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죽인 검사에 빙의했다-69화 (69/70)

〈 69화 〉 협박도 수사 기법 중의 하나죠.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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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김필중은 씨익 웃더니,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 소파로 가서 앉았다.

나와 나머지 둘도 김필중을 따라가 앞에 있는 소파에 앉으려는데,

“누가 앉으랬어?”

김필중이 셋을 올려다보면서 소리를 꽥 질렀다.

거의 다 앉았던 송대기가 놀라서 벌떡 몸을 세우고 차렷 자세로 섰고, 한재민과 나도 엉거주춤 앉으려다 말았다.

김필중이 다리를 척 꼬면서 엉거주춤 서 있는 내게 말했다.

“원휘준이가 나한테 왜 주식을 주려고 했는지 이제 알겠나? 최용구?”

“주식은 그러니까 뇌물이었음을 시인하시는 거군요. 마약 사범을 덮어주는 대가. 수석님 혐의가 하나 더 추가돼···”

“하하하, 혐의가 추가돼? 독고다이 쉬키. 순진하기는. 아니다, 멍청한 건가? ”

김필중이 크게 웃어제꼈다.

“야! 최용구, 니 눈에는 이 김필중이가 그래 단순해 보이나? 마약 먹는 놈이 그거 덮어달라고 주식을 주면 내가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거 깜쪽같이 덮어드리겠습니다, 이러면서 덥석 그 주식을 받기만 했을 거 같나? 어? 하하하.”

김필중이 검지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틱틱 치면서 말한다.

“한심한 놈. 저런 대가리로 검사를 어떻게 하나? 쯧쯧”

“···”

“야! 독고다이. 마약하고 뇌물의 공통점이 뭔지 아나? 한 번 말해봐. 한 번 맛 들이면 떼기가 힘들다, 뭐 이런 중딩도 아는 대답 말고···.”

“···”

“벼~엉신. 모르는구나. 잘 들어, 이 독고다이 시키야. 마약이나 뇌물이나 혼자 먹으면 안 되는 거야. 힘센 놈, 돈 가진 놈 모여서 여럿이 같이 먹어야 먹다가 걸려도 흐지부지 될 수 있거든. 원휘준이 저 놈도 그랬지. 옆에 기집애들만 있었겠어? 힘센 놈 누구랑 같이 먹었겠어?”

“수석님이었습니까?”

“지랄. 난 마약은 안 해.”

“그럼···”

“누구였겠어? ND 그룹에 힘센 사람, 권력자 아들이 누가 있었지?”

백영기 아들 백승철도 마약을. 이건 몰랐다.

“근데 말이야, 마약은 여럿이 같이 먹어야 안전하다는 거 알고 그렇게 잘하는 인간들이, 뇌물은 말이야, 이 바보들이 꼭 혼자 처먹으려고 하거든. 내가 특수부 검사로만 20년 넘게 구르면서 뇌물 주고받은 놈, 장관이야 국회의원이야 재벌 총수야, 이 손으로 처넣은 놈만 수백 명이야. 근데 말이야, 한 놈도 예외가 없었어. 마약은 여럿이 나눠먹어야 안전하다는 거 알면서도, 뇌물은 꼭 혼자 처먹어. 희한하단 말이야. 독고다이 니가 처넣은 정수명이도 그랬고, 백영기도 그랬고. 다 그랬어.”

“그래서 누구랑 나눠 드셨습니까? 하야한 백영기 대통령은 아닐 거고.”

“흥! 독고다이 쉬키. 이제 좀 머리가 돌아가는가 보네. 니 내 꺼를 언론에 흘렸는데 여당이고 야당이고 조용한 거···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드나? 백영기 선거 때, 내가 그 인간 호위 무사로 불렸을 때 생각해봐. 그때는 야당 놈들 개떼같이 일어나서 백영기한테 달려들었었는데, 왜 이번에 나한테는 이렇게 조용하지?”

의기양양한 김필중의 얼굴. 다리미 같은 게 있으면 그대로 뭉개버리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할 수 없다. 지금은 그냥 들어줄 수밖에.

“니가 나를 처넣겠다고 하면 내가 가만있겠나? 니가 할 수 있는 걸 내가 못할까? 언론에 흘릴 거? 내가 니보다 백 배는 더 많을 걸? 양만 많겠어? 질적으로도 비교가 안 될걸? 자~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처먹을 때는 사이좋게 나눠먹었던 야당 여당 언론 곳곳에 있는 놈들··· 그중에 딱 한 놈만이라도 드러나봐, 나머지 놈들 전부 지 먹은 것도 들통날까 봐 서로서로 손가락질 해대고 폭로야, 조작이야, 진실 게임을 해대겠지. 돈 먹은 놈이 범인이다~ 이러면서. 하하, 웃기는 지랄들이지. 손가락질하는 그놈도 범인인 줄 이 어리석은 대중들은 모르고 지들끼리 편 나눠서 싸움박질 해댈 거고. 그 와중에 나는 슬그머니 잊히는 거지. 기소당해봐야 법원도 나를 풀어주게 돼있고. 우리나라 3심제인 거 알지? 재판 세 번 하는 동안 나 하고 나눠먹은 법관 한 명이 안 걸리겠어? 세상 이렇게 돌아가는 거야 이 벼~엉신들아. 그런데 니들이 나를 잡아가겠다고? 하하하.”

나만 쳐다보고 떠들어대던 김필중이 이번엔 송대기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야! 송대기. 니가 여기서 제일 고참이지? 너 그런데 이런 거 모르지? 처음 듣지? 범죄 증거만 열심히 모아서 사실 증명만 하면 못된 놈 깜방 넣을 수 있다고 너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지? 하하, 너 인마, 그래서 맨날 형사부 땅개를 못 벗어나고 빌빌 대는 거야. 알아?”

다음엔 한재민 차례.

“야! 중앙지검 에이스 검사. 니 소년 급제 수석 합격했다매? 그래, 좋다. 나쁜 놈 잡아넣는 게 니 시험 합격하듯이 공부만 졸라 열심히 해서 정답만 잘 맞추면 되는 줄 알았지? 지금까지 그렇게 해와서 서울 요직만 돌아다녔지? 그래 봐야 너 인마, 부장 검사가 끝이야. 그 중고딩 시험 문제 푸는데나 쓰이는 대갈통을 가지고 더 위로 올라갈 수 있겠어? 넌 세상모르고 날뛰는 똥강아지 새끼일 뿐이야.”

한재민의 주먹 쥔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김필중도 그걸 봤는데 오히려 재밌다는 듯 싱긋이 웃는다.

“앗 참, 너. 송대기.”

“···”

“거 죽은 놈. 투신자살한 시키. 청와대 있었던 새끼. 이름이 뭐더라?”

“전태기입니다.”

“아~ 그래. 전태기. 그 얼빠진 쉬키. 왜 죽은 줄 아나? 죽기 하루 전인가, 이틀 전인가 날 찾아왔었어.”

“네?”

송대기가 놀라서 큰 눈을 더 크게 떴다.

“그 쉬키가 날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지가 차명으로 가지고 있는 내 주식을 몇백 주 팔 수 있게 도와달라는 거야. 장외 거래로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나왔다고.”

김필중은 전태기 생각이 나는 듯 혼자 앞을 보고 씩 웃더니 말을 이었다.

“근데 주식 값을 똥값으로 넘기라는 거야. 나 기가 차서 그 사겠다는 사람이 누구냐 물었더니··· 말을 얼버무리면서 지 학생 때 학생 운동 같이 하던 동지들이라나? 시민 단체 하나 만들었는데 돈이 필요하다고 나보고 협조하래. 안 하면 어떡하겠냐고 했더니 그럼 차명 주식 까겠대. 까라고 했지. 근데 그 새끼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시민단체라는 게 지 마누라가 조합장으로 있는 무슨 협동조합인가 환경 단첸가 뭔가더라고. 그니까 그 시키 지 마누라한테 돈 줄려고 나를 협박한 거야. 안 된다고 했더니 이 쉬키가... 지가 죽어버리겠다나? 지가 죽으면 차명으로 들고 있던 내 주식은 지 마누라한테 상속이 될 거라나? 허허허, 미친놈. 감히 지놈 따위가 민정 수석인 나를 협박을 해? 그래서 내가 그랬지.”

김필중이 잠시 쉬고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마치 죽은 전태기를 앞에 놓고 있는 듯 말했다.

“죽어라, 이 새끼야. 죽을 수 있으면 죽어 봐!”

“아···”

송대기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작은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 쉬키가 내가 그랬다고 진짜 죽어버리네? 또라이 쉬키. 흥! 전태기 그 운동권 쉬키. 민정 수석인 나도 협박해서 돈 뜯어내려고 한 놈이 다른 데는 얼마나 더 하겠어? 그 쉬키 평생을 정의네 민중이네 하면서 사람들 돈 뜯어먹고 살았던 놈이지. 남의 돈 공짜로 먹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 돈으로 지 딸 미국 유학 보내고. 더러운 놈. 잘 죽었어, 그 쉬키.”

김필중의 열변. 거의 끝나가는 것 같았다. 아니 내가 끝내고 싶었다.

난 한두 걸음 걸어가 김필중 앞에 있는 오른쪽 소파에 턱 앉았다.

“뭐야? 이 쉬~키가 어디라고 니 맘대로 앉아? 내가 언제 앉으라 그랬어? 엉?”

김필중이 눈을 부라리면서 목소리를 높였지만 난 무시하고 송대기 한재민을 보고 말했다.

“부장님도 여기 와서 앉으시죠.”

송대기 한재민도 김필중 앞을 쓰윽 지나 왼쪽 소파에 가 앉았다.

김필중을 중간에 놓고 송대기 한재민과 내가 마주 보고 앉은 꼴이 됐다.

“이 쉬~키들이 지금 뭐하는 짓이야? 당장 안 일어나?”

“조용히 하시구요. 검사가 피의자를 조사하는데 서서 하는 경우가 어딨습니까?”

나도 김필중만큼 인상을 쓰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뭐··· 뭐 어쩌고 어째? 이 쉬~키가 지금!”

“다리 꼬지 마시고 똑바로 앉으십시오. 지금 조사실로 모시고 가야 하는 데, 전직 검사시고 해서 편의 봐드려서 그냥 여기서 하는 겁니다. 아까 말씀도 맘대로 하시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까? ”

“이 쉬~키가 정신이 나갔나?”

김필중이 탁자 앞에 놓은 시사 월간지를 들어 나에게 휙 던졌다.

‘퍽’

난 왼팔을 들어 날아오는 월간지를 블로킹했다. 월간지는 날아가 김필중의 무릎에 맞고 바닥에 툭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월간지를 한 번 쓱 보고는 김필중이 나를 향해 다시 소리를 질렀다.

“야! 나. 니 미쳤구나? 이 또라이 쉬~”

그때,

“박. 수. 미.”

난 김필중의 욕지거리를 중간에 끊고 큰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이 방에 들어온 이후 최고로 높은 데시벨이다.

“뭐? 니··· 최용구 니 지금 뭐라고 그랬어?”

김필중이 박수미 이름 석 자를 못 알아들었을 리 없다. 저렇게 되묻는다는 건 뜻밖의 이름이 갑자기 내 입에서 나온 거라 당황했다는 뜻이다.

“박. 수. 미. 라 그랬습니다. 한번 더 말해줘요? 박수미. 왜요? 보고 싶으세요? 한번 더 보게 해 드리죠.”

난 아까부터 오른쪽 팔꿈치에 딱 붙여 들고 있던 노란색 대봉투를 김필중 앞에 들이밀었다.

김필중은 봉투와 내 얼굴을 번갈아 살피면서 미간을 강하게 찌푸렸다.

“박수미. 그 여자가 이걸 나한테 주고 갔습니다. 뭐하세요? 안에 뭐가 있나 열어보세요.”

김필중은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밀봉된 봉투 윗부분을 확 찢어발겼다.

봉투 속 내용물을 꺼냈는데, 반쯤 꺼내 보자마자 다시 넣어버렸다. 얼굴은 순식간에 똥빛이 됐다. 입술은 부르르 떤다. 호흡도 가빠졌다.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 소리쳤다.

“야! 너 이~ 쉬키. 이거 뭐야? 니 지금··· 나를···”

“몰랐습니다. 김필중 민정 수석님께서 여자 빨간 팬티를 그렇게 좋아하시는 줄. 근데 아무리 좋다 한들 그렇게 스타일 빠지게 머리에 뒤집어쓰고 계실 필요까지는···. 입에 물고 계시는 것도 좀...”

“너··· 너 이 새끼···”

“그리고 수석님, 아까 마약은 안 하신다고 하셨는데 이거··· 마약 안 하고도 이런 자세와 표정이 나올 수 있는지··· 전 마약을 안 해봐서 잘 모르···”

“야잇!”

김필중이 들고 있던 걸 찢으려고 했지만, 10장이 넘는 사진이 들어있는 봉투가 한꺼번에 찢어질 리가 있나. 우격우격 구겨서 나에게 홱 던졌다.

아까 두꺼운 월간지도 블록킹 했는데 이까짓 사진 10장짜리 구긴 종이 덩어리쯤이야. 나는 가볍게 쳐내고 씨익 웃으면서 한마디 툭 던졌다.

“이거 박수미가 나한테 파일로 쏘아준 겁니다. 필요하면 얼마든지 프린트 다시 할 수 있구요. 여기저기 뿌릴 수도 있···”

“뭐? 야잇!”

‘쿠당탕’

김필중이 벌떡 일어나 내 멱살을 턱 잡으면서 덮쳤고 나는 앉아있던 소파와 함께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김필중은 멱살 잡은 손을 놓치지 않았고 벌러덩 누운 내 위에 올라탔다.

“수석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송대기가 달려들어 김필중을 떼내려 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김필중은 진짜로 늑대였다. 한 번 문 먹이를 절대 놓아주지 않는. 아무리 ‘곰탱이’ 송대기라도 힘에서 밀렸다.

“최용구··· 니··· 이 쉬~키 니가 지금... 나를... 나를... 협박... 하는 기야?”

다시 경상도 억양으로 돌아왔다.

“네. 협박입니다. 협박도 수사의 기법 중에 하나라고 수석님한테서 배웠었죠. 배운 대로 하는 겁니다. 아직 더 할 것도 있는데···.”

“뭐? 어쩌고 어째? 니가··· 감히 나를··· 니 검사 선배를··· 민정 수석을 협박해?”

“제 눈에는 검사나 민정 수석이 그냥 피의자로 보이는데요. 그것도 조사하는 검사를 뇌물이네 마약이네 운운하면서 협박한... 아주 질 나쁜 피의자죠.”

“뭐 어째? 이 자식이···”

김필중이 멱살을 잡았던 양손 중 오른손을 들었다. 내 아구통을 한 대 날리려고 하는 거다.

이때,

‘퍽’

“윽!”

둔탁한 마찰음은 내 아구통이 아니라 김필중의 아랫배에서, 신음소리도 당연히 김필중에게서 나왔다.

“이 새~액끼가 어디서 검사를 폭행해? 범죄자 새끼가!”

한재민이었다. 평소 축구를 즐긴다고 했나? 페널티 킥 차듯 김필중의 아랫배를 차 버렸다.

김필중은 내게서 떨어지면서 소파 의자에 머리를 찍었다.

“으···”

머리를 부여잡고 다시 일어난 김필중. 다시 내게 달려들지는 않았다. 소파에 다시 앉는다.

나도 소파를 바로 세우고 다시 앉았다. 아직 씩씩거리고 있는 한재민의 표정이 좀 웃겼다.

“휴휴휴~”

숨을 고르는 김필중의 숨길이 옆에 앉은 나한테까지 전해졌다.

나는 그 숨길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어느 정도 진정됐다 싶었을 때 말을 시작했다.

“어떡하실 겁니까?”

김필중은 무릎 위에 팔을 얹고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대답하지 않았다.

“박수미 씨와는 상호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으니 형사 처벌 대상이 안 됩니다. 단지...”

“알아.”

김필중의 말은 짧았지만 목소리에 힘은 없었다.

“저도 이걸 까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수석님께서 마약 이야기만 안 하셨다면...”

“알아.”

“순순히 수사에 협조하시면 이 사진도 덮고 뇌물죄로 기소하겠습니다. 수사는 아까 말씀하신 모든 것. 뇌물을 공유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진행될 겁니다. 아까 여당, 야당, 언론계 다 있다고 말씀하셨던 거 다 녹음했습니다.”

“알아.”

“수석님 말씀대로 우리나라 3심제입니다. 뇌물죄로 기소돼서 재판에 넘겨지면 3심이 보장되지만, 박수미와의 이 사진 속 일은 기소될 일은 아니지만 국민 정서 재판에 회부될 거고, 거기는 항소 상고 없습니다. 대통령 선거는 꿈도 못 꾸실 거구요.”

“알아.”

“다 아신다니 그럼 저희는 이만 가겠습니다. 조만간 소환 절차 시작될 겁니다.”

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런데,

“박수미···”

김필중이 말했고 방을 나서던 난 멈춰 섰다.

“어딨나?”

이 와중에 박수미를 찾다니.

김필중··· 한심한 놈.

대답 없이 그냥 문을 쾅 닫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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