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돈보다 권력보다 더 가치있는 걸 찾았지.(완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H-TV 하대석 앵커가 나왔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달 전이죠? 김필중 전 민정 수석이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에 구속 기소됐었죠. 이 사건은 김필중 전 수석 한 명이 아니라 정치권, 재계, 언론계, 학계에까지 뇌물 수수와 공여의 고리가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었습니다. 그런데 충격과 함께 다른 한 편에서는 국민들 사이에서 급격히 부상한 인물이 있죠?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이 인물의 부상이 더더욱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건데요, 바로 김필중 전 민정 수석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 중앙지검 금융조세 조사부의 최용구 검사입니다. 정치부 서한무 기자와 함께 관련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서한무 기자?”
“네, 서한 뭅니다.”
“최용구 검사에 대한 주목도, 인기도 어느 정도인 겁니까?”
“네, 가히 폭발적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20-30대에서는 팬덤까지 형성될 정도로 인기가 치솟고 있습니다.”
“20-30대라··· 공정의 가치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세대라 더 그렇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벌써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에도 최용구 검사의 이름이 등장했다면서요? 지지율이 꽤 높게 나왔다면서요?”
“네, 현재 여당 1위 후보인 조순건 후보가 10% 남짓인 상황에서 최용구 검사가 아직 현직 검사 신분인데도 20%를 넘는 지지율이 나와서 정치권이 긴장을 넘어 경악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20-30대에서는 거의 90퍼센트가 넘는 지지도를 보여주고 있는데, 현재 여당, 야당 공히 마땅한 후보가 없는 상황이라 더 그런 거겠지만, 정의롭고 젊은 대통령을 바라는 사람이 방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뭐? 목포로 보내달라고?”
서울 중앙지검장 윤성회와 내가 면담 중이다. 윤성회는 내가 수원지검에서 중앙지검으로 올 때 지검장으로 발령나 나와 같이 온 사람이다.
김필중 사건을 잘 마무리했다고 격려차 날 직접 지검장실로 부른 거였다.
“야, 최용구. 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갑자기 목포라니?”
격려차 부른 아랫사람이 갑자기 목포로 보내달라고 하니 놀랄 수밖에. 윤성회는 너무 놀라 마시던 차를 조금 흘렸다. 크리넥스로 슥슥 닦으면서 물었다.
“목포가 아니면 강원도 어디라도 좋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조용한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야, 최용구. 니 지금 상종가야. 맨날 욕 얻어먹던 검찰이 니 덕분에 지금 상종가야. 총장님도 얼마나 흐뭇해하시는지 몰라. 법무부에서는 니를 지금 당장 검찰국으로 보내달라고 하고 있는데, 니는 거꾸로 목포나 강원도로 보내달라고? 왜 이유가 뭐야?”
“그냥··· 좀··· 쉬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검사장님.”
“한재민 부장 하고는 상의한 거야?”
“네. 그건 이미 며칠 전에 했습니다.”
“참내, 평양 감사도 지가 싫다면 못 하는 거지 뭐. 알았어. 나가봐.”
인사를 하고 지검장실에서 나왔는데 복도에 한재민이 서 있었다.
“면담 끝났어?”
“네, 부장님.”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시간 돼? 같이 어디 좀 갈까? 내가 할 말이 좀 있어서.”
“네? 아... 네.”
검찰청 건물을 나와 한재민의 차에 탔다. 어디를 가려는지 난 묻지 않았다. 목적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차로 가는 중에 한재민이 내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가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지난 수사 과정에서 있었던 서로 하고 싶었지만 말 못 한 것들도 나누고···.
차가 출발했고 조금 뒤,
“이거 마셔. 난 요즘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입이 자주 텁텁해서.”
운전석에서 한재민이 음료수 한 병을 뚜껑을 따서 내게 건넸다. 자기는 벌써 왼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오른손으로 여러 모금 들이키고 있었다.
“네, 고맙습니다.”
분명 냉녹차였는데 향긋한 사과향이 났다. 어디서 맡아본 적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순간 정신을 잃었다.
희미해져 가는 눈으로 운전석의 한재민을 봤는데 날 보며 웃고 있는 것 같았다.
***
“어이, 최용구. 언제까지 처잘 거야? 일어날 시간 됐는데··· 흐흐흐”
한재민의 목소리.
“호호, 더러운 자식, 잠은 잘 자네. 자고 있을 때 확 죽여버릴까?”
이 여자의 목소리는··· 박수미인 것 같기도 하고.
난 비몽사몽 아직 혼미했지만, 눈을 떴다. 그런데··· 앞이 보이지 않았다. 지독한 쓰레기 냄새가 나는 천주머니가 내 머리 위에 뒤집어씌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손은 뒤로 묶였고.
아, 이건··· 라스베가스에서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내가 이재훈으로서 마지막이었던 날, 이걸 뒤집어쓴 채 네바다 사막 어딘가로 끌려갔었지.
그런데 왜 또 지금 이 천주머니를···.
“아, 꿈틀거리는 걸 보니 깨어난 모양이네. 이봐, 최용구 이 씨발새끼. 일어났어?”
다시 한재민의 목소리.
“후후, 어때? 이 천주머니 기억 나시나? 이런 거 다른 사람한테 뒤집어씌울 때는 좋았지? 본인이 뒤집어쓰고 있으니 기분이 어때? 응?”
이건 박수미의 목소리.
상황 파악이 됐다. 저 둘은 지금 죽은 나 이재훈을 위한 복수를 하려는 거 같다. 천주머니 속에서 난 씩 웃음이 나왔다.
복수는 끝났는데··· 나 이재훈을 죽인 백영기, 김필중은 모두 골로 보내줬는데···
하지만 저 둘에게 이 모든 걸 설명하려 한들 그게 먹힐 리 없다. 모든 걸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남의 몸에 들어와 덤으로 조금 더 산 인생. 미련도 없다.
“저거··· 이제, 콜록··· 벗겨줘. 손도 풀어주고.”
엥? 제3의 인물이 있다. 아픈 데가 있는 사람인지 기침을 해댔고 목소리는 심한 가래가 끼어 걸걸했다. 누굴까.
천주머니가 벗겨졌다. 눈이 부셨는데 내 앞에 있는 세 사람은 창문을 등지고 있어서 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대충의 실루엣만으로 왼쪽의 한재민, 오른쪽의 박수미는 알 수 있었다.
서서히 시력이 돌아오면서 선명해졌다.
중간에 있는 이 사람은 누구?
휠체어를 타고 있었고, 머리는 거의 다 빠져 대머리에 가까웠고, 얼굴은 꽤 수척했는데···
“헉! 어~~ 헉헉··· 이··· 이게··· 어··· ”
휠체어에 앉은 사람의 수척한 얼굴을 찬찬히 살펴본 나는 바로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이런 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놀람? 공포? 전율? 경련?
그 어떤 걸로도 내 상태를 표현할 수가 없었다.
혓바닥은 마비된 듯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다리는 후들후들 떨려 제대로 설 수가 없었고, 심장은 어찌나 뛰는지 숨을 제대로 쉴 수도 없었다.
“흐흐, 왜? 귀신을 본 거 같나? 나 귀신 아냐. 흐흐”
걸걸한 가래 낀 목소리를 힘겹게 뱉어내는 휠체어 위의 사람.
그 사람은 바로 나.
이재훈이었다.
***
“흐우~ 흐우~ 흐우~”
호흡 곤란으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더니. 이런 걸 말하나. 방바닥에 누워 바닥을 손으로 긁어대면서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그런 나를 재밌는 듯 깔깔거리면서 내려다보고 있는 박수미와 한심한 듯 웃으면서 보고 있는 한재민.
“당신들은 좀 나가 있지. 콜록··· 날 좀 밀어는 주고.”
휠체어 위의 사람이 말했고, 박수미와 한재민은 호텔 방을 나가면서 휠체어를 방바닥에 누워있는 내게 가까이 밀어주고 갔다.
가까스로 호흡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리려고 할 때, 휠체어 사람이 말했다.
“흐흐, 뭘 그리 놀라시나. 내 몸에 니가 들어갈 수 있다면, 그 반대도 될 수 있는 거 잖아.”
"아···."
“내 건강한 몸을 이렇게라도 보니 좋다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기분이 묘하구먼. 분명히 눈에 보이는 건 난데 내가 아니니. 후후, 뭐 그거야 이재훈 니도 마찬가지겠지? 아, 너는 좀 다를 수 있겠구먼. 니 몸이 이 모양이니 말이야. 콜록콜록.”
난 찬찬히 휠체어 위의 사람, 아니 내 몸을 훑었다. 병원 바지 밑으로 드러난 발목은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었고, 팔과 손도 마찬가지였다. 얼굴은 주름 바가지였고 머리털은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그날 난 분명 너를 사막에 버려두고 떠났는데, 사막 위에서 발버둥 치는 너를 보면서 차를 운전했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없어. 기억이 되살아나서 보니까 내가 사막에 누워있더라고. 박수미 저 여자, 니가 되게 좋았던 모양이야. 호텔에서 사막까지 몰래 따라와 있었더군. 저 여자가 사막에서 날 구해줬어. 그런데 내가 들어와서 보니 니 몸은 이미 곳곳에 암덩어리가 자라고 있었어. 난 이재훈 너를 죽이려고 했었는데 안 그래도 될 뻔했어. 어차피 암으로 죽을 몸이었는데. 콜록콜록.”
내 몸속의 최용구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뱉어내는 게 힘겨워보였다.
“바깥에 있는 한재민, 박수미는 이걸 몰라. 후후, 당연히 모르겠지. 영혼이 바뀌었다. 이런 소리를 누가 믿겠어? 너의 이 빌어먹을 몸속에 들어온 후, 널 계속 관찰했어. 내 몸속에 들어가서 너 아주 잘 살더군. 김필중, 백영기 복수도 하고, 근데 그 와중에 미국에 있는 니 계좌에 돈도 차곡차곡 벌어 넣고. 역시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이재훈답다 싶었어. 나는 이렇게 죽어가고 있는데 말이야. 처음엔 그게 견딜 수 없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꼭 그렇게 볼 것도 아니다 싶더군. 어차피 이재훈 니가 들어가 있는 몸은 나, 최용구잖아! 내가, 이 최용구 검사가 드디어 권력의 정점에 설 수도 있게 된거야. 내 꿈, 권력을 잡고 모든 이들을 내 앞에 무릎 꿇리겠다는 내 꿈이, 이재훈 너로 인해 드디어 이루어지게 된 거지.”
‘권력’ 이야기를 하니 이재훈, 아니 내 몸속에 들어가 있는 최용구는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그런데 한재민이가 하는 말이 너, 목포로 발령 내달라고 했다며?”
난 이제 정신이 제대로 돌아왔고 호흡도 정상이 됐다. 옆에 있는 소파 의자를 끌어와서 휠체어 앞에 놓고 앉았다.
“그래, 그래서?”
난 싱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왜 그랬나? 설마 이 천금 같은 기회를··· 날려버리려는 건 아니겠지?”
“기회? 무슨 기회?”
“난 니 이 썩어가는 몸속에 들어와서도 한재민과 박수미에게 널 도와주라고 했어. 이재훈을 죽인 최용구에게 복수하겠다는 저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 오히려 널 도우라고 했어. 그 덕분에 넌 복수도 하고 돈도 벌 수 있었던 거야.”
난 얼굴에 비웃음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그걸 본 최용구가 매달리듯 말했다.
“넌 니가 원하는 걸 얻었으니 나도 원하는 걸 얻어야지. 안 그래? 그래야 공평하잖아.”
“공평? 무슨 공평?”
“넌 계속 최용구로서 권력의 정점을 향해 멈추지 말고 가야 해. 당장 법무부 검찰국으로 가서 검사들을 장악하고 니 라인을 만들어. 그리고는 대권에 도전해. 넌 할 수 있어. 그래야 해.”
사람이 죽어갈 땐 모든 욕심을 내려놓게 된다고 누가 그랬나. 오히려 그 반대다. 늙어가고 죽어가기 때문에 젊었을 때, 죽기 전에 반드시 이루고 가야 한다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악다구니를 부리게 된다. 노욕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미련이라는 말이 그냥 생긴 게 아니다. 지금 내 앞에 저 죽어가는 최용구가 그렇다.
난 최용구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봐, 최용구. 당신이 나를 사막에서 죽일 때 했던 말 기억 안 나나?”
“뭐?”
“내가 돈을 당신한테 주겠다고 했을 때, 돈은 권력보다 훨씬 가치가 없다고. 당신은 내게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 가버렸었지.”
“그래 그걸 기억하는군. 맞아. 권력은 무엇보다 가치가 있는 것이야. 그러니 그걸 꼭 잡아.”
“최용구. 그런데 어쩌지? 난 권력보다 더 가치가 있는 걸 발견했거든.”
“뭐? 그게 뭔데?”
“민석이.”
비록 뼈만 앙상하게 남은 최용구였지만, 좀 전까지는 눈빛은 강하게 이글거리고 있었는데 ‘민석이’라는 말에 급격하게 무너졌다.
“미··· 민석이··· 자··· 잘 있나? 마··· 많이 컸나?”
“제대로 한 번 안아주지도 않았던 거 같던데··· 민석이가 지금은 보고 싶은 모양이군. 미안하지만, 지금은 내 아들이야.”
“뭐··· 머?”
최용구는 거의 휠체어에서 일어날 듯했다.
“이경진”
“헉”
“이제 내 아내고.”
“으···”
“민석이와 아내. 권력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지.”
고개를 푹 숙였던 최용구가 휠체어 밑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이재훈. 가족이라고? 그게 소중하다고? 흐흐. 이재훈, 넌 그런 인간이 아냐. 내 몸속에 들어가서까지도 미국 계좌에 돈을 모으고 있었던 놈이야. 아냐, 넌 가족 따위가 중요하다고 할 인간이 아냐. 그지?”
최용구가 내게 내민 종이를 좌우로 막 흔들어댔다.
“흐흐. 자, 이걸 봐. 이게 뭔지 아나? 유서야. 미국에 있는 너의 모든 재산, 많기도 하더군. 1억 불이 넘는 이 재산. 내가 죽으면 박수미한테 모두 상속하라고 써놓은 거야. 니가 내 꿈.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난 니 재산 전부를 박수미에게 줄 거야. 너 이 돈, 어떻게 모았어? 부모도 버리면서 모은 재산이잖아? 이걸 저 창녀 박수미한테 다 줄 수 있어?”
난 최용구가 흔들어대는 종이를 낚아챘다. 최용구가 환하게 웃는다.
“그래, 역시 이재훈. 읽어봐. 넌 돈을 버리지 못해. 암··· 못 버리지. 내가 잘 알지. 내가 권력의 단맛을 잘 알 듯, 너도 돈의 달콤함을 잊을 수 없···”
“잘 썼네.”
난 종이를 최용구의 다리 위로 틱 던지면서 말했다. 최용구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대로 해. 난 상관없어. 박수미? 다 줘. 1억 불.”
난 바로 의자에서 일어나 문 쪽을 향했다.
“야··· 이··· 이재훈··· 너··· 내··· 꿈··· 내 꿈을 이뤄줘. 부··· 부탁이야. 제발~~”
울부짖는 최용구를 그냥 두고 나올 수는 없었다. 발길을 멈추고 돌아서서 한 마디 더했다.
“아, 한 가지 더. 잊을 뻔했네. 민석이가 동생이 생길 거야. 딸이라더군. 고마워. 덕분에 난 최고의 가족을 가지게 됐어. 그럼 이만.”
“이··· 으아~~”
권력의 정점에 서겠다는 꿈을 짓밟힌 최용구의 울부짖음. 복도에까지 들렸다.
나를 죽인 검사에 대한 복수가 완결되는 순간이었다.
***
목포로 보내달랬는데 여수로 발령이 났다.
여수로 온 첫날밤, 난 가족과 함께 밤바다에 나왔다. 아내는 스마트폰으로 ‘여수 밤바다’를 틀었고, 민석이는 백사장을 뛰어놀았다.
내 가족.
그들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난 캐쉬 넥서스에 접속해 영구 회원 탈퇴를 했다.
이제 월스트리트의 금융 천재 이재훈, 스티브 리 따위는 없다.
민석이와 곧 태어날 아기의 아빠 최용구.
아름다운 아내 이경진의 남편 최용구.
대한민국의 평범한 봉급쟁이 검사 최용구만 있을 뿐이다.
여수 밤바다.
참 이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