알렉스와의 대련 퀘스트 보상은 아직 보지 못했다.
띠링!
[알렉스와의 대련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현재 레벨 : 20]
[프리 스탯 포인트 랜덤박스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한 번에 10이나 올랐다.
지금은 20을 찍은 상태.
무려 레벨 20을, 몬스터 한 마리 안 잡고 올렸다.
이로써 잔여스탯 포인트는 20이나 되었지만, 아직 올리지 않았다. 스탯은 한 번 올리면 무를 수가 없어서 신중해야 했다. 어떤 직업을 할지 정했기에 스탯을 올려도 되지 싶지만, 혹시 몰라 남겨두고 있었다.
‘다음 보상은…, 프리 스탯 포인트?’
《 프리 스탯 포인트 랜덤박스 》
[이 랜덤박스에서 나온 스탯 포인트는 자유롭게 올리고 내릴 수 있다.]
프리 스탯 포인트 랜덤박스를 열어보았다.
띠링!
[프리 스탯 포인트 랜덤박스를 개봉합니다.]
허공에 [랜덤박스]가 생겼고 빙그르르, 돌았다.
서서히 멈추며 박스 윗부분이 열렸고 찬란한 빛이 솟구쳤다.
[프리 스탯 포인트 50을 얻었습니다.]
프리 스탯 포인트 50.
1레벨업 당, 1스탯 포인트를 받으니 50레벨업 하면 주는 걸 받은 셈이다.
‘그냥 스탯 포인트 50도 좋은데 초기화가 가능한 스탯 포인트 50이라니……!’
‘써보는 게 인지상정이지…….’
‘뭘 올려볼까? 힘? 민첩? 힘이 좋겠네.’
띠딕!
[프리 스탯 포인트 50을 힘에 분배했습니다.]
[힘] 55
‘이 정도면 이제 알렉스랑 정면승부 해도 안 지겠는데?’
NPC알렉스도 유저와 같은 상태창 시스템이다.
NPC알렉스의 레벨이 20이니 올힘을 찍었어도 35는 못 넘을 터. 강기찬은 55다.
‘뭐, 알렉스랑 싸울 일은 없겠지만. 내가 양아치도 아니고.’
한편.
‘고작 초보자 따위에게 지다니!’
NPC알렉스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용사에게 패배한 게 믿기지 않았기에.
굴욕적이었다.
하나, 변명거리는 있었다.
‘용사라는 작자가 비겁한 술수나 쓰고!’
어떻게 자신의 팬티를 알았으며 또 어디서 똑같은 걸 구했는지는 모르지만, 비겁했다.
‘치사하게 약점이나 노리고.’
어떻게 자신의 약점을 알았는지 모르지만, 그곳만 노린 것도 치사했다.
그의 기준에서 이건 제대로 된 승부가 아니었다.
‘네놈이 그렇게 나오면 나도 똑같이 대 갚아주면 될 일!’
무슨 수를 써서든 이기고팠다.
‘스, 스킬을 쓰자!’
이전엔 스킬을 안 썼다.
이젠 써야겠다.
‘파워 스트라이크다!’
파워 스트라이크.
힘을 응축해 신속, 강력하게 내리치는 스킬이다.
일개 초보자 따위 맞으면 뼈가 부러지리라.
‘방심하고 있군.’
얼핏 본 강기찬의 모습.
허공을 보느라 여념이 없다.
‘지금이다!’
뒷짐을 지며 강기찬에게 서서히 다가갔다.
허리 뒤엔 검을 숨긴 채로.
비열한 표정과 함께.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강기찬의 눈은 얼굴에만 달린 게 아니라는 걸.
- 알렉스님이 접근 중이에요!
- 조심하십시오!
- 허리 뒤에 검을 숨겼습니다.
- 닿기까지 8초 전……!
그에게는 허공에 제3의 눈이 깔려 있었다.
NPC들이 그의 사각지대를 대신 봐주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