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한 대만 때리라고?’
허수아비 100대 때릴 거, 1대만 때리란다.
NPC 알렉스의 조언에 강기찬은 실소가 나왔다.
‘퀘스트 프리패스하는 법이 단지 한 대 때리는 거라니.’
어쨌든, 희소식이었다.
허수아비 100대나 때리는 거, 솔직히 시간 낭비였으니까.
‘보상이라도 좋으면 모를까. 안 좋잖아.’
허수아비 100대 때리면 주는 보상도 알고 있다.
심지어 그 보상, 좀 전에 NPC알렉스한테 받았었다.
‘한 번 더 받을 정도로 좋은 것도 아니고.’
이미 보상도 받은 데다 더 받을 가치도 없다. 더더욱 노가다 퀘스트 깰 이유가 없어진 셈.
손해 볼 게 없다.
아니, 이대로면 손해일 터.
“좋습니다.”
NPC 알렉스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 강기찬 용사님이 허수아비 1대 때리고 말면 알렉스님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너무 기대돼요!
[알렉스 : 아, 그거 저라서 제가 잘 압니다. 아마 이를 바득바득 갈 겁니다. 제가 제안한 거지만, 상상만 해도 짜증 나거든요. 용사라고 해도 이 시기에는 풋내기 아닙니까? 한 수 가르쳐 준다는데 어디서 감히 한 대만 칩니까? 건방지게! 아, 물론 강기찬 용사님보고 하는 소리는 아닙니다.]
- 알렉스 아재, 흥분하셨는데?
- 감정이입을 너무 해버리셨…….
- 감정이입을 안 할 수가 없지.
- 저기 있는 분도 알렉스고 여기 있는 분도 알렉스니까.
- 오호, 그거 인정해야겠네요.
저벅.
강기찬이 걸음을 옮기자 기다렸다는 듯, NPC알렉스가 말을 걸어왔다.
“반갑다, 내 이름은 알렉…….”
NPC알렉스가 자기소개를 하려고 하는데…….
“…… 올바른 자세에서 강한 힘이 나온다는 마음가짐으로 100대 때리면 되죠?”
강기찬이 말을 끊었고.
“어?”
NPC알렉스는 당황했다.
“그걸 어떻게?”
강기찬이 한 말, 자신이 하려고 했던 말이다.
‘보면 볼수록 이상한 용사란 말이지.’
허수아비 100대 때리게 시킬 거라는 걸 안 것도 신기한데, 그 전에 해줄 말까지 꿰차고 있다?
이에 관해 물었고 강기찬이 흔쾌히 대답했다.
“용사의 세계에선 알렉스님의 말씀은 유명합니다.”
게임에서 퀘스트 받을 땐,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그것도 많으면 열몇 줄이나 되는.
누가 아프니 약 좀 구해달라, 마을이 위험에 빠졌으니 몬스터 좀 잡아달라…….
구구절절… 그거 누가 읽나, 다 스킵하지.
그걸 강기찬은 읽었다.
아니, 외웠다. 그만큼 레전드스토리에 환장했으니까.
그 덕에 장장 10분을 끌 예정이었던 NPC알렉스의 연설을 통편집할 수 있었다.
강기찬이 나직이 요구했다.
“퀘스트 주시죠.”
“아, 그렇군. 흠흠. 좋아.”
NPC알렉스가 잠깐 멍해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아는 내용을 굳이 다시 언급할 수는 없으니.
다만 심히 의아스러웠다.
‘이세계에선 내 말이 전해지고 있다 이 말인가? 이 녀석이 첫 용사인데…. 무슨 수로?’
강기찬이 첫 방문 용사다.
그런데 이미 자신의 말이 용사의 세계에서 퍼져있다?
‘그게 말이 되나?’
하지만 더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강기찬이 재촉하듯 쳐다보고 있어서.
“자네가 말한 게 맞아. 허수아비를 100대 때리면 되네.”
“좋습니다.”
NPC 알렉스는 떨떠름하면서도 튜토리얼 퀘스트를 주었다.
띠링!
《 튜토리얼 퀘스트 》
[등급] 노멀.
[난이도] 이지.
[목표] 허수아비 때리기.
[때린 횟수] 0 / 100
[제한 시간] 없음.
* 시작을 외칠 시,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퀘스트가 주어지자마자 강기찬이 나직이 외었다.
“시작.”
그와 동시에,
빡!
허수아비를 한 대 쳤다.
[허수아비 때린 횟수] 1 / 100
목표치인 한 대를 달성했다.
강기찬은 목검을 거두고선 기립했다.
NPC알렉스의 조언에 따른 것.
잠시 기다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런 히든피스가 있었을 줄이야.’
과거, 레전드스토리 커뮤니티에선 그런 풍문이 돌았었다.
NPC알렉스 퀘스트에서 허수아비 100대 때릴 거, 1,000대 때리면 히든보상이 주어진다고.
꽤 그럴싸한 논리였다. 본래 기존에 주어진 조건을 초과 달성하면 추가 보상이 주어지곤 했으니까.
그러나 아니었다.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뭣도 없었다는 걸.
괜히 애꿎게 도전한 자만 시간 낭비한 것.
한데 오히려 한 대만 때리면 되는 게 히든피스라면 여태껏 알려지지 않았던 게 이해가 간다. 무언가를‘더’ 얻고자‘덜’ 행동하는 이는 없을 테니까. 더 해야 더 줄 줄 아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나.
물론 1대만 때리고 말면 보상은 안 줄 테지만, 누군가에겐 시간 절약이 더 좋은 보상인 법이다. 특히 재미도 뭣도 없는 컨텐츠는 생략이 답이고.
그때 NPC들이 활발하게 채팅을 치기 시작했다.
- 아, 맞다 저도 제가 지난 여름밤에 뭘 했는지 알아요! 그거 써먹으면 제가 무지개 장미를 토해낼 거예요! 그게 얼마나 좋냐면…….
- 저도, 나이주에 오시면 저를 찾아주세요. 제가 콤플렉스가 있는 데 그거 지금의 저는 이겨냈거든요. 혹시 그쪽 세계의 저가 못 이겨내고 있으면 이겨내게 해주면 비상금 드릴 거 같아요!
NPC들이 저마다의 개인정보를 풀어내는 중이었다. NPC알렉스가 제대로 불씨를 지펴준 꼴. 강기찬으로서는 바라마지 않은 현상이었다.
“예, 꼭 그러도록 하죠.”
- 좋아요!
- 꼭 입니다!
- 꼭!!!
강기찬이 이용해준다니까 다들 고맙다고 난리다. 외려 이쪽이 감사해야 할 일인데.
한편,
‘대, 대단한데?’
- 놀랍군!
두 서버의 NPC알렉스가 동시에 감탄했다.
검 하나를 휘둘러도 사람마다 다 다르다.
어느 게 옳다, 그르다,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한데, 각자가 추구하는 방향은 있다.
강기찬의 검술, NPC알렉스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짜릿하군! 새로워!’
NPC알렉스는 강기찬을 다시 봤다.
첫인상은 영 꽝이었다.
아무리 알고 있다 한들 제 할 말을 가로채지 않았나.
그러나
‘싸가지 없어도, 재능이 있다면 키울 만한 법!’
NPC알렉스는 강기찬에게 눈독을 들였다.
강기찬의 싹수가 괜찮았기에.
그렇게 10초쯤 흘렀을까, 이상함을 감지했다.
‘왜 저러지?’
강기찬이 눈만 깜빡이고 가만히 있는 게 아닌가. 몇 대를 쳐도 더 쳤을 시간이 지났는데.
“왜 그러는가.”
“이제 그만하고 싶네요.”
NPC알렉스가 금세 실망감에 젖었다.
“그러면 퀘스트 보상도 안 받겠다, 그 말인가?”
“네…….”
“하! 다시 묻겠네. 진심인가?”
“네.”
“뭐 보상을 안 받겠다면 어쩔 수 없지, 좋네. 그건 넘어가도록 하고.”
‘그건 넘어가도록 하고라고?’
뭐가 더 있을 것처럼 말하는 게 괜히 불안했다. 일전에 말하길, 혐오의 눈빛과 함께 그냥 가라고 한다고 하지 않았나.
‘전개가 달라질 거 같은데?’
예상적중.
NPC알렉스가 말했다.
“난 자네를 높이 샀다네. 조금만 더 노력하면 검술 실력이 훨씬 더 나아질 수 있다네. 어떤가, 나한테 검술을 배워볼 생각 없는가?”
“예?”
의외의 제안이 넘어왔다.
느닷없이 검술 수련이라니?
[알렉스 : 사실, 저 같아도 저런 제안을 할 겁니다. 강기찬 용사님은 그 어떤 용사님들보다 검을 잘 휘두르셨습니다. 설마, 한 번을 휘둘러도 잘 휘두르실 줄은 몰랐습니다.]
말인즉, 네 검술이 너무 뛰어나서 변수가 생겼다, 이거다.
강기찬은 수긍했다.
‘좋게 볼 수밖에 없지. 알렉스, 본인에게 배운 검술이니까.’
20여 년 전.
남들 다 떠날 때, 강기찬만이 끝까지 남아 튜토리얼에서 뛰어다녔다. 그걸 인상 깊게 본 걸까, NPC알렉스가 한 수 가르쳐주었었다.
그리고 현재 그의 외모는 그때랑 달랐다.
둘에게 강기찬은 새로운 인물이다. 처음 이곳에 오는 거로 비칠 테니, 재능이 타고났다고 착각하는 수밖에.
“아뇨. 검술 배울 생각 없습니다.”
강기찬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미 배웠는데 또 배울 수는 없으니.
“그럼, 나와 대련 해보겠나?”
띠링!
《 알렉스와의 대련 》
[등급] 레어.
[난이도] 하드.
[목표] 알렉스 쓰러뜨리기
[제한 시간] 없음.
[보상] 비공개
* 승낙할 시,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강기찬의 고민은 짧았다.
“좋습니다.”
NPC 알렉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순전히 퀘스트 보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궁금하단 말이지.’
따지자면 호기심에 가까웠다.
‘NPC 알렉스를 쓰러뜨리면 어떻게 될까?’
이건 당사자에게 물어봐도 알 수 없다. 시스템이 판단하는 문제이니까.
하나는 확실했다.
‘분명 업적달성으로 칭호를 줄 거란 말이지.’
NPC 알렉스를 쓰러뜨린 업적으로 칭호를 줄 거란 점이다.
아주 사소한 것도 운이 좋으면 업적으로 인정받아 칭호를 주는데, 이걸 안 준다? 말도 안 된다. NPC 알렉스를 쓰러뜨리는 건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업적이지 않나.
강기찬의 승부욕을 불태우긴 충분했다.
‘문제는 알렉스의 레벨인데.’
괜히 유저들이 NPC알렉스를 쓰러뜨리지 못한 게 아니다. 오죽했으면 여럿이서 덤비기까지 했겠나.
20대 1로 붙었다.
그런데도 NPC 알렉스를 이기지 못했다.
당시, 유저들의 레벨은 고작 1.
NPC알렉스의 레벨은 비공개다.
NPC는 처음엔 이름조차 친분을 쌓으며 알아야 한다.
하물며 레벨을 알 리가.
하지만 추정은 가능했다.
교관이니까 유저보단 레벨이 높을 터. 악의적인 마음을 품은 유저들한테 당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 어정쩡하게 레벨이 높지도 않을 것이다.
다수가 덤벼도 끄떡없을 정도.
최소한 15레벨 이상은 되지 않겠나.
그러니 유저가 아무리 많아도 못 이기는 건 당연했다.
오합지졸 모였다고 장군을 이길 수는 없으니.
“알렉스, 레벨이 어떻게 되죠?”
NPC알렉스가 어이없어했다.
“내가 그걸 알려줄 거 같나?”
“네.”
강기찬은 단호하게 답했다.
이에, NPC알렉스가 미친놈 쳐다보듯 째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기찬은 허공, 시청자들의 채팅창을 보는 중이었다.
[알렉스 : 제 레벨은 20입니다.]
NPC알렉스의 레벨이 최초로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그것도 본인 입으로.
‘20이라, 해볼 만하다.’
현재 강기찬의 레벨은 10.
NPC알렉스는 20.
10레벨 차.
절대 만만치 않은 격차다.
하지만.
“알렉스, 당신의 약점은 뭡니까?”
NPC알렉스의 약점을 안다면 어떨까?
“뭐 나한테 지금 내 약점을 묻는 건가?”
“네.”
“미친, 내가 그걸 말해줄 거 같나?”
“네.”
강기찬이 단언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 되었다.
[알렉스]
[이거 참 기분이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강기찬 용사님이 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도 않고…….]
[제 오른쪽 허벅지 뒤에, 종기가 자주 나는 곳입니다. 거길 노리십시오! 아! 제가 어렸을 때 왼쪽 손목을 심하게 다쳤습니다. 거기 맞으면 1초 스턴 걸릴 겁니다. 아! 또 어디 있더라, 아 맞다! 거기가 어디냐면…….
NPC알렉스가 NPC알렉스를 팔았다.
나라를 판 사람은 많아도 본인을 판 사람은 최초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